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실종자들
김혁은 일단 상황을 정리해서 말했다.
“일단 상자는 짱돌 애인집, 오두막 거쳐서 세트장 마을까지 움직여야 하고 리스트로는 병원으로 이동해서 스핑크스 방 찾고 남자 풀어준 다음에 차량과 물건들을 구하는 걸로. 그리고 세트장 마을에서 만나자.”
떠중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어? 그럼 금덩이를 못 놔두잖아요.”
“오늘은 외상해야지 뭐.”
어차피 장회장이 지옥불에 들어가기 전에 비밀금고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였다. 천하의 저승사자라도 돈이 없으면 현실 세계에선 도둑놈이 될 수밖에 없다. 민하진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건 도둑질인데요?”
“어쩔 수 없잖아. 길 찾는데 시간 오래 걸릴지도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또 내일로 미루는 것도 그렇고. 상자를 빨리 가져오기만 한다면야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만.”
주은정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물었다.
“팀을 어떻게 짜죠?”
김혁이 대답을 하기 전에 떠중이가 먼저 말했다.
“짱돌 애인 집이랑 오두막까지 가는 길은 난 모르는데?”
떠중이는 지옥에서 바로 오두막집으로 왔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길은 알고 있지 않았다. 민하진도 재빨리 말을 꺼냈다.
“차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난 슈퍼털이 쪽으로 가야 해.”
리스트와 함께 이동해야 할 이유로 그것만큼 확실한 이유는 없으니 떠중이가 섭섭한 얼굴로 체념한 채 중얼거렸다.
“아, 그건 진짜 나도 해보고 싶은데...”
리스트는 소유주를 따라 움직여야 하니 결국 김혁과 민하진이 한 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민하진은 싱글벙글인 채로 떠중이에게 말했다.
“한조야, 우리가 택배 봉사 할 날들이 얼마나 많을 텐데 그래? 오늘만 날이야? 마트건 슈퍼건 편의점이고 널리고 널렸어. 금덩이도 무지 많으니 걱정 말고.”
떠중이는 상자 운반밖에 할 수 없는 오늘의 역할이 뭔가 탐탁치 않은 모양이었다. 매장을 비우고 금덩이를 놔두고 가는 일이 왜 그렇게 해보고 싶은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섭섭해 하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어느 팀에 속해 있든 금덩이가 도착하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렵기에 그걸 꼭 하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되면 하는 거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다, 편하게 마음 먹는 게 나았다. 금덩이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날이 밝기 전에 세트장 마을 안에 모든 식료품과 생필품들이 완벽히 날라져 있어야 한다는 것. 그 값은 오늘 못 치르더라도 내일 치르면 될 일이었다.
김혁은 주은정을 향해 물었다.
“은정이 너, 짱돌 애인집하고 오두막 가는 길은 잘 찾을 수 있겠어?”
“네. 물론이죠.”
“좋아. 그럼 떠중이랑 은정이가 같이 가고 하진이랑 난 리스트로 이동한다.
떠중이는 내내 짓고 있던 섭섭한 표정이 주은정을 보곤 풀어졌다. 그리고 상자를 먼저 어깨에 걸치더니 주은정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김혁은 민하진과 함께 리스트에서 유지성이 있던 병원을 찍었다.
좀비들이 헤집어놨던 병원은 뉴스엔 보도가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날의 좀비 사태 이후로 페쇄된 상태였다. 어둠속에 잠긴 텅비고 을씨년스런 병원을 곧장 빠져나와 몸을 투명하게 한 채로 민하진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병원에선 한참 떨어진 곳이었는데 어느 쪽인지 모르겠네. 그 근처에 뭐가 있었더라?”
민하진은 하늘을 날며 열심히 아래 도심지를 훑으며 스핑크스의 방을 찾고 있었다. 김혁이 지옥에 가 있는 동안 셋이서 좀비를 열심히 찾아다녔던 모양인지 꽤 넓은 지역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야 겨우 민하진이 눈에 익은 어떤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에요. 저기.”
스핑크스의 방에선 여전히 영상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방으로 스르르 들어가보니 남자는 좀비가 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멍하니 모니터의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남자의 오라는 안정적이었다. 지금 이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면 정체를 의심하고 또 어쩌고 하면서 시간을 끌 게 뻔했다.
“하진아, 그냥 정신을 잃게 하는 게 좋겠어.”
“네. 제가 할게요.”
민하진이 남자에게 다가가 가볍게 남자의 목 뒷덜미를 순간적으로 꽉 쥐었다 놓았다. 남자가 기절하고나자 남자의 몸을 묶고 있던 것들을 전부 풀어준 다음 김혁과 민하진은 곧장 그곳을 떠났다.
하늘을 날면서 민하진이 물었다.
“근데요. 차를 어디서 구하죠? 어떤 차가 좋을까요? 한꺼번에 이것저것 많이 실을려면 엄청 커야 될 것 같은데.”
민하진은 거리를 두루두루 살피며 차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게. 일단 어디서 구할지도 생각해봐야 하는데 시장마을 말고 좀 큰 도시에서 물품들을 가져 가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말야.”
“거기서 제일 가까운 도시는 여기 아닐까요? 그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 건수라는 사람이.”
“글쎄, 여기서 구해 가는 게 좋을까? 근데 여긴 차로 이동하기엔 너무 먼 것 같아서.”
“가다가 한적한 곳에선 들고 날아가죠 뭐. 그게 빠를 걸요.”
김혁은 병원에서 아지트로 날아갔던 때를 떠올려보고 있었다. 아지트에서 오두막, 오두막에서 세트장 마을까지는 이 밤내에 가고도 충분한 거리였다. 네비게이션을 구해서 세트장 마을까지 차로 달려가는 것보다 그게 더 빠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장 마을이나 세트장 마을의 정확한 명칭도 모르고 있다는 것, 어쩌면 네비게이션에 세트장 마을은 아예 없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리스트는 저승사자들이 목적지로 빠르게 이동하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물건들을 나를 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리스트로 먼저 있는 곳 전부를 다 찍어서 둘러본다 해도 결국 세트장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딘지 모른다면 또 지도를 갖다 놓고 일일이 살펴보지 않는 한 쉽게 찾아가긴 어려울 터였다. 길 찾는데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더 큰 만큼 좀 돌아갈지라도 아는 길로 가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았다.
시간은 물건 쓸어 담는데서 단축하는 게 나을 거고 그러려면 넷이 함께 움직이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도 짱돌 애인집으로 가자. 애들은 아직 도착 안 했겠지? 가서 기다렸다가 같이 움직이지 뭐. 떠중이가 그토록 원하는 금덩이 놓고 가기도 체험하게 해주고.”
“네? 차 안 구하고요?”
“어차피 여기서 차도 구하고 물품도 실을 거면 같이 움직이는 게 빠르겠어.”
“아하, 네.”
스핑크스의 방을 생각보다 빨리 찾아냈고 남자도 좀비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처리가 빨라서 그나마 마음에 여유가 생긴 덕분이었다.
김혁과 민하진은 다시 병원 쪽으로 날아간 다음 짱돌 애인 집으로 날아갔다.
그 집은 여전히 어두운 채로 비어 있었고 환기가 되지 않아선지 엷은 시취가 아직 집안에 남아 있었다.
“아직 안 왔나봐요.”
여기저기 둘러봐도 떠중이와 주은정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근데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짱돌뿐이었을까요?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찾아와보는 사람도 없는지 지난번하고 똑같아요.”
“도시라는 데가 좀 그런 면이 있잖아.”
민하진이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 뉴스를 찾았다. 저녁 뉴스의 메인 앵커는 심각한 얼굴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실종 사건 접수로 경찰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실종 가족이 갑자기 연락도 되지 않는다며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경찰들도 원인 파악과 실종자 수색에 애를 쓰고 있지만 신고 접수 건수가 갑자기 폭증하는 바람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경찰서 앞에 나가 있는 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김혁은 뉴스 화면이 넘어가는 걸 보다가 중얼거렸다.
“저건 정말 문제다. 당신의 가족은 이미 좀비가 돼서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줄 수도 없고.”
전염을 막기 위해 보이는 대로 좀비부터 처리하고 보니 저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거였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제대로 작별도 못했는데 사정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도 못할 짓 같은데?”
“그렇다고 좀비 시체가 묻힌 곳들을 가르쳐줄 순 없잖아요. 누가 누군지 가려내기도 힘들거구. 또 난리가 날걸요. 엽기적인 연쇄살인미가 나타났다고 하지 않겠어요?”
- 가족들은 실종 가족이 평소에 별다른 문제없이 회사를 잘 다니고 있었고 가정불화도 없었다며 특별히 가출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며 예상치 못한 사고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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