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리스트를 찾아서3
“그런 얘긴 처음 듣는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거예요?”
은성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다.
“네? 아니 아까 어떤 박사가 급히 뛰어 가길래 궁금해서 따라갔는데 여기랑은 분위기가 아주 딴판인 곳이 있더라구요. 이 연구소가 타임머신만 개발하는 곳이 아닌가보죠?”
“뭐 소소하게 다른 팀에서 따로 연구하는 건 있지만 크게 다른 분야는 아닌데. 지하동이라니. 거긴 저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에요. 아니 처음 들어요. 뭘 하던가요?”
각자 자기 분야에만 신경 쓰느라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모르는 건가? 과학자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더구나 깊은 지하라면. 김혁은 최대한 아까 본대로 설명해주기로 했다.
“뭔가 약품 같은 걸 개발하는 곳처럼 보이던데요. 작은 실험 도구들에 피 같은 액체도 보이고 뭔가 행동이 느리고 이상한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유출이 되면 안 되느니 하고 또 지하동을 페쇄해야 되지 않나 그런 얘기도 하고.”
은성의 얼굴에 뭔가 호기심이 가득 찼다. 눈도 반짝이는 것 같았다. 정말 호기심을 못 참는 성격인가보다.
“좀 자세히 말해볼래요?”
“아니 아까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다가 회색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어떤 남자가 급히 뛰어가길래..”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이요?”
“네.”
“그분은 명박사님인데. 그분은 타임머신 총 책임자세요.“
“타임머신 총책임자가 연구소 총책임을 맡나요?”
은성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비밀스럽다는 의미군. 은성의 얼굴에도 의혹이 가득차 있었다.
“그 사람이 급히 서두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어요. 거기서 어떤 젊은 연구원하고 얘기를 하는데 꽤 심각하게 뭔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얘기를 하더군요. 유출이 되면 안 되고 매뉴얼에 따라서 지하동을 페쇄하니 어쩌구 그러더니 아, 밝혀지면 둘 다 모가지라고도 했어요. 둘이서 조용히 찾아다니다가 좀 이상해 보이는 남자 하나를 찾아왔어요. 뭔가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눈에 띄게 느리고 아무튼 이상했어요. 그들이 찾던 게 그 사람이었는지 꽤 안심해 하는 눈치였어요. 그리곤 더 안 찾고 돌아온 걸 보면 그게 맞겠죠?”
은성은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점 심각한 얼굴로 변해갔다.
“그건 정말 뭔가 많이 이상하네요. 지하 1층이던가요?”
“층수가 표시되지 않아서 몇 층인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한참 내려갔습니다.”
“지하 1,2층도 아니라고요?”
“네. 그건 확실해요. 그 정도 거리면.”
은성은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떼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 요샌 그렇지 않아도 이 연구소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정말 이상했던 게 맞군요. 연구원들이 모르는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진행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가끔 받거든요. 또 연구소 내 연구원들 몇몇은 사라지기도 했고요. 그래서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죠. 뭔가 우리가 모르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고 그러니 모두들 불안해하죠.”
“연구원들이 사라진다고요?”
“네."
"뭘 연구하던 사람들인데요?”
“그게 우리 팀은 아니라서 확실히는 잘 모르지만... 그냥 그만둔 건데 퇴사 이유를 안 밝히는 건지도 몰라요. 실험하다가 무슨 병이 들었다거나 할 수도 있고. 암튼 명쾌하지가 않아서 찜찜한 거죠.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답을 꺼리고 뭐 그런 것들이.”
은성은 손목시계를 다시 한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실험실에 한번 가볼게요. 뭐 무슨 핑계를 대든 타임머신은 살펴봐야죠. 음, 그날 연구소에서는 많이 돌아다니진 않았죠? 저만 따라 왔었으면 ... 그날 난 타임머신을 확인하고 금방 나왔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네 맞아요. 당신이 날 못 보는 것 같아서 좀 놀랐는데 당신이 사무실을 나가길래 따라 갔죠. 여기로 왔다가 곧장 퇴근했어요. 내내 차에 있다가 집. 몸이 사라져 있을 땐 옷도 같이 사라지는 걸로 봐선 리스트도 눈에 보이지 않을 확률이 있으니까 떨어졌다면 바로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보였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타임머신에서 떨어뜨린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건 정말 거대한 모래사막을 뒤적이는 것 같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예 애초에 있는 줄도 모르던 것이었으니 어디서 잃어버린다 해도 혹은 떨어져 있는 걸 봤다 해도 그게 자기 물건인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지금도 한번도 본적 없는 것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봐도 그게 그건지 알아볼 수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도 민하진과 별다를 게 없는 타입인가? 선 행동 후 생각. 쓸데없이 돌아다닐 게 아니라 그냥 민하진을 기다리는 게 나을 뻔 했는지도 모른다. 악마라면 리스트의 행방을 금새 알 수 있을 거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주 동안 꽤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꽤 많이 날아다니고 움직였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바람은 계속 분다.
은성은 가운을 다시 걸치고 사무실을 나갔고 김혁은 기다렸다.
얼마 후 돌아온 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텅 비었어요. 실험실 내도 조금 둘러보긴 했는데 특별한 건 없었고요.”
“그렇군요. 역시. 고맙습니다. 기다려봐야죠. 다른 저승사자가 올 때까지. 아마 리스트의 행방을 알아올 거예요.”
“저승사자? 또? 정말 당신이 저승사자라는 게 아직도 안 믿겨요. 정말 우리랑 똑같은데.”
“그건 저도 그렇습니다.”
김혁은 멋쩍게 웃어보였다. 은성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아, 저는 지금 퇴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래요?”
“전 여기서 기다리죠 뭐. 여기 누가 들어오거나 하진 않죠?"
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날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서 아침까지 뭘 하게요?”
“어디에 있든 잠도 안 오고 혼자 시간 보내는 건 익숙합니다.”
“그래도 혼자 두고 가기가 그러네요.”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연구소에 안 좋은 일도 많은데 괜히 오해까지 사게 할 순 없죠. 제 몸이 제때 사라져주는 것도 아니고요.”
김혁은 출입구의 검문소를 빠져나가던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출입증과 대조는 기본이고 차량 곳곳 일일이 확인을 거치는 시스템이다. 함께 동승한다면 출입증도 없는 옆자리의 남자가 누군가 분명 꽤 의심쩍게 추궁당할 것이 뻔했다. 은성은 잠시 김혁을 바라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 가방을 들었다.
“미안해요.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전 인간이라 잠을 안 자면 쓰러질 거예요.”
“네 네. 제가 불쑥 찾아온 건데요. 신경쓰지 말고 가세요.”
은성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김혁은 또 다시 혼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밤 시간을 보낼 일에 한숨부터 나왔다. 드라마도 볼 수 없고 여기선 또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담. 책장의 읽을거리랴야 다 너무 어려운 책들뿐이고 인터넷은 써도 되려나? 노트북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무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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