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동무니

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루비코코
작품등록일 :
2018.05.16 15:34
최근연재일 :
2018.05.31 22:28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067
추천수 :
0
글자수 :
168,807

작성
18.05.27 23:08
조회
57
추천
0
글자
12쪽

어긋나버린 사랑

자전거와 종이비행기




DUMMY

"예루, 미루? 호텔에서 밥 먹는 거 처음이야?"

"아뇨. 옛날에 호텔 뷔페에서 몇 번 밥 먹은 적 있어요."

"나도 기억나요. 우리 이모 남자 친구였어요. 지환 삼촌!"

"이름은 말 안해도 돼. 그냥 친구라고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예루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미루에게 입조심을 시켰다. 특히 강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모 명서가 저녁 만찬에 끼지 않고 약속을 잡았다고 했을 때부터 강찬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손수 운전을 하고 가겠다는 이모를 반강제로 그의 차에 태우고 달려와 약속 장소에 떨구어 놓고도 아저씨의 얼굴은 그저 어둡기만 했다. 그리고 여전히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귀퉁이가 약간 달아난 거의 그대로인 고깃덩어리가 그의 불편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강찬은 자신의 심기를 살피고 있는 예루를 안심시키려는 듯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

"괜찮아. 고기는 씹어야 제맛이듯 추억은 기억해야 맛이니까."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왜 고기를 안씹고 그대로야? 안먹을 거면 애들이나 줘. 얘들 벌써 다 비웠어."

"그래? 더 시켜줄까?"

강찬은 사내 아이들의 먹성이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더 먹어도 돼. 든든하게 먹어. 나중에 이모한테 야식 만들들어 달라고 하지 말고."

"아뇨. 배 불러요."

"나도."

"배 부르긴 ... 니들 먹는 거 보니까 몇 접시도 너끈하게 먹어치우겠는데 ......."

맛있게 접시를 비워가는 두 아이에게 애틋한 눈길을 던지며 재키는 인심쓰듯 강찬의 고기를 둘로 나눠 아이들 접시에 각각 하나씩 내려놓았다.

"맛있게들 잘 먹으니 좋으네. 안먹어도 배부르다더니 강찬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어."

"넌 먹어야 배부른 놈이잖아. 그리고 남의 고기 가지고 생색은 ......?"

강찬은 재키에게 너스레를 떨고 나서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었다. 잠깐 잊고 있던 명서가 생각난 듯했다.

"눈치 보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재키 삼촌한테 시켜 달래서 먹어. 아저씬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알았지?"

"이모요?"

미루가 눈치 없이 물었지만 강찬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모!"

강찬은 미루의 머리도 스윽 한번 훑어주고 레스토랑 입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아무말없이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던 제니는 힐끗 강찬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녀 역시 차를 타고 호텔에 올 때까지 강찬과는 또 다른 이유로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그녀 역시 저녁은 그다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먹는 척 하고 있었을 뿐 강찬에게 온통 신경을 꽂아두고 있었다.

명서의 얘기를 빌자면 그녀는 그렇게 강찬에게 목을 매고 있지는 않는 듯했다. 아주 차분하고 침착했다. 그리고 몹시 냉정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저 그가 같이 지내는 동안 섹스 상대면 충분하다고 어떤 욕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정신을 못차리고 헤매는 강찬이 한심하고 처량해 보였다. 저대로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자신의 품속으로 기어들 것을 생각하고 나니 화까지 치밀었다.

제니는 레스토랑 입구 바깥 쪽에서 전화를 붙잡고 있는 강찬에게 시선을 꽂아 놓고 귀국 후 한동안은 절대 그를 받아들이지도 침실에 들이지도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환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지 벌써 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명서도 지환도 서로 묵언수행 중이었다.

명서는 자꾸 울리는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바로 앞에 놓여진 찻잔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딱 그 만큼만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 받아."

한참이 더 지나고서야 지환이 뱉은 첫마디였다. 성난 목소리였다.

"남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세월이 얼만데요. 시간이 벌써 3년이에요."

"그래서 남자가 있는 게 당연하다는 거야? 우영이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럼 그 전에 양다리라도 걸치고 있었단 얘기잖아, 안그래?"

명서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화난 얼굴을 목격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노여움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나랑 결혼 얘기가 오갈 때도 우영이 녀석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더니 ... 양다리가 너의 특기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지환은 조소를 띠며 비아냥거렸다.

"널 보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서 니가 어떤 여자였는지 잠시 지우고 있었어, 내가!

"그러니까 저와 다시 시작하겠단 생각은 버려요. 당신 어머니께도 허락 같은 것은 필요없으니 좋은 며느리감 찾아보시라고 전해 주세요. 저를 허락하네 마네 애면글면 그러실 필요 없다고 말씀 좀 잘 드려주세요."

명서의 목소리는 차분함 속에서도 단호함이 묻어났다.

지환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려 입술을 적시더니 곧 내려놓았다.

"난 니가 우영이와 잘 될 줄 알았어. 양다리 중에 한 놈이 사라졌으니 나머지 한 놈 좋은 일만 시킨 거 아니겠어? 그런데 그 한 놈도 엉뚱한 데 가서 정착을 했으니 다시 시작하라는 신의 계시 정도로 여기며 역시 난 운이 좋은 놈이였어 라고 나 스스로를 얼마나 추켜세웠는지 몰라. 딴 놈이 등장해 있을 거라고는 짐작조차 못했어."

그는 이제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원상복귀 된 건가? 우리 양다리 선수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한 놈을 사라지게 만들면 되는 건가? 그 놈만 사라지면 나만 좋을 일 생기는 거겠지, 안그래?"

"그러지 않길 바래요.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왜? 결혼 날짜라도 잡았어? 그건 우리도 해봤잖아. 날짜 잡는 걸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허접한 일이라는 거! 아니면 벌써 결혼이라도 하셨나? 내가 알아본 결과로는 아직 애들 하고만 산다고 들었는데? 혼인신고도 안돼 있는 깨끗한 상태 라는 거! 그럼 뭐가 또 남았지? 설마 그 놈과 동거중이야? 살 섞고 살고 있는 거야?"

"......."

명서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무슨 이유에서건 그건 분명한 동거였다. 그리고 더 확실한 건 그게 전혀 부끄럽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비록 강찬의 감정은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명서는 그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지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이내 경멸하는 시선으로 이죽거렸다.

"이거 놀라운데? 놀라 나자빠지겠는데? 그렇게 고결하고 순정적인 것처럼 굴더니 동거라니 ... 남자와 붙어먹고 살고 있다니 ...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 놈이랑 놀아난 거야?"

"얼마 되진 않았지만 제가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그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 많이 사랑해요, 그 사람!"

"뭐야? 게다가 짝사랑이라구? 그 놈은 너한테 전혀 관심도 없는데 너만 미쳐 그 몸둥이를 바치고 있다구? 그 놈은 사랑하지도 않는 널 끼고 지 일속만 차리면서 널 유린하고 탐닉하고 있다고? 이거 환장하겠군! 이거 실성할 노릇이군!"

지환은 의자를 들썩거리며 광분을 참아내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일에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맹렬히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명서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지환을 단념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경멸도 분노도 광분도 모두 버틸 심사였다. 명서 자신과 지환이 더 엮이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체념만이 해답이었다. 이 곳에 오기 전에도 이미 명서에 관해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나타났다고 했다. 이 자리까지 오면서도 벌써 오만가지 계산을 다해놓고 있었던 사람이다.

여기서 깨끗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더 큰 재앙과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가령 자주 불려 나오게 될 것이고 불려나오다 보면 아이들도 만나고 싶다고 핑계를 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고집에 못이겨 아이들도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급기야는 강찬과 마주하는 일까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후에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명서 자신을 무너뜨려 버려 지환이 강찬이 돌아간다는 사실까지 알아내고 나면 결국 지환에게 무릎을 꿇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환씨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미안해요. 저와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구요. 그러니 저 같은 건 잊고 훨씬 좋은 사람 만나 다시 시작해요. 저도 그렇게 되길 빌어줄게요."

"아니! 그럴 필요없어! 빌어줄 필요없어!"

지환은 마음을 다잡은 듯한 확고한 얼굴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그 표정으로 곧장 말을 이어 나갔다.

"명서 니가 깨끗하고 순결한 채로 예전처럼 고귀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믿은 내가 어리석었어. 니가 그런 불한당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살고 있을 거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한 내가 멍청이였어. 그래. 어차피 나도 한번 결혼했던 몸이니까 어디 한번 해보자구. 양다리 중에 어떤 놈이 먼저 나가 떨어지는지 한번 붙어보자구. 니가 나만 기다리면서 나를 위해 순결을 지키고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 대가는 그 놈을 쓰러뜨린 뒤에 차차 생각해보자고. 난 이번엔 절대 널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지환씨?"

이 자리에서 명서는 처음으로 냉정을 내려놓고 있었다. 처음으로 평정을 잃고 있었다.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는 기분. 그 혹이 처음 거 보다 몇 백배 몇 천배 크고 무거워진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환에게 먼저 떠나라고 소리쳐 놓고 명서는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강찬과 아이들이 들어와서 빈 자리에 앉는 것도 모른 채 지환의 목소리만 되씹고 있었다.

"이모?"

"이모? 무슨 생각해?"

예루와 미루의 음성이 오버랩 되어 들리지 않았다면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모? 친구는 잘 만났어?"

"친구는 갔어?"

"으응......."

명서는 아이들을 보려다가 뜨겁게 느껴지는 강찬을 먼저 쳐다보았다. 그는 아이들 때문인지 감정을 모두 억누르고 터져나오려는 화를 겨우 절제하고 있었다.

"그만 가, 이모. 우리 졸려."

미루가 명서의 팔을 끌어당기며 밖으로 나가기를 종용했다. 이모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예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이모! 가요, 아저씨!"

예루는 이모의 팔 하나 강찬의 팔 하나를 양쪽으로 잡아 당겼다. 강찬은 기꺼이 일어나며 마지못해 명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만 가자구. 애들이 졸립다잖아."

"......."

아이처럼 그의 표정을 읽으려 애쓰던 명서는 벌받으러 가는 것처럼 따라나섰다.

뒷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던 아이들은 차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부터 잠이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만 응시하고 있던 명서는 시선은 그대로 두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내일부터 미국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호텔에서 지내시는 게 어때요?"

강찬은 전혀 예상 못한 뜻밖의 말에 핸들을 놓칠 뻔 했다. 차가 잠시 기우뚱 하며 비틀거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뭐라고 했어? 내가 잘못 들은 거야? 나더러 호텔로 가라구? 그랬어? 맞아?"

"....... 네. 맞아요. 그래 주시면 좋겠어요."

명서는 애원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강찬은 그녀에게 힐끗 시선을 던져 보았다. 그녀는 슬픔을 한가득 안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yootgame/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동무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사랑의 파도 18.05.31 42 0 14쪽
29 역습 18.05.31 52 0 14쪽
28 분노... 역습을 준비하다 18.05.30 58 0 13쪽
27 위협 18.05.29 50 0 12쪽
26 초대하지 않은 손님 18.05.29 58 0 13쪽
25 전쟁의 서막 18.05.28 43 0 11쪽
24 그를 떠나 보내며 18.05.28 48 0 12쪽
» 어긋나버린 사랑 18.05.27 58 0 12쪽
22 다시 잡은 약속 18.05.27 79 0 12쪽
21 오해 18.05.26 47 0 12쪽
20 친구와 연인 18.05.26 63 0 12쪽
19 균열 18.05.25 49 0 12쪽
18 질투 18.05.25 63 0 12쪽
17 재회 18.05.24 51 0 13쪽
16 옛사랑 18.05.24 49 0 12쪽
15 사랑의 시작 18.05.23 66 0 13쪽
14 신경전 18.05.23 68 0 13쪽
13 신혼부부 18.05.22 58 0 11쪽
12 설렘...사랑의 시작 18.05.22 59 0 12쪽
11 열병이 지나간 자리 18.05.22 73 0 13쪽
10 행복한 마중 18.05.21 64 0 11쪽
9 새 친구 18.05.21 58 0 12쪽
8 새로운 동거 18.05.20 134 0 14쪽
7 불청객 ... 무뢰한 18.05.20 65 0 15쪽
6 결혼식 18.05.19 71 0 12쪽
5 새로운 인연 ... 귀국 18.05.19 61 0 12쪽
4 깊은 한숨 18.05.18 67 0 12쪽
3 시간...3년 후 18.05.18 72 0 13쪽
2 또 한번의 작별 18.05.17 123 0 12쪽
1 몰라도 되는 세상에서,,,그녀를 놓치다 +2 18.05.16 219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