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게임이거든요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현대판타지

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05.10 21:36
최근연재일 :
2018.08.10 01:12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2,480
추천수 :
1,549
글자수 :
326,154

작성
18.05.11 03:10
조회
1,951
추천
30
글자
8쪽

2. 또만남

DUMMY

가족의 일로 오긴 했지만, 사실 나는 참여하는 것 만으로 할 일이 끝난 셈이었다. 나랑은 크게 상관없는 일종의 행복한 고민을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첫 날 회의에서 들어야 할 만한 이야기는 전부 들었고 해야할 말 또한 다 끝났다. 이후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분들의 이야기에 내가 낄 필요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애 돌보는 사람이 된 나는 시간이 남아 도는 중이었다.

애라고 해 봤자 평소 같이 게임을 즐기던 말 잘듣는 초등학생 한명이 전부고, 나머지 애들은 아예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갓난아기라서 내가 돌볼 수 없는 경우 였다. 연휴는 삼일. 회의는 이틀째. 친척동생은 내 스마트폰으로 게임중이다. 좀 있다가 나가자는 내 말에 토도 안달고 얌전한 모습이 이쁘다. 그래.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천장을 바라본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생각이 잘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동생이랑 놀아주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꼬맹이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뺏어 나가자고 말했다. 어른들에게 다녀오겠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귀여운 동생놈 손을 잡고 어슬렁 밖으로 나서니 날씨가 참 따듯했다.

오늘은 오락기에 사람이 꽤 있었다. 물론 거의 다 초등학생이었다. PC게임들이 몰락해서 그런걸까. 실제로 붙어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네 오락기가 인기가 되려 높아진 듯 했다. 아니면 여기가 경기도 구석진 촌동네라 그런 걸 수도 있고. 동생은 자기가 아는 친구가 있었는지 달려가 무리에 끼어들었다. 나는 어제의 벤치에 가 앉았다. 날씨 좋고 다서여섯 무리지어 오락하는 꼬맹이들을 보고있자니 기분이 편해졌다. 먹을거라도 좀 사다주면 좋아하려나. 나는 예전에 이 근처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 상가 지하로 향했다. 지하에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을거다. 지하로 향하자 익숙한 불투명한 유리문이 나를 반겼다. 10년이 넘었는데 문이 그대로네. 슈퍼 이름도 그대로였다. 묘한 기분을 맛보며 드르륵, 문을 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높은 언성이 내 귀를 찔렀다.


"아니 됐으니까 네집 전화번호 뭐냐고!"


무슨 일이가 싶어 문을 조심스레 닫고 카운터쪽을 봤다. 10년 전 그 주인아줌마가 옛날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고개를 들고 아줌마를 노려보는 여자애가 있었다. 어제 날 이기고 사라진 그 애였다.


"아니 얘가 왜 말이없어? 좀전에 했던것 처럼 또박또박 말대답 해 보라니까?"

"......"


여자애는 교복차림으로 비싸보이는 과자상자를 들고 있었다. 귀는 완전히 새빨개졌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없이 아줌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손으로 주먹을 꽉 쥐는 순간을 보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유리잔을 캐치하는 심정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음,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

"그 왜, 10년정도 전에 여기 자주 왔던 사람인데. 커피 자주 놓고 가던. 기억하시려나?"


아주머니의 표정이 한 순간에 풀어졌다. 다행히도 날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알지! 오랜만이네. 저 앞에 학교에서 일하던 청년이잖아 그치? 일 그만뒀다더니 여긴 어쩐일이래? 아 참. 그래. 자기 그 학교 번호 알지? 자기가 일하던 그 문월중 거기 말야. 거기 전화좀 해 봐. 그 학교에선 학생관리도 안하고 그러나봐 응?"


박수를 치며 나를 알아보던 아줌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여자애는 어느새 주먹을 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잠깐 눈을 줬다가 다시 아줌마를 본다. 아니, 할머니라고 해야하려나 이젠.


"뭔일인데 그래요? 들어오자마자 막 큰소리나고 그러더만."

"아니 글쎄 얘가 과자 이 비싼걸 고르더니 그대로 나가려는거야! 소리없이 들어와서 내 눈치 보다가 슥 나가는걸 내가 딱 봤지! 그래서 붙잡아 와서 몇마디 했더니 지가! 지가 뭘 잘못했냐고 고개 빳빳하게 들고 대드는거있지! 내가 기가막혀서 진짜!"


다시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뻑뻑 성질내고 손가락질 하면서 5분동안 쉴새없이 뱉어낸다. 나는 눈을 마주하고 열심히 듣는다. 인사도 없다 미안하다고도 안한다 고개는 쳐들고 말하나 안지려들고 보니까 돈도없는 년이 예절도 없고 도둑질하는 년이 집에 연락도 하기싫다 학교에도 하기싫다 이유가어쩌고 사정이어쩌고 요즘 어린놈들이 이렇다 이 슈퍼에 도둑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내가 잡은 도눅놈들이 몇이고 잘못한줄을 모르는 놈들이고 ...

독이 빠져나가 조금 후련해진 듯 한 할머니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에이 얘가 잘못했네."

"그치? 이년이 근데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니까?"

"근데 아주머니 얘가 되게 독불장군이긴 한데, 도둑질은 안해요. 얘네 되게 잘사는데요 뭘."

"응? 잘살아? 아니, 자기가 아는 애야?"

"그럼요. 기일이. 오기일. 문월중 1학년 2반 34번. 제가 데려가서 얘기 잘 할게요. 그러니 아주머니도 화 푸세요. 아참. 얘가 들고있는거 얼마죠? 제가 계산할게요."


할머니는 탐탁찮아 하면서도 마지막엔 얘한테 잘 가라고 인사까지 했다. 어쨌든 알만한 사람한테 보증을 받았고 비싼 품목도 팔았고 가게에서 팔던 커피지만 커피까지 대접받았으니 기분이 좀 풀린 모양이다.

슈퍼를 나오고 지하에서 올라오자 의심 가득한 질문이 시작됬다.


"아저씨가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걔랑도 통성명 한 적 없는데."

"너 교복에 명찰."

"......."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쪽에 달린 명찰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1학년인건 어떻게 안거에요? 반이랑 번호는 또 뭐고."

"알기는. 잘 아는사이처럼 보이려고 아무 반 번호 댄건데. 그리고 너네학교 2,3학년부터 야자 하잖아. 맨날 그시간에 나와서 오락했다며? 그럼 1학년이겠지."

"저희 학교에서 일했었어요?"

"급식실에서 일했지."

"......"


과자가 든 봉지를 든 채 우물쭈물해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이 애가 내 고민의 해답이 될 수 있겠다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시험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거 돈은 제가 다음에 꼭 갚을게요."

"안 갚아도 돼. 아니, 안갚는다고 아 그렇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할 너도 아니지."

"네?"


그녀는 이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뭔 소리하는거야. 하는 얼굴이다. 나는 그 얼굴에 대답해주었다.


"나는 말야. 남이 어떤 사람인가를 빠른 시간안에 파악해 낼 수 있거든. 네 이름이나 학년이 어떤가 캐치해 낸 게 그런 점이지. 또 있는데 음. 네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인 것, 어떤 종류의 싸움이건 승리한 쪽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 옳은 것은 때려 죽여도 옳고 아닌 것은 때려 죽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 귀여운걸 매우 좋아하지만 별로 티내고 싶어하진 않지. 가정교육을 잘 받았고 부모님을 매우 존경하지만 최근에는 어째서인지 별로 집에 가고싶어하지 않은 듯. 평온하고 냉정하게 있으려고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 예를들면 부모의 명예나 자신의 자존심같은게 상처입으면 폭발하는 성격을 가졌다거나."


내 이야기에 집중하던 그녀의 표정은 미묘했다. 반 정도 맞췄으려나.


"반 정도 맞았나?"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요."


그녀는 도와줘서 고맙지만 더이상 당신같은 이상한 사람이랑 말섞고싶지 않은데요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끝까지 내 고집을 부리며 이야기했다.


"올라가서 어제 그 게임 한 판 더 하자고. 오늘은 다를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격투게임이거든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소설 스토리와 무관한 격투게임 설명글(스압주의/무쓸모주의/이미지데이터주의) +3 18.06.28 863 0 -
91 4) 0. 에필로그 +9 18.08.10 443 18 4쪽
90 3) 완결.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3) +15 18.08.09 352 11 11쪽
89 3) 16.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2) +6 18.08.08 292 9 11쪽
88 3) 15.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1) +6 18.08.07 312 8 11쪽
87 3) 14. 구구절절 번거롭고 지루한 이야기. +4 18.08.07 287 9 12쪽
86 3) 13. 콤보 브레이크 예선(5) +4 18.08.06 254 8 12쪽
85 3) 12. 콤보 브레이크 예선(4) +11 18.08.03 303 13 11쪽
84 3) 11. 콤보 브레이크 예선(3) +2 18.08.02 294 7 12쪽
83 3) 10. 콤보 브레이크 예선(2) +2 18.08.01 298 8 11쪽
82 3) 9. 콤보 브레이크 예선(1) +8 18.07.31 301 11 11쪽
81 3) 8. It's a fighting game. +8 18.07.27 300 8 11쪽
80 3) 7. 적을 알고 나를 알면(3) +14 18.07.27 312 9 12쪽
79 3) 6. 적을 알고 나를 알면(2) +4 18.07.26 329 8 7쪽
78 3) 5. 적을 알고 나를 알면(1) +4 18.07.25 331 10 7쪽
77 3) 4. 마이클 조셉 +6 18.07.24 351 11 12쪽
76 3) 3. 미나미 사토리 +6 18.07.23 370 13 11쪽
75 3) 2. 파라노이아 +10 18.07.20 385 12 11쪽
74 3) 1. Combo break +8 18.07.20 451 10 12쪽
73 2) 40. 엔딩 +12 18.07.18 402 17 7쪽
72 2) 39.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6) +13 18.07.17 413 14 8쪽
71 2) 38.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5) +8 18.07.16 401 14 7쪽
70 2) 37.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4) +8 18.07.13 376 14 8쪽
69 2) 36.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3) +14 18.07.12 442 13 7쪽
68 2) 35.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2) +7 18.07.12 374 13 7쪽
67 2) 34.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1) +11 18.07.09 412 20 7쪽
66 2) 33. 떨림(2) +4 18.07.09 388 14 7쪽
65 2) 32. 떨림(1) +6 18.07.09 407 13 7쪽
64 2) 31. 기대 +12 18.07.05 415 16 7쪽
63 2) 30. 회상(2) +6 18.07.05 400 1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