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윤이의 무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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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영남
작품등록일 :
2018.05.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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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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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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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요 -139

DUMMY

“누가 우승자야? 빨리 결정해.”


관중석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매화선인은 사람들을 돌아봤다. 도무지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해가 서산을 넘으면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우승자다.


“우승자는...”


매화선인이 입술을 달싹이자 사람들이 고함을 쳐댄다. 어떤 사람은 욕까지 해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빨리 선언하란 말이야. 이러다 날 새겠어.”


“우, 우승자는 바로······.”


“우승자가 누구예요. 벌써 결정됐어요? 아이참, 빨리 올걸!”


“······?”


짤랑거리는 맑은 목소리, 사람들이 휘둥그레 눈을 치뜬다. 언제 어떻게 왔는가? 마치, 그 자리에서 ‘뿅’ 하고 나타난 것처럼, 녀석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앗, 이 사기꾼!”


연무장에 선 두윤이가 양 볼을 부풀린다.


“너무해요. 어떻게 제게 이러실 수 있죠? 혼자 도망 가버리다니. 진짜 치사해!”


“······.”


사황이 황당한 얼굴로 서 있다가 이내 부들부들 몸을 떤다.


“너 어떻게···. 죽지 않았구나.”


“제가 죽었으면 했나요. 그 말 거짓말이죠?”


“난······.”


“거짓말이라고 믿겠어요. 사실 할아버지를 엄청 원망했는데요. 덕분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니 용서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얼른 잘못했다고 사과하세요.”


부르르 몸을 떨던 사황이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크크큭, 나더러 사과를 하라고?”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뱀처럼 차가운 안색이 드러난다.


“네 놈은 번번이 내 앞길을 막아왔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두윤이가 팔짝 뛴다.


“누가 앞길을 막았다는 거예요. 전 이렇게 옆에 서 있었잖아요! 그리고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사과하시라고요. 대신 진심이 담겨야 해요. 예전에 엄마가 그러셨는데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사과를 한 게 아니래요.”


“그래, 사과를 해주지. 진심을 담아서 말이야.”


황량하고 메마른 미소를 짓던 사황이 손을 내젓는다. 연무장 밖으로 물러났던 십이 원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선두에는 독고진천이 서 있다.


두윤이는 양 볼을 부풀리며 쫑알댔다.


“이게 사과에요? 와, 진짜 치사하시네요. 혼자 도망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디 계속 지껄여 보아라.”


“제가 못 할 거 같아요? 그럼 계속 지껄여 드리죠. 할아버지는 정말 반성 많이 하셔야 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죠. 전 정말 상상이 안 돼요. 할아버지처럼 예의도 모르고 무미건조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은 처음 봐요. 앗!”


두윤이가 깜짝 입을 가린다.


“죄송해요. 버르장머리라는 말은 실수에요. 너무 노여워 마세요. 할아버지께서 화를 내셔도 어쩔 수 없지만, 사실이 그렇잖아요.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요.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닥쳐!”


날카로운 외침이 울려 퍼지자 십이 원로가 공격을 시작한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류가 맹렬히 휘몰아치고, 거센 압력에 연무장 바닥이 산산이 부스러진다. 고금제일인 천존조차 거스를 수 없던 가공할 회오리바람.


두윤이가 방끗 웃으며 하늘로 손을 치켜든다. 작고 가느다란 검지가 먹구름을 가리키고.


“제 친구를 소개하죠. 이름은 뇌전(雷電)이에요.”


“뭐?”


사황은 물론, 관중들마저 어리둥절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파지직!’


먹구름이 번쩍번쩍하며 사방으로 불꽃이 전이된다. 순간, 강렬한 빛이 연무장을 직격해버리니. 지켜보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우르릉, 쾅쾅!’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천둥이 친다. 그 거센 충격에 휘몰아치던 혈류가 풍비박산 나버리고, 실눈을 뜨던 사람들은 함지막하게 입을 벌렸다.


무공에 뇌전이란 단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한낱 반딧불처럼 보잘것없으니.



연무장 중앙이 검게 그을려 있고 십이 원로의 몸뚱이가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다. 사황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이게 무슨 무공이냐?”


“무공이 아니에요. 그냥 친구를 부른 거예요.”


‘말도 안 돼’라는 외침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으니, 쓰러져 있던 십이 원로가 다시금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뇌전의 힘조차 아수라천강시를 격멸할 수 없단 말인가.


‘크아악!’


군데군데 그을린 채로 천강시들이 달려든다. 방어를 도외시한 무지막지한 육탄 돌격.


“앗, 광 할아버지!”


그러거나 말거나, 두윤이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연무장 한쪽에 쓰러져 있던 천존을 발견한 것인데.


“위험해!”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친다. 금방이라도 천강시의 손날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일부 관중들은 차마 볼 수 없는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순간, 두윤이가 팔을 들어 주먹을 쥐어 버린다. 고사리처럼 작은 주먹이지만, 그 결과는.


“응?”


허공에 우두커니 떠 있는 천강시들, 팔을 휘젓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지 도대체 벗어나지를 못한다. 마치 누군가가 목덜미를 ‘꼬옥’ 붙잡고 있는 듯하다.


“저, 저럴 수가···.”


“이건 도대체······.”


두윤이는 쪼르르 할아버지께로 달려갔다.


“할아버지! 지금 오시면 어떻게 해요?”


천존 사마광은 눈을 치뜨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리 두윤이 보려고 왔지.”


“정말 너무해요. 제가 그동안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세요? 훌쩍...”


눈물을 흘리며 외면하는 녀석, 사마광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얼른 안아주었다.


“그래, 이제 괜찮다. 이 할애비가 왔지 않느냐.”


“으아앙, 할아버지! 정말 보고 싶었다고요.”


작은 등을 토닥이는 사마광의 얼굴에 더할 수 없는 행복이 맺힌다.


“녀석, 이제 다 컸구나. 어른이 되었어.”


품에 안겨 있던 두윤이는 활짝 웃었다.


“하하핫, 정말요?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요. 이제 더는 아이라고 불리지 않을 테니까요.”


“음...”


곁에 있던 천마가 신음성을 삼킨다. 그의 시선은 연무장에 못 박혀 있다. 여전히 십이 원로와 독고진천이 허공에 멈춰 있다.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난 이런 무공을 들어본 적이 없다.”


천마의 물음에 두윤이는 히죽 웃었다.


“아이참, 무공이 아니라니까요. 바람과 친구가 되면 돼요.”


“뭐? 누구랑 친구를 한다고?”


사람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럼에도 감히 부정할 생각은 못 한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죠?”


두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을 돌아봤다. 멀뚱히 천강시를 올려다보던 사황이 어깨를 들썩인다. 차갑고 황량하며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온다.


“크큭, 여기까지로군.”


사황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끝이 날카로운 단도가 반대로 심장을 겨눈다.


“대업의 성취가 눈앞에 있었거늘, 분하다. 지옥에서 네놈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주지.”


“어디 가시려고요?”


단도를 내리꽂던 사황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심장 바로 한 치 앞에서 단도가 멈춘다.


“참, 할아버지도 가지가지 하시네요. 정말 실망이에요. 사과는 하고 가셔야죠!”


“두윤아! 사황을 죽이면 안 된다. 그럼 천이도 죽게 돼!”


혈마안이 풀리면 십이 원로를 포함해서 독고진천까지 죽을 것이다. 천마의 외침에 두윤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저씨 진짜 너무하세요. 어떻게 그런 모신 말씀을 하실 수 있으세요? 제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어요. 전 아저씨랑 다르다고요.”


“뭐야? 저 녀석이!”


발끈하는 천마를 뒤로하고 두윤이는 몸을 돌려세웠다.


“그냥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는 것뿐이에요.”


뚜벅뚜벅 연무장 위로 올라서는 녀석.


“세상의 기운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다니, 욕심꾸러기들 같으니라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줘야겠어요.”


두윤이는 양손을 입가로 모았다. 꿈결 같은 미소와 함께 ‘후’하고 입김을 분다. 반투명한 파랑이 너울처럼 번져나가고.


‘스으으’


붉은 기운이 꽃가루처럼 터져 나간다. 하늘하늘 바람과 뒤섞여 점점 희미해지니.


‘털썩.’


천강시들이 연무장바닥에 차례차례 쓰러져 버린다.


“무, 무슨 짓이야. 안 돼!”


사황의 발악적인 외침.


“돼요! 할아버지처럼 의와 협을 모르는 분은 좀 혼나야 해요. 무림이 천국일 거라는 제 상상을 방해하잖아요. 그러니까요.”


두윤이는 왼손을 입 앞에 대며 후! 불었다.


“차라리 무공이 없는 편이 낫겠어요.”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사황이 혼절해버린다. 그의 몸에서 솟아난 기운은 피처럼 붉지만, 바람과 만나 옅은 흔적을 남기며 떠나갔다.


두윤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엄마, 저 잘했죠? 빨리 칭찬해 주세요.’


엄마가 칭찬을 해주신 걸까? 맑게 갠 밤하늘 사이로, 긴 꼬리를 단 별똥별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린다.






식당 앞 호숫가. 주상이는 흠칫 고개를 들었다. 대연무장 쪽에서 거대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우승자가 결정된 걸까?


궁금하지 않다. 누가 됐든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힘없이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빗방울이 어깨를 칠 때마다 그만큼 가슴이 아프다. 비가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고.


‘똑.’


나뭇잎을 부딪치는 영롱한 방울 소리. 어느새 비가 그치고 호수에는 달이 떴다. 주변 가득 핀 꽃이 몹시 기다린 듯 향기를 전한다.


주상이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수면 너머로 아련히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른다.


“두윤아...”


“응?”


“미안해. 나 때문에...”


조용히 속삭이던 주상이는 세차게 몸을 떨었다. 발칵 고개를 돌리니, 활짝 웃고 있는 녀석의 얼굴.


“뭐가 미안해?”


“너!”


주상이는 멍하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 정말!”


“주상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진짜 생일잔치에 가려고 했거든. 선물도 샀는데...”


주섬주섬 옷 속을 뒤적이는데, 나온 건 찐빵을 쌌던 기름종이뿐이다.


“그만 내가 다 먹어버렸어. 으아앙!”


녀석이 울음을 터트린다. 주상이는 얼른 달려가 어깨를 부여잡았다.


“너 이리와. 다친 데 없어? 괜찮은 거야?”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살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응, 나 괜찮아. 훌쩍!”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주상이는 녀석을 꼭 부둥켜안았다. 작은 체구가 얼음장처럼 차갑다.


“야, 숨 막혀!”


녀석이 바동거려도 주상이는 놔주지 않았다.


“정말 미안해.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내가 못나서 널 힘들게 했어.”


“아이참, 괜찮다니까. 미안한 건 오히려 나라고. 선물을 샀는데 웬 이상한 할아버지 때문에 늦어버렸어. 그 할아버지 되게 이상해. 완전 사기꾼이야!”


화가 단단히 났는지 양 볼을 부풀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아이다. 주상이는 기쁜 마음에 활짝 웃었다.


“주상아, 너 그렇게 웃는 거 처음 봐. 기분이 엄청 좋은가 보구나.”


“응!”


“그럼 나 용서해줄래? 생일잔치에 못 갔다고 화내기 없기야.”


주상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아, 용서해줄게. 대신 날 먼저 용서해 줘야 해.”


“하핫, 내가 먼저야!”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너무나 그리웠다.




“두윤아!”


소령이가 눈물 바람으로 뛰어온다. 그러고서는 작은 몸을 번쩍 안아서 와락 껴안는다.


“우리 두윤이! 무사했구나. 하늘이시여, 고맙습니다.”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기뻐하는 소령이. 이를 지켜보던 은경이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으이그, 못 말려. 하여간 사고뭉치라니까.”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은경이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이리 와요. 오랜만에 봤으니 한번 안아줄게요.”


소령이의 품에 꼬옥 안겨 있던 두윤이가 양 볼을 부풀린다.


“숨 막힌단 말이야. 왜 다들 껴안으려는 거야. 난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이야!”


주상이가 활짝 웃는다.


“너 어린아이 맞아!”


“저게!”


두윤이가 주먹을 움켜쥐자, 주상이는 한달음에 도망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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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빨리 사과하세요! -128 18.12.19 1,422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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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생일잔치가 기대돼요 -126 18.12.15 1,485 13 12쪽
125 선물을 사러가요 -125 18.12.14 1,378 15 12쪽
124 선물을 사러가요 -124 18.12.12 1,43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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