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너의 연기
떠중이가 팔짱을 낀 채 영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건 편집하면 되는데 주작 소리 안 들으려면 편집점이 없는 게 좋은데...”
김혁은 속으로 저 연기 자체가 이미 조작된 영상 같은 느낌을 풍긴다고 말할까 하다가 다른 말을 했다.
“뭐야? 너희들, 이런 건 왜 찍었어?”
표정으로 보아 주은정은 이 영상에 그닥 호의적으로 가담하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떠중이가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그게요. 그저께 밤에 도시에 나타난 좀비들을 쫓다가 여기로 들어왔는데 이 방 주인이 개인 방송 중에 좀비한테 물리는 게 실시간으로 나가버린 거예요. 같이 있던 친구가 갑자기 좀비로 변하더니 목을 물어버렸어요. 목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뛰쳐나가고 그랬는데 채팅창에 주작이다 뭐다 난리가 났죠.”
“이 방 주인은 어디 가고?”
책상과 방바닥에 피가 튄 흔적은 있었지만 방안엔 사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깥으로 도망쳐서 밖에서 좀비랑 해치웠죠. 근데 전 여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떠중이가 주은정과 민하진을 한번 바라보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제가 옛날에 이것 좀 많이 했었잖아요.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좀 보다가 딱 생각한 거예요. 아직도 좀비에 대한 공식적인 발표도 없고 좀비는 도시에 다 퍼져가는데 가만 두면 안 되겠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걸로라도 알려볼까 하고요. 그래서 좀비만 돌아다닐 때 저희가 좀 찍어봤어요. 물론 선배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려고 했는데 선배님은 안 오시고 댓글창은 난리가 났고... 조회수는 폭발하고...”
떠중이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고 끝내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아하니 영상을 이미 올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걸 벌써 올렸다는 거야?”
떠중이가 눈치를 보며 재빨리 털어놨다.
“아니 저건 아직이요. 좀비만 찍힌 걸로 하나 올렸어요. 조회수가 어마어마해요. 방송 중에 방송하던 사람이 사라진 것도 그렇고 갑자기 올라온 이상한 영상도 그렇고 여기저기서 나도 저런 사람 봤다는 댓글들이 가세하니까 점점 더 많이 보고 있는 중이거든요. 인기 영상 1위를 찍었어요. 그래서 하나 더 찍었는데 그게 이거에요. 올리기 전에 날이 밝아서 올리진 못했구요.”
영상은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고 있었다. ‘반복재생’이 걸려 있는 모양이었다. 날이 밝은 다음이라 저승사자들은 아무도 컴퓨터를 건드릴 수 없어 재생되는 영상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오늘은 더 난리가 낫겠죠? 으, 확인하고 싶어 죽겠어.”
떠중이가 컴퓨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민하진이 말했다.
“역시 내 얼굴은 실물이 더 낫지? 응?”
화면 속에 다시 나온 자기 얼굴을 찬찬히 보며 이번엔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민하진을 보고 주은정이 솔직하게 대꾸했다.
“외모는 봐줄만한데 연기가 꽝이야.”
“뭐가? 저 정도면 훌륭하지.”
“이거 올렸으면 진짜 주작이란 소리 들을 걸? 그나마 다행이지.”
민하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흘기며 주은정에게 뭔가 말하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해서 현관문만 바라봤다. 초인종은 두어번 더 울리다가 곧 현관문의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붉은기가 감도는 청남색 오라를 가진 젊은 남자가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는 널찍한 원룸을 한번 휘 둘러보더니 텅 빈 것을 확인하고 컴퓨터로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 자식은 전화도 안 받고 어딜 간 거야? 지금 조회수 폭발인데 확인도 안 하고 댓글 확인도 않고...”
남자는 플레이되고 있는 영상을 들여다보더니 의자에 앉아 영상의 처음부터 다시 재생시켰다.
“뭐지? 이거 진짠가?”
남자는 여기 저기 튄 핏방울과 화면속의 상황을 번갈아 보며 점점 얼굴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그러다 화면 속에 민하진이 등장하자 남자는 이제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쟨 또 누구야? 첨 보는 앤데, 이놈 진짜 채널 닫을려고 작정했나 이런 가짜 영상이나 만들고 정신이 있어 없어?”
남자가 영상을 망설임 없이 툭, 꺼버렸다. 떠중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민하진은 입을 쭉 빼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이제 뮤트브 채널을 열어 놓고 댓글에 답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저승사자들은 모두 남자 뒤로 몰려가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같이 읽었다.
ㄴ스핑크스님 어디 간 거예요? 돌아와요. 플리즈 플리즈
ㄴ응답하라 스핑크스
ㄴ주작하다 도망갔냐? 캬캬캬. 너 진짜 시체로 발견 안 되면 나한테 죽는다
ㄴ시체로 발견되면 니가 죽을래? 븅신아!
ㄴ저거 진짜에요? 내가 벌써 열 번째 댓글 남기는데 답글 좀 달지?
ㄴ%@&야, 이런 게 재밌냐?
ㄴ저게 좀비야? 하나도 안 무섭당. 내가 만들어도 저거보다 낫겠네. 요즘 좀비 영화 진짜 잘 만드는데 저게 뭐냐? 분장도 안 하고 진짜 날로 먹을라 하네.
ㄴ스핑크스야 너 이런 짓 하다 디진다.
ㄴ수수께끼가 떨어졌나 봄. 나가 죽어라.
ㄴ저기요, 영상 속에 나오는 사람 우리 아빠 같은데 어제 집에 안 들어왔거든요. 이거 어디서 찍은 거예요? 출근도 안 하시고 지금 연락이 안돼요. 쪽지 좀 남겨주세요.
ㄴ이제 하다하다 좀비냐? 스핑크스 너도 별 수 없구나?
한참 댓글을 읽던 떠중이가 실망해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좀비영상 올리는 건 포기해야겠다.”
이번엔 웬일인지 주은정이 먼저 나서서 위로했다.
“사람들이 과도한 분장에 익숙해져서 그래. 너 탓 아니야.”
“그러니까. 좀비가 사람들 잡아먹는 걸 찍을 순 없잖아. 영상 찍을려고 사람들 공격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음, 그럼 다음번엔 내가 좀비 역할을 할까? 아 참참, 분장을 할 수가 없지.”
늘 저승사자가 되고나서 화장도 할 수도 없고 액세서리도 착용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민하진이라 금방 그런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야 민하진. 화장이 문제가 아니고 연기 때문이라니까. 넌 대체 왜 그거에 미련을 못 버리니? 진짜 아닌 건 아닌 거지. 10년 동안 그렇게 했는데 너처럼 연기력이 안 늘기도 쉽지 않겠다.”
주은정은 너무 신랄하지만 민하진은 그런 것에 상처 받지는 않는지 강하게 말했다.
“연기만 제대로 배우면 나도 잘 할 수 있다고. 우리 아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연기를 잘한다고 늘 칭찬했단 말야. 연기 학원도 끊어놨었는데 한번도 못 가보고 이 꼴이 된 걸 어떡해?”
“언제? 재롱잔치 때? 자기 아이 못한다는 부모 봤니?”
“아휴, 넌 왜 맨날 매사가 부정적이야?”
“넌 왜 매사가 낙관적인데?”
“자자, 얘들아, 저건 됐고 그래서 이틀 동안 이 도시에만 있었던 거야?”
김혁이 끼어들자 민하진이 주은정으로부터 고개를 팩 돌리고 먼저 대답했다.
“아니요. 낮 동안 여기 저기 다 둘러봤죠. 세트장 마을도 가봤는데 안전했고요. 그 깡패 아저씨도 잘 지내요. 이제 혼자 밥도 해먹고 그 마을은 이제 괜찮은 것 같아요.”
이어서 떠중이가 말했다.
“좀비는 보이는 대로 때려잡고 있는 중이고 마주친 사람들한테는 대충 설명해주면서 좀비 옆에 얼씬도 말라고 말했고 이런 증상을 보이면 무조건 도망치라고도 말해줬어요.”
이번엔 주은정이 말했다.
“짱돌 애인 집에는 가보셨어요? 거기도 가봤더니 벌써 죽은 지 한참 된 것 같던데요. 부패가 진행돼서 묻어줬어요.”
“응. 잘했다. 장회장한테 가기 전에 갔었는데 이미 죽은 다음이었어. 돌아와서 처리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 몰랐어. 악마 말로는 좀비 바이러스는 증식도 빠르지만 숙주를 옮기지 않으면 사멸도 빠르다고 해. 좀비로부터 차단만 확실히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전염 안 되고 저절로 사라지게 할 순 있을 것 같은데...”
“정말요?”
민하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주은정은 여전히 회의적으로 대꾸했다.
“잠복기가 문제겠네요.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멀쩡하고 그런 상태에서 전염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민하진이 과장된 몸짓을 취하고 연극적인 말투로 외쳤다.
“전 국민에게 발표하는 거야. 오늘 이 시간 부로 모두 각자 떨어진 곳에서 하루 동안 서로를 금하라! 좀비로 변하거든 지체 없이 연락하라!”
민하진의 투명한 손이 남자의 머리를 통과해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열심히 댓글을 쓰던 남자는 뭔가 신경이 쓰이는지 뒤를 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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