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게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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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05.1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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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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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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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기일

DUMMY

은하누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적당히 먹을 간식거리와 맥주를 샀다. 컴퓨터를 켜서 며칠 전 중딩과 게임한걸 녹화했던 파일을 열어두고, 내가 분석하며 정리한 종이를 그 앞에 배치했다. 일종의 비지니스 포럼 시간이었다.

누나도 게임을 좋아한다. 내가 게임에 대해 어느정도 깊이있는 이야기를 해도 전부 알아들을 정도이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내 영상을 어떻게 편집해야 맛이 살아나는지 알지 못했을 거다. 게임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게임의 주인공인 나를 이해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그것이 오늘 누나를 집으로 초대한 이유가 되겠다.

누나가 집으로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의자에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표정이 미묘했다.


"우선 이것부터 봐 줘."

"뭔데. 플레이어 스테이터스?"


내가 건넨 종이를 받아든 그녀는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나갔다. 플레이어 스테이터스. 게이머 시각으로 본 각 플레이어가 갖는 능력의 정도를 간단하게 나타낸 표 였다.


플레이어 오기일

콤보 : C

테크닉 : C

반응속도 : SSS

심리전 : C

센스 : C


"잘 모르겠지만 처참한 수치네."

"차례대로 설명할게. 콤보는 한 번 공격에 성공했을 때, 즉 콤보 시동에 성공했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강한 공격을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한 수치야. 예를 들어보자. 잽에 성공하면 이후 원투 킥 장풍 까지 연속적으로 확정 데미지를 넣을 수 있어. 그러나 실력에 따라서 원투까지 밖에 못 넣는 사람이 있고 장풍까지 다 넣을 줄 아는 사람이 있는거지. 심지어 그보다 더 강한 공격을 넣을 수도 있는거고."

"너 누구한테 설명하는거야? 내가 그런것도 모르겠냐? 쓸데없는 설명 빼고 이야기 해라. 맥주도 미지근해서 짜증나는데."

"음. 좋아. 콤보는 콤보를 얼마나 잘 넣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넣고 얼마나 어려운 콤보를 넣을 줄 아는가에 대한 수치야. 기일이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하겠지만 캐릭터 기술에 기본적으로 설계된 콤보만 넣을 줄 아는 정도야."


나는 콤보란의 C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래서 최하인 C야. 참고로 단계는 C, B, A, S, SS, SSS로 나눴어."

"오케이. 그다음은?"

"테크닉. 기술적인 면이야. 이지선다. 역가드. 페이크. 거리재기. 견제등등 격투게임 내에서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고급기술들이지. 물론 기일이가 여태껏 나한테 보여준 플레이에선 그런게 전혀 없었고. 그래서 마찬가지로 C."


테크닉의 C에도 동그라미를 쳤다. 누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다음 항목을 가리켰다.


"그 다음 항목은? 이게 제일 높네."

"얘를 내 제자로 지목한 첫 번째 이유가 이거야. 반응속도. 이건 뭐 격투게임에서만 쓰는 특별한 용어는 아니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 그대로의 의미거든? 말 그대로 반응속도가 트리플 S 라는거야. 이게 왜 중요한지는 내가 조금 있다가 영상 보면서 설명할게. 그러니 이건 잠깐 넘어가고."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하게 목을 축이면서 스스로 진정하려고 애썼다. 나는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면 갑자기 말이 빨라지는 사람이다.


"심리전은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플레이. 또는 상대방에게 특정 행동을 강요하게 만드는 플레이를 말하지."

"알아. 네 주특기잖아? 심리전에 대한 설명은 지독하게 들었으니 패스하자."

"그래. 심리전 설명은 나중에 기일이한테 해야겠지. 그럼 다음은 센스. 이건 조금 어려운 설명일 수 있는데, 오랫동안 게임을 하면서 축적된 일종의 경험치나 내공등을 바탕으로 순간순간 기발한 정답을 도출해 내는 것을 가리켜 센스라고 해."

"아냐. 별로 어려울 것 없어. 센스에 관한 이야긴 다른사람한테 들은 적이 있거든. 아무튼 기일이가 센스도 꽝이란거지?"

"맞아. 하지만 절대 답을 도출해 낼 능력이 없는 게 아냐. 그 바탕이 될 경험이 너무나 부족한 게 문제인 거지. 자 그럼 영상을 좀 보자. 내가 대충 편집해 놨어."


준비해 놓은 영상을 재생시켰다. 조그맣고 안경을 낀 난장이 캐릭터가 나고 붉은 머리에 폭주족같은 옷차림의 남성이 기일이였다. 내 난장이 캐릭터가 열심히 폴짝 거리면서 도망만 다니고 있다. 멀리서 장풍으로 요격하던 기일은 그 시도가 모두 무산되자 돌진하는 선택을 취한다. 도망다니다 구석에 몰린 난장이는 팔을 들어 가드를 했다. 두 캐릭터의 사이가 매우 가까워 진 순간 붉은머리 캐릭터의 손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공중으로 떠오른다. 난장이 캐릭터는 불길에 휩싸여 나가떨어진다. 동영상을 일시정지 시켰다.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알겠어?"

"기일이 캐릭터가 네 캐릭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에 널 공격했네."

"그렇지. 근데 잘 보면 내 캐릭터가 처음엔 가드하고 있단 말야. 그런데 아주 가까워 지니까 내가 가드를 풀었지. 가드를 풀면서 내가 공격을 하거든? 근데 그걸 쟤가 반격한거야."

"그런데?"

"그런데 문제는, 내가 저때 사용한 기술은 사정거리가 매우 짧은 대신 선 딜레이가 1프레임밖에 안되는 사기 기술이었다는 거지."

"프레임이라는 게 1초를 60으로 나눈 시간단위 맞지?"

"맞아."

"네 말은 60분의 1초를 눈으로 보고 반격했단 소리야?"

"반격할 기술의 커맨드를 입력할 시간도 필요하잖아. 1프레임을 보고 반격하려 해도 내 기술이 1프레임 이후엔 공격에 성공하니까. 그보다 더 빨리 보고 반응했다는 소리겠지."


누나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나와 화면을 번갈아 보다가, 말도안된다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영상을 재생시키면서 몇 번인가 더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우연의 일치였다고는 농담으로도 못 할 수준이었다. 내가 근접해서 공격을 할려고 할때마다 반격이 들어왔다.


"근데 반격할 때 저 불나오는 기술만 쓰는건 왜 그런거야?"

"저게 좀 안 그래 보이긴 하는데 승룡권이거든."


승룡권. 유명 격투게임에서 점프하며 하늘로 주먹을 내지르는 기술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보통 판정이 매우 좋고 무적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막혔을 경우 반격에 속수무책인 기술들을 통틀어 승룡권이라고들 말한다.


"게임의 이해도가 부족한거야. 경험 부족이라고 해도 좋은데, 저 기술이 판정이 엄청 좋다는 것만 알고 상대방 캐릭터의 판정이 어떻게 되먹은지를 모르니까, 상대방이 무슨 기술을 썼다 하면 그게 무슨 기술이건 상관없이 이길 수 있는 승룡권을 내지르는거지."


영상을 계속 재생시켜 특정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게임의 결말은 그녀도 알고있듯 나의 승리였다.


"얘가 말도안되는 반응속도를 가지고 있고, 상대방의 기술을 승룡권으로 되받아 치려고 한다는 사실만 알게되면 다음은 질 수가 없게 되는거야. 모션 이후에 공격이 아닌 즉각적인 가드가 가능한 페이크를 넣는다던가, 맞 승룡권 이후 구르기회피로 반격할 수도 있고 필살기로 승룡권을 역으로 카운터 칠 수도 있지."


영상 내의 게임은 끝이 났다. 하지만 영상은 아직 몇 초가 남았다. 영상을 찍던 은하가 폰을 거두면서 우연히 찍힌 기일이의 얼굴이 영상의 끝이었다.


"그리고 이게 얘를 선택한 두 번째 이유야. 얘는 이미 내가 전직 프로게이머라는 걸 듣고난 이후에도 나에게 진 걸 당연시 여기지 않았어. 승부욕이 있는 친구야. 지금 낮게 책정한 수치들도 전부 연습으로 메꿔질 수 있는 부분이니, 나는 얘가 세계급 선수가 될 거라고 확신해."


영상의 마지막 장면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기일이의 분해하는 표정이 생생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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