제127화 인연의 고리 1
지옥을 믿게 할 방법은 없다. 아무리 지옥을 세세히 설명해줘도 믿지 않기로 한다면 그저 한낱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 지옥에 도착해서야 진짜 믿게 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이 앞에서 아무리 묘기를 부려도 초능력자라고 믿어버리고 말면 끝. 무엇으로 유언장을 쓰게 한다? 예기치 않게 단단한 벽을 만난 기분. 사후세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니 더욱 난감했다.
문득 40년 전 칠흑처럼 어두운 산중턱에서 만났던 한 남자가 떠올랐다. 사이비종교에 빠져 자신은 죄사함을 받았고 인명부에서 지워졌다며 지옥에 갈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그 남자. 그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까진 믿었지만 자신은 절대 지옥에 갈 리가 없다고 계속 우겨대서 황당했었다.
그 남자와 이 남자가 뭐가 다르지? 한쪽은 천국과 지옥은 있지만 천국행을 따놓았다 맹신했기에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 생각했고 다른 한쪽은 사후세계가 아예 없다고 믿어선지 별별 죄를 다 짓고 있었다. 이 둘의 오라가 칠흑처럼 검어진 건 그런 잘못된 신념 때문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잘못된 맹신이 귀까지 닫아버리게 만들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 남자 얘기를 한번 해볼까? 김혁은 서성대던 발걸음을 뚝 멈추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에 말이야. 내가 어떤 좀 이상한 종교 단체 사람을 지옥으로 데려간 적이 있지. 그도 그랬어. 내가 아무리 저승사자라고 해도 절대 믿으려 들지 않았지. 차도 다니지 않는 산중턱 깜깜한 어둠속에서 내가 불쑥 나타났는데도 또 자기 몸을 한손으로 번쩍 들어 낭떠러지에 떨굴려고 했는데도 안 믿었어. 날 초능력자라고 생각했냐고? 아니야. 원래 지옥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서였나고? 그것도 아냐. 왠줄 알겠어?”
너무 혼자만 떠드는 것 같아 질문을 던졌지만 장회장은 대답할 생각도 안 했다. 이놈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김혁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혼자 떠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자기 이름이 무슨 인명부에서 지워졌고 자기랑 다니는 성모님이 죄를 다 사해주셔서 저승사자가 절대 못 찾는다고 하더라고. 자기는 곧 죽어도 천국에 갈 사람이라 절대 저승사자를 만날 일이 없다는 거였지. 난 저승사잔데 저승사자도 아닌 게 됐지. 웃기지 않나?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걸 왜 인간들이 맘대로 결정하지? 뭐 그렇게 우긴다고 내가 저승사자가 아닌 것도 아니고 지옥에 안 데려갈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웃겼어. 더 웃기는 건 바로 직전에 자기가 모시던 그 성모라는 여자를 제 손으로 죽였으면서도 천국에 갈 거라고 믿더라는 거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장회장이 조금 놀란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뭐?”
“죄를 짓고도 천국에 간다는 거 말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고.”
“지금 그, 그 얘길 왜 하는 거지?”
쓸데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는 장회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 좀 저승사자라는 걸 믿기 시작한 건가?
“좀 엉뚱한가? 내 말을 믿지 않으니 하는 말이야. 나는 저승사자고 굳이 지옥에 데려갈 자를 설득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려던 건데 음, 바로 가도 되지만 난 당신이 지옥에 가기 전에 좋은 일을 하게 하고 싶단 말이지. 마지막 가는 길에 좋은 일도 하고 지옥에서의 죄를 좀 덜면 모두가 좋잖아? 지옥에 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고. 그 돈을 나한테 달라는 것도 아닌데 고집 그만 부리고 하나 쓰지?”
왠지 유언장에 애걸복걸하는 모양새라 멋쩍어져서 다시 덧붙였다.
“정 못 믿겠다면 그 사건에 대해 검색해 봐도 좋아. 그때 한창 뉴스에 많이 났던 꽤 유명한 사건이니까. 40년 전 겨울이었지. 무슨 사이비종교 교주와 동반 자살한 남자.”
김혁의 말을 급히 끊으며 장회장이 말했다.
“그 사건을 어떻게 알아냈지?”
분위기로 보아 장회장은 이미 알고 있던 사건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좀 수월하게 풀려갈 수도 있다. 장회장이 보기에도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청년이 40년 전의 사건을 알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일 터였다.
“내가 그를 데리고 간 저승사자라니까?”
“...!”
그러나 장회장의 얼굴엔 의심이 가득했다.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말해줘? 그냥, 훅 데려갔어.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통화라도 하게 해주려 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더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봐도 전부 받질 않았어. 천국에 갈 것만 약속 받았을 뿐 현실에선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지. 가족들도 외면하고 그런 이상한 여자를 성모라며 모시고 다니는 일을 했던 걸 보면.”
“그 사람 이름이 뭐지?”
장회장이 그 사건에 과도하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이상하긴 했지만 김혁은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주기로 했다.
“글쎄, 너무 오래 전이라 이름은 잊어버렸지. 그게 벌써 40년 전인데 어떻게 기억해? 내가 별별 사람을 다 만나지만 사후세계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는 사람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워. 근데 그 사람 생각이 났어. 사후세계가 없다고 믿는 거나 온갖 죄를 다 짓고 무조건 천국에 갈 거라고 믿는 거나 나한텐 똑같은 얘기거든.”
장회장은 이제 눈빛을 바꿔 김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것뿐인데 여태껏 말한 걸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어 좀 더 디테일을 덧붙이려고 기억나는 걸 말하기 시작했다.
“그 밤에 일어난 일은 나밖에 모른다고. 거긴 깡촌 중에 깡촌이고 산을 깍아 만든 위험한 산중턱이었다니까. 생각해봐. 같이 죽자 해도 눈보라가 치는 밤에 그런 데까지 가겠냐고. 차를 타고 같이 낭떠러지로 돌진한 것도 아니고 같이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그렇잖아. 눈이 많이 내리던 밤이었는데 거기까지 왜 갔겠어? 그 남자가 자기가 죽인 여자를 산속에 버릴려고 갔던 건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 그러기 전에 내가 지옥으로 데려갔기 때문에 둘이 나란히...”
“그만!!!”
장회장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러서 김혁은 말을 멈추었다. 장회장은 이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지옥에 대한 공포가 생기는 건가? 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돌아온 장회장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이런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어떻게 알았는진 모르지만 날 죽일 힘이 있다고 이런 식으로 모욕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뭐?”
김혁은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싶어 장회장을 바라봤다. 장회장은 눈에 이글대는 분노를 담고 김혁을 찌를 듯이 쏘아봤다.
“킬러면 킬러답게 그냥 깨끗이 죽여라. 내 뒷조사는 언제부터 했지? 어디서 기사는 꽤 찾아봤나본데 니깟게 내 부모까지 욕되게 할 권리는 없다.”
장회장은 아마도 김혁이 지난 뉴스들에서 얻은 정보들을 상상해서 말하는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의심이 많으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순 있지만 킬러라고 오해받는 것까진 넘어가도 부모를 욕되게 한다는 말은 정말 억울했다. 지금 장회장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이 얘기 어디에 그의 부모를 모욕할 만한 게 있단 말인가.
“난 네 부모를 욕되게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길 지껄여?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야. 성모님을 죽이고 시체를 버리려 했다고? 돌아가신 분에게 그런 누명을 함부로 씌워도 되나?”
“아버지? 누가?”
장회장은 대답도 않고 여전히 독기 서린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니까 지금 40년 전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건가? 김혁은 확인차 재차 물었다.
“그 남자가 당신 아버지라는 거야? 그 성모를 죽인 남자가?”
“죽이지 않았다니까!”
장회장이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로 소리쳤기 때문에 김혁은 속으로 약간 움찔했다.
“진정 좀 해봐. 난 진짜 그 자가 당신 아버지인 줄 몰랐는데? 당신이 사후세계가 없다고 단언하니까 40년 전에 무조건 천국에 갈 거라고 우기던 남자가 생각나서 말한 것뿐이야.”
김혁은 다시 한번 장회장을 살펴보았다. 풍채나 생김새 어디에서도 그 남자가 연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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