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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가을
작품등록일 :
2018.05.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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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을 시작하다 (4)

DUMMY

홍대로 향하는 택시 안.

차진호는 무표정하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이은지가 몹시 신경 쓰였다.


어쩌다 보니 가깝게 지내는 선배도 여자고 같은 팀원에도 두 명이나 여자가 있었지만, 아직 차진호에게 여자라는 생물은 그렇게 친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책임지라고? 무슨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도 아니고···.’


하지만 이은지는 해명할 생각 따윈 없어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창밖만 바라봤다.

그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 학기만 열심히 해보자.’


이은지가 소나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생각했던 게 그거였다.


딱 한 학기만 이 괴상한 동아리에서 취미를 즐겨보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만큼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몇몇 동기들이 학사 경고를 받을 때 혼자 4.1이 넘는 좋은 학점을 얻었다.


음악과 베이스라는 악기를 좋아했지만,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요즘 취미 생활에 긴 시간을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이은지는 현실적으로 자신이 음악을 업으로 삼기 힘들다는 걸 진즉에 인정하고 있었다.


차라리 보컬이었다면. 노래를 좀 잘했다면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겠지만···. 베이스라는 악기는 조금 더 마이너하지 않던가.


그런 와중에 괴물같은 동기들을 만나게 됐고, 전우애와 비슷한 감정이 쌓이게 됐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윤고전을 치르며 열정적인 분위기에 휩쓸려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받는 팀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아직 첫화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예전이랑은 상황이 달라졌다.


“언니. 저 오빠 실제로 보면 어때?”

“실제로 들으면 저거 보다 더 잘해···.”

“와! 대박! 나 나중에 데려가면 안 돼?”


그런 그녀는 코리안 아이돌 첫화를 보고 무언가 큰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원래부터 소나무 보컬들이 범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데 차진호만큼 노래 잘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조금은 더 많을 줄 알았다.


근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극찬을 받았던 다른 참가자보다 차진호가 몇 배는 더 나아보였다.


평소 락음악에 하나도 관심이 없던 여동생조차도 부모님을 졸라 그녀의 뒤를 쫓아온다고 했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야지···.’


밴드 생활과 학업에 동시에 집중하느라 1학기 때 정말 피똥 싸는 줄 알았다. 이왕이면 무엇을 하건 제대로 하는 게 맞다고 그녀는 생각했고.


‘휴학하자.’


그래서 다른 어떤 동기들은 아무 얘기가 없을 때 가장 먼저 결단을 내렸다.

당장 대학교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중도 휴학을 신청한 거다.


한 학기만 하고 떠나겠다던 마음은 이미 접었다.


“음. 얘들은 벌써 다 도착 했다네.”

“그렇겠지. 네가 전화만 받았어도 우리도 빨리 왔을 텐데···.”

“엄마랑 얘기하고 있었다니까···. 아, 갑자기 마마보이 된 거 같네.”


물론 차진호가 그녀를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는 스스로가 지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부정할 수 없게도, 옆에서 어색하게 목을 긁고 있는 저 보컬 동기였다.

노래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남자가 되는 차진호 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악적 동반자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얌마! 왤케 전화가 안 돼!”

“갑자기 무슨 버스킹이야! 이은지가 뜬금없이 우리 집까지 쳐들어온 거 알아? 나 진짜 개놀랐잖아.”

“그거 내가 시킨 거야. 빨리 일로와.”


한주영에게 끌려가 마이크를 세팅하는 차진호를 보며 이은지는 평소처럼 조용히 베이스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냈다.




길거리 공연은 그들의 일상이 됐다.


소나무의 공식 스케줄에 남은 건 11월에 있을 가을 공연이 끝이었기 때문에 쫓길 것도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차진호 팀의 일원들은 매일 밤 버스킹 스팟을 찾아 시내를 배회했다.

다섯 명의 팀원 중에 이은지와 한주영이 휴학을 해버려서 시간도 널널했다.


“와! 며칠 전에 TV 나온 사람 아니에요?”

“실물이 더 잘생겼어요!”

“언니! 너무 멋있어요!”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길거리 공연을 할 때면 청중의 수가 크게 늘었다.


월요일 늦은 밤에 방영되는 다른 프로그램들은 경쟁력이 뒤쳐졌고, 그래서 시청률이 꽤나 높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어딜 가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만큼 슈퍼스타가 된 건 아니었다.


이전보다 길거리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눈에 더 큰 호감과 호기심이 생겼을 뿐.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말 거는 경우가 생겼을 뿐이었다.


인지도는 당연히 보컬인 차진호가 압도적이었다. 남자 관객들만큼 여자 관객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다수의 여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보며, 차진호는 잘생긴 남자만큼 노래 잘하는 남자도 인기가 많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자신감이 쌓여갔다.


그런 와중에 수업시간 중간에 교수의 강요에 의해 강단 위에 서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그래, 그래. 우리 차진호 군이 이번에 방송에 나와서 조금 유명해졌다면서? 그래도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한테 노래 한 번 불러주는 게 도리 아니겠어?”


차진호는 뻘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밝은 표정으로 손짓하는 교수에게 차마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지겨운 수업 시간을 이렇게 꽁으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은 반가운 듯 했다.


순수하게 차진호의 노래 자체를 기대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아마 방송을 봤던 이들일 터.

요즘엔 금세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볼 수도 있어서 이슈 전파속도가 빨랐다.


“음···. 안녕하세요. 락밴드 소나무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차진호라고 합니다.”


짝짝짝-!


강단 위에 서자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젠 남앞에서 말하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편안해졌다.

거의 매일 같이 버스킹을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차진호가 가끔씩 훔쳐보던 청순한 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온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오늘은 원피스를 입고 왔네···.’


어쩌다 옆자리에 앉았다가 향수 냄새가 너무 좋아서 관심을 가지게 된 여자였다.

그땐 의도치 않게 코를 킁킁거렸었다.


하긴. 20대 청춘이라면 이성에게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차진호는 자발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모태 솔로였다.


“어서 해보게, 진호 군.”


소나무 동기들이야 워낙 많은 시간 어울리다보니 여자라기보단 남자처럼 느껴졌다.


최근에 이은지가 갑자기 자극적인 말을 던져서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후 두 사람 사이에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그 발언 때문에 더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던 참이었다.


번호를 물어보는 여자도 있고, 책임지라는 여자도 있는데.

연애를 못할 건 또 뭐겠는가?


“음···.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어떤 노래를 해야 할지···.”

“그냥 자신 있는 거 해봐요. 우리 학생들 다 기대하고 있는 거 보이잖아요.”


그랬다.

차진호는 난생 처음으로 노래로 누군가를 꼬시려 하고 있었다.


그게 먹힐지 안 먹힐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그럼 최근에 제가 듣고 제일 좋았던 노래 불러볼게요.”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건반 반주라도 있었다면 더 좋겠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임팩트를 줄 자신이 있었다.


안 그래도 조용했던 강의실이 완전한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을 차진호의 묵직한 저음이 채워갔다.


그대가 나를 떠나고 혼자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숨죽여 살아왔는지

(김건모 – 미련)


락밴드 소속이라고 락음악만 듣진 않았다.


최근엔 가수 김건모의 특유의 감성에 크게 감명을 받은 차였다. 그중에서도 이 지독히 슬픈 이 노래는 차진호가 부를 때 가장 편한 노래였다.

비음으로 소리를 안으로 묶는 것이 그에겐 이상하게 쉽기만 했다.


작은 강의실에는 순식간에 아련한 멜로디가 파도치기 시작했다.

별 관심이 없던 학생들마저도 고개를 들고 차진호를 바라봤다.

엎드려졸고 있던 복학생도 잠에서 깼고, 맨 뒷자리에서 노트북을 끄적이던 복학생도 눈을 빛냈다.


차진호의 노래가 가진 장점?


그건 담백함이었다.


어쭙잖은 스킬로 듣는 이에게 다가가려고 하기 보단, 항상 음악 본연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당연히 학생들은 그의 매혹적인 음색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으레 이런 상황에서 느껴져야 할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담스러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불안하게 목소리 안에서 떨리는 알맹이가 학생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보고 싶어서 눈을 뜰 수가 없어♪”


바이브레이션은 최소한으로만 활용했고 멜로디와 박자를 지키며 최대한 원곡의 감성만 살렸다.


광활한 음역대를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곡을 노래하면서 버겁게 고음을 내지를 일은 없었다.

실수 하나 없이 깔끔하게 노래를 불러나갈 수 있었다.


“와···.”


차진호는 굳이 전곡을 부르지 않고 1절이 끝났을 때 노래를 끝냈다.

그렇게 감았던 눈을 뜨자 형용할 수 없는 여운에 휩싸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쓰!’


아무래도 먹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박수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잠시 멍하니 그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실 중간쯤에 앉은 원피스 여신은 너무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차진호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교단 밑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크게 환호성을 내지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감사합니다.”

“와-!”


짝짝짝-!


사실 살면서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의 생목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대박이다. 저 사람이 우리 윤고전 때 막 노래했던 거야?”

“어쩐지 고대 애들이랑 응원 퀄리티가 달랐다 싶었는데···.”

“저 사람 방송 어디 나왔는데? 유명해?”

“나 살면서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 처음 봐. 닭살 돋은 거 보여?”


처음에 쳤던 박수소리보다 데시벨이 몇 배는 올라갔다. 그만큼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겠지. 중간에 쑥덕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중에서도 교수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얼쑤! 좋구나!’


사실 교수들도 수업을 진행하는 게 힘들 때가 있다. 학생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볼 때면 당장 연구실로 돌아가서 논문이나 마저 쓰고 싶을 때도 많았다.


최 교수는 오늘 수업 시간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알차게 농땡이 칠 수 있는지 찾아낸 거다.


“휘유. 정말 잘하는 구만! 유명해질 만 하네. 혹시 다른 노래도 해줄 수 있겠나, 차진호 군?”

“아, 네. 그럼··· 이번에 예선에서 불렀던 곡을 한 번 해볼까요?”

“그래, 그래.”


차진호는 들국화의 ‘제발’을 선택했다. 괜히 분위기 띄운답시고 신나는 노래를 하느니 이 끈적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대시는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불어불문학과 09학번 유재희는 밝은 표정으로 그녀의 폰 번호를 건넸다.




“제가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이거 돈이 된다니까요?”

“내가 몇 번을 말하냐! 그거 저작권이랑 이것저것 꼬여있어서 단시간 내에는 힘들다고! 최소 한 달이 걸려!”

“아오!”

“이게 진짜! 자꾸 막 나갈래?”

“얼마나 답답하면 이럽니까, 형님!”


김영준 PD는 떡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선배 CP에게 하소연했다.

코리안 아이돌 첫 화는 확실히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다. 이제 입소문을 타면 다음 에피소드들은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을 거였다.


“이번에 S261 애들 때문에 들국화 음원 스트리밍 수가 급증했다지 않습니까! 다른 참가들 덕분에 별의 별 노래들이 다 주목받고 있어요. 제가 뇌피셜로 지껄이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자료를 가지고 왔잖아요!”


그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간단했다.

앞으로 방송의 인기가 커지면,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로 음원 장사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녹음 작업에 착수해야한다고.


“그게 지금 당장은 힘들다니까? 자네도 6회차 정도는 방송이 진행된 후에야 녹음 할 거리들이 생길 거라고 했잖나!”

“근데 예상보다 반응이 더 좋아서 그렇지요!”

“에잉.”

“이건 화제 됐을 때 짧게 치고 빠져야 된다구요!”


김영준 PD.

그는 차진호의 용돈을 불려주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그건 용돈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조금 더 큰 액수일지도 몰랐다. 주효한 권리들은 죄다 방송사 측에 귀속되어 있었지만 일개 대학생인 차진호에게 떨어질 돈도 만만치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른 채.


차진호와 동기들은 토요일 낮에 다음 코리안 아이돌 촬영을 위해 경기도 일산을 찾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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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최악의 라이벌 (2) +17 18.06.19 7,707 319 15쪽
35 최악의 라이벌 (1) +10 18.06.18 7,794 305 14쪽
34 폭력배 (3) +16 18.06.16 8,587 346 12쪽
33 폭력배 (2) +19 18.06.15 8,515 332 14쪽
32 폭력배 (1) +19 18.06.14 8,606 305 15쪽
» 비상을 시작하다 (4) +15 18.06.13 9,394 311 13쪽
30 비상을 시작하다 (3) +19 18.06.12 9,446 319 16쪽
29 비상을 시작하다 (2) +13 18.06.11 9,602 319 15쪽
28 비상을 시작하다 (1) +17 18.06.10 10,194 332 16쪽
27 수준 차이 (4) +13 18.06.09 10,044 320 13쪽
26 수준 차이 (3) +10 18.06.08 9,867 331 15쪽
25 수준 차이 (2) +15 18.06.07 9,906 318 13쪽
24 수준 차이 (1) +14 18.06.06 10,214 303 13쪽
23 닿지 못한 첫사랑 (3) - 1권 끝 +12 18.06.05 10,384 305 16쪽
22 닿지 못한 첫사랑 (2) +17 18.06.04 10,523 318 15쪽
21 닿지 못한 첫사랑 (1) +10 18.06.03 10,866 332 13쪽
20 버스킹 (3) +16 18.06.02 10,588 328 16쪽
19 버스킹 (2) +18 18.06.01 10,667 312 15쪽
18 버스킹 (1) +15 18.05.31 10,758 316 11쪽
17 캐스팅 (3) +10 18.05.30 10,895 3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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