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영혼값
그때 문쪽에서 떠중이가 집안으로 스륵 들어오더니 김혁과 민하진을 발견하곤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어? 선배님, 왜 여기 있어요? 차 구하러 안 가셨어요?”
보아하니 떠중이는 상자를 들이려고 문을 뜯으러 먼저 들어온 모양이었다. 물건 하나 추가됐을 뿐인데 모든 일에 일일이 그동안 몰랐던 불편이 따라다니는 꼴이었다. 창밖을 내다보곤 민하진이 말했다.
“뭐야, 늬들 진짜 택시 타고 온 거야?”
젖혀진 커튼 너머로 택시 한 대가 지나쳐가는 게 보였다. 떠중이는 문가에 박아놓은 젓가락 숟가락을 쑥쑥 뽑아내면서 대꾸했다.
“그럼. 상자 들고 계속 날라 다닐 수는 없잖아. 네비보다 정확한 택시 기사님의 도움도 받을 겸. 근데 부자 동네서 택시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도통 보이질 않아서 한참 날아왔어. 간신히 잡은 택시도 한밤중에 시커먼 애들이 웬 상자를 들고 설치니까 이상하게 보이는지 그냥 휙휙 지나가 버리고.”
여기까지 말했을 때 문이 열렸다. 상자를 들고 들어선 주은정도 김혁과 민하진을 보곤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떠중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거의 반강제로 어떻게 택시를 타긴 탔는데 병원까지 오는 덴 그리 멀지는 않더라고. 근데 이 집을 찾느라고 택시가 좀 해맸어.”
그 말에 주은정이 변명하듯 덧붙였다.
“하늘에서 보는 거하고 거리를 통해 보는 게 좀 다르더라고요. 근데 왜 여기 와 있는 거예요? 스핑크스 방 남자는요?”
김혁보다 먼저 민하진이 대꾸했다.
“다 처리하고 왔지. 그 남자는 무사해. 다행히 좀비는 안 됐길래 그냥 풀어주고만 왔어. 우리 떠중이 금덩이 투척할 기회를 주려고 이렇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
“정말요?”
떠중이가 반가운 얼굴로 한마디 하고 김혁도 변명하듯이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또 다른 도시에서 길 찾느라 헤매는 것보단 여기서 구해서 이동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 넷이 하는 게 더 빠르기도 할 거고. 그 마을 주변엔 큰 도시가 없을 수도 있고 길 헤매는 건 질색이야. 무엇보다도 도둑질 하는 게 걸려서 말야.”
떠중이가 의외로 쾌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난 벌써 금 한 개 개시했는데?”
“뭐? 어디서?”
민하진이 질문을 가로챘다.
“택시 요금. 그 아저씨 완전 로또 맞은 거지.”
“헐, 택시비를 금덩이로 줬다고? 얘가 얘가, 그걸 그렇게 막 쓰면 어떡해?”
민하진의 추궁에 주은정은 아무 말이 없고 떠중이는 황급히 변명했다.
“택시 기사분이 워낙 친절하셔서 말야. 난 그렇게 친절한 택시는 타본 적이 없어. 제일 작은 걸로 줬어.”
민하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따져 물었다.
“친절한 거야? 늬들이 무서워서 설설 긴 거야? 택시 강도라고 오해한 거 아냐?”
이 말엔 주은정이 대답했다.
“친절한 건 맞아. 힘들게 사시는 분인 것 같더라.”
주은정이 떠중이를 말리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상황 상 어쩔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김혁이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우린 길게 봐야 해. 그렇게 펑펑 쓰면 안돼. 그런 정도는 지폐로 듬뿍 줘도 되잖아.”
“사람들이 다 좀비로 변해버리거나 죽어 없어지면 이런 건 쓸모도 없을 건데요, 뭐.”
떠중이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어했다. 언제나 낙관적인 민하진이 타박했다.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인간이 다 사라진다고 가정하면 어떡해? 너무 절망적이네.”
“한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몇 명을 감염시킬까? 그 몇 명은 또 몇 명을? 그렇게 시작되면 장난 아니게 불어날 건데? 치료법도 없고 감염도 쉽게 되는데. 절망적이라도 사실은 똑바로 봐야지.”
떠중이는 마치 그러기 전에 이 모든 걸 재빨리 써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굴었다.
“나중에 쓸모없어서 금덩이로 좀비 머리를 강타하게 되더라도 아낄 땐 아끼자 좀, 뭐 돈 못 쓰다 죽은 귀신 붙은 것처럼 왜 그래?”
“돈 못쓰다 죽은 귀신이라서 그런다.”
떠중이가 너무도 심각하게 이 말을 했기 때문에 농담을 했던 민하진이 머쓱해졌다.
“...”
아무도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개인방송을 하며 어릴 때부터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아이지만 부모의 사업 실패로 빚만 갚아나갔던 아이 장한조는 정말 돈이란 걸 원없이 써보고 싶었나보았다. 그 마음이 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돈 상자는 떠중이가 맡아. 어디에 뭘 쓰든 아무 말 안할게. 하지만 우리가 도둑질을 너무 빨리 시작하게만 하지 말아주면 좋겠다.”
“선배님...!”
떠중이는 감동어린 눈빛으로 바뀌어 김혁을 바라봤고 주은정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말이 없었고 민하진은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선배님, 떠중이가 하는 걸 보고도 저걸 쟤한테 맡긴다고요?”
“난 용돈도 거의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어. 그래서 사실 돈쓰는 법도 몰라. 그래도 아이들 돈은 안 뺏고 살았는데 저승사자가 돼서 삥 뜯는다고 악마한테 좀 혼났지.”
김혁의 갑작스런 고백에 이제 모두들 놀란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네?”
“언제요? 누구 삥을 뜯었어요? 왜요?”
김혁은 아이들에게 해주지 않은 장회장과의 마지막 밤 얘기를 말해주기로 했다.
“사실 장회장을 데려가기 전에 내가 유언장을 작성하게 하려고 했거든. 세트장 마을 사람들이 가엾잖아. 가족도 잃었는데 돈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게 생겼으니 얼마나 막막할 거야. 그들한테도 얼마간 주고 싶었고 좀비퇴치재단 같은 걸 만들게 하고도 싶었어. 어차피 죽으면 남겨질 돈이니까.”
“어? 그럼 결국 이건 선배님 덕분에 우리한테 넘겨진 거네요?”
떠중이가 상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꼭 그렇다고 할 순 없고. 장회장은 리스트로 흡수되기 전까지 모든 걸 완강히 거부했으니까. 자기는 조만호한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다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했어. 지옥불을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뀐 거니 지옥불 덕분이지.
근데 막상 난 이게 생기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사실이야. 도둑질을 안 해서 다행이긴 한데 근데 막 내던져버리면서 써버리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
김혁은 여기까지 말하고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유산 때문에 김혁이란 40년차 저승사자가 지옥불에 들어갈 뻔했다는 것.”
“지옥불에 들어갈 뻔했다고요?”
아이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김혁을 바라봤다.
“악마 말로는 그럴 뻔 했대. 어쩌면 장회장이 내 말을 듣고 정말 유언장을 남겼거나 뭐 그랬으면 내가 한 일이 되니까 난 지금쯤 지옥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
김혁이 씨익 웃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면서도 소란스러웠다.
“오 생각만 해도 끔찍해!”
민하진은 두 뺨을 제 손으로 감싼 채 눈을 꼭 감고 소리쳤고
“저건 그럼 선배님 영혼값이네요.”
떠중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우리가 선배님을 잃을 뻔 했다고요? 정말?”
주은정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우리가 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걸 악마가 봐주는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았지. 우린 지금도 인간사에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것만큼은 우리한테 주어진 거니까 이 한도 내에서 잘 해보자. 난 떠중이를 믿어볼래. 나보단 잘 쓰겠지. 떠중이도 돈 쓰는 재미를 좀 느껴볼 때도 있어야지. 다음번엔 다른 애들이 맡더라도. 자, 이제 그만 가볼까?”
김혁이 말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한 것에 조급증이 들어 몸을 움직였을 때 갑자기 밖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두들겨 깨뜨리는 듯한 소리.
모두들 깜짝 놀라 창으로 달려가 매달렸다. 밖을 내다보니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서 세찬 소나기가 텅 빈 거리에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한 1분쯤 그렇게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쳤다. 비에 젖은 도로만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악마가 감동먹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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