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진짜에게 가짜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소나기였다. 소나기가 내리기 직전의 공기 변화도 없었고 하늘에 먹구름도 없었다. 누구보다 그런 변화에 예민한 저승사자들이 딱 한순간 마구 쏟아지다 만 그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 악마의 눈물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악마가 눈물을 쏟은 것인지는 모두들 갸우뚱이었다.
김혁도 마찬가지였다. 40년간이나 악마를 봐왔지만 지금 무엇이 악마에게서 눈물을 쏟게 한 건지 짐작되지는 않았다. 좀 생뚱맞은 느낌이었다. 떠중이와 하진이는 여전히 창가에 남아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우리가 좀전에 악마 칭찬한 거 있어?”
“아니.”
“그럼 악마한테 아부한 건?”
“없는 거 같은데?”
“근데 왜?”
“몰라.”
보다 못한 주은정이 소리쳤다.
“그만 하고 와서 금 숨길 데나 찾지? 여기서 밤 샐 거야?”
화들짝 놀란 체를 하며 둘이 창가에서 떨어져 나왔다. 넷이 모여 있으니 아무래도 한 마디만 거들어도 대화가 길어지고 곧잘 임무를 잊곤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누군가는 기준을 잡아줘야 하는데 김혁이 나서기 전에 주은정이 잘 해내주고 있었다.
이제 모두들 서두르며 집 내부에 금덩이와 현금을 숨겨둘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이 집은 그저 평범한 집이라 비밀 장소 같은 건 없었다. 침대 밑을 살피거나 싱크대장이나 서랍장들을 열었다 닫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야말로 누군가 집을 뒤지기로 마음먹는다면 다 한 번씩 열어볼법한 곳들뿐이었다.
그때 소파를 번쩍 들어 바닥을 살펴보던 주은정이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이것 좀 봐.”
“왜?”
“뭔데?”
모두들 소파를 들어낸 바닥을 살펴보고 있을 때 주은정이 한 손에 든 소파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이 소리 안 들려?”
“무슨 소리?”
이제는 모두 들어올려진 소파를 바라봤다. 낡고 작은 싸구려 천 소파일 뿐인데 그 안에서 뭔가 단단한 게 굴러다니는 소리가 났다. 내부가 비워져 있고 거기서 뭔가가 굴러다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짱돌 애인이 좀비가 되기 전까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변했으니 그때 안에서 뭔가가 부러지기라도 한 걸까? 김혁은 우선 그런 생각을 해봤다.
“들리지?”
“음,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떠중이가 대답하고 주은정은 소파를 내려놓았다. 방석도 들춰보고 손잡이 부분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소파에 숨겨진 공간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뭔가 여는 방법이 따로 있나봐.”
민하진이 그렇게 말하자 떠중이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거 아닐까? 퍼즐 상자. 옛날엔 장인들이 책상 같은 데다 그런 비밀 서랍을 만들어놓곤 했다는데”
떠중이가 자기가 아는 지식을 뽐내자마자 민하진의 퉁박이 이어졌다.
“이런 싸구려 소파에다 그런 건 왜 만들어놔?”
사실 소파는 너무 낡았지만 엔틱이라고 가치를 쳐주기엔 너무 볼품없고 조잡하기만 했다.
“그냥 취미로 만들어본 건지 누가 알아?”
떠중이는 여전히 자신의 가설을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성격 급한 민하진은 주은정을 향해 말했다.
“그냥 부숴버려. 언제 찾아내고 있어?”
“열수만 있다면 여기다 금덩이 숨겨놓기 딱 좋잖아.”
떠중이는 이 새로운 발견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어했지만 문제는 지금 절대 한가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시간 없다구.”
“그래. 그냥 부숴.”
주은정은 아무 대답없는 김혁을 바라봤다. 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은정이 텅 빈 공간으로 생각되는 곳을 주먹으로 쳤다. 공간이 허물어지며 비어 있던 공간이 드러났다. 역시 뭔가 비밀 서랍 같은 게 있었던 게 맞았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작은 권총과 약간의 현금, 그리고 검은 수첩이었다.
“총?”
“짱돌 건가?”
주은정이 수첩을 대충 넘겨보곤 김혁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 여자 보통 신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도서관 사서가 왜 이런 남자를 만나나 했더니 뭔가 있었던가봐. 이건 짱돌을 사랑하는 시선으로 쓴 게 절대 아니에요. 관찰하고 파악한 동향 보고서 같은 거지.”
김혁은 서둘러 수첩을 훑어보았다. 그동안 민하진이 물었다.
“뭐야, 그럼 진짜 애인이 아니라고?”
수첩에는 짱돌이 다녀간 시간이나 무슨 행동, 어떤 말을 했는지가 간단하게 메모돼 있었다. 각각 다른 시간이나 장소 같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메모들도 꽤 많았다. 때론 부분들이 찢겨져 나간 장들이 있는 걸로 보아 급한 대로 그때 그때 사용하고 찢어내는 용도로 쓰였던 것 같기도 했다. 평범한 수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걸 굳이 총과 함께 은밀한 곳에 감춰뒀다는 게 이상해 보이긴 했다.
수첩은 이제 민하진에게 넘어가 있었다. 떠중이도 옆에 붙어 함께 봤다.
“비밀 요원 같은 거?”
“설마.”
그 밤, 겁에 질린 여자의 얼굴에 어린 두려움은 다른 염려였던가? 김혁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만약에 짱돌 애인이 진짜 비밀요원이라면 삼인조를 만난 날 다른 쪽으로 엄청 혼란스러웠을 순간이었을 거였다. 김혁은 그 여자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 여자 처음 보는 날 내가 짱돌이 비밀요원이라고 둘러댔는데 이 여자가 진짜라면 내가 하는 게 얼마나 웃겨 보였을까?”
“짱돌을 비밀요원이라고 했다구요? 선배님이 거짓말을 했어요?”
“응. 여자가 너무 가엾어 보여서. 삼인조한테 붙들려서 떨고 있는 것도 그렇고 짱돌이 무슨 빚을 져서 찾아온 빚쟁이들인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아서 말야. 안심 좀 시키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말이 튀어나왔어.”
“그걸 믿는 것 같았어요?”
“글쎄, 여자는 진짜 꽤 겁에 질려 있긴 했어.”
“진짜 비밀요원이라면 혹시 자기 신분이 노출된 건가 싶어서일지도 모르죠.”
“하긴 별것 아닌 걸 이런 데다 보관할 리 없지? 짱돌 건 아닌 게 분명해.”
핸드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해내는 시대에 따로 종이 수첩을 쓴다는 것도 의아한 일이고 아무리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한다 해도 굳이 총과 함께 비밀 서랍에 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짱돌에게 보여선 안 되기 때문일 터였다.
“그보단 이 여자 정체가 평범한 사서가 아니라면 누군가 여기 찾으러 올 수도 있단 말이 되는데요? 여기다 돈을 숨기는 건 다시 생각해야 될 것 같은데요?”
역시 주은정은 한발 앞서나가고 있었다.
“그러네.”
이번엔 떠중이가 맞장구쳤다.
“그 여자가 사서야?”
여자의 직업을 지금 안 건 김혁뿐인 모양이었다.
“네. 좀비 사체 처리할 때 가방도 같이 묻었어요. 지갑 안에 신분증이 있어서 봤는데 이 도시 시립 도서관 사서증이 있었거든요. 그때도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왠지 사서와 깡패는 안 어울리잖아요. 그래서 우리끼리도 짱돌이 깡패로 신분 위장을 한 건가 그런 얘기들을 하긴 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조직에 잠입한 경찰 같은 거요. 영화처럼.”
황급히 민하진이 덧붙이고 떠중이도 한마디 했다.
“이제 보니 여자가 짱돌을 통해 조직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였어.”
김혁도 마무리지어야 했다.
“하여간 복잡한 사람들이네. 확실한 건 잘 몰라도 짱돌은 조직과 조직 보스 사이에서 스파이짓을 하고 있긴 했어. 애인까지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다면 둘 다 참 머리 아프게 살았겠네. 하여간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고 둘 중에 누가 스파이였든 이 장소는 우리만 드나들 장소가 아니라는 게 핵심이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긴 포기하자. 누군가 와서 집을 뒤질 가능성이 있으니.”
“그럼 이걸 전부 오두막에다 갖다놔요?”
“너희들이 만들어둔 빈집들 중에 적당한 데가 없다면.”
셋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민하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냥 가까운 숲에 높은 나무 꼭대기에다 대충 집처럼 하나 만들어서 거기다 보관하죠? 우리가 눈에 안 띄고 드나들긴 그게 더 편하고요. 사람들 사는데 드나들 때마다 불편해요. 이것저것 신경 써야 될 것도 많고.”
“그건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근데 오늘은 좀 힘들겠고 차차 여러 군데다 만들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오두막에다 갖다 두자. 이러다간 해뜨기 전에 세트장 마을에 아무것도 못 갖다주겠어.”
“네.”
모두들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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