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게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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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린완
작품등록일 :
2018.05.10 21:36
최근연재일 :
2018.08.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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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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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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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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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8. 2022 코리아 마스터쉽 결승전(2)

DUMMY

해설자들이 탄식섞인 한숨을 내쉬고 있다.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자 루갈 선수가 캐릭터를 고르지 않고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였고, 모두들 그가 좌절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오산이었다.

결국 캐릭터를 직접 고르지 않고 제한시간이 모두 지나 자동적으로 진이 선택된다. 이후 게임이 진행될 때도 도망을 다닌다. 오브젝트 소환은 하지 않고 가끔 기본기로 견제를 시도했다. 물론 모두 반격당했지만 말이다.


"상대를 무섭도록 몰아치던 압박형 진은 어디가고 이렇게 도망을 다니나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죠. 정말 저희가 뭐라고 해설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아아. 이게 진정 결승전이란 말입니까?"


계속 도망을 다니고 질척하게 시간을 끌어댄다. 일부 오디오에 관중의 야유섞인 소리가 잡히기도 했다. 모두가 이젠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패배에 패배를 거듭해 나가기를 9라운드 째. 다음 경기의 캐릭터 선택도 캐릭터를 고르지 않고 시간이 가도록 놓아둔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진의 빠른 상단 견제기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린은 그것을 쳐내지 못하고 피격되었다.


"어!"

"맞췄어요!"


격투게임에서 상대방에게 한 번 공격을 성공시켰다고 이렇게 놀라는 일은 아마 유래가 없던 일일 것이다. 방송을 보던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는 해설들. 그리고 관객들도 갑작스런 진의 공격에 와 하고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뭐죠? 실수인가요? 슈퍼컴퓨터에도 드디어 과부하가 걸린걸까요?!"


만두 해설의 멘트였다. 아마 일종의 농담 비슷한걸 하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멘트에 정 해설이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외쳤다.


"맞아요 과부화! 눈의 피로나 집중력 저하같은 원인으로 오기일 선수의 반응속도가 떨어진 겁니다! 와! 저 소름돋았어요! 루갈선수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끈 게 아니었군요!"


기일이는 완벽해 보이지만 여러가지 약점이 존재했다. 그리고 내가 보았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체력이었다. 만전을 기해 게임할 수 있는 횟수는 10게임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먼저 집중력이 떨어지고 차차 눈이 피로해진다고 본인이 이야기 했었다.

아직 10게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연속해서 대회 무대에 올라 게임을 했고 그 장소적 특징상 평소 집에서 하는 것 보다 더 큰 피로를 얻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 내가 며칠동안 연락도 없이 잠수타고 있는 것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더했을 지도 모르겠다.


"루갈선수는 저걸 어떻게 안 걸까요? 아니, 애초에 노리고 한 건지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적의 빈틈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굉장해요!"

"보세요! 다시 오브젝트를 설치하면서 린을 압박해 나갑니다. 아! 기일 선수 반격을 안해요! 가드를 굳히고 있습니다!"

"으아아! 오기일 선수 카메라에 잡힙니다! 한 손으로 가드하고 한 손으로 눈을 비비고 있어요!"


관객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온라인 방송의 채팅창도 불이났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진의 반격과 해설의 설명이 더해지면서 모두를 흥분시킨 모양이다. 흔들림 없어 보이던 최강자의 입장에서 응원을 하다가, 갑자기 얻어맞던 약자가 최강자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자 약자의 입장에 서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즐기기 시작한다. 뭐, 원래 이런거긴 하지.


"K.O! 처음으로! 처음으로 오기일 선수가 쓰러집니다!"

"제가 너무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너무 말도안되는 일이 연속해서 일어나니까 제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인성 해설! 일단 좀 앉으세요. 자꾸 일어나십니까 왜."

"저런 경기를 보고 제가 얌전히 앉아있게 생겼습니까?"

"전 마음속으로 루갈 선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계속 얻어맞던 루갈 선수가 반격에 성공하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힘내라고 외치게 됩니다."


이후 눈에서 손을 못 떼던 기일이는 2판을 내리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정도 까지는 어느정도 예상된 수순이다. 승리 조건은 6승. 현재 5승 2패. 눈을 회복하고 난 뒤에 집중해서 한 판을 따내도 되고 프레임단위로 보지 않고 가볍게 화면을 보면서 일반적인 대전을 하는 것 만으로도 쉽게 1승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2승을 따낸 루갈 선수를 마음속으로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기일이를 상대로 여러 변수가 있었다곤 하지만 2승을 따낸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일본대회의 우승도 운으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겠다. 나는 다시 베란다고 향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대회 이후의 일을 생각해 봤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아저씨 이름이 좀 그래요.'

'뭐가 그런데?'

'흔해서 그런가. 잘 안외워 지거든요.'

'야 너같이 기억력 좋은 애가 사람이름 하나 안외워진다는 게 말이 되냐?'

'아무튼 그래요. 그러니까 좀 더 편하게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싶은데.'

'그럼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


담배를 피고있으면 어디서 온건지 모를 뜬금없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다. 이 기억은 아마 첫 연습모임때 기일이가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 안되는 헛소리다. 각 캐릭터의 이름과 기술, 프레임표, 상성 등 격투게임의 복잡한 메뉴얼들도 그렇게 간단하게 외웠으면서 내 이름 석자를 못 외울 리가 없지.

그럼 왜 못 외우겠다고 한거야? 다른 호칭으로 부르고 싶다?

그때 기일이가 평소 은하누나를 어떻게 부르는 지가 생각났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황급히 담배를 끄고 다시 방송을 봤다. 기일이는 그 사이 3패를 한 모양이었다. 해설위원들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죠?"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요. 경기를 중단시켜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나는 재생 스크롤을 뒤로 돌려 내가 보지 못한 이전 경기를 살펴보았다. 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린은 가드를 굳힌 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카메라에 기일이의 모습이 잡혔는데, 여전히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 레버를 쥐고 있었다.

다시 재생 스크롤을 앞으로 당겼다. 5승 3패의 상황. 캐릭터 선택화면 이었다.

이번엔 기일이 쪽에서 캐릭터를 고르지 않고 있다. 잠시 뒤 스테이지 전체를 비추는 카메라로 넘어간다.

기일이가 부스를 나오는 장면이 잡힌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빌려 '죄송합니다. 기권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그대로 입장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에 나간다.


나는 공식대회에서 고의로 게임을 패배한 뒤 휑하니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과거의 내 모습이 눈앞의 기일이의 행동과 겹쳐 보이는 듯 했다.

거의 발사되는 총알같이 집을 뛰쳐나온 나는 차를 몰고 경기장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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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3) 16.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2) +6 18.08.08 292 9 11쪽
88 3) 15. 콤보 브레이크 결승전(1) +6 18.08.07 313 8 11쪽
87 3) 14. 구구절절 번거롭고 지루한 이야기. +4 18.08.07 287 9 12쪽
86 3) 13. 콤보 브레이크 예선(5) +4 18.08.06 254 8 12쪽
85 3) 12. 콤보 브레이크 예선(4) +11 18.08.03 303 13 11쪽
84 3) 11. 콤보 브레이크 예선(3) +2 18.08.02 294 7 12쪽
83 3) 10. 콤보 브레이크 예선(2) +2 18.08.01 298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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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3) 7. 적을 알고 나를 알면(3) +14 18.07.27 31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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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3) 1. Combo break +8 18.07.20 45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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