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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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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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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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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사랑이란?

반갑습니다!




DUMMY

44. 사랑이란?


손소민은 부끄러움이 확 밀려들었다. 흑의 복면을 풀러 얼굴을 드러낸 소야는 분명 여자이기에 부축을 받아가며 따라왔지만, 앞장섰던 의행공이 뒤돌아서서 자기를 바라볼 때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신이 들어 자기의 행색을 살피니, 잠자리 날개와도 같은 얇은 망사의 장삼을 입고 있기에 알몸의 형체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지를 않은가.


이것은 여자에게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첫날밤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촛불을 꺼놓고 지내는 밤이었다. 화롯불에 달군 것처럼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한편으로는 혼마포에게 몸이 더럽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불현듯 손소민은 치미는 감정으로 울음을 터트리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앗! 아가씨! 손 아가씨!”


소야가 뒤따르면서 잡으려고 하였으나 그녀는 빠르기만 하였다. 그 바람에 지하탈출구에서 한참 떨어진 울창한 숲까지 오고야 말았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달리기만 하는 손소민의 행동은 분명히 치욕스러움에 항거하는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소저! 왜 이러시는 것이오?”


김역이 빠르게 쫓아가서 손소민을 붙잡았으나, 그녀는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은 채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계속 발버둥을 쳤다. 마치 어린애가 심통이 나서 떼쓰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이란 말이오!”


그녀의 하얀 두 손목을 잡고서 고함을 치며 몸싸움하던 김역은 그녀와 몸이 찰싹 붙은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얻었다. 얼른 뒤로 훌쩍 물러났다.


손소민의 야들야들한 살집의 감촉이 느껴졌다 싶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 나갔다. 그제야 그녀의 몸이 나체나 다름없음을 인식하면서 이러는 이유를 알만하였다.


뒤돌아 선 김역은 자기 장삼을 벗어서 소야에게로 던져 주었다.


“소야. 이걸로 우선 몸을 가리게 하고 여기서 기다려라.”

“주공은 어찌하시려고 합니까?”

“교화당으로 가서 마차를 가져오겠다.”


김역이 몇 발자국을 떼었을 때 울음이 섞인 손소민의 원망이 들려 왔다.


“또! 또 가셔서 안 돌아오시려고 핑계를 대십니까! 흑! 위기의 순간마다 나타나시는 광세영웅이시군요! 가! 가서 아주 영원히 돌아오지 마세요! 흐흑!”


뒤돌아 선 채 김역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리 엮이지를 않으려고 새벽길을 택하고 정혼녀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정녕 인연이란 말인가.


꼭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여도 사람이란 부대껴서 지내다 보면 정이란 것이 드는 법. 어떤 자들은 그것을 사랑으로 여기기도 하여 짝사랑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반면 실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데, 남녀란 함께 지내다 보면 그놈의 정이 슬그머니 사랑으로 변하여 안 보면 보고 싶고 마주치면 공연히 히죽히죽 웃기도 하는 것이다.


“소야.”

“네?”

“잘 해명해 드려라.”

“그, 그건···”


지하 탈출구 함정 앞에서 그가 손소민을 만나게 되면 주공을 향한 마음을 포기시켜 보라 한 명을 상기하면서 소야는 곤란한 빛을 보였다.


그동안 주공의 뒤를 은밀히 따르면서 손소민의 태도 또한 쭉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흑매화끼리는 그녀의 행동이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는 공감으로 의견을 나누고는 했다. 대개 손소민과 나이가 엇비슷했기에 느끼는바 또한 일치했다.


그러한 손소민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 그 사랑 자체를 포기하도록 설득시키라니 명령치고는 비정하였다. 같은 여자로서 그건 못할 짓이건만, 한편으론 둘 사이를 갈라놓고 싶은 심정 또한 없지 않아 들기도 하였다.


이래서 모시는 분 앞에선 얼굴을 보이지 말라고 한 적조사 훈련의 의미가 이러한 바탕으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서로 안면을 트고 지내니 주종 관계를 떠나 묘한 기류가 느껴지는 것은 비록 소야 뿐이 아닌 동일함을 느끼는 흑매화였다.


더 대꾸하지를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하려던 김역은 그만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손소민의 처절한 외침 때문이었다.


“소녀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어 놓아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이럴 수는 없습니다! 소녀의 이러한 모습을 꼭 정혼녀에게 보여야 한단 말입니까?”


김역의 눈동자가 그 의미를 생각하듯 좌우로 움직였다. 그녀의 원망은 계속 이어졌다.


“정혼녀, 정혼녀 하시더니 기어코 데려와서 이런 몰골을 보여 망신을 주어야만 속이 시원하단 말씀입니까!”


김역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단호히 소리쳤다.


“그렇소!”


그렇게 그는 무뚝뚝하게 말을 내뱉고 나서는 뚜벅뚜벅 숲에서 사라졌다. 앵두 빛 입술을 씰룩여 가며 서러워하던 손소민은 급기야는 소야를 밀치고는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였다. 곧 소야가 몸을 날려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두 여자는 자빠져서 엎치락뒤치락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닙니다! 소녀는 의행공을 주공으로 모시는 하녀에 불과합니다!”

“거짓말! 처신없이 굴은 이런 소녀를 봐서 두 분 좋으셨겠습니다! 얼마나 이 소녀를 비웃었습니까!”


손소민은 김역이 정혼녀에게 자기가 그를 좋아한다는 것 하며, 나체로 있다시피 한 몰골을 그녀에게 보여줌으로써 모욕을 느낀 나머지 자기가 스스로 그를 포기토록 한 잔인한 수법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것만큼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없었다. 혀를 깨물고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닙니다! 소녀는 주공과 절대로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본인 입으로 그리 말하지 않았습니까! 잡지 마십시오! 소녀가 떠나면 그만입니다!”


이대로 보내면 분명 자살을 택할 만큼 여자에겐 치명적인 마음의 상처를 입힌 꼴이니 소야는 그냥 놔줄 수가 없었다.


“사제형삼 중 두등형이란 분이 손 소저가 혼 방주에게 끌려가셨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교화당으로 달려가신 분입니다!”

“본인 입으로 소저가 정혼녀가 맞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건 일부러 그러신 겁니다!”

“뭐, 뭐 때문에 일부러 그런답니까?”


제법 진정한 손소민의 몸 위에서 소야가 일어나 손을 내밀어 그녀를 끌어 올려주었다. 곧 의행공의 장삼을 그녀의 양어깨로 걸쳐주었다.


“이곳에 오래 머무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야의 차분한 해명에 의혹의 빛을 보이던 손소민은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등형 대협이 말하기를 고려사행단 중 누군가를 죽이려 한다는데, 염라전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을 정도로 그자와의 결투에 사활을 거신 건가요?”


그러한 점도 있지만, 소야는 결국엔 본국 송포로 모셔갈 분이기에 이곳에 오래 있을 분이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즉 이들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는 셈이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솔직히 왜국으로 모셔갈 분이라고는 밝힐 수가 없기에 손소민이 아는 범위 내에 맞춰 주면 되었다.


“맞습니다. 그자의 무술이 얼마나 강한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사십니다. 해서, 정을 떼시려고 일부러 아가씨를 피하시고 거짓말을 하신 겁니다.”


수긍한다는 눈빛으로 손소민이 궁금한 걸 물어왔다.


“의행공을 주공으로 모신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이고, 그분의 정체가 뭔지 말해주세요?”

“말 놓으십시오. 소녀는 의행공의 종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분은 이곳 분이 아니십니다. 확실히 어디 분인지 소녀도 그건 잘 모릅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소야로서도 김역이 고려인인지 왜국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인인데 고려에서 죽어 그곳에서 환생한 ‘아키바쯔 아기발도’ 신부(神符)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한 것까지 자세히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소야로서는 자기의 정체를 폭로하지 말라는 간자로서의 교육을 받았기에 의행공을 본국과 연계시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하나 그녀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를 실망의 꼬투리는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단지 고려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듭니다.”

“고려인이요?”

“그렇습니다. 고려사행단을 쫓는 것을 보면 그러한 판단이 듭니다. 원래 이 소야를 포함한 흑매화 일곱 명은 다른 주공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의행공의 기개에 반한 나머지 저희 흑매화로 하여금 의행공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의행공을 따르게 되었으니 소저께서는 한 점 의혹을 품을 필요가 없으십니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저···”


질문을 할 듯하다가 소야는 입을 다물었다.


“뭔지 말해보세요?”

“저, 저희 주공을 사랑하시나요?”


생각할 것도 없이 손소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려인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까?”

“그게 뭔 상관인가요. 이미 소녀의 마음은 그에게 가 있는 걸요. 한데 이러한 몰골을 그에게 보였으니 그것이 통탄할 뿐입니다. 가뜩이나 소녀를 싫어하면서 피했는데, 죽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흑흑!”


손소민은 또다시 눈물을 보이며 절망의 빛으로 한탄하였다. 소야는 그녀를 끌어안은 채 위로의 말을 하면서 사랑이란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럽게만 느껴졌다. 그녀와 같은 입장이라도 자기는 이렇게 남에게 속마음을 밝힐 정도로 사랑에 대해 대범하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나 정열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한, 그녀에 대한 질투가 일렁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주공께서는 겉으로만 아가씨를 그렇게 대할 뿐 속마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게 정말일까요? 소녀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아가씨를 남겨 놓고 죽음의 길로 들어설까 봐 그러는 것입니다.”

“정녕 정혼녀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소야가 아는 한 정혼녀는 없습니다.”


소야는 자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그녀가 어린애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하는 반문을 해보았다.


두 사람은 사제형삼 일행과 흑매화가 탄 한 대의 마차가 김역을 따라올 동안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손소민은 검은 복면을 쓴 흑매화에게 둘러싸여서 쌍두마차에 올랐다. 그녀가 걸치고 있던 장삼이 김역에게로 되돌아오고, 흑매화도 함께 탄 그 마차와 기마는 어울려서 숲을 벗어나 황톳빛 넓은 길로 나섰다.


“워! 워! 워!”


그때 느닷없이 그들의 앞으로 나타난 기마의 무리가 손을 들어 올려서 마차의 진행을 막아섰다.


“핫하! 이거 누구 신가 했더니 의행공이 아니시오?”


삼십 여명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그자는 바로 파사귀 명개철이었다.


“흑사 단주 아니십니까?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막 지하탈출구를 나와 혼마포의 뒤를 쫓는 중이오. 그놈 보지 못하셨소?”

“소생도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으나 혼마포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더군요.”


명개철이 가늘게 뜬 눈으로 천막을 씌운 쌍두마차를 노려보면서 옆구리를 찌르고 나왔다.


“의행공, 그놈은 흉악한 놈입니다.”

“압니다. 그래서 공동의 적으로 죽이려는 게 아닙니까.”

“한데 어찌하여···”


명개철이 살기를 담은 눈빛으로 김역을 쏘아보았다. 그 눈을 마주 노려보며 김역은 엷은 미소를 보냈다.


“하하! 소생이 혼마포를 숨긴 것으로 여기시는 모양인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온정을 베풀 값어치조차 없는 방주가 아닙니까.”

“핫핫핫! 그걸 아신다면 마차를 살펴봐도 되겠소이까?”

“안됩니다!”


순간 명개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곧 혼마포가 마차에 타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 그러하오?”

“아닙니다. 분명 혼마포는 없으나, 공개할 수 없는 점 또한 이해해 주십시오.”


김역은 손가상포 손 대인의 손녀가 원사 방주에게 홀렸었다는 것 등의 소문을 차단키 위해서 강하게 나갔다.


흑매화와 함께 마차에 앉아서 그들의 오가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는 손소민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사 단주라는 자의 위협에도 굴복지 않고 자기를 감싸주려는 그의 당당한 태도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늘 자기를 감싸준 사람은 할아버지와 손가상포 본점 사람들뿐이었는데, 그들이 없는 마당에 이런 험난한 곳에서의 관심은 특별한 것이었다. 사랑이란 이런 것으로도 다가오니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소야의 손을 힘줘 잡았다.


명개철이 옆구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에 손을 대면서 위해의 물음을 던졌다.


“기어코 본좌와 대적하겠다는 것인가?”

“원하신다면···”


주눅 듦이 없이 김역 또한 제천지검의 검병(劍柄)을 손에다가 쥐었다.


팽팽한 긴장감은 황톳빛 바람을 불어오게 하고, 좌우의 나뭇가지에서 재잘거리던 새들마저 푸드덕 하늘로 날아가도록 이끌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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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창살천인 19.03.01 360 2 12쪽
82 전면전 19.02.24 362 2 12쪽
81 초야의 기습 19.02.20 363 3 12쪽
80 오열(嗚咽) 19.02.18 361 3 12쪽
79 화월 19.02.16 398 2 12쪽
78 손녀서(孙女婿) 19.02.15 358 2 12쪽
77 효웅들 19.02.13 360 2 12쪽
76 맥궁 19.02.11 356 2 12쪽
75 살수(殺手) 19.02.10 351 2 12쪽
74 북행(北行)2 19.02.09 362 2 12쪽
73 북행(北行)1 19.02.08 374 2 12쪽
72 탈출 19.02.07 358 2 12쪽
71 탈출구 19.02.05 370 2 12쪽
70 옹중지별(甕中之鱉) 19.02.04 421 3 12쪽
69 대명군영지도 19.02.03 372 3 12쪽
68 이소향 19.02.01 352 2 12쪽
67 미향루 19.01.29 360 2 12쪽
66 진범 19.01.26 376 2 12쪽
65 복수의 순간 19.01.23 350 2 12쪽
64 복수의 시간 19.01.19 363 2 12쪽
63 바람처럼 19.01.18 370 2 12쪽
62 정세 19.01.15 39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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