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윤이의 무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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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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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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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으로 가겠어요 -84

DUMMY

초라한 옷을 입은 여인이 다섯 살쯤 된 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는 음식 앞에서 연신 투정을 부렸다.


“옥지야. 그러면 못써요.”


아이를 달래는 여인에게서 기품이 묻어난다. 맞은편에는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다. 얼굴이 하얗고 눈매는 날카로운데 꼭 설대연이 연상된다. 물론 유약한 분위기는 더 했지만, 잘 벼려진 칼 같았으며 가느다란 눈매는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그쪽 탁자를 바라보던 두윤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은 셋인데 야채 면이 달랑 한 그릇만 놓여있다.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왜? 더 먹지 않고.”


“이제 배불러요. 어머니도 좀 드세요. 한 입도 드시지 않으셨잖아요.”


여인은 애써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까 많이 먹었어. 갈 길이 머니까 어서 먹으렴.”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다. 녀석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려 든다.


“자! 야채 면 나왔다. 그리고 이건...”


두윤이는 주인아저씨를 돌아보며 동그랗게 눈을 떴다. 탁자 위에는 야채 면뿐만 아니라 고기 훈채와 만두도 가득 놓인다.


“네가 가져온 버섯이 제법 귀한 약제 라더구나. 그래서 선심 좀 썼다.”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맛있게 먹어라.”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고기 훈채와 만두, 까무러칠 정도로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풍긴다. 두윤이는 젓가락을 집어 들다 말고 다시금 옆자리를 돌아봤다. 소년이 마지못해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든다. 다 불어터진 면발이 거칠게 떨려 든다.


두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에 접시를 들었다. 그러고서는 냉큼 녀석의 옆자리에 가 앉았다.

소년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맞은편에 앉은 여인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탁자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던 여인이 미간을 좁힌다.


“이게 무슨 짓이지?”


“예전에 엄마가 그러셨어요. 음식은 나눠 먹으면 배로 맛있데요.”


“······.”


“게다가 친절한 주인아저씨께서 음식을 너무 많이 주셨어요. 다 먹지도 못할 거예요. 음식을 남기면 벌 받는데요.”


여인과 소년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반면,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고기, 고기!”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을 뻗는다. 목표는 고기훈채였는데, 두윤이는 젓가락으로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아이의 입으로 가져갔다. 아이가 쏙하고 빼먹는다.


“정말 맛있어. 또 줘!”


“맛있지? 자 여기 또 있다.”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넌 왜 안 먹어. 너도 먹여줄까?”


두윤이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소년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소년이 울상을 지으며 여인을 올려다본다.


“푸웃!”


굳었던 여인의 얼굴이 풀어지고, 햇살처럼 빛나는 미소가 피어난다.


“그래, 고맙구나. 다 같이 먹자. 대신,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소년은 무척 배가 고팠던지 만두를 우적우적 씹었다. 그러면서도 이쪽 눈치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후루룩 야채 면을 삼킨 두윤이는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아, 제 소개를 안 했죠? 전 두윤이라고 해요. 장두윤.”


소년이 계속 고개를 처박고 있자, 여인이 엄한 표정을 짓는다.


“기린아. 너 그게 무슨 버릇이니. 상대가 인사했으면 너도 예의를 갖춰야 할 게 아니냐.”


어머니에게 한 소리 들은 소년이 어물거리다 예를 올린다.


“옥기린이라고 합니다. 올해 열여섯입니다.”


“하하핫! 나보다 어리네?”


“어리다고?”


여인과 소년이 또 한 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두윤이는 활짝 웃었다.


“전 열여덟 살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형이죠.”


“그래? 너 생각보다 나이가 많구나.”


두윤이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아이라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싫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는 소리가 더 듣기 싫다.


“이봐! 여기 술 더 가져와. 고기랑 술 달라고!


“예, 예. 갑니다요.”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내오자, 산적처럼 생겨먹은 사내가 술병을 들이킨다.


“크아! 좋다. 자네도 한잔해!”


술병을 받아들던 깡마른 사내가 한소리 해댄다.


“형님, 방금 들으셨습니까? 저 녀석이 옥기린이랍니다.”


“옥기린? 그 옥현장의 아들놈 말인가.”


소년이 와락 주먹을 움켜쥔다. 두윤이는 멍한 시선으로 사내들을 돌아봤다.


“소문에는 옥현장이 아수라혈교에 대항하다가 개박살이 났다며?”


“크크큭, 그렇답니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더니 아주 꼴좋게 됐습니다.”


‘탁’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소년이 벌떡 일어난다.


“기린아, 경거망동하지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아라.”


여인의 호통에 소년이 부르르 몸을 떤다.


“어머니!”


“앉으라고 했다.”


“오호라, 이제 보니 옥현장의 안주인 단리연 낭자시구려. 소문처럼 미색이 출중하시구려.”


이미 출가한 외인에게 낭자라 부르는 건 큰 실례다.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고 있는 아이를 달랠 뿐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와 합석합시다. 내 좋은 술을 내오겠소. 이봐, 주인장!”


“예... 어르신.”


주인아저씨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사내가 호기롭게 외친다.


“여기서 제일 고급술을 가져와. 저기 계신 미인께 드릴 선물이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소년이 번개같이 몸을 날린다. 녀석은 허리에 빗겨 맨 단검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방금 그 말 취소해. 안 그럼 죽여 버리겠어!”


“크하하,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 제법이구나.”


같이 웃고 떠들던 다른 사내들이 비웃음을 터트린다.


“귀여운 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네놈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러느냐?”


“닥쳐! 알고 싶지 않아. 알 필요도 없고!”


소년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끝이 송곳처럼 날카로웠는데 번쩍번쩍 빛이 난다.


“우리는 섬서사흉이다. 옥현장의 장자라니 들어는 봤겠지?”


소년이 흠칫 뒤로 물러난다. 섬서 지방에서 갖은 악행을 일삼는 무뢰배 중, 아주 유명한 녀석들이 섬서사흉이다. 이놈들은 무공이 고강해서 말 그대로 골칫거리였다. 네 명 모두 형제였는데, 개개인의 실력은 능히 일류고수에 이르렀다.


산적 같은 사내가 허리에서 두툼한 도를 꺼내 든다.


“불나방 같은 녀석, 어서 덤벼봐라.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일류고수답게 도에서 세찬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소년은 이를 악물고 단검을 꼬나 들었다.


“닥쳐! 무가 아니라 네놈 목을 잘라주마!”


소년이 사내에게 달려들자, 두윤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급히 세상의 기를 움직이려는 순간, 날카로운 빛이 사내의 얼굴로 쇄도한다. 깜짝 놀란 사내가 옆 구르기를 시도하니, 식탁이고 접시들이 넘어지며 박살이 난다.


“웬 놈이냐!”


벌떡 일어난 사내가 눈을 부라린다. 옷을 잘 차려입은 이남일녀(二男一女)의 사람이 앞을 막아선다. 모두 세 명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검을 겨누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 검객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는다.


“그동안 네놈들을 찾아다녔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이야.”


“네년은 누구냐?”


“매화혈봉이라고 하면 알려나 모르겠네?”


“뭐라... 네놈들은 매화삼검이로구나.”


사내가 비칠거리며 물러난다.


매화삼검(梅花三劍), 화산파의 속가제자로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해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언제나 함께 다니는 매화삼검은 일녀 매화혈봉(梅花血蜂)이 가장 유명했다. 악인을 벌하는 데 있어서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아 혈봉이라 불린다. 실력도 뛰어나서 일류를 넘어 절정 초입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크윽! 네놈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우리 섬서사흉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곳은 이미 아수라혈교의 수중에...”


“닥쳐라. 밝은 대낮에 부녀자를 희롱하다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살아남길 바라느냐?”


매화혈봉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자 사내가 흠칫 물러난다. 그녀의 절정에 이른 기세는, 이제 갓 일류에 오른 섬서사흉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일행 중앙에 서 있던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며 나선다.


“네놈들은 그보다 더한 잘못을 했다.”


청년이 스르륵 검을 뽑아 들자 새파란 검기가 번쩍댄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옥현장의 장주님을 욕보였다는 것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청년의 몸이 뿌연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다. 놀랍도록 빠른 경공술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청년이 검을 휘두르자 사내는 커다란 도로 막아섰다.


‘캉!’


귀를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뒤쪽으로 처박힌다. 일류고수를 단번에 제압하는 실력은 능히 절정에 이른 것이었으니. 나머지 섬서사흉도 청년의 발길질에 땅바닥을 나뒹군다.


“크윽! 우리는 이미 아수라혈교에 충성을 맹세했다. 우릴 죽이면 혈교의 복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닥에 누워 피를 토하던 사내가 분노에 차서 이를 간다. 청년은 검을 치켜들었다.


“저승에서나마 네 죄를 반성하도록!”


검이 사내의 목을 베려 하자, 두윤이는 급히 청년에게 달려갔다.


“저기 잠깐만요. 그 사람을 죽이면 안 돼요!”


청년이 검을 멈춰 세운다.


“죽이면 안 된다니.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잖아요.”


청년을 물론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두윤이는 앞을 막아섰다.


“그냥 관아에 넘겨서 죗값을 치르게 하면 안 되나요?”


“무림과 관은 서로 불가침의 관계다. 너는 무림인이 아닌듯하니 여기 일에 나서지 마라.”


두윤이는 질끈 입술을 깨물고 청년을 쏘아봤다.


“무림과 관이 서로 상관없다고요. 정말 그래요?”


“그렇다.”


“그런데 왜 힘없는 사람들만 괴롭힘을 당하는 거죠? 녹주의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폐허가 된 마을 사람들도 모두 집을 잃어버렸어요. 선화원에 있던 그 고아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건가요.”


“······.”


“무림일이라면서요. 불가침이란 말은 거짓말이었나요?”


아수라혈교의 침공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들은 분명 무림과는 상관없는 일반 백성일 뿐이었다.


“이번 일은 그것과 상관없다. 이들은 많은 죄를 지었어. 이대로 두면...”


“그래서 직접 벌을 주시게요?”


검을 움켜쥔 청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아저씨가 할 일은 아니에요.”


두윤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결국, 청년은 검을 내리고 말았다. 지켜보고 있던 매화혈봉이 나선다.


“이 아이 말이 맞아요. 이번은 관아에 넘기는 편이 좋겠어요.”


“네가 웬일이냐?”


매화혈봉이 히죽 웃는다.


“지금 기분이 아주 더러워졌거든요. 이들에게 죽음은 사치에요.”


그녀가 쓰러져 누운 사내의 배를 발로 밟아 버린다. 비명을 토하며 나뒹구는 사내, 단전이 파괴되어 무공을 상실한 게 틀림없다.


“끄아악! 차라리 죽여!”


“너희는 그런 사치를 누릴 자격이 없어. 어디 평생 고통 속에서 지내봐.”


사내가 기절해 버리자, 매화혈봉이 깔깔대며 잔인한 웃음을 터트린다. 두윤이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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