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화신2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5.10 15:55
최근연재일 :
2022.04.28 13:19
연재수 :
2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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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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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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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제133화 악마와의 대화3

DUMMY

악마는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휴, 환상 짜는 거,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건 뭐 막 되는 줄 알아? 누군가를 만족시키는 건 그만큼 어려운 거야. 하진이나 한조 같기만 하면 좀 쉽지. 하진이는 찬수 같은 남자애들이 좋다고 쫓아다녀만 줘도 좋아라 하고 한조는 목소리만 틔워줘도 몇 달이고 노래만 불러 제끼지. 걔네들은 좋아하는 게 분명하거든. 너도 대충 뭔지 알잖아?”


악마는 허공에 노래하는 한조와 열광하는 팬들의 무대를 띄워놓았다. 거대한 무대 위를 누비고 다니는 한조는 멋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에 더 목마른 자들에겐 봐줄 사람이 필요하지. 열렬히 환호하면 할수록 더더더. 그치만 그들이 꼭 특별한 사람일 필요는 없거든. 타인의 반응이 중요한 거니까. 자기 외모나 실력을 뽐내고 인정받을 때 오는 희열 크으, 한조는 얼마전에 저 환상 속에서 소원성취 했지. 춤, 노래 다 되는 아이돌 가수로 우뚝 섰거든. 저 환상이 끝나고 났을 때 한조가 날 원망했을까? 아니지 아니야. 입이 귀에 걸렸거든. 다음번에 또 해달라고 졸랐거든. 왜? 한조는 현실에서 절대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아니까. 어중이 떠중이의 환상은 생각해 놓은 것만도 한두 개가 아니야.”


“어려운 걸 잘해야 진짜 잘하는 거지.”


김혁이 뾰족하게 대꾸하자 악마가 화들짝 놀란 체를 하며 몸을 팡 터뜨렸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도 어렵거든? 근데 언제 한번이라도 실망한 적 있어? 환상인 줄 알아챈 적은? 없잖아. 나 잘하는 거 맞거든? 걔가 유난히 복잡한 애라서 그런 거지. 은정이는 맘속에 남은 증오나 분노를 다 태웠는데도 인간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애잖아. 딱히 이기적인 것도 아닌데 자기 자신 밖에는 관심도 없고. 그러니 어떤 인간을 환상에 넣어줘도 만족할 리가 없지.”


“지적인 걸 충족시켜 주면 되잖아. 척척 박사가 되게 하는 거라든가 노벨상을 타게 하는 그런 환상.”


갑자기 김혁 주변이 책들로 가득 찬 책장으로 변했다. 악마는 근사한 검정 슈트를 입고 은테 안경을 쓴 점잖은 남자로 변해 있었다. 희고 가느다란 철학자의 손가락으로 책장에 꽂힌 두툼한 책들의 책등을 하나하나 가볍게 훑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런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년 같은 악마의 음성이었다.


“아니 그건 더 안 돼. 걘 지식을 얻어가는 그 과정을 좋아하는 거라. 남들이 주목하고 열광하고 박수치는 그 순간보다도 지식을 쌓아가는 그 과정에서 오는 희열을 더 즐기는 거니까. 지식이 지혜로 변해가는 과정을 관찰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 과정을 건너뛰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해? 그건 보상이 될 수 없어. 그 과정을 생략하고 지식을 완전한 형태로 다 밀어 넣어주면 과연 행복해 할까? 결과부터 쥐어주는 건 오히려 기쁨을 빼앗는 거라니까? 요리하는 걸 즐기는 요리사한테 신선한 재료를 주는 게 아니라 다 만들어진 요리를 놓아주는 거랑 같은 거야.”


그런가? 김혁은 그런 것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완벽하게 세팅된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완성된 요리를 맛보는 게 더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럼 은정이만을 위한 이런 환상적인 도서관을 하나 지어주면 되겠네.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는 책들로 가득 찬 곳. 거기서 맘껏 뒹굴고 맘껏 책만 보고 그걸 가장 원할 거 아냐.”


“음, 제법이야. 그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것도 섣불리 건너뛰는 건 좋지 않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환상이 너무 길어지잖겠어? 또 그건 지금도 충분히 현실에서 하고 있으니까. 걔가 인간 세상에 갈 때마다 거의 대부분 밤 시간을 텅 빈 도서관에서 책 읽으며 보내는 건 몰랐지?”


“그랬어?”


다른 저승사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뭘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도 궁금해 했던 적도 없었다. 다들 리스트를 들고 돌아다니며 시간 쓰는 방식이야 다 비슷비슷하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저승사자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 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건물에 홀로 돌아다니며 책을 고르고 있을 은정이의 모습이 상상됐다. 고요하고 거대한 도서관에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작은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고 있는 은정이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까? 사람들 구경에 지치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자신과 많이 비교되는 건 사실이었다. 악마가 허공을 왔다갔다 하며 말했다.


“환상을 안 주는 대신 딱 한 가지 배려해주는 게 그거야. 언제 돌아와도 책망하지 않는 것. 리스트 업무가 좀 늦어져도 그냥 놔두지.”


음, 저건 명백한 차별 같은데 나한테는 맨날 빨리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면서, 김혁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악마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워낙 일처리는 깔끔하니까 핀잔할 것도 없고. 때로는 몇날 며칠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곤 해. 낮에는 남들이 펼쳐놓은 책들을 같이 읽고 밤에는 서가의 꼭대기에 읽는 책들을 주로 꺼내보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라. 날이 밝는 줄도 모르다가 몸이 사라져 버리면 그때서야 안다니까? 책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나서야 깨닫는 거야. 그런 몰입감 가져본 적 있어?”


저승사자가 해가 뜨는 걸 모르다니 그럴 수가 있으려나? 김혁은 지난 40년간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지금으로선 그게 내가 은정이한테 해줄 수 있는 전부야. 내가 손댈 필요가 없기도 하고 굳이 환상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고.”


악마는 잠시 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모든 도서관의 책들을 다 섭렵하고 나면 그때 해줘도 늦지 않아. 읽고 싶은 만큼 다 읽고 더 이상 읽을 게 없을 때 그때는 환상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아주 길고 긴 환상이 되겠지?”


“어휴, 세상의 책들을 다 읽는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글쎄, 걘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정말?”


악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만화책만 읽던 소년도 있었지? 이제는 그것마저 안 읽는 그 누구는 잘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긴 하겠네.”


김혁은 자기 얘기를 꺼낸 악마를 슬쩍 흘겨보았다. 하지만 사실이니 뭐라고 할 건 없었다. 저승사자가 되기 이전엔 교과서도 잘 안 보는데다 만화책만 읽었고 저승사자가 된 이후엔 사람 구경만 실컷 하지 책은 손에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냥 설렁설렁 읽어도 한 도서관의 책들조차 다 읽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악마가 생각하는 그때가 오긴 할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맞았다.


“진실만을 원할 때는 진실만 필요한 법. 환상을 섞을 필요가 없어. 환상을 원할 때 환상을 줘야 최상의 효과를 내지.”


맞는 말인 것 같긴 했지만 슬그머니 의문이 차올랐다.


“그럼 난? 내가 늘 사랑에 목말라 있다 생각해서 그런 환상들을 짜주는 거야? 내가 그렇게 여자를 밝힌다고?”


평소 그런 생각을 별로 안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환상을 계속 짜주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응? 좋아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뭔 소리야? 넌 여자의 사랑 속에서 행복한 남자야. 핏줄은 못 속인다니까? 큭큭, 여태껏 내가 짠 환상 속에서 사랑에 안 빠지고 거절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냐고.”


“그거야...!”


일곱 번의 환상, 일곱 번의 사랑,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그리고 사랑의 단꿈에서 깨면 늘 못생긴 악마의 얼굴과 마주치곤 해서 소리를 버럭 질러대는 것도 늘 반복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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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제208화 만남4 +1 22.03.22 49 1 9쪽
209 제207화 만남3 +1 22.03.01 33 1 11쪽
208 제206화 만남2 +1 22.02.23 38 1 10쪽
207 제205화 만남1 +1 22.02.21 33 1 9쪽
206 제204화 기다림4 +1 21.07.17 64 1 10쪽
205 제203화 기다림3 +1 21.07.06 64 1 9쪽
204 제202화 기다림2 +1 21.06.10 68 1 9쪽
203 제201화 기다림1 +1 21.05.28 86 1 10쪽
202 제200화 악마는 왜 그럴까5 +1 21.05.15 68 1 12쪽
201 제199화 악마는 왜 그럴까4 +1 21.05.14 58 1 11쪽
200 제198화 악마는 왜 그럴까3 +1 21.05.10 79 1 10쪽
199 제197화 악마는 왜 그럴까2 +1 21.05.01 166 1 11쪽
198 제196화 악마는 왜 그럴까1 +1 21.04.24 108 1 9쪽
197 제195화 심판4 +1 21.04.18 140 1 9쪽
196 제194화 심판3 +1 21.04.15 190 1 9쪽
195 제193화 심판2 +1 21.04.11 157 1 10쪽
194 제192화 심판1 +1 21.04.09 188 1 10쪽
193 제191화 존재이유10 +1 21.04.05 93 1 9쪽
192 제190화 존재이유9 +1 21.04.04 78 1 9쪽
191 제189화 존재이유 8 +1 21.03.30 75 1 10쪽
190 제188화 존재 이유7 +1 21.03.26 70 1 9쪽
189 제187화 존재 이유6 +1 21.03.16 99 1 9쪽
188 제186화 존재 이유5 +1 21.03.14 66 1 10쪽
187 제185화 존재 이유4 +1 21.03.09 111 1 9쪽
186 제184화 존재 이유3 +1 21.03.03 94 1 9쪽
185 제183화 존재 이유2 +1 21.03.02 61 1 10쪽
184 제182화 존재 이유1 +1 21.02.26 79 1 9쪽
183 제181화 열길 사람속 탐험4 +1 21.02.22 93 1 9쪽
182 제180화 열길 사람속 탐험3 +1 21.02.21 63 1 8쪽
181 제179화 열길 사람속 탐험2 +1 21.02.16 68 1 9쪽
180 제178화 열길 사람속 탐험1 +1 21.02.14 90 1 8쪽
179 제177화 재회3 +1 21.02.06 75 1 8쪽
178 제176화 재회2 +1 21.01.31 83 1 8쪽
177 제175화 재회1 +1 21.01.30 103 1 10쪽
176 제174화 세상의 오해5 +1 21.01.27 87 1 10쪽
175 제173화 세상의 오해4 +1 21.01.19 88 1 8쪽
174 제172화 세상의 오해3 +1 21.01.17 71 1 8쪽
173 제171화 세상의 오해2 +1 21.01.16 104 1 9쪽
172 제170화 세상의 오해1 +1 21.01.15 76 1 10쪽
171 제169화 가난한 사람들3 +1 21.01.04 90 1 9쪽
170 제168화 가난한 사람들2 +1 20.12.30 98 1 10쪽
169 제167화 가난한 사람들1 +1 20.12.29 72 1 8쪽
168 제168화 사람의 마음2 +1 20.12.16 75 1 12쪽
167 제167화 사람의 마음1 +1 20.12.16 91 1 9쪽
166 제166화 가족2 +1 20.11.25 88 1 10쪽
165 제165화 가족1 +1 20.11.25 84 1 9쪽
164 제164화 대화는 어려워 +1 20.11.20 89 1 11쪽
163 제163화 그들의 아지트 +1 20.11.13 78 1 12쪽
162 제162화 봄바람같은 +1 20.10.27 72 1 11쪽
161 제161화 마트5 +3 20.10.08 91 2 10쪽
160 제160화 마트4 +3 20.09.27 82 2 9쪽
159 제 159화 마트3 +3 20.09.18 113 2 11쪽
158 제158화 마트2 +3 20.09.11 80 2 12쪽
157 제157화 마트1 +1 20.09.01 82 1 11쪽
156 제156화 버스2 +1 20.08.22 69 1 9쪽
155 제155화 버스1 +1 20.08.21 78 1 10쪽
154 제154화 풀리지 않을 오해 +1 20.07.27 112 1 9쪽
153 제153화 강도라구? +1 20.07.26 96 1 11쪽
152 제152화 진짜에게 가짜가 +1 20.05.16 101 1 9쪽
151 제151화 영혼값 +1 20.04.19 105 1 9쪽
150 제150화 실종자들 +1 20.04.12 87 1 9쪽
149 제149화 보물 상자를 날라라 +1 20.04.10 89 1 10쪽
148 제148화 신도 인간도 아닌 존재 +1 20.03.31 150 1 12쪽
147 제147화 검정과 하양 +1 20.03.24 90 1 9쪽
146 제146화 구원자 +1 20.03.15 100 1 10쪽
145 제145화 눈송이들 +1 20.03.11 92 1 8쪽
144 제144화 하얀 무리 +1 20.03.10 105 1 8쪽
143 제143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 +1 20.03.08 88 1 9쪽
142 제142화 장회장의 정원 +1 20.03.08 93 1 8쪽
141 제141화 알리바바와 도둑들 +1 20.03.06 95 1 7쪽
140 제140화 스핑크스의 방2 +1 20.03.04 118 1 9쪽
139 제139화 스핑크스의 방1 +1 20.03.04 81 1 8쪽
138 제138화 별걸 다하는 +1 20.02.26 110 1 9쪽
137 제137화 너의 연기 +1 20.02.24 109 1 9쪽
136 제136화 배우야? 저승사자야? +1 20.02.23 116 1 8쪽
135 제135화 악마와의 대화5 +1 20.02.22 100 1 7쪽
134 제134화 악마와의 대화4 +1 20.02.20 106 1 8쪽
» 제133화 악마와의 대화3 +1 20.02.18 129 1 8쪽
132 제132화 악마와의 대화2 +1 20.02.15 88 1 9쪽
131 제131화 악마와의 대화1 +1 20.02.15 119 1 9쪽
130 제130화 인연의 고리4 +4 20.02.13 110 1 11쪽
129 제129화 인연의 고리 3 +1 20.02.09 102 1 8쪽
128 제128화 인연의 고리 2 +1 20.02.09 99 1 9쪽
127 제127화 인연의 고리 1 +1 20.02.07 102 1 9쪽
126 제126화 나 저승사자라니까! +1 20.02.03 121 2 8쪽
125 제125화 도시의 밤 +1 20.02.01 111 2 10쪽
124 제124화 고요한 마을 +1 20.01.28 117 2 9쪽
123 제123화 비밀속으로6 +1 20.01.24 108 2 8쪽
122 제122화 비밀속으로5 +1 20.01.24 117 2 8쪽
121 제121화 비밀속으로4 +1 20.01.21 105 2 9쪽
120 제120화 비밀속으로3 +1 20.01.20 101 2 8쪽
119 제119화 비밀속으로2 +1 20.01.17 104 2 8쪽
118 제118화 비밀속으로1 +1 20.01.16 114 2 8쪽
117 제117화 부서진 꿈들 +1 20.01.14 115 2 7쪽
116 제116화 악마가 이상해 +1 20.01.12 118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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