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장회장의 정원
다시 금고 안으로 돌아온 일행은 출입구를 찾았다. 문을 통과해 길 따라 되짚어 나오니 문은 집과는 연결돼 있지 않았다.
어둡고 비좁은 터널을 좀 걷다 보면 아늑한 지하실이 하나 나오고 거길 통과해 나가면 위쪽으로 통하는 계단과 만나는 구조였다. 지하실은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지하실에 들어온 사람은 또 다른 공간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만큼 금고로 들어가는 문은 벽처럼 교묘히 위장돼 있었다. 계단 아래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은 당연히 밖에서 잠금장치가 돼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마침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나오고 보니 그곳은 정원이었다. 둘러보니 집은 저만치 떨어져 있고 잔디가 깔려 있는 정원 한 켠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청동상을 통해 나온 것이었다.
동상이 앉아 있는 하단부는 원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겉으로 봐선 전혀 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감쪽같았다.
“오, 기발한데?”
김혁 뒤를 따라 나온 떠중이가 소리치고 나머지도 방금 빠져나온 동상을 올려다봤다.
“이건 또 뭐야?”
사람 형상의 청동상은 단 위에 올라앉아 있어서 실물 크기라도 좀 커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동상을 둘러싼 높은 삼면 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위엄을 더하는데다 단 아래 뒤쪽에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을 감춰주는 역할도 하고 있는 듯 했다. 동상이 있는 주변 바닥만 널찍하게 무늬가 들어간 바닥돌이 깔려 있었다.
이런 정원에 청동상이라니? 김혁은 허공에 떠서 동상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속으로 조금 놀라며 말했다.
“장회장이잖아?”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장회장의 얼굴을 알고 있는 건 김혁뿐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동상의 얼굴 주변으로 날아와서 들여다 봤다.
“선배님이 데려간 그 장회장이요?”
“응.”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김혁은 그 청동상을 보면서도 의아하고 이상하기만 했다. 잘 만들어진 건 둘째 치고 자신의 전신상을 정원에 떡하니 만들어 놓는다는 게 흔한 일인가 싶어서였다.
보통 뭔가 정원을 장식할 조각품을 놓더라도 예술적인 어떤 조각품을 놓지 않던가. 이건 누가 봐도 딱 알아보게끔 장회장과 얼굴이 똑같게 만들어진데다 살집 두텁고 풍채 좋은 몸 그대로 실물 크기였다. 문으로 쓰려고 그랬는지 위엄을 높이려 그랬는지 허리 높이까지 높은 단 위에 마련된 의자에 왕처럼 편히 앉아 마치 세상을 굽어보듯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회장 뭔가 좀 이상한 사람 아냐?”
옆으로 와서 동상을 바라보던 주은정이 말했다. 그리고 어중이와 떠중이도 한마디씩 했다.
“어이가 없네. 진짜.”
“신이 없다 해놓고 자기가 신처럼 군림하고 싶었던 거 아냐?”
김혁은 뒤쪽의 집을 돌아봤다. 이 집은 단지 금고를 위장하기 위한 공간일 뿐일까? 동상을 보고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떠중이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여기가 입구라는 걸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모르지.”
“여기다 계속 두는 게 안전할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여길 알고 찾으러 올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여기 걸 전부 어디로 옮길 순 없잖아? 우리가 낮에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주은정이 거들었다.
“맞아요. 문이 안 열리게 안에서 막아두는 게 낫죠. 이런 패닉룸은 원래 쉽게 뚫기 어렵게 설계돼 있으니까 문이 안 열리면 들어가진 못할 거예요.”
“해가 지는 대로 작업하고 약간만 가져 가자. 세트장 사람들도 그렇고 시장마을도 먹을 게 부족할 거야.”
김혁은 하늘의 해를 바라봤다.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근데 이건 금고로 들어가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둔 조각상일 뿐일까요?”
떠중이의 질문에 해를 바라보던 김혁은 다시 조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들 이 조각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모르지.”
“자기가 죽을 걸 알고 미리 만들어둔 거 아닐까? 후손들아 날 좀 기억해다오. 뭐 이런 거.”
“뭐 얼마나 유명한 업적을 남겼다고 이런 걸 만들어놔?”
민하진, 주은정이 말을 마치고 나자 김혁이 대꾸했다.
“아버지가 사이비 집단 교주와 바람나서 죽고부턴 숨어 살아야 했던 사람이라 자기과시욕이 이런 데로 흘렀는지도 몰라.”
“네? 사이비 교주랑 바람이 나요?”
“알고 보니까 장회장이 40년 전 내 첫 리스트에서 데려갔던 남자의 큰아들이더라고.”
“헐, 그런 인연이?”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그런 경우도 생기는군요?”
“그럼 이 재산이 다 사이비 단체가 쌓은 재산이란 말이에요?”
“글쎄,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어. 장회장이 자수성가한 걸지도 모르고. 그 아버지가 교주는 아니라도 교단에서 중요 인물이긴 했으니 남겨 둔 게 좀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고. 얼마나 그 사이비에 헌신적이었던지 네 살바기 막내 아들까지 바쳤더라니까.”
“네살 짜리를요? 진짜? 왜? 뭐 인간 제물 바치고 그런 사비이비였어요?”
민하진은 역시 엉뚱한 쪽으로 궁금증이 많은지 그런 것부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인질 같은 거라고 할까? 신도들에게 아이를 바치게 했대. 내가 살던 고아원에 있었던 아이들이 그 애들이야.”
“우와, 진짜요? 미쳤다.”
“거기 있던 꼬마 하나가 장회장 막내 동생이었다는 걸 나도 그저께 처음 알았어. 장회장은 동생 얘기가 나오니까 눈물까지 흘리던 걸? 자긴 동생이 네 살 때 죽은 줄로만 알았대.”
“우와, 가족들한텐 죽었다고 하고 고아원에 데려다 놨다는 거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평신도도 아니고 교주 바로 아래 같던데 그랬다니 나도 놀랐어.”
김혁이 말을 마치자 잠자코 듣고만 있던 떠중이가 오랜만에 한마디 했다.
“너무 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지?”
“세상엔 원래 요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그럼 선배님 부모님도 그 신도였어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요? 어쩌다 거기 있게 된 건데요?”
“음, 우리 엄마가 날 낳고 얼마 안돼서 돌아가셨는데 그 고아원 근처에 살고 있었대. 따로 맡아줄 사람이 딱히 없어서 거기 맡겨졌던 모양이야.”
“어머나, 가엾어라.”
민하진은 곧바로 큰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고 떠중이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줄 몰랐어요.”
가만히 청동상의 오른 팔에 앉아 있던 주은정이 뒤늦게 물었다.
“그럼 서정이란 분도 그런 거였어요?”
“음. 할머니가 그 신도였대. 자기 딸이 낳은 이란성 쌍둥이 중에 여자애를 그 엄마 몰래 갖다 바쳤어. 쌍둥이를 낳았을 때가 고등학생 때라서 둘 다 갖다 버릴 판인데 어째 남자 아이는 남겼던 모양이야. 할머니가 옛날 사람이잖아. 남녀 쌍둥이가 안 좋다고 생각해서 여자애를 줘버린 거야. 그 엄마는 딸 찾느라 미친 듯이 전국을 찾아다니고 남자아이는 엄마를 그리워 하면서 방에 틀어박혀서 안 나오고. 참 가엾은 사람들이었어. 교주가 그 시골 고아원 근처에서 죽는 바람에 고아원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렇게 서정 가족들이 다시 만나게 됐지. 40년 전 일이야.”
김혁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저승사자들은 이제 다들 장회장 동상에 조롱조롱 달려 있듯 걸터앉아 있었다. 주은정은 오른팔, 민하진은 왼쪽 팔, 떠중이는 다리 사이에 앉아 있었다. 김혁은 혼자 공중에 뜬 채 앞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치 사람들을 앞에 놓고 강연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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