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게임이거든요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현대판타지

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05.10 21:36
최근연재일 :
2018.08.10 01:12
연재수 :
91 회
조회수 :
52,482
추천수 :
1,549
글자수 :
326,154

작성
18.05.18 14:15
조회
674
추천
23
글자
8쪽

16. 피드백

DUMMY

나는 얼마 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선수 대기실에서 고딩과 대화를 하면서 걱정되서 한 말이었다고 한 '인터뷰는 왜 했냐'는 말은 사실 녀석을 걱정해서 했다기 보다는 내가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봐 내뱉은 말이었음을 깨닳은 것이었다.

기일이와의 사이가 멀어지거나 어긋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엄청나게 친해질 필요까지는 없다고 쳐도, 녀석이 나를 싫어하게 되고 나아가 게임을 싫어하게 된다면 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까닭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 집에 돌아와서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살았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스스로 피드백을 거듭했다.

그리고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나는 왜 그녀석을 어려워 할까'하는 것 이었다. 전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알 수 없는 감정의 골. 분명 거기서 부터 무언가 잘못된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내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 누나가 게임을 엄청 잘하거든! 형이랑 같이 게임하면 누가 이길까?'


사촌동생이 처음 그녀석을 언급한 시절로 돌아가 본다. 나는 녀석에게 졌다. 거기서 무언가 자격지심 비슷한 무언가가 발생한 걸까? 복수에 성공했으니 그건 아닐것 같다. 오히려 그녀석의 승부욕을 생각해 보면 녀석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바보같기는. 그녀석이 그런걸로 날 어려워 했을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그녀석은 나에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게임 스승? 그 외에는? 모르겠다. 전혀 힌트가 없다.

나는 다시 한 발자국 나에게서 멀어져 객관적으로 나를 살폈다. 어쩌면 지금 내 고민은 은하누나가 늘 말했던 것 처럼 쓸데없는 생각인 걸까? 아무도 신경 안쓰는 부분을 가지고 멍청하게 끙끙 앓고있는 걸까?

나는 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 은하누나가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는가.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사과하라고. 분명 무언가 나에게 문제가 있는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발생하고 있다. 철저하게 파악해서 암 종양을 제거하듯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분명한 펙트라고 할 수 있겠다.


'너같은 새끼랑 게임 못해먹겠다. 그딴 실력으로 프로라고? 차라리 하급ai 랑 팀을 하는 게 낫겠다.'


갑자기 옛날 흑역사가 떠올랐다.

예전의 나는 무척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팀이었던 팀원에게 생방송 도중 폭언을 서슴치 않았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팀원을 위한 일이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부끄러운 사실을 들춰내고 꼬집어 줘야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고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집어 치우자. 야, 저새끼 때문에 졌어. 그냥 포기해. 뭐하러 열심히 하냐.'


흑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아군의 실력이 못마땅해서 공식 대회에서 대놓고 트롤을 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나 한심한 예전의 내 모습에 나는 어지러울 정도로 머리를 흔들어댔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했던가. 예전의 이기적인 내 모습은 아마도 아직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곳에 자리잡은 그 이기심이 지금, 기일이와의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결론이 떠오른다.

그러나 몇 번을 생각해도 제자리 걸음이다. 이유나 근거로 추측되는 사항은 몇가지가 떠올랐으나 그래서, 내가 궁극적으로 뭘 잘못했지라는 질문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종이와 펜을 들어 글로 적어 정리해 보았다.


1. 기일이가 나에게 짜증을 냈음. 나에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 함.

2.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음. 기일이도 알고 은하누나도 알고있지만 알려주지 않음.

3. 이 문제를 방치하면 최악의 결말을 야기할 수 있음(기일이가 게임을 그만둠)


나는 글로 적은 내용을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그리고 1번 항목 옆에 괄호를 달았다.


1. 기일이가 나에게 짜증을 냈음. 나에게 무언가 불만이 있는 듯 함.(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나에게 불만을 표출한 적이 더 있을 수도 있음)


추가한 괄호를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덕분에 내 기분은 더욱 다운되었다. 나는 이 끔찍한 기분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지독한 자기혐오였다. 원인이 내 행동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걸 못찾아서 이렇게 헤매고 있다니. 그러고도 남을 잘 파악한다고, 심리전의 대가라고 말하고 다니다니! 창피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은하누나였다.


"여보세요?"

"누나. 아니, 누님. 부탁할게요. 제발 가르쳐 주세요. 지금 저랑 기일이랑 무슨 문제가 있는거죠? 진짜 계속 생각해 보고 있는데 모르겠어요."

"......"


누나는 답이 없다. 나도 묵묵히 기다린다. 머릿속에 경멸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은하누나가 떠오른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뭐?"


청천벽력같은 누나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뭐라고 설명을 해 줘야 할 질 모르겠다고. 네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서 말 해주고 싶긴 한데, 네가 만족할 만한 답을 주긴 어려울것 같은데."

"그러지말고 내가 나름대로 해석해서 들을테니까 아무 말이라도 해 줘. 제발."

"흐음."


나는 재판장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마냥 가슴졸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꽤 오랜 기간동안 고민하던 누나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기일이를 어려워 하는 것 같아."

"누나 그건 나도 아는데......"

"기일이가 너처럼 될까봐 겁나는거 아냐?"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새로운 명제에 혼란스러워 했다. 그런 나를 무시한 채 누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2년간 계속 그런 태도였지. 네가 스카웃한 애고 네가 가르치는 애인데, 엄청 거리를 두고 지냈잖아. 내가 봤을 땐 그냥 친한 스승과 제자처럼 지내면 될 것 같았는데."

"......"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내 추측이지만. 너랑 같이 지내다보면 너랑 비슷한 인성의 인간으로 자랄 것 같아서 불안했던거 아닐까? 너 젊었을 때 인성 쓰레기였다며."

"계속 말해줘."

"기일이 입장에선 엄청 답답했을거야. 자신에게 먼저 손 내밀어준 사람인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일관하니까 이건 뭐, 친근하게 굴지 냉담하게 굴지 혼란스럽기도 했을거고."


내가 그랬나? 나도 모르게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던건가?


"네가 그때 걱정되서 어쩌구저쩌구 했지만 기일이도 나도 느꼈어. 걱정이 된 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네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아보였거든. 평소 네 행동처럼 앞과 뒤가 맞지 않았지. 사람 헷갈리게 말야."


나는 그날 스스로 생각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기일이가 '아녜요. 선생님은 잘못 없어요'라고 말 했을 때다. 그래. 잘못이 있지만 없는걸로 칠게요로 들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짜증이 났었지.

근데 오래전 부터 내가 그러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 잠깐. 누나! 그건 딱히 나한테 이야기 해줘도 괜찮을 문제 아니야?"

"아니. 근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서......"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해준 건 빙산의 일각 같은거고 그게 다른 문제랑 또 얽히고 있거든. 아이씨. 더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묻지마. 너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설명충이 되었잖아."


누나는 그렇게 영문모를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결국 또다시 미궁에 빠지고 만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찾았으나 손에 잡힌 건 빈 담배곽 뿐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울고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격투게임이거든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소설 스토리와 무관한 격투게임 설명글(스압주의/무쓸모주의/이미지데이터주의) +3 18.06.28 863 0 -
91 4) 0. 에필로그 +9 18.08.10 443 18 4쪽
90 3) 완결.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3) +15 18.08.09 352 11 11쪽
89 3) 16.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2) +6 18.08.08 292 9 11쪽
88 3) 15.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1) +6 18.08.07 313 8 11쪽
87 3) 14. 구구절절 번거롭고 지루한 이야기. +4 18.08.07 287 9 12쪽
86 3) 13. 콤보 브레이크 예선(5) +4 18.08.06 254 8 12쪽
85 3) 12. 콤보 브레이크 예선(4) +11 18.08.03 303 13 11쪽
84 3) 11. 콤보 브레이크 예선(3) +2 18.08.02 294 7 12쪽
83 3) 10. 콤보 브레이크 예선(2) +2 18.08.01 298 8 11쪽
82 3) 9. 콤보 브레이크 예선(1) +8 18.07.31 301 11 11쪽
81 3) 8. It's a fighting game. +8 18.07.27 300 8 11쪽
80 3) 7. 적을 알고 나를 알면(3) +14 18.07.27 312 9 12쪽
79 3) 6. 적을 알고 나를 알면(2) +4 18.07.26 329 8 7쪽
78 3) 5. 적을 알고 나를 알면(1) +4 18.07.25 331 10 7쪽
77 3) 4. 마이클 조셉 +6 18.07.24 351 11 12쪽
76 3) 3. 미나미 사토리 +6 18.07.23 370 13 11쪽
75 3) 2. 파라노이아 +10 18.07.20 385 12 11쪽
74 3) 1. Combo break +8 18.07.20 451 10 12쪽
73 2) 40. 엔딩 +12 18.07.18 402 17 7쪽
72 2) 39.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6) +13 18.07.17 413 14 8쪽
71 2) 38.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5) +8 18.07.16 401 14 7쪽
70 2) 37.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4) +8 18.07.13 376 14 8쪽
69 2) 36.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3) +14 18.07.12 442 13 7쪽
68 2) 35.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2) +7 18.07.12 374 13 7쪽
67 2) 34. IG배 코리아 리그 결승전(1) +11 18.07.09 412 20 7쪽
66 2) 33. 떨림(2) +4 18.07.09 388 14 7쪽
65 2) 32. 떨림(1) +6 18.07.09 407 13 7쪽
64 2) 31. 기대 +12 18.07.05 415 16 7쪽
63 2) 30. 회상(2) +6 18.07.05 400 1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