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구원자
김혁은 세 남자를 향해 다른 질문을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저희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모여 회장님을 뵙고 은혜를 받습니다.”
“너희 셋만?”
“네. 눈송이가 돼야만 이 집에 출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출입하지 않느냐?”
“네. 이곳은 오직 구원자를 영접하기 위한 성전으로 만들어졌기에 출입이 제한 돼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것이로구나. 어쩐지 아주 편안한 기분이 드는구나. 앞으로 나는 여기에 거하겠지만 불쑥 찾아와서 내 휴식을 방해하지 말라. 또한 아무에게도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선 안 된다.”
김혁은 보물창고에 드나들 동안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뿐이었지만 눈송이들의 절망감은 생각보다 큰지 표시 날 정도로 모두 얼굴 표정들이 달라졌다.
“네? 그럼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하루라도 빨리 슬픔에 잠긴 신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분간은 그대로 두어라. 때가 되면 내 나설 것이니.”
그들은 애초에 복종하는 존재로 길들여져서인지 더 많은 대화가 오갈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곧바로 이마를 땅바닥에 붙이며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김혁은 손에 든 목걸이를 내밀며 말했다.
“이 귀중한 보물은 국가가 관리하는 박물관에 기증하여 보존토록 하라.”
“네?”
중간에 엎드려 있던 남자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목걸이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 귀한 것을 왜, 이건 왕의 표식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토록 갖기를 바리시던 것이 아니셨습니까? 이걸 얻으려 백방으로 애쓰셨지만 경매에 실패하셨을 때 기다리라 하셨던 것이고...”
장회장의 보물창고에서 나왔는데 경매에서 실패해 못 얻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김혁은 의문점이 생기는 지점이 있었지만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다른 남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 것을 부활의 증거로 가져 오셨으니 나중에라도 나무들 앞에 나서실 때 이것을 보이며 함께 떨어졌다 하시면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없을 것인데요.”
그들의 걱정은 그 목걸이의 재산적 가치를 잃는 게 아니라 장회장이 부여한 의미, 곧 왕의 표식을 들고 나타난 부활자를 증거하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에 있는 모양이었다.
나무들은 또 뭐지? 무슨 의식을 하는 숲이 따로 있는 건가? 김혁은 궁금증을 이 자리에서 해소하기로 마음먹고 물었다.
“나무들이란 무엇이냐?”
“눈송이가 되기 전의 신도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헉, 나무와 눈송이?
“불지옥 세상이 오면 나무들은 가장 먼저 불태워지게 됩니다. 눈송이들이 많아져야 합심해서 그 불을 끌 수 있기에 모두들 눈송이가 되려 하는 것입니다. 나무들이 눈송이가 되기도 전에 회장님의 은혜를 더 이상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커다란 충격에 빠질 것입니다.”
그럴듯하긴 한데 저걸 진짜 믿는다는 말이지? 김혁은 자신들을 눈송이들이라고 믿고 있는 세 남자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미약하나마 공포의 냄새를 풍기게 마련이었지만 이들은 그런 냄새도 풍기지 않고 있었다.
“나를 증명하는 데 그런 물건 따위는 필요치 않다. 너희는 보지 않았느냐. 나의 전능함을. 못 믿느냐?”
“믿습니다.”
“나무들 앞에서도 나는 얼마든지 내 전능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은 감춰두기보단 대중에게 공개되는 게 맞다. 그보단 이제 곧 세상에 환란이 닥쳐오리니 이보다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환란이란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 남자가 소리치듯 물었다.
“네? 환란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인간을 인간이지 않게 만드는 전염병이 퍼져나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게 된다.”
흰옷을 입은 세 남자들에게서 진한 공포의 냄새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의 종말은 불지옥이라 하셨는데 역병입니까?”
“무엇이 먼저든 인간에겐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다.”
김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세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너희를 구원하러 내가 왔지 않느냐. 날 믿고 따르라.”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들은 셋 다 동시에 씩씩하게 소리쳤다. 김혁은 40년을 통틀어 지금처럼 자신의 존재를 단박에 이해시키고 믿게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순간을 경험한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아무리 진실을 말하고 신기한 현상을 보여줘도 믿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건만 이처럼 쉽게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건 분명 다행스럽고도 매력적인 일이긴 했다.
뭘 어떻게 하면 이리 되는 것인가? 보면 볼수록 궁금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이 상황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김혁은 허공에 떠 있는 저승사자들 쪽을 한번 바라보곤 세 남자에게 말했다.
“이번 환란은 좀비다.”
“좀, 좀비요?”
“그것이...!”
세 남자는 갑작스런 좀비 얘기에 당황스러운 듯 했다. 눈으로 본적이 없으니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얘기인데 자신들이 믿는 구원자가 그리 말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을 테고 꽤 혼란이 오는 모양이었다. 김혁은 최대한 차분히 설명했다.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좀비가 된다. 치료법도 예방법도 없다. 아직은 좀비를 죽이는 것 말곤 해결책이 없다. 그러니 잘 듣거라.”
김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은 혼이 반쯤 빠진 얼굴로 김혁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리곤 곧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네. 따르겠습니다.”
김혁은 천천히 좀비 예방법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좀비가 좀 덜 퍼질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바이러스는 좀비에게 물려야만 감염되는 것도 아니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침을 흘리며 덤벼드는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또한 얼굴이 붉어지며 땀을 흘리고 몸을 떨어대는 사람이 있으면 도우려 하지 말고 멀찌기 떨어져라.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이 부분에서 세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네? 그것은 저희 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어찌, 서로 도우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걸 욕심내지 말고 나누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이 있는 법. 너희들은 나무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건 무조건 접촉을 피해야만 하는 전염병이다. 도와주려 하거나 죽이려 해서도 안 된다. 무조건 멀리 떨어지는 게 가장 좋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격리하라. 좀비에게 물린 자들도 한동안은 멀쩡하게 돌아다니니 경계해야 한다. 좀비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좀비가 될 자들이다. 좀비가 된 자들과 하루 이내에 함께 있었던 자들도 따로 격리해 두고 살펴봐야 한다.”
세 남자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네? 어찌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아무도 믿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흩어져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세 사람은 절망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이미 시작된 일이니 피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고 피를 뿌리고 또 다시 감염되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마주치지 않고 섞이지 않는 것뿐이다. 접촉이 있었던 자들도 꼭 하루 정도 격리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너희와 너희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지켜라. 모든 나무들이 눈송이가 되는 그날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 말을 하면서는 김혁도 뱃속에서 웃음이 치밀어 올라 참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기억이 사라졌음에도 유일하게 기억나는 사실이 이것뿐인 걸로 보아 아마 나는 이 사실을 너희에게 알리러 돌아온 것 같구나.”
“거룩하신 구원자님!”
한 남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믿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나머지 두 남자도 돌바닥에 머리를 찧어대며 계속 이 말을 반복해댔다. 김혁은 저승사자들을 바라봤다. 민하진과 떠중이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고 주은정은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한 손으로 구름을 가리켰다. 번개를 내리 꽂았던 하늘의 구름이 우르릉거리며 내부가 번쩍거렸다.
김혁은 지금 이 순간 악마가 번개 하나를 날려주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 놀이를 계속하다간 그 번개가 동상이 아니라 정확히 자신을 겨냥하리란 생각에 이제 구원자 놀이를 끝내기로 했다.
“이제 돌아들 가거라. 명심하라. 나는 언제나 너희들 곁에 있다.”
이 말을 끝으로 김혁은 슬그머니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돌아가야 상자를 옮길 수 있기에 그들이 떠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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