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술사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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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턴
작품등록일 :
2018.05.13 22:38
최근연재일 :
2018.07.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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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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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기정사실

DUMMY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삼하인 역시 술을 마시기에 적당한 거리가 있다. 원형의 도시인 삼하인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유흥가가 구성되어 있다. 밤마다 수많은 남녀가 찾아 서로 누가 더 추잡한 욕망을 잘 발산하나 경쟁하는 길이었는데, 파슬리는 스스로 이런 장소와 상관 없다면서 항상 선을 그었던 장소였다.


오늘은 좀 달랐다. 유노가 먼저 술자리를 갖자고 권해온 것이다. 도시 상인들의 이권과 보안상의 편의성을 위해 삼하인의 술집은 전부 도시 외곽 유흥가에 밀집되어 있었다. 파슬리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인가 붉은 불빛으로 눈이 따가워지는 거리를 유노와 둘이서 걷고 있었다.


거리에는 술, 여자, 노예까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더러운 욕망은 전부 다 구비되어 있었다. 운이 좋게도 파슬리에게 여자나 여자 노예가 달라붙지 않았는데, 그건 유노가 거리에 들어오고서부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어서였다. 대신에 끈질긴 술자리 권유가 들어왔다.


"우리 가게에는 연인들이 즐길 수 있게 격리된 공간이 있다고요? 조용하고 밀폐된 공간, 훌륭한 도구도 잔뜩 있으니까요."


유노는 특히 도구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가게에 들어가자고 졸라댔다. 파슬리는 발바닥에 힘을 주어서 거절 의사를 피력했지만, 마치 암호랑이에게 끌려가는 숫사슴처럼 애처로운 마찰음만 들릴 뿐이다. 참고로 파슬리의 눈망울이 숫사슴처럼 초롱초롱했다.


"마셔요~! 또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천막으로 가려져 사방이 꽉 밀폐된 공간, 가운데에 있는 작은 테이블과 바닥에 깔린 멍석, 그리고 무수히 많은 맥주들.


이 시대에는 맑은 물보다 맥주가 값이 싸서 식당에서 물 대신에 술을 내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런 이유로 유노 역시 상당히 어린 나이부터 술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술버릇은 고치지 못한 것 같다. 유노는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징그러울정도로 파슬리에게 달라붙어왔다. 마치 알루카드처럼.


그 정도라면 잘 봐줘서 귀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끔씩 주먹을 내리칠 때면 꼭 뭔가가 산산조각이 났다. 재수없게 유리병을 내리치면 유리 파편이 파슬리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술자리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전생과 현생 모두 통틀어서 파슬리에겐 처음이다.


생명의 위기를 느껴서 자리를 수습하려고 유노의 이름을 불렀다.


"유노,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으으음? 아직 전혀 취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파슬리 씨도 전혀 취하지 않았잖아요?"


그렇게 말하고선 대량의 맥주를 파슬리의 입 안에 쏟아부었다. 입으로 들어가지 못한 맥주는 콧구멍으로 흘러 들어가서 파슬리가 헛구역질하게 만들었다. 이성적으로는 더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이 거부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유노는 그 모습을 보고 또 깔깔 웃어젖혔다.


얼마나 많은 술병이 바닥을 뒹굴고 있는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두 사람은 진탕 술을 마셨다. 나중에는 파슬리마저 이성의 끈을 놓고 술자리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파슬리 본인은 만취해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나 아직 전혀 취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면서, 마시는 술마다 모두 게워내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 꼴사나운 파슬리의 모습을 비웃으면서 유노는 또 한 병 술을 비웠다.


"파슬리 씨."

"응?"

"조금 전에 들판에서 나눴던 대화 말인데요, 조금 부끄러우니까 잊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파슬리는 술병을 흔들면서 말했다.


"자신에게 당당한 것은 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너는 너 자신에게 당당한 거니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오와, 그렇군요."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논리적으로 말하지도 못했다. 대신 각자 마음에 들도록 궤변을 편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했다.


"그런데 이 술집은 뱀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뱀? 뱀이 어디에 있어?"

"봐요, 여기에 이렇게···."


유노가 뱀처럼 팔로 파슬리의 몸을 휘감았다. 파슬리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노의 얼굴에 파슬리가 밀어내면서 생긴 손자국이 선명했다. 곧 파슬리는 힘으로는 유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치감치 포기했다. 대신에 방을 밀폐했던 천막을 거둬버렸는데, 이러면 유노가 부끄러워해서 스스로 속박을 풀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유노는 속박을 풀지 않았다. 마치 보아뱀이 된 것처럼 혀를 날름거리면서 파슬리를 잡아먹을 기회를 엿보았다. 파슬리는 애써 무시한 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무대 위에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파슬리는 술에서 좀 깨려고 고의적으로 연극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머릿속에 잠깐 머물렀다가 술과 함께 입밖으로 토해내졌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내가 반드시 티아를 죽일게."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도 짧은 하루인걸."


키가 작은 여자아이와 키가 큰 여자아이가 서로 껴안으면서 나눈 대화였다.


"루루.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행복해져. 너는 충분히 노력했으니까 그럴 자격이 있어."


극을 보고 파슬리가 한탄했다.


"비범한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구나. 누굴 위해서 저렇게 용사를 자처한단 말인가."

"다 자신을 위한 정의라고요."

"자신의 행복을 등한시하고 자신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파슬리 씨, 그것보다 지금은 좀 더 술을 소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요."


유노가 팔에 힘을 주자 파슬리는 하마터면 구토할 뻔 했다. 구토감을 없애려고 파슬리는 또다시 대량의 술을 입 안에 끼얹었다. 구토감은 사라졌지만 취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안 되겠어, 눈 앞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유노, 이만 일어나는 것이 어떨까? 여기서 자기엔 바닥이 너무 딱딱한데."

"저한테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뭔데?"

"술을 더 많이 마시는 거에요. 딱딱한 바닥이 푹신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슬리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 뒤로는 기억이 끊어져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술병을 나란히 세워놓았는데, 바닥을 꽉 채울 정도로 술을 마셨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다음날에 파슬리가 눈을 떴을 때, 침대 위에 알몸으로 있었다. 옆에는 유노 역시 알몸으로 있었다.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때때로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한 10분 정도, 파슬리는 입을 딱 벌린 채로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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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 소설은 라이트노벨입니다 18.05.18 249 0 -
59 에필로그-소녀, 린네 18.07.12 74 0 1쪽
58 인터뷰 18.07.12 77 0 5쪽
57 취객 18.07.12 68 0 5쪽
56 로즈마리와 크로우 18.07.11 86 0 11쪽
55 유노의 가족 18.07.10 92 0 8쪽
54 사랑 18.07.06 89 0 8쪽
53 너에게 가는 길 18.07.02 86 0 7쪽
52 해피엔딩 18.07.01 89 0 5쪽
51 추론 18.07.01 132 0 7쪽
50 진노의 날-3 18.06.28 81 0 8쪽
49 진노의 날-2 18.06.28 101 0 7쪽
48 진노의 날-1 18.06.26 95 0 8쪽
47 집행자 리더-2 18.06.25 110 0 6쪽
46 집행자 리더-1 18.06.24 111 0 12쪽
45 평야 전투 18.06.23 97 0 6쪽
44 주교 피에르 18.06.21 88 0 10쪽
43 계획 18.06.20 101 0 5쪽
42 단서 18.06.18 111 0 6쪽
41 차선책 18.06.17 118 0 6쪽
» 기정사실 18.06.17 118 0 7쪽
39 정의 18.06.16 124 0 7쪽
38 블랙 윙 18.06.16 133 0 5쪽
37 데이트 18.06.15 120 0 11쪽
36 막간극 18.06.12 118 0 5쪽
35 마녀의 밤 18.06.10 118 0 6쪽
34 키스 18.06.10 129 0 7쪽
33 마녀 유노의 부탁 18.06.09 178 0 6쪽
32 이정표 18.06.09 137 0 6쪽
31 죠르주-2 18.06.09 16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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