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마트1
대형 마트는 시내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고 영업시간이 끝난 후라 지금은 불이 완전히 꺼진 채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거의 텅 비다시피 한 주차장 한켠에 덩그러니 웅크리고 있는 덩치 큰 건물은 괴기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김혁은 건물을 바라보는 걸 멈추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의사항을 점검해보자 생각했다. 버스를 몰고 오며 내내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대형마트를 터는 일은 좀 더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밤에도 지키는 경비원들이 있고 단번에 경찰들과 연결될 수 있는 도난방지 장치와 내부 곳곳에 CCTV가 장착돼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호텔방에서 차 키나 선물 상자 하나 집어오는 것과는 다른 것, 어두운 주차장에서 버스 하나 달랑 들고 오는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물품들이 오가야 하는 대단히 번잡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저승사자들이라도 일반인들이 열 번 나를 걸 한 번에 날라댈 정도의 빠르기와 힘이 있다 해도 결국 좁은 버스문을 통과시켜 일일이 갖다 쌓으려면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움직이는 건 눈에 보이는 버스기 때문에 자칫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거나 하면 골치 아파질 수 있었다. 역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오늘 밤이 지나가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었다.
갑작스럽지만 대충이라도 뭔가 계획이란 걸 하고 들어가야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우선 먼저 실내의 모든 CCTV를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관리실을 장악할 것인가부터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일단 최대한 지킬 것들을 주지시키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아무리 도둑 아닌 도둑이라지만 인간들에게 최소한 피해가 덜 가는 쪽으로 하자는 기준을 꼭 지키고 싶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이미 몽타주까지 만들어지는 판국에 또 다시 저승사자들의 얼굴을 내보이는 것도 문제인데다 주은정이 호텔방에서 보여준 것 같은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처리하기엔 너무 긴 시간, 너무 많은 물건들이 오가야 하므로 아무래도 CCTV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일처리가 끝날 것 같아? 각자 생각 좀 얘기해봐.”
김혁은 셋을 차례로 바라봤다.
“CCTV부터 없애고요.”
떠중이는 역시 얼굴 드러날 걱정부터 되는 모양이었고
“경비들부터 처리해야 조용히 작업이 가능하겠죠. 경비시스템이 어떤가 물어봐야 될까요?”
주은정은 일의 순서를 따졌고 민하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경비? 그럼 그 사람들을 기절시킬 거야? 묶어둘 거야? CCTV 작동 중지를 시키려면 누구 얼굴을 드러낼 건데? 응? 응? 우리끼리 사사삭 움직이면 얼마 안 걸릴 건데 경비들은 빠박빠박 기절시켜놓고 CCTV도 몰래 몰래 다 부서뜨리고 그냥 빨리 빨리 날라 싣고 떠나버려요.”
그게 가장 빠른 길이란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김혁은 일단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주의를 줬다.
“우린 물건 외엔 다른 건 최대한 피해가 안 가도록 해야 해. 우리가 가져가는 것 외엔 물건 파손도 금물이고 경비원들도 다치면 곤란해. 우린 진짜 도둑이 아니니까.”
“에휴,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다간 암것도 못 한다니까요? 금덩이도 놓고 가는데 뭔 걱정을 그렇게 많이 하는 건데요? 내가 마트 주인이면 일 안하고 물건 다 팔아치웠다고 오히려 좋아할 것 같은데?”
민하진의 말에 주은정이 대꾸하고 나섰다.
“그건 니 생각이고. 도둑은 절대 잃은 자의 마음을 알 리가 없지.”
“왜 몰라. 나도 지갑도 잃어버린 적도 있고 내가 아끼던 팔찌 훔쳐간 애도 잡은 적 있는데...”
“그래? 그럼 그때 기분이 어땠는데?”
“물론 더럽지. 그래도 이건 그거랑 다르지. 우린 금덩이도 놓고 가잖아.”
“너 누가 지갑이랑 팔찌 같은 거 암말 없이 다 가져가고 돈만 놓고 가면 정말 아무렇지 않았을 것 같아?”
민하진은 잠시 큰 눈을 깜박깜박거리더니 곤란한 표정을 짓곤 조그맣게 말했다.
“그건... 아니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던 건데 지갑도 아빠가 생일 선물로 사준 거였고. 그 팔찌는 정말 내가 아끼던 거란 말야.”
“이제 알겠어? 금덩이를 아무리 많이 놓고 간다고 해도 우린 그들의 동의를 얻고 교환한 게 아니니까 항상 인간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고. 어쨌든 우린 인간 세상의 관점으론 도둑이니까.”
주은정이 인간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에 김혁이 놀라고 있을 때 민하진은 여전히 할 말이 남았는지 삐죽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그건 정말 다른 거 같은데? 버스는 낡을 대로 낡았으니까 새로 생긴 금덩이로 새 버스로 바꾸면 더 좋은 거고 물건들도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니까 돈과 바꾼 거라고 생각하면 된 거지.”
왠일인지 주은정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곤 있었지만 민하진에게 끈기 있게 대꾸해주고 있었다.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온 것 같은 기분, 보안이 뚫린 것에 대한 충격 같은 건 어쩔래? 또 뉴스에 오르내릴 거고 갑자기 사라진 물건들 때문에 난리가 날 거고 영업도 중단될 건데 우리가 모를 뿐이지 아마 골치 아픈 문제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걸?”
민하진은 지지 않겠다는 듯 여전히 수긍할 기미가 없었다.
“뭐야, 그럼 넌 차라리 주인을 오라 그래서 응? 우리가 이걸 가져갈 테니 동의해라, 안 그러면 알지? 콱! 이러기라도 하는 게 좋다는 거야? 주인이 도리도리하면 이만큼을 더 주겠다 금덩이를 더 내놓고 어서 빨리 내놓아라 그래도 안 내놓으면 또 한번 엄포를 놓고? 도리도리 한번에 금덩이 하나 더 도리도리 한번에 하나 더, 밤새 그런 실랑이라도 하자는 거야?”
연기를 애매하게 섞은 민하진의 도리도리 몸짓이 귀여우면서도 어린애 같아 김혁은 웃음이 나려 했지만 꾹 참았다. 역시 다른 아이들도 웃지는 않았다. 떠중이는 계속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고 주은정은 여전히 단호하게 대꾸했다.
“아니 내 말은 지금 비상 상황이고 시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은 하지만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선배님 말에 동의한다는 뜻이야.”
민하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으이구, 이거저거 다 따지면 암것도 못하지 못해.”
김혁은 얼른 끼어들 듯 말했다.
“자 그럼 피해는 최소화하는 걸로 하고 우선 식료품 위주로 담고 진열된 것보다 박스로 옮기는 게 싣기 편할 거야.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좋겠고 공간이 한정돼 있으니까 쓸데없는 건 패스하고. 알겠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마트 안부터 둘러보고 다시 상의하자. 결정될 때까진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몸도 드러내지 말고 조심해야 해.”
“네.”
모두들 몸을 투명하게 하고 마트로 날아갔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잘 없다. 특히나 철저하게 뭔가 준비하고 빈틈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어그러지기 쉽상인 게 사람 일인데 하물며 급조한 버스에다 대충 짠 계획으로 마트 구경 온 철딱서니들 같은 저승사자들이 움직이는 일이 일사천리로 척척 풀려갈 리 없었다.
마트 안 내부 보안실을 둘러본 결과 경비는 두명 뿐이었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CCTV 전체 시스템을 끄는 방법을 알아낼 순 없었다. 저승사자들은 누군가 얼굴을 드러내고 야간 경비원을 윽박질러야 하는가를 논의했지만 그건 몽타주에 또 다른 범죄를 추가하게 하는 것이라 좀 망설여졌다.
하지만 저승사자들의 이런 고민을 오래 할 필요도 없이 곧 경비원들의 대화 속에서 깔끔하게 결론이 났다. 다갈색 오라를 가진 나이 지긋한 경비원이 먼저 말했다.
“어이, 아무리 최신 시스템이라도 모니터는 들여다봐야지.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 요상한 잡지를 뒤적이는 젊은 경비원을 핀잔하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 색깔이 선명하고 진한 붉은 오라가 충만한 젊은 경비원은 자세를 약간 고쳐 앉으며 말했다.
“아유, 팀장님 없을 때 농땡이도 피는 거지. 과장님이 아직 적응이 안 되셔서 그렇지. 이걸로 바꾸고 첫 근무시죠? 이게 지난번 시스템과는 말도 안 되게 다르다니까요.”
젊은 경비원은 직장 선배를 대하는 폼새가 약간 버릇이 없기도 했지만 자기만 아는 정보를 뻐기고 싶은 티가 역력했다.
“다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다르겠어?”
나이든 경비원은 모니터를 꼼꼼히 훑으며 대꾸했다.
“아니요. 진짜 달라요. 진짜 돈 들여서 바꿀만 하디니까요. 잠긴 문이 열리거나 전자 택 처리 된 물품이 하나라도 밖으로 나갈 경우 자동으로 경찰과 우리 업체에 전달되는데다가 그 사람들 말로는 여기 보안 시스템은 내부에서 켜고 끌 수도 없게 만들었대요. 게다가 전기가 나가도 12시간 내내 녹화가 가능한 무적이라고요. 만일 침입이 발생하고 곧바로 경보 시스템이 발동되지 않으면 모든 피해를 배상하는 보험까지 들어줬다니까 그만큼 자신이 있단 얘기겠죠. 안 그래요?”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나이든 경비원은 모니터를 흘깃거리며 말했다.
“그렇담 여기에 사람을 앉혀 놓을 이유 따윈 없잖아? 기계가 다 알아서 한다면 말이야. 정말 그런 시스템인 게 확실해?”
나이든 경비원은 불안한 눈길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
“제가 직접 이거 설치하러 온 사람한테 들은 거라니까요. 그날 제 근무날이었어요. 그 사람 말로는 요즘 다들 서로 앞다퉈서 이걸로 교체하는 통에 정말 눈코 뜰 새가 없대요. 아직은 시험기간이라...”
젊은 남자도 곧 나이 든 경비원이 제시한 새로운 의문엔 대답이 궁한지 말을 멈췄다. 모든 걸 자동으로 점검하고 감시 가능한데다 도둑을 감지하며 도난 상황 발생 시 곧바로 연락 가능한 절대 꺼지지 않는 무적 시스템이라면 경비원을 둘씩이나 놔둘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잠시 말이 없던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나이 든 사람이 기어코 말을 뱉었다.
“감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보군.”
젊은 경비원은 새삼스레 수시로 화면을 바꿔 보여주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열심히 보는 척 했다.
모든 게 명백해지자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저승사자들은 곧바로 경비원들의 목덜미에 충격을 줘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치 잠에 곯아떨어진 사람들처럼 모니터 앞에 널브러져 저승사자들이 물건을 실어갈 동안 깨어나지 못할 거였다. 어차피 그 대단한 최신식 시스템과 저승사자들의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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