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그들의 세상
저승사자 셋은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유지성의 병실 앞임을 알아챘다. 민하진이 김혁을 흘깃 한번 바라보곤 주은정에게 입을 뗐다.
“말로만 듣던 그 첫사랑을 보는 거야? 정말? 기대된다.”
“야, 그때가 언젠데 지금은 음,... 벌써 60이 다 돼가겠는데 할머니잖아.”
“뭐 저는 안 궁금한 것처럼, 너도 궁금하긴 하잖아.”
“별게 다 궁금하다.”
“뭐 솔직히 너도 궁금하지? 응? 궁금하잖아.”
“친한척 하지 말고 저리 떨어져.”
“아닌척 하긴.”
민하진은 주은정의 쌀쌀맞은 태도에 토라진 표정을 짓고는 곧 병실문 앞을 기웃거렸다. 김혁은 서정과 마주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난감했다. 죽기 전 근 1년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었던 터라 죽을 때 모습은 열 아홉 살의 생김새라고 했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1년이란 많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길게 대화를 하다 보면 알아챌 확률이 더 높았다. 서정이라면 특히 더.
김혁은 기억이 없을 때처럼 태연하게는 서정을 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눈치 채이고 말리라. 그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태껏 저승사자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서정이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반가워할지 슬퍼할지 그런 것들이 꽤나 많이 신경 쓰였다.
병실을 기웃거리던 하진이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은 환자랑 어린 여학생 밖에 없는데? 동생인가 봐.”
김혁은 기억을 잃고 해매던 밤 길에서 마주쳤던 여자애를 떠올렸다. 그애라면 분명 서진수에게 내 얘기를 들었을 텐데 불쑥 나타나면 놀랄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더구나 병실에 누워 있는 환자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라면 누구라도 겁에 질려버릴 거다. 아무래도 여긴 본인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이 애들한테 맡기는 게 좋을 듯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너희 둘이 들어가서 위험 상황을 알리는 게 좋겠어. 어디 비밀 요원이라고 적당히 둘러대든지 하고 경찰에 연락하게 해. 오수연이란 과학자랑도 연결해달라고 하고. 경찰에다 얘기하면 연락이 가는 모양이니까.”
“선배님은 안 들어가고요?”
주은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난 좀비 쪽을 맡을게. 너희들은 여길 지켜. 잘 할 수 있지?”
“물론이죠.”
주은정이 먼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민하진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듯한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럼 난 간다.”
김혁은 서둘러 리스트의 ‘조만호’라는 이름을 찍었다.
김혁은 어느새 평범하게 꾸며진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실내는 조용하고 남자는 혼자였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스며들고 있었기에 사무실은 약간 어두운 채로 불켜지지 않은 상태의 그늘에 잠겨 있었다. 일부러 불을 꺼놓은 건지도 몰랐다. 뭔가 생각할게 있는지 50대 중반쯤의 남자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지만 팔걸이의 딱딱한 부분에 검지손가락을 일정한 속도로 딱딱거리고 있었다. 세로로 움푹 파인 한줄 이마 주름과 찡그린 얼굴, 겨울밤보다 더 짙은 오라가 그의 카리스마의 정체를 짐작하게 해주는 듯 보였다.
리스트를 쫓아 여기에 왔다면 해가 지기를 기다려 저 남자의 휴식을 방해하고 놀래키고 자신이 저승사자임을 믿게 하기 위해 한바탕 법석을 떨어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저 사람보다는 좀비를 찾는 게 급했다. 그 좀비는 생김새 밖에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찾아내야 한다.
좀비 있는 데로 바로 보내주지 않고 왜 일을 두 번 시키는지 악마에 대한 원망을 슬며시 누르며 김혁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김혁은 우선 창밖으로 나가 건물의 전체 규모와 주변 지형 지물을 살펴봤다. 건물은 고층빌딩을 올리려다 만 페건물로 3층 정도 밖에는 올려져 있지 않았고 가로로 넓은 구조였다. 거의 골조와 외벽 마감만 대충 만들어진 채 방치 돼 있었다. 건물 주변도 황량하기 이를데 없었는데 부지가 넓은 걸로 보아 무슨 상가를 짓다 말았거나 어쩌면 타임머신 연구소처럼 비밀스런 무슨 시설을 만들려다 만 것처럼 보였다.
말 그대로 버려진 땅이었다. 한쪽 공터에는 페타이어가 무더기로 쌓여 있거나 바퀴가 없는 차량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 건물 앞에는 몇 대의 차들이 주차 돼 있었다. 그런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나니 조만호의 사무실이 멀쩡하게 꾸며져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김혁은 3층부터 차근차근 훑기 시작했다. 연구소처럼 위험한 시설은 아니라 빠르게 벽과 벽을 통과해 가며 둘러보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진 않았다. 한 층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긴 했지만 모두 비어 있었고 3층은 조만호의 사무실 외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은 듯 했다. 2층에는 방 2개만 침실로 쓰는 모양인지 쭉 놓여진 1인용 침대들이 가득 차 있었고 사람은 없었다. 나머지 공간들 역시 텅 비어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자 널찍한 홀처럼 틔어 있는 공간이 나왔는데 그곳에 모여 있는 건장한 사람들이 보였다. 대여섯명 정도 검은 오라를 휘두르고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1층 한 구석에는 식당처럼 보이는 곳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남자 2명이 따로 있었다. 1층 역시 나머지 공간은 사용한 흔적이 없다. 김혁은 다시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무리로 돌아왔다.
그때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무리에게 말을 던졌다.
“짱똘은 어디 갔어?”
“오셨습니까. 형님.”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러고 나서야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졌다.
“시내에 잠깐 볼 사람 있다고 해서 떨궈주고 왔는데요. 요즘 냄비 하나 새로 만나서 펄펄 끓지 않습니까?”
“미친놈. 그러다 사고칠라. 잘 보고 있어.”
“네 형님.”
“또 하나가 안 보이는데?”
“아, 막둥이요? 그 녀석은 맨날 앉아 있는 데 있잖습니까? 거기요.”
남자가 가리킨 쪽으로 사라지고 나자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똘마니 중 하나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직 애라니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걸 여기 들이면 어떡해? 참나.”
“조용히 해. 새꺄. 작은형님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큰형님도 인정한 거니까. 어려도 실력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 그 날렵한 몸놀림은 늬들 두명 쓰는 것보단 훨 낫다.”
“걔가 민철이랑 친했지?”
“야, 그놈들하고 안 친했던 사람이 여기 어딨어. 다 한솥밥 먹은 게 얼만데 이거나 빨리 해.”
김혁은 그들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나서 좀비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지금 ‘작은형님’이 찾으러 나간 그 어린애와 ‘짱똘’ 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남자가 나간 쪽으로 갔다. 짱똘이 좀비가 아니길 바라면서. 좀비가 시내에 나갔다면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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