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알리바바와 도둑들
악마가 리스트에 새로 추가한 곳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쯤이었다.
그곳은 아주 특이한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평상시 보기 드문 낯선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마가 왜 알리바바를 들먹였는지 이해가 됐다.
금은보화가 가득 찬 동굴.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보던 ‘열려라 참깨’하면 열리는 그 알리바바의 동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어디서라도 금방 이 도둑놈! 하며 40명의 도둑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곳. 동굴이 네모 반듯한 방으로 바뀌고 물건들 모양만 다를 뿐이었다.
저승사자들은 각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한마디씩 했다.
“우와, 여긴 어디에요?”
“장회장의 비밀창고.”
“아! 비자금.”
“우와 저것들 좀 봐. 엄청 값비싸 보이는데?”
민하진은 역시 호들갑스러웠고 떠중이는 골드바가 쌓인 무더기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거 진짜 금덩이야? 이런 게 진짜 있긴 있는 거구나. 맨날 영화에서만 봤는데.”
그곳은 아무도 알지 못하거나 당분간은 아무도 오지 않을 곳처럼 보였다. 바깥의 소리도 전혀 전달되지 않는 진공 상태로 몹시 조용했다.
값비싼 도자기들, 그림들, 뭔가가 담긴 크고 작은 상자들, 각 나라의 외화 뭉치와 고액권 현금 뭉치 더미, 뭔가 여러 종류로 보이는 각종 종이 뭉치들, 가득 쌓인 골드바들이 잘 정돈 된 채 무더기 무더기 쌓여 있었다.
아직 낮이라 직접 만져볼 수 없어 아쉬워하며 모두들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눈으로 훑어보기만 했다.
“원래 부자들은 그 뭐야... 비밀 은행 같은 데다 보관하지 않나? 요즘도 이런 데를 둬?”
민하진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물었고 떠중이가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스위스 은행? 차명계좌?”
“그래 그런 거.”
민하진이 말을 마치자 이번엔 주은정이 대꾸했다.
“거기도 있고 여기도 있는 거겠지.”
“근데 장회장이 여길 왜 얘기해줬어요? 얼마나 겁을 주신 거예요? 선배님.”
떠중이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는 김혁을 향해 물었다. 평소에 내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보였나? 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우선은 부인했다.
“나 아니야!”
김혁은 유서를 쓰게 하려다 실패했다고 말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쨌든 장회장이 여길 가르쳐줄 마음을 먹게 한 건 자신의 설득이 아니라 지옥불 그 자체니까.
“장회장은 정말 불신 덩어리였어. 저승사자래도 안 믿고 지옥이 있대도 안 믿고. 뭐 신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하던가?”
민하진이 알쏭달쏭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신이 없다는 연구요? 그런 건 어떻게 하지? 없는 걸 어떻게 증명해? 수천 년 동안 인간 위의 존재를 믿어왔는데 그냥 있다고 하는 쪽이 더 쉽지. 그 연구자가 어떻게 속였을까 되게 궁금하네.”
“그러니까. 어떻게 했는진 모르지만 정말 철썩 같이 믿고 있더라고.”
김혁은 여전히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말했다. 곧이어 상자들을 기웃거리던 주은정이 말했다.
“뻔하죠, 뭐. 어디서 그럴듯한 사기꾼한테 말도 안 되는 말로 연구비나 왕창 뜯긴 거지. 사이비 교주한테 모두 갖다 바치는 심리랑 별로 다를 게 없을 걸?”
“몸도 사라지고 막막 그래도 안 믿었어요? 그럼 선배님이 뭐라고 생각했는데요?”
“초능력자.”
“초능력자? 진짜요? 슈우~퍼어맨~”
민하진이 팔 하나를 쭉 뻗치고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야 정신없어. 쫌!”
주은정이 타박했지만 민하진은 멈추지 않았다.
“거기가 패닉룸이었는데도 안 믿더라니까. 장회장은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오수연이 만들어낸 초능력자라고 믿다가 마지막 순간 육신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깨달았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날 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김혁은 장회장이 리스트로 흡수되기 직전에 보인 그 눈빛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맞아요. 그런 사람들이 꼭 있죠. 그 순간이 돼야 후회하면서 아주 묘하고 드라마틱한 눈빛이 된다니까요.”
떠중이가 말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은정도 한마디 거들었다.
“악마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한가봐.”
슈퍼맨 놀이에 싫증난 민하진이 공중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말했다.
“이제 그만 가자고 해도 고집 부리는 사람들은 정말 성가셔. 그런 사람들은 그냥 두말할 필요도 없이 휙.”
민하진이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근데 여긴 어떻게 리스트에 있는 거예요?”
주은정이 의문을 느꼈는지 물었다.
“악마가 넣었지. 장회장이 지옥불을 보자마자 악마한테 매달렸다네.”
“크큭, 지옥불이 무섭긴 무서웠나 보네?”
민하진이 입을 막고 귀엽게 큭큭거렸다.
“지옥불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이건 꿈일 거라고 소리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죄인들을 지옥불에 직접 쳐넣기를 즐겨하던 주은정이니 저 말은 믿을 수밖에 없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법.”
떠중이가 근엄한 척 하며 말했다.
“어쨌든 잘됐어. 이걸로 세트장 마을 사람들이나 열악한 곳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니까.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니 너무 펑펑 쓰진 말자고.”
“이걸 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떠중이가 물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돈처럼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바깥 좀 둘러봐야겠다.”
김혁이 몸을 솟구쳐 바깥으로 나가보니 위는 땅이었다. 콘크리트와 흙이 층층이 쌓인 곳을 뚫고 올라가니 그 위에 집이 세워져 있었다. 집처럼 꾸며져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별장 같은 곳이었다. 주변은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은밀하게 위장 돼 있는 거대한 금고를 위한 집이었다.
따라 나온 저승사자들도 빈 집에 도착하고는 놀란 얼굴들이었다. 모두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그저 고급스럽게 지어진 집일 뿐 지하 금고의 출입구가 어딘지는 어디서도 찾아낼 수조차 없었다.
“음, 원래 이런 데는 서재가 비밀문인데...”
떠중이가 아는 척을 했지만 이 집엔 서재가 없었다.
“영화에서 보니까 뭔가 장식품을 건드리면 벽이 스르륵 열리던데?”
민하진은 여기 저기 튀어나온 부분들이나 장식품들을 쓰다듬어보고 싶어하며 여기 저기 눈여겨보고 다녔다.
저승사자들은 각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아는 대로 쏟아놓기 시작했다.
“걸려 있는 그림 같은 것도 입구일 수 있어.”
“바닥이 들릴 수도 있고.”
“저 양탄자를 들어봐야겠네.”
“그렇게 쉽게는 안 만들었을 걸?”
“내 생각엔 벽이 열릴 것 같아. 그게 가장 자연스럽다고.”
이 수수께끼는 주은정의 한마디 말로 끝났다.
“금고 안에서 밖으로 나와 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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