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삼인조
“비밀조직이라고? 짱똘이? 그렇게 띨띨한 자식이?”
바닥에 주저앉아 내내 신음하던 뒷좌석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띨띨하긴 누가 띨띨해? 야, 그만 보내드려.”
운전석 남자가 조수석 남자에게 눈짓했다. 조수석 남자는 여자의 팔을 놓고 떨어졌다.
갑자기 혼자 떨어진 여자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로 남자들과 김혁을 바라보았다. 사귀는 남자친구를 찾아온 무시무시한 사내들, 또 갑자기 평범한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비밀요원이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면서도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이건 기밀이니 아무한테도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김혁이 다시 한번 당부하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들을 한번 바라보고 서둘러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여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던 조수석 남자가 김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넌 뭐하는 놈이야? 비밀조직?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어디 조직에서 나왔어? 짱똘을 데려가려는 속셈이지? 감히 우리 조직 사람을 빼내가려 하다니 어딘지 참 배짱 한번 두둑하네.”
그의 눈초리가 매우 날카롭게 김혁을 훑었다.
김혁은 그런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더 이상 시간낭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다.
“아, 믿거나 말거나 그런 건 관심 없고 짱똘 집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 집이라는 건 너희들 아지트를 말하는 거지?”
“뭐?”
“그러니까 짱똘 집이 따로 있는 거냐 묻고 있잖아. 시간 없다는데 왜 자꾸 두 번씩 말하게 해?”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확!”
조수석 남자가 김혁에게 달겨들려 하자 운전석 남자가 막아섰다.
“넌 짱똘을 왜 찾지? 우리 아지트가 어딘지 안다는 건가?”
김혁은 솔직히 말해주는 게 좋을지 어떨지, 여긴 그냥 두고 서둘러 그들이 있는 건물로 가보는 게 나을지 어떨지 잠시 생각했다. 거긴 리스트로 바로 갈 수 있지만 만약 짱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또 시간을 허비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만 했다.
“하, 참. 거... 내가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데 혹시라도 짱똘을 만나게 되면 물리지 않도록 조심들 해.”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짱똘은 오늘 연구소에서 좀비에게 물렸어.”
“그럴 리가!”
그들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자신들이 연구소에서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안다는 것 자체를 놀라워하는 건지 짱똘이 좀비한테 물렸다는 게 놀랍다는 건지 모를 얼굴들이긴 했지만 그들 셋 다 몹시 놀란 건 분명해 보였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저 여자도 그랬잖아. 어딘가 아파보였다고. 난 좀비바이러스를 추적하고 있는 중이야. 짱똘을 서둘러 찾아야 해. 그러니까 방해하지 말고 협조 좀 하라고. 안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 벌써 짱똘이 너희 아지트에 도착했다면... 아 진짜. 너희들도 돌아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알아서들 하고.”
“그건 어떻게 감염되는 거지? 나 연구소에서 오는 내내 짱똘 옆에 앉아 있었는데.”
뒷좌석 남자가 이번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글쎄, 뭐 피나 체액 접촉이라든가?”
“으허, 안돼, 안돼. 그 자식이 침을 얼마나 튀기면서 말을 하는데... 아, 아까는 별로 말이 없긴 했는데 난 괜찮겠지? 용석아 그치? 난 괜찮겠지?”
뒷좌석 남자는 조수석 남자를 보며 마치 그가 정답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이 간절히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좀비를 처리하러 갔던 것은 사실이니 아무리 정체불명의 사람이 떠들어대는 헛소리라도 믿지 않기가 꺼림칙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해. 짱똘이 아지트 말고 다른 갈만한 데가 있을 것 같아?”
“아니 없을 거야. 그 녀석은 부모 형제도 없는 놈이니까.”
“벌써 좀비로 변했으면 어디로든 갈 수 있지.”
겁에 질린 뒷좌석 남자가 소리쳤다. 운전석 남자는 침착하려 애쓰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로 안 왔으면 그리로 갔겠지. 좀비로 변했어도 그 길 어디쯤일 테고. 근데 넌 정말 좀비바이러스에 대해선 어떻게 알지? 그건 기밀사항인데. 더구나 우리가 거기 있었다는 건 아무로 모르는 일인데.”
“그런 건 알 필요 없고. 암튼 조심들 하라고.”
김혁은 몸을 돌려 가려다가 다시 뒤돌아보고 말했다.
“근데 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여자를 냄비라고 하는 거야?”
“뭐?”
그들은 얼빠진 표정을 짓고 김혁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말야. 여자를 자꾸 냄비, 냄비 거리길래. 그럼 너희 엄마는 냄비고 아빠는 냄비 뚜껑, 너희는 뭐 국물이냐 건더기냐? 그냥 궁금해서.”
그들은 김혁의 갑작스런 질문에 여전히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혹은 너무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을 들어서 말문이 막혔거나. 그런 질문에 대답이 있을 리 없겠지. 김혁도 애초부터 대답을 기대하고 건넨 말은 아니었다.
김혁은 그들이 안 보이는 데까지 뛰었다. 뒤에서 ‘야 거기 서!’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쫒아 오지는 않았다. 김혁은 멈추지 않고 그들이 완전히 안 보일만한 모퉁이를 돌아서야 몸을 투명하게 하고 다시 그들에게로 날아갔다. 세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여전히 길에 서 있었다.
“그 자식 뭐지? 우리가 한 일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연구소도 그렇고 냄비 얘기는 또 뭐야?”
“우리가 여기 나와서 냄비란 말은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치 안 했지?”
“그러게. 근데 그 녀석은 우리가 한 얘기를 다 들은 것 같던데.”
“도청이라도 했다고? 정말 비밀요원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짱똘도 그렇고 설마, 걔가 그럴 머리나 되냐? 걜 뭘 보고.”
“짱똘은 그렇다치고 저 녀석은 수상쩍잖아. 매수당한 건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짱똘이 요즘 부쩍 외출이 잦아지긴 했지.”
“그거야 저 여자 만나겠다고 그런 거지.”
“그건 어쩌면 핑계일 수도 있지. 여자 만나러 간다고 하고 딴 데로 새거나 했을 수도 있는 거고.”
“야, 근데 나 병원에 가야 되겠는데? 팔이, 팔을 못 움직이겠어.”
“엄살 좀 작작부려. 그까짓 걸로.”
“엄살이 아니라니까 새꺄. 진짜 뼈가 부러진 것처럼 아픈데. 그 주먹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파워가 실려 있었어. 그건... 그건 ....”
뭔가 더 말하려는 뒷좌석 남자를 무시하며 조수석 남자는 운전석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위치추적은? 뭐래?”
운전석 남자가 전화기를 들여다 보며 대답했다.
“연락해준다고 했어. 그나저나 짱똘이 진짜 좀비한테 물린 게 맞다면 어떡하지? 저 여자는 멀쩡한 거 맞아?”
“그애들도 멀쩡했었지. 그 연구소에 갔을 때...”
조수석 남자의 말에 세 사람은 일순간 침묵했다. 그때 운전석 남자의 전화벨이 울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내려놓으며 운전석 남자는 절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짱똘이 돌아왔대.”
“아까 그 녀석 말이 사실이라면 말해줘야지. 위험하잖아.”
“그 녀석이 누군 줄 알고.”
“그래도 확인해보라고 해. 진짜 물린 데가 있는지.”
“뭐라고 설명하라고. 어떤 미친놈이 와서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랴?”
“하지만 좀비바이러스나 우리가 연구소에 갔던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미친놈이라고 할 순 없지.”
“.... 우리 조직 중에 가장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 누구지?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더 있는 건가?”
“그 자식이 우리 비밀 조직원이라고?”
“지난번에 슬쩍 엿들었는데 그렇게 움직이는 녀석들도 몇몇 있다고 하긴 하더라고.”
“설마?”
“혼자 다니는 것도 수상하고. 아까 그 주먹 쓰는 거 하며 몸놀림도 범상치 않고. 우리가 하는 일도 다 아는 것 같고. 여긴 어떻게 알았겠어?”
“우리는 이제 어쩌지?”
조수석 남자의 말에 운전석 남자는 복잡한 표정을 뒤로 하고 다시 휴대전화를 눌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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