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인연의 고리4
장회장은 가만히 고개를 저어대며 말했다.
“신은 없어. 신이 있다면 우리 가족을 그렇게 저버릴 리가 없잖겠나? 우리 가족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는데 우리의 헌신과 사랑을 그렇게 배반할 순 없지. 죄없는 어린 동생을 데려간 것도 모자라 아버지도 빼앗겼지. 남은 가족들은 지옥에 처박혔어. 그 이후로 난 신을 버렸지. 신은 없다고 믿었어. 난 그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고 오랜 노력 끝에 그 결과를 얻어낸 것이야.”
김혁은 눈앞의 늙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물 때문인지 좀 전까지 위풍당당해 보이던 그의 풍채에선 이젠 그 어떤 카리스마도 느껴지지 않았다. 김혁은 무엇보다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래서 신이 없단 결론을 얻어서 행복해졌나? 마음의 평안을 얻었는가?”
“...!”
이 자는 그 아비가 그랬듯 너무 성급히 결론을 내려버린 듯 했다. 신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불행이 비껴갈 거라거나 모든 죄악이 저절로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잘못됐듯 어떤 불행과 시련이 겹쳐진다고 해서 신이 없다고 단정 짓는 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그런 식으로 규정짓다 보면 또 다른 잘못된 길을 걷게 마련이었다.
인간이 쌓은 죄악은 신을 믿는다는 것만으로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에 마음을 바친 열렬한 신자들도 지옥으로 끌려오는 걸 보면 그건 확실했다.
잘못 행한 죄악은 영혼에 짙은 얼룩을 지우며 서서히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마침내 검게 썩게 된다. 마치 오래 방치된 오염된 땅에 계속 쓰레기가 쌓이는 것처럼 내버려두면 상황은 더욱 악화돼 갈 뿐이다. 그 얼룩을 지우려면 더 오랜 시간과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해도 이생에서 못다 지운 죄는 결국 지옥불에서 태워내야만 한다.
김혁은 지난 40년간 데려가 지옥불에 던져 넣은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렸다. 그 아버지와 똑같은 검은 오라를 달고 있는 이 남자에게 이 모든 것들을 설명해줄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김혁은 마침표를 찍듯 조용히 말했다.
“사후세계가 있든 없든 착하게는 살았어야지. 죄의 무게는 신에게 쌓이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쌓이는 거란 말이지. 그리고 당신은 인간들이 만든 법조차 안 지켰어. 그 죄가 뭔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이제 그만 가지.”
장회장의 붉어진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잠깐만, 네가 정말 저승사자라면 현호가 한 말들 그건 뭐지? 넌 마치 그애랑 함께 있었던 것처럼 말했어. 그 로보트며 큰형아.라고 한 것..”
김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어차피 지옥으로 데려갈 사람이라 사실대로 말해줬다.
“잠시 잠깐이지만 현호는 내 동생이기도 했으니까. 현호가 들어올 때 나도 그 고아원에 살았어. 현호는 날 볼 때마다 큰형아 생각이 났는지도 몰라. 그때 아마 비슷한 또래였던 것 같아. 내가 거기서 가장 큰 아이였는데 유독 말수도 없는 녀석이 가끔 그런 말들을 나한텐 한 걸 보면. 나보다 자기 큰형아가 더 키가 크다거나 노래를 잘 한다거나 그런 얘기들을 했어.”
김혁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장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김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40년도 더 전에 죽은 줄 알았던 동생과 함께 살았다는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했다. 김혁은 조용히 다음 말을 맺었다.
“내가 바로 열 여덟 살에 원장에게 맞아죽은 그 소년이거든.”
장회장은 많이 눅눅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런 얘길 어떻게 믿겠나!”
김혁은 약간 쓸쓸하게 대답했다.
“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어쨌든 사실이야. 아주 조그만 시골 고아원. 그곳 아이들은 굶주렸고 자주 구타당했어. 그래서 현호가 입양됐다며 원장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했는 걸. 그때는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 다음에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희생되고 난 다음이었지.
나도 이렇게 된 후에야 알 수 있었던 사실들이지. 내가 거기서 그냥 어른이 되고 당신처럼 늙어갔다면 나도 몰랐을 진실들.”
김혁은 자신이 죽지 않고 그냥 인간으로 늙었다면 지금 장회장과 엇비슷한 나이일 거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늙은 자신의 모습이 전혀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지난 40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지옥의 시간과 혼재돼 있기 때문에 더욱 짧게 여겨진다. 그러나 장회장에게 새겨진 세월의 무늬는 가벼이 한순간에 새겨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한 생애가 집약돼 있는 부푼 몸. 이제 그걸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었다. 장회장은 여전히 궁금한 게 많은지 또 질문했다.
“거긴 어떻게 됐지?”
“한동안 유지되다가 아이들이 다 커서 나가고 난 다음 없어졌어. 날 이렇게 만든 원장은 감옥에 갔다가 그 안에서 병사했지. 교단이 생기면서 함께 만들어진 고아원이라 그 전에 이미 수많은 아이들이 거쳐 간 다음이지. 불행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상상이 가나? 그 아이들은 부모들의 잘못된 신념으로 바쳐진 제물이자 인질들이었어. 정작 빼앗아놓고는 돼먹지 못한 원장에게 맡겨둔 채 학대를 당하든 말든 방치했고 말이지. 자라난 아이들은 범죄에 이용되다가 비참하게 죽거나 버려졌지. 그게 신을 믿는다는 자들이 한 일들이지. 그들이 믿은 게 진짜 신이었을까?”
김혁이 말을 마치고 장회장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별 말이 없었다. 부정도 긍정도 없이 멍하니 허공의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조만호는 쓰레기지만 그가 거느린 조직원과 그 가족들은 좀 가여워. 그들이 사는 마을에 가보니 그 고아원 생각이 나더군. 그들은 굶주림만 간신히 면한 삶을 살고 있었어. 원래 남자들이야 일을 한다고 마을에 없었고 남은 가족들끼리 서로 도우며 적은 돈을 나눠 살아왔지만 이젠 그마저도 힘들어 진 거야. 거긴 뚝 떨어진 외진 곳이기도 하고 마을의 남자란 남자는 죄다 좀비로 변해 죽어버렸으니 노인들, 어린애들과 갓난애를 안은 어린 여자들만 남게 된 거야. 가족을 잃은 슬픔과 굶주림만 가득 찬 마을로. 이제 곧 사라지게 되겠지만. 그들은 어디로 가지? 어떻게 살지? 그 가족들에게 약간이나마 온정을 베풀라는 게 쓰레기 짓인가?”
“난 그런 줄 몰랐잖나.”
“그래, 이제 알았으니 대답해봐. 내 요구가 부당해?”
“그들은 안 됐지만 난 분명 조사장에게 충분한 돈을 주고 있었어.”
“그건 일에 대한 보상이고. 그들이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가족을 잃은 건 보상을 안 해도 돼? 애초에 그런 일에 그런 조직을 고용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정말 그 모든 죽음들에 아무런 책임감도 못 느끼나?”
장회장은 다시 일 얘기로 돌아오자 단호한 표정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희생은 감내해야지. 이것저것 망설이면 아무것도 이루질 못해. 한두 번 실패나 위험으로 중단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그 무엇이 발견되고 발명될 수 있겠나? 난 매순간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하려고 노력했어. 연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일부러 좀비 바이러스 같은 걸 만들어내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에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군. 그게 어째서 내 책임이라는 건가? 난 연구원들을 믿고 맡겼고 거긴 거기대로 책임자가 있어. 그들이 실패한 뒷수습을 위해 그들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라고.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 했나?”
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거나 평상시에 책임 회피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고 모든 과정에 책임이 있어. 연구원들마저 죽일 수 있는 사멸시스템은 누가 승낙했지? 그런 게 필요했다는 건 충분히 위험할 거란 걸 알았단 거지. 보통 방역 수준도 아니고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연구원들까지 희생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걸 몰래 정부 시설에 설치할 수 있는 결단을 누가 할 수 있지? 그걸 들어갈 때부터 계획했단 말이지. 또 연구소 일을 수습하고 당신을 찾아간 조만호가 좀비 바이러스는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할 때 뭐라고 했지? 교통사고로 누워 있는 연구원을 살려둬야 한다며 연구는 계속 돼야 한다고 설득한 건 바로 당신이야. 그 순간만큼은 주먹을 꽉 쥐고 얼굴이 벌개지던 조만호가 옳았어.”
장회장이 흠칫 놀란 눈빛을 했다.
“이제 뭐 너무 늦어버렸지. 남은 자들이 해결하게 두자고. 당신의 시간은 다 됐어.”
이제 몇 분 후면 해가 뜰 것을 알기에 김혁은 서둘러 장회장에게 다가들었다. 지옥 얘기들을 포함해 너무 많은 얘기들을 해줬기 때문에 장회장에게 하루를 더 줄 순 없었다.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장회장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 현호는 천국에 갔나?”
“아마도. 지옥엔 없으니까.”
김혁은 말을 마치고 장회장의 가슴에 조용히 주먹을 날렸다. 그의 몸은 거대한 실리콘 인형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장회장은 영혼만 빠져나와 바닥에 구겨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김혁을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후회가 뒤섞인 마지막 눈빛을 남긴 채 장회장은 리스트 속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선 채로 김혁은 생각했다. 왜 이런 대화를 항상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눈빛을 볼 때마다 좀 더 일찍 깨달음의 기회를 주어서 새로운 생을 살 기회를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방엔 햇빛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밖에서 해가 뜨는 순간에 맞춰 김혁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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