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윤이의 무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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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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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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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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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화났어요! -78

DUMMY

신녀궁 뒤편, 작은 동산에는 하얗게 눈꽃이 피었다. 향긋한 꽃내음이 가득한 그곳에 비석이 늘어서 있다. 비파대모는 그중 한 비석으로 다가갔다. 희디흰 국화꽃 한 송이가 소담스럽게 놓여 있다.


“전대 선녀님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란다.”


두윤이는 물끄러미 무덤을 내려다봤다.


“그럼 이곳이...”


“그래. 이분이 바로 선녀상의 주인이셔. 보름달의 정기를 타고 나신 분이지.”


두윤이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아요. 광 할아버지께서 예전에 말씀하셨어요. 저 하늘의 보름달이 그녀를 빼앗아 가버렸다고요.”


무덤을 내려다보던 비파대모가 쪼그려 앉아 풀을 쓰다듬는다.


“우리는 그분을 광 아저씨라고 불렀단다.”


“그럼, 아줌마들도... 앗! 죄송해요. 대모님하고 선녀님도 광 할아버지와 친하셨군요.”


“지금도 가끔 이곳을 찾아오시니까. 우린 네가 혈마안을 쓸 때부터 알아봤단다. 그분의 제자라는 것을 말이야.”


비파대모는 지난날의 일을 떠올렸다.



전날 혈강시를 조종했던 혈마안은 아수라혈교의 교주 아수라만 쓸 수 있는 무공이다. 그리고 그 무공을 아는 자는 천존 사마광뿐이었고 말이다.


과거 천검에게 패한 아수라혈교는 부활을 꿈꾸며 아수라의 재림을 준비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천검은 비무를 청해온 사마광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도전을 받아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천검이 내건 제안은 다름 아닌 아수라혈교의 완벽한 괴멸이었다. 결국, 비무에서 패한 사마광은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신으로 아수라혈교에 쳐들어간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던 아수라혈교는 궤멸당해 버렸고, 그 과정에서 사마광 역시 큰 부상을 입었다.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마광은 신녀궁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그게 모든 운명의 시작이었으니.


“전 할아버지의 제자가 아니에요.”


두윤이의 말에 월광선녀와 비파대모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럼 혈마안을 어디서 배운 거니?”


“할아버지가 쓰는 걸 똑같이 따라 한 거죠. 어깨너머로 배웠다고나 해야 할까요?”


혈마안 같은 무공을 어깨너머로 배운다니? 그 정도면 신이 내린 천재라야 가능한 일이다. 월광선녀가 손을 내저으며 헛웃음을 터트린다.


“에이, 뻥까고 있네. 설마 네가?”


“응? 왜 그러셔요.”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두윤이가 양 볼을 부풀리자, 분위기가 또 이상해진다. 비파대모는 얼른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최근에 할아버지는 만나 뵈었니?”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없어요. 이 패를 주시면서 천존궁에 놀러 오라고 하셨는데요.”


두윤이는 목에 걸고 있는 반쪽짜리 패를 꺼내 보였다.


“한참을 헤맸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어요.”


반쪽의 패를 바라보던 비파대모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사실, 얼마 전에 할아버지께서 여길 찾아오셨단다. 몇 달 묵고 가셨는데, 같이 온 아이가 너랑 똑같은 패를 지니고 있더구나.”


“정말요?”


“그래. 할아버지께서는 그 아이를 제자라고 소개해 주셨지. 예쁘고 상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였단다.”


월광선녀가 한소리 거든다.


“너처럼 수다도 심했어.”


두윤이는 멍하니 반쪽 패를 내려다보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 녀석 이름이 뭐예요. 혹시 알고 계세요?”


비파대모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소령이가 틈만 나면 네 이야기를 했는걸.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자랑을 엄청 하던데?”


멍청한 표정을 짓던 두윤이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소령이가 광 할아버지와 함께 있었군요. 정말 잘 됐어요.”


“그런데 이미 떠났단다. 어디로 간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비파대모의 말에 두윤이는 커다란 실망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소령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만큼 반가운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두윤이는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을 돌아봤다.




다음 날 아침,


두윤이는 누가 몸을 흔들어대자 푹 이불을 뒤집어썼다.


“조금만 더 잘래요. 졸려 죽겠단 말이에요.”


“안됩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지금 월광선녀님이 찾으세요.”


칠선아가 이불을 잡아당기자, 두윤이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빨리 일어나시라고요!”


“으아앙!”


곁에서 자고 있던 아이들이 깨어나 울음을 터트린다. 칠선아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렸다.



칠선아에게 붙들려간 두윤이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월광선녀가 서찰을 내민다. 누런 편지 중간에 빨간 띠가 감긴 서찰, 무림맹에서 보낸 무림첩이다.


“오늘 새벽에 도착한 서찰이야.”


아수라혈교가 부활했으니 무림맹에 모여 힘을 합치자는 내용이다. 서찰을 내려다보던 비파대모가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너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아수라혈교의 교도들은 무섭도록 잔인한 사람들이란다.”


“맞아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요. 정성 들여 만든 꽃밭을 무참히 밟아놓다니요. 정말 무례하고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집 앞에 커다란 동산이 있었는데요. 아침에 나가보니까 하얀 야생화들이 활짝 피었더라고요. 전 눈이 온줄 알았지 뭐에요. 다시 겨울이 온 것 같아서 진짜 신기했어요.”


“······.”


“꽃밭에서 뛰어놀면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아세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내일 또 놀아야지 했는데요. 그날 저녁에 태풍이 와서 글쎄 꽃밭을 망쳐놨지 뭐에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하루 종일 펑펑 울었어요.”


“제발 그만 좀 재잘대! 너 때문에 머리가 아파지려고 한다.”


월광선녀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투덜댄다.


“아참! 그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됐나요?”


마라혈승과 아수라혈교의 승려들을 말하는 모양이다. 칠선아가 머뭇머뭇하다가 답한다.


“그들은 관아로 넘겼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쳐야 할 테니까요.”


“그랬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월광선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일부일 뿐이야. 아수라혈교의 본진은 이미 중원으로 향했어. 네가 그들을 도와야 해.”


“제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잖아요. 저도 가야 하나요?”


“당연히 가야지!”


“에이, 전 어린아이라서 안 가도 괜찮아요.”


“쯧...”


세 사람의 표정이 굳어있자 두윤이는 입술을 삐죽였다.


“저 말고도 천마 아저씨랑 쌍성 할아버지랑 다 모일 텐데요. 왜 제게만 귀찮은 일을 시키려는 거죠?”


월광선녀가 또다시 머리를 감싼다. 비파대모는 쓴웃음을 머금다가 자상하게 말했다.


“두윤아, 귀찮은 일이 아니야. 꼭 필요한 일이란다. 그리고 넌 어차피 서원으로 돌아가야 하잖니.”


“여기 더 있고 싶어요. 방학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거든요.”


“그럼, 다음 방학 때 또 놀러 오려무나. 그러면 되지 않겠니?”


“아유, 너무 멀어서 다시 올 엄두가 안 나요. 길도 잘 모르고요.”


월광선녀가 빽하고 고함을 지른다.


“제발 가라 그냥!”


“아니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언제는 의와 협을 위해 힘을 사용해야 한다며? 그건 어디다 팔아먹었는데!”


“그건...”


두윤이가 우물쭈물하자, 월광선녀는 짐짓 실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광 할아버지께서 널 보면 부끄러워하실 거다.”


“흥! 마음껏 부끄러워하시라고 하세요. 저도 쌓인 게 많다고요. 집에 찾아오라고 해놓고서는 제대로 위치도 안 알려 주시고. 그것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세요. 한번은 절벽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니까요. 정말 힘들었어요. 아참, 그 이야기도 해드렸나요?”


“아 됐어. 시끄러! 네 마음대로 해.”


“제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됐다니까!”




짐을 챙긴 두윤이는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신녀궁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손을 흔들어 준다. 비파대모는 여분의 옷가지를 챙겨주었다. 봇짐 속에 과자도 듬뿍 담겨있자, 두윤이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건...”


비파대모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뭔가를 내어놓는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서찰인데, 그윽한 국화 향이 배여 있다.


“이걸 그 사람에게 전해주려무나. 고맙다는 답장이란다.”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월광선녀가 혀를 차댄다.


“아이고, 지지리 궁상! 그 나이 먹고 연애편지 질이야.”


비파대모의 얼굴이 더할 수 없이 새빨개지고, 두윤이는 눈을 끔뻑였다.


“저 간밤에 생각해봤는데요. 월광선녀님은 아무래도 선녀님 같지 않아요.”


“또 그 소리냐!”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제가 아는 선녀님들은 모두 행복하시거든요. 그런데 월광선녀님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으세요.”


막 화를 내려던 월광선녀가 뚱한 표정을 짓는다. 두윤이는 환하게 웃었다.


“예전에 엄마가 그러셨어요. 행복은 주변 사람에게 전염이 된대요. 그래서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해 줄 수 없데요.”


“······.”


“전대 선녀님도 행복한 삶을 사신 것 같진 않아요. 광 할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천마 아저씨도 행복하지 않은 눈치였어요. 언제나 우울해하세요. 전 그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왜 제 주위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그건...”


비파대모는 말을 잇다 말고 슬쩍 옆을 돌아봤다. 월광선녀가 차가운 얼굴로 시선을 외면한다. 두윤이는 슬쩍 월광선녀의 손을 부여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자, 월광선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다.


“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선녀님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믿고 있는 선녀님들처럼 말이에요.”


“아, 알았어.”


월광선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만 가볼게요.”


마중 나온 아이들이 열렬히 손을 흔든다.


“형, 잘 가!”


“다음에 또 와야 해!”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녀석을 보며, 비파대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에 큰 폭풍이 불겠구나. 저 아이 덕분에 말이야.”


월광선녀는 피식거리며 팔짱을 꼈다.


“여긴 이미 불고 있는걸?”


“응?”


비파대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월광선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신녀궁 건물을 쏘아봤다.


“저 아이 말이 맞아. 신녀궁도 이제 변할 때가 됐어.”


“너! 그 말뜻은······.”


“난 이제부터 행복해질 테야. 보름달 따위 예전부터 관심 없었거든.”


비파대모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며 걱정스레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동의할까?”


“여기 궁주는 나거든?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말이지.”


월광선녀는 차갑지만,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터트렸다.


“난 전대 선녀들처럼 순진하지가 못하거든.”


“으이그, 어련하시겠어요.”


드넓은 광야에서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비파대모는 옷깃을 여미며 선화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얘들아! 감기 걸리겠다. 어서 들어가자.”


“네!”


종종걸음으로 선화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문득 월광선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쟤 돈 있어?”


“돈?”


아이들을 챙기던 비파대모는 발걸음을 멈추고 월광선녀를 돌아봤다.


“여비 말이야. 갈 길이 아주 멀 텐데?”


“글쎄?”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녀석이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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