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윤이의 무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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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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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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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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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사러가요 -124

DUMMY

그 시각 막내 동이는 숙소를 배회하고 있었다.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동이는 커다랗게 하품을 했는데.


“아무도 없잖아. 주상이 형은 대체 어딜 간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온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서원을 얼마나 헤집었을까? 아픈 다리를 조몰락대던 막내는 휘둥그레 눈을 치떴다. 연분홍빛 경장을 입은 소녀가 깡충깡충 후원을 뛰어다니고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깜찍하고 귀엽던지, 마치 꽃을 찾아 나부끼는 나비를 연상케 한다.


이제 갓 열두 살쯤 되었을까, 소녀는 시비로 보이는 여인들 품에 섞여 깔깔대고 웃는다. 막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키 어려워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체 누굴까. 두윤이 형이 말한 선녀는 아닐까?’


“아기씨,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


여인의 말에 소녀가 앵두처럼 빨간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민다.


“여기 더 있고 싶어. 집에 가기 싫단 말이야.”


“안됩니다. 가주님께서 아기씨를 찾고 계실지도 모른다고요.”


“칫! 알았어.”


소녀가 떠나가자, 막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절대 놓치지 않겠어. 이름이라도 알아야 해!”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막내는 급히 소녀의 뒤를 따랐다.


시 외곽에 위치한 운연장(雲煙莊), 소녀가 들어간 장원이다. 대문이 ‘쾅’하고 닫히자, 막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누군지도 알아내지 못하다니. 다리만 괜히 아프잖아.’


돌담에 쪼그려 앉은 막내는 머리를 싸쥐었다. 소녀의 방긋방긋 웃는 미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데.


문득 돌담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상이는 언제쯤 온다더냐?”


“곧 올 겁니다.”


“우리가 먼저 마중을 나가야 한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어디냐?”


“시내에 있는 고서점입니다. 그리로 오라 하였습니다.”


“좋아, 빨리 출발하자.”


옷자락이 날리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청년이 돌담을 뛰어넘는다. 막내는 깜짝 놀라 몸에 흙을 묻혔다. 담 뒤로 내려선 청년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웬 놈이냐?”


막내는 흙장난을 하는 척하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네?”


“쯧, 어린애였군.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놀아라!”


“죄송해요.”


두 청년이 사라지자, 막내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악양 시에 고서점은 하나다. 막내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서점이 잘 보이는 곳에 숨었다. 청년들은 분명 이곳으로 올 것이다. 또한 그들이 말한 주상이란 사람이 남궁주상이라면...


막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히힛, 틀림없어. 분명 여동생일 거야.’


물론 확실치 않으니 확인해보면 될 일인데.


“응?”


막내는 고개를 빼고 서점을 응시했다. 서점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예의 청년들이 내려선다.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던 주상이 형이 청년들에게 인사를 한다.


‘야호! 좋았어.’


막내는 양 주먹을 와락 움켜쥐며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런데 주상이 형을 태운 마차가 어딘가로 향한다. 시 외곽을 빠져나가 동정호 쪽으로 달리는 마차.


“저쪽은 반대 방향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막내는 얼른 서원을 향해 뛰었다.




‘쏴아’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한껏 흔들리는 버드나무에서 잎사귀들이 빙그르르 돌아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서쪽에서는 짙은 회색빛 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다. 비라도 올 모양인데.


“안 돼! 하필 절친의 생일에 비가 오는 거냐고.”


두윤이는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기만 해봐. 비를 부숴 버릴 거야!”


온갖 협박에도 하늘은 굴하지 않고 검은 구름을 게워내 햇볕을 가렸다. 두윤이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가슴을 두드렸다.


“도대체 이 녀석은 어딜 간 거야?”


빨리 선물을 사러 가야 하는데 막내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숙소에도 가봤고 식당도 헤집었지만 없다.

더는 못 기다린다. 이제 곧 해가 질 터. 두윤이는 양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시내로 몸을 날렸다.




마차가 거칠게 흔들려도, 쌀쌀한 바람에 절로 옷깃이 저며져도, 녀석은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맞은편에 앉은 남궁현웅은 애써 헛기침을 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더냐?”


“네, 형님! 아주 좋은 일이 있어요.”


주상이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형님들께서 제 생일을 챙겨주시려고 오셨잖아요.”


“아, 그건...”


“전 형님들께서 잊으신 줄 알았어요.”


남궁현웅은 지그시 미간을 좁혔다. 덜컹거리는 마차보다 마음이 더 불편하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녀석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었으니까.


“부끄러워요. 전 형님 생일을 잊고 있었거든요.”


“아니다. 나도 갑자기 생각이 났을 뿐이야.”


‘또르륵.’


문득, 주상이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남궁현웅은 당황했다.


“전 못난 동생인가 봐요. 그동안 형님들을 오해했어요. 절 미워한다고 여겼는데 이렇게...”


주상이가 무릎 위에 놓인 기름종이를 조심스레 매만진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갓 쪄낸 찐빵. 남궁현웅은 헛기침을 했다.


“그냥 보이기에 사 왔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찐빵을 한입 베어 물던 주상이가 환하게 웃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팥 찐빵이에요.”


“그래, 넌 어릴 적부터 그걸 제일 좋아했지.”


찐빵 속 가득한 달콤한 팥 앙금을 내려 보며 주상이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전 언제나 형님이 부러웠어요. 할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오셨잖아요.”


‘톡’


빵 위로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형님은 모든 면에서 제게 앞섰죠. 그래서 한때는 형님을 원망하기도 했어요.”


입가에 서글픈 피소가 걸린다.


“그래요. 형님이 팔을 잃었을 때, 전 제가 가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할아버지께서 이제 절 인정해주실 거라 믿었어요. 그런 못난 생각을 해버렸다고요.”


남궁현웅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전날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무림대회가 끝나면 소가주 자리에 오르라고 말이에요.”


“······.”


“전 대답을 못 했어요. 몇 번이나 그러겠노라고 답하려 했어요. 그렇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주상이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볼 위로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왜냐하면 제 앞에 형님이 계셨으니까요.”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는 녀석, 남궁현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대답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지금도 제 곁에는 이렇게 든든한 형님이 계시잖아요.”


“난...”


남궁현웅은 더듬거리며 겨우 입술을 뗐다.


“난 이미 가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아니에요!”


주상이가 세차게 고개를 흔든다.


“형님은 충분해요. 이 못난 동생을 이해해준 형님은 가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요.”


“주상아...”


“저 이제 깨달았어요. 형님께서는 꼭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셔야 해요.”


남궁현웅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몸에 난 상처가 오늘따라 유독 쓰라리다.


“상처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형님을 도울게요.”


“네가?”


주상이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꼭 오른손으로만 검을 쥘 필요는 없다고요. 두윤이도 왼손잡이예요. 그러니까 형님도 하실 수 있어요.”


“그만해라.”


남궁현웅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따라 말이 많구나. 이제 좀 쉬어라. 곧 도착할 테니까.”


“그래요. 쉬어야겠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질까요.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요.”


의자에 몸을 누인 주상이가 깊은 잠에 빠져든다. 남궁현웅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사부 숙소에 도착한 막내는 코를 킁킁댔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온다. 안에서는 벌써 생일잔치 준비가 한창이다.


“막내야, 너 어디 갔다 왔어?”


바구니를 들고나오던 제갈은경이 한소리 해댄다.


“우와, 맛있는 냄새!”


“너도 거들어. 지금 무지 바쁘단 말이야.”


부엌 안으로 들어가니, 금소령이 쪼그려 앉은 채 소매로 연신 눈가를 훔치고 있다.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


“너 잘 왔어. 빨리 이것 좀 까.”


금소령이 건네주는 그것, 다름 아닌 양파다. 막내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너 자꾸 그럴래? 맴매야!”


“칫...”


하얀 속살을 내밀고 있는 양파를 보자 벌써부터 눈이 따가울 지경인데. 한쪽에서 음식 준비에 열을 올리던 임 사부가 목소리를 높인다.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어서 대파도 다듬고 감자도 깎아야지.”


“아이 씨... 눈 따가워 죽겠는데.”


막내는 울상을 지으며 소매로 연신 눈가를 닦아 내렸다.


“그런데 주상이 형은 언제 와요?”


국자로 탕을 휘휘 젓던 제갈은경이 히죽 웃는다.


“숙소에 있을 테니 조금 있다 부를 거야. 아마 깜짝 놀라겠지?”


“이상하네. 주상이 형은 올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막내는 양파 껍질을 벗기며 쫑알댔다.


“아까 시내에서 마차를 타고 어디 가던데요.”


임 사부가 흠칫 칼을 내려놓고 몸을 돌린다.


“마차를 타고 가다니. 누구와 가더냐?”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형제들로 보이던데요?”


제갈은경이 부르르 몸을 떤다. 그녀는 얼른 달려와 양어깨를 부여잡았다.


“너 그게 정말이야, 직접 봤어?”


“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실은 운연장에서부터 형들을 미행했거든요. 시내의 고서점에서 주상이 형과 만나기로 했데요.”


운영장이라면 임시로 남궁세가 사람들이 머무는 장원이다. 임 사부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차가 어디로 향하더냐. 그것도 봤느냐?”


“동정호 쪽으로 가던데요. 저도 그걸 보고 좀 의아했어요. 그쪽은 서원과는 반대 방향이잖아요.”


이야기를 듣던 제갈은경이 세차게 고개를 내젓는다.


“그럴 리 없어요. 설마 그렇게까지...”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놈이 만독림에 저지른 만행을 벌써 잊었느냐?”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든다.


“기찰영주!”


날카로운 외침에 흑의를 입은 사내가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다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마차를 찾아라. 아마 포구 쪽으로 갔을 것이다.”


기찰영주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임 사부는 양 주먹을 와락 움켜쥐었다.


“사황! 네놈이 기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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