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강도라구?
저승사자들이 모두 집밖에 나왔을 때 상자를 들고 나오느라 가장 나중에 뒤따라오던 떠중이가 말했다.
“또 택시 잡아야 되나?”
모두들 주변을 둘러보긴 했지만 그 거리는 아주 조용했다. 주택가라 근방에 지나다니는 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김혁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여자의 차를 가리켰다. 짱돌을 찾으러 왔던 밤 그 여자가 타고 왔던 빛바랜 은색 차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차를 훔치자구요?”
민하진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 여자 차야. 저거라도 우선 타고 가자.”
창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고 차 안을 기웃기웃 살피던 민하진이 말했다.
“에? 그럼, 차 키 찾아와야겠네요. 진짜 오래된 구형이라 그거 없으면 시동 걸기도 힘들겠어요.”
민하진은 본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한참만에 차 키를 들고 나타난 민하진이 차 키를 손 안에서 찰랑이며 투덜거렸다.
“아우, 가방은 왜 같이 묻어가지고. 요거 찾을라고 땅까지 파게 해.”
“어디 간 걸로 하기엔 그게 좋다고 누가 그랬더라?”
주은정이 빈정거리자 민하진이 마치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되물었다.
“내가 그랬어?”
“그래!”
주은정과 떠중이가 동시에 소리쳤다. 민하진은 발뺌할 수 없는 상황에 인상을 살짝 구기고는 낮은 목소리로 삐죽이면서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주 이럴 때는 죽이 척척 맞지 그냥.”
모두 차에 올라 거길 떠날 즈음 경찰차 한 대가 반대 차선에서 스쳐 지나갔다. 민하진을 빼고 모두 뒤를 돌아봤다. 그 차는 여자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웬 경찰?”
“내가 가볼게.”
주은정이 몸을 투명하게 한 뒤 집 쪽으로 날아가고 차는 계속 얼마간 더 달려가 모퉁이를 돌아 든 다음 여자 집 쪽에선 안 보이는 지점에서 멈췄다.
“우리도 가볼까요?”
민하진이 김혁을 향해 물었다.
김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투명하게 하고 먼저 날아가고
“은정이가 오면 알 텐데 뭘. 난 기다릴래.”
떠중이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뒷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민하진은 몸을 투명하게 하고 차 밖으로 나가 김혁 옆에 서서 멀리 보이는 여자 집을 바라봤다.
주은정은 몸을 투명하게 한 채 경찰들 주변을 얼쩡거리며 보고 있고 경찰들은 여자 집 문을 두들기다가 아무 기척이 없자 여기 저기 집 주변을 흘깃대며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곤 문 가까이 있던 경찰이 조심스레 문을 열어보더니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걸 알고 다른 경찰에게 알리고 집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나올 때 더 이상 들를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문을 따로 막아놓지 않고 나왔던 거였다.
어느새 김혁 곁으로 와서 선 떠중이가 중얼거렸다.
“아휴, 금덩이랑 다 숨겨놨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네요.”
민하진이 그 말을 받았다.
“누가 실종 신고라도 한 건가? 어떻게 알고들 온 거지?”
김혁은 다른 게 궁금해져 물었다.
“하진이 너 차 키 찾고 여자는 다시 묻었어?
“묻긴 했는데 대충 그냥...”
김혁은 말없이 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건 드러나게 돼 있었다. 한바탕 세상이 시끄러워지리라 짐작 가능하다.
여자는 사라졌고 지금 집안의 상태는 누가 봐도 누군가 침입한 흔적들로 보일 게 분명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구부러진 숟가락과 젓가락들, 아무렇게나 팽개쳐둔 식탁과 부서진 소파 등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또한 파헤쳐졌던 지하실 바닥이 이상해 보일 건 분명했다.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결국 흙에 파묻힌 여자의 사체도 발견될 거였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추적하다 보면 여자의 애인이었던 짱돌을 찾게 될 거고 결국 짓다 만 그 검은 고치들의 아지트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불에 타고 그슬린 시체와 좀비 시체들이 그득찬 건물이 눈앞에 떠올랐다. 언젠가는 알려져야 할 일이지만 그곳이 발견된다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시간이 흘렀으니 여자 집이나 아지트에 좀비 바이러스가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점뿐이었다.
그때 주은정이 되돌아왔다.
“뭐야? 경찰들은 왜 온 거래?”
민하진이 먼저 묻자 주은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택시 기사가 신고했다는군요.”
“왜? 뭐를?”
떠중이는 의외의 대답에 깜짝 놀란 얼굴로 강하게 소리쳤다. 주은정은 다시 차분하게 대꾸했다.
“우리가 강도처럼 보였대.”
“뭐? 우리가 뭘 어쨌다고?”
떠중이는 정말 억울하다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나이도 어린 수상한 커플이 택시비도 안 주고 이상한 물건을 주고 내렸다고.”
“이상한 물건? 그게 진짜 금인지도 몰랐다는 거야?”
“가짜라고 생각했나봐.”
민하진이 거봐란 듯이 둘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금덩이를 막 내주니까 그렇지. 나 같아도 단박에 안 믿기지. 그건.”
김혁은 경찰들이 뒤지고 있을 집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다른 얘긴 없고?”
“경찰들도 집안 꼴을 보고 범죄 현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여자에 대한 신원조회 하는 것까지 듣고 왔어요.”
더이상 알아낼 건 없었다.
“그만 가자.”
김혁이 간단히 말하고 몸을 움직이자 모두들 뒤따랐다. 차로 돌아갈 때 떠중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와, 진짜 은혜를 원수로 갚네.”
떠중이는 뭔가 많이 섭섭한 모양이었다. 차에 올라서도 그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민하진은 운전을 하면서도 뒷자리에 앉은 떠중이를 흘깃대며 말했다.
“야, 나라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택시기사가 사람 상대하는 게 일인데 한밤중에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 애들 둘이 큰 상자를 들고 탔으니.”
이 말을 듣고 주은정이나 떠중이 모두 자기들 몸을 내려다봤다. 검은 옷을 입은 미소년과 미소녀. 그들의 모습은 아무리 어른인 척 한다 해도 아직 애띤 청소년으로 보일 뿐이었다. 민하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누가 금덩이를 택시비로 주냐고. 장난치는 거라고 생각했거나 늬들이 진짜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던 게 맞지.”
“야, 민하진! 넌 앞 좀 똑바로 봐.”
주은정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차가 기우뚱 한번 요동쳤다. 앞쪽에서 마주오던 차 한 대가 빵빵대며 요란하게 클락션을 울리며 지나쳐갔다. 민하진은 조금 민망해진 얼굴로 킥킥대며 웃었다.
“우리야 부딪쳐도 상관없지만 저 차 운전자는 무슨 죄냐?”
주은정이 말을 맺고나서 김혁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조심 좀 해라. 이승에선 이승의 규칙을 따라야지. 엄한 사람들 다치게 만들면 안 되지.”
아빠에게 배운 운전 몇 번만으로 운전대를 잡았으니 겁 없는 무면허 운전자가 제멋대로 도로를 휘젓고 다니는 꼴이었다. 사고라도 일으키면 악마가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떠중이는 여전히 뾰루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어딜 봐서 강도로 보여? 내 연예인 같단 말은 들어봤어도 강도라니. 강도가 뭐야? 그 아저씬 바보같이 모처럼 얻은 기회도 날려버리고. 아들 수술시켜야 한다더니만 순 거짓말이었나?”
떠중이는 자신의 선한 마음이 그런 식으로 오해 받은 것에 화나는 것보다 그 가난한 택시기사가 금덩이를 자기 걸로 갖지 못해서 더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김혁이 대꾸했다.
“금덩이가 진짜라는 걸 알았더라도 장물인가 싶어서 쓰기 겁났을 수도 있어.”
“맞아. 택시기사들 그런 거 엄격하잖아. 주은 핸드폰 신고 안 했다고 택시 뺏긴 걸로 한참 난리났었어.”
민하진은 인간들의 뉴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일도 있었나? 생각하며 김혁이 말했다.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지? 몇 십년 전엔 어떤 강도가 택시를 몰면서 사람들 태우고 해쳐대서 데리러 온 적도 있는데.”
민하진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소리쳤다.
“아 선배님, 그건 진짜 옛날 고리짝 얘기 같아요. 요즘은 주정뱅이들 폭력에 시달리고 토사물 치우는 것 때문에 완전 기피 업종이라구요. 이젠 택시 이용하는 사람도 드물고요.”
물론 김혁에게도 아주 오래전 경험이긴 했다. 주은정도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한마디 했다.
“내가 막 저승사자가 됐을 때 사납금 못 채워서 시달리다 자살한 택시운전사가 지옥으로 왔던 적이 있어요. 지옥 불구덩이에 쳐넣으려니 지옥 피해서 왔더니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그래서 바로 확 밀어 넣질 못했어.”
주은정은 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민하진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소리쳤다.
“오, 주은정 웬일? 너한테도 동정심이 있었냐?”
“넌 또 왜 시비야?”
김혁은 울며불며 지옥불에 던져지는 택시기사를 상상하며 말했다.
“그 사람에겐 정말 잔인한 일이었겠네. 여기도 저기도 지옥뿐이었으니.”
주은정도 창쪽을 내다보며 낮게 말했다.
“자신을 죽인 죄를 태우는 건 그나마 짧은 형벌이니 다행이죠 뭐.”
평생을 선하게 살다가 상황에 몰리고 생계형 괴롭힘을 못 견뎌 자살한 사람들이 지옥으로 오는 건 퍽 가엾은 일이었다. 악마가 왜 저승사자들더러 일처리를 빨리 빨리 하라고 닦달하는지는 그런 걸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지옥에 갈 악당이 하나라도 줄어들어야 그런 선량한 자살자들이 줄어들 수 있으니.
마음속 무거움을 털어내듯 김혁이 말했다.
“저 사람도 포상금 정도는 받을 거야.”
민하진이 이번엔 앞을 주시한 채로 말했다.
“근데 그건 택시비로 받은 거니까 그냥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범행에 가담한 것도 아닌데 장물이 성립돼요?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을 드나든 김혁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법은 복잡하기만 했다. 금덩이로 호기롭게 선심을 썼던 떠중이는 아무 말 없이 침울한 얼굴로 창밖만 내다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차 안엔 침묵이 감돌았다.
잃은 줄 알았다가 얻은 장회장의 유산, 짱돌 애인집에 두고 왔으면 사라졌을 금덩이와 돈, 잃을 뻔한 재물과 의심 받은 선심. 저승사자들 모두에게 이 새로운 재물은 이동의 불편함 외에도 꽤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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