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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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토라도라
작품등록일 :
2018.05.29 17:28
최근연재일 :
2018.08.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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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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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출전(出戰)

DUMMY

“옛다. 실켯 드셔.”


썩은 나무로 만든 것 같은 빛깔의 접시에 뭔가를 수북히 쌓아 담아온 톡신이 앉아 있던 이프리트와 카르타스의 앞에 팽개치듯 내려놨다.


접시에 놓인 건 쿠키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누런 고름색의 무언가였는데, 살짝 찔러본 후 손을 확 빼며 이프리트가 카르타스에게 속삭였다.


“이거, 물컹물컹해.”


“어쩌라는 건가.”


“게다가 만진 데가 따가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야, 둘이서 뭘 속닥거려?”


톡신이 접시와 똑같은 색의 물병과 작은 컵 세 개를 들고 와 앉으면서 물었다. 다행히도 물병 속 내용물이 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위대하신 다섯 정령왕께서 이번 대결은 미천한 이 몸에게 영웅을 선택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도저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색의 얼룩을 관찰하던 카르타스를 팔꿈치로 찌르며 이프리트가 억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물론이지. 너도 그동안 계속 내려가 보고 싶어 했는데 한 번도 못 내려갔잖아? 이제 너도 한 번쯤 방문시켜줘야 공평할 거 같아서.”


“공평....... 이라.”


톡신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손가락 사이로 회청색의 독이 솟아나더니 손가락을 감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옛날에 내가 너희처럼 휘하 정령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너희는 다섯이나 입을 모아 만드는 즉시 소멸시켜버리겠다고 협박했지. 덕분에 난 왕이란 칭호는 고사하고 이 섬에서 대화할 정령도 없이 혼자 박혀 있고,”


“어........ 그건 그러니까 어........ 심심하면 우리 애들 좀 보내줄까? 재밌는 애들 많아!”


톡신은 이프리트를 이제 와서 늦었다는 표정으로 잠시 노려본 후, 아직도 손 사이에서 꾸물대던 독액을 다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지구에서라도 뭐 좀 만들어보자고 했을 때, 그때도 손 댈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아마 그때 선두에 서서 반대한 게 여기 있는 누구였던 거 같은데....”


카르타스가 갑자기 목에 뭐라도 걸린 양 “으흐흠” 소리를 내더니 접시 위에 놓인 ‘과자’에서 뭐라도 발견한 양 집중하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평’ 이라고?”


톡신이 주먹을 쥐자, 손 안에 있던 독액이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웃기고들 하고 있네. 솔직히 말해봐. 왜 나한테 맡기기로 한 거야? 이제 지구에 흥미가 가기라도 했어? 새 세계라도 찾았냐? 낡은 건 필요 없으니까 나한테 떠넘기기로 한 거야? 내가 재활용 전담반인 줄 알아?”


이프리트와 카르타스 둘 다 잠시 눈빛 교환을 했다. 비록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 사이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니가 말해!’


결국 카르타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다, 톡신. 아쿠네이라랑 다오랑 시무르그가..........”


“셋이 전부 널 보내주는 게 어떨 거 같냐고 했거든!!”


갑자기 카르타스의 말을 끊으며 소리친 이프리트를 톡신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 셋이? 왜? 너희 다섯 모두가 그렇긴 하지만, 그 셋은 날 특히 싫어할 텐데?”


“그게 말이지, 그 셋이 널 싫어하는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을 좋아하거든. 그런데 이번에 지구를 보니까 인간들이 널 너어어어어무 좋아하더라? 그래서 인간들을 위해 이번에는 널 보내서 영웅을 선택하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이 나와 만장일치로 통과됐어!”


자기가 뭘 듣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독의 왕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인간들이......... 날 좋아해?”


“그러엄~게다가 너, 그동안 정령도 못 만들게 해서 외로웠다고 그랬지? 그 안건도 나왔거든? 대결 도중에는 힘이 극도로 제한되니까 창조는 못 하겠지만, 이번에 네가 고른 영웅이 뱀한테 이기면 거기서 네 휘하 정령 만들어도 된다고 허락받았어! 대신 정령계에는 데리고 오지 말고. 영웅 훈련시키는 동안 겸사겸사 지구 구경도 하고, 끝나고 정령도 만들고! 손해 볼 거 없잖아, 그치?”


카르타스에게 얼굴이라는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분명 경악으로 물들어 톡신의 의심을 샀을 테니까.


카르타스에게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비유가 아니라 진짜 따가웠다. 카르타스의 몸에서 정전기가 자꾸 튀어나와 자길 바늘처럼 찌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프리트가 사기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때? 톡신?”


조용히 듣고 있던 톡신이 손을 펼치자 나이아드 때와 비슷한 액체 원반이 생겨나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물이 아닌 독이라는 점이었지만.


창만큼 커진 원반에 나타난 지구의 모습에 톡신이 코를 박고 천천히 살펴보는 동안, 이프리트에게 잘했다는 듯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한 카르타스가 귀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마음만 먹으면 행성 표면을 썩은 과일마냥 흐물흐물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독의 정령을 인간이 좋아한다? 왜 내친김에 너도 사실은 물먹는 게 좋다고 하지 그랬나?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치지?”


“말하는 거 못 들었어? 솔직히 거의 맞는 말이잖아! 다섯 중 셋이 지구를 버렸고, 남은 둘이 여력이 안 돼서 자기를 찾아왔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전부 거절당하고 맨 마지막에 찾아왔다 그러면 해주겠냐? 나라도 안 해준다! 게다가 저 녀석, 말은 안 했지만 우리가 지구에 출입금지 시켰던 거 잊었어? 가보지도 못해서 애초에 그 세계가 어떤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뭐 어때? 사이도 안 좋으니까 정에 호소할 수도 없고, 당장 생각나는 게 그거뿐이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런 당장 들킬 거짓말을! 아쿠네이라가 자넬 몇 천 년간 석탄 이라 불러댄 이유를 알겠네, 자네 지능은 석탄만도 못해!”


“듣자듣자 하니까 이게 죽으려고..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한 번 직접 말해 보시든가.....”


두통이 왔는지 머리 양 옆을 주먹으로 꾹꾹 누르던 카르타스가 갑자기 손을 확 떼며 톡신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창에서 눈을 떼고 일어난 독의 왕이 이프리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불의 정령왕은 태초 이레 단 한 번도 자신이 일 대 일로 싸워서 질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야 톡신 잠깐만, 이건 오해야. 잠깐만 멈추......”


이프리트가 더 말을 잇기 전에 달려든 톡신이 그를 와락 껴안았다. 손에 작은 번개구름을 만든 채 던지려던 카르타스가 그걸 보고 강속구를 날리기 직전 투수 같은 자세로 얼어붙고 말았다. 멍하게 둘을 바라보던 그의 몸에서 작은 벼락이 튀어나와 근처 땅에 구멍을 냈다.


“기회 줘서 고맙다........ 그동안 재활용도 아까운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해서 미안해. 나 꼭 이겨서 돌아올게....”


“어? 어, 그래.”


이프리트는 본인이 사기를 친 주제에 이게 진짜 먹힌 게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는 것도 잊은 채 톡신을 천천히 떼어냈다.


“인간들이.......자네.......많이 좋아......하지 않나?”


카르타스가 들고 있던 번개구름을 슬쩍 등 뒤로 숨기면서 더듬거렸다. 그의 기억 속에 말을 더듬은 적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응, 정말이지, 날 이렇게나 사랑해 줄 줄은 몰랐어. 정말 감동이야. 어흑.... 이것 봐봐!”


아직도 공중에서 둥둥 떠 있던 창을 끌어온 톡신이 이프리트와 카르타스에게 보여주며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기저기 가리키기 시작했다.


“여기 회색 건물 굴뚝에서 계속 나오는 까만 연기 있지? 이거 다 독이다? 그리고 여기 인간들이 땅에 막 파묻는 덩어리들 있잖아. 이것도 전부 독이고, 여기 하천에 막 흘려보내는 시꺼먼 물도 죄다 독이야! 얼마나 날 좋아하면 사방을 이렇게 독으로 도배할까.”


“그..러게.”


“이거 다 끝나면 내가 지구에서 정령을 만들 때 굳이 정령이 살 곳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겠어. 벌써 인간들이 사방에 뿌려대는 독이 차고 넘치는데! 캬아~행복하다, 행복해! 날 이렇게 좋아해주는 생물이 있었다니, 진작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일찍 갔을 텐데, 욕 좀 먹었다고 안 간 내가 바보지. 완전 신세계 아냐!”


싱글벙글 웃는 톡신을 어어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프리트에게 카르타스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어떻게 수습할건가?’


‘보고나 있으셔.’


이프리트가 다시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인간들이 바글바글한 지구의 도시를 여기저기 살펴보던 톡신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치? 내가 그랬잖아. 우리도 이럴 줄 알았으면 널 좀 더 일찍 부를 걸 하고 후회했다고. 그런데 톡신, 쪼오금 문제가 있는데, 실은 우리가 이 결정을 내리는 데 회의가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오래 걸려서, 생각보다 좀 늦었거든? 그래서 네가 지금부터 24시간 안에 영웅을 선택해야 돼. 시간이 촉박할텐데 괜찮겠어?”


“24시간? 생각보다 좀 빠듯하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바로 내려가면 돼?”


“아니, 잠깐 앉아봐. 넌 이번에 처음으로 대결에 참여하잖아. 대결 규칙도 모르고...그러니까 그동안 영웅을 몇 번이나 승리로 이끈 이 몸이 노하우 좀 알려줄게.”


“오? 그래? 나야 고맙긴 한데......... 얼마나 걸리는데?”


“에이, 얼마 안 걸려. 어서 앉아봐!”


◉◉◉◉◉◉◉◉◉◉◉◉◉◉◉◉◉◉◉◉◉◉◉◉◉◉◉◉◉◉◉◉◉◉◉◉◉◉◉◉◉◉


“자! 이걸로 끝! 더 궁금한 거 없지?”


“얼마 안 걸리기는 무슨........ 야! 카르타스! 얼마나 지났어?”


구석에서 조그마한 번개를 손에 쥐고 땅바닥에 낙서를 하고 있던 카르타스가 고개를 슬쩍 들며 잠시 생각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지구 기준으로 1시간 정도.....”


“1시간 밖에 안 지난 거야?”


“아니, 안 남았다네.”


“그렇게나 많이 지났어?”


벌떡 일어나는 톡신을 향해 이프리트가 엄지를 치켜 세우며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빈다, 톡신! 잘 선택하고! 우린 그만 가 볼게!”


“야, 잠깐 이프리트! 1시간이면 그래도 영웅 선택할 시간으론 충분할 거 같은데, 같이 가자. 인간계에 내려가기 전에 다른 정령왕한테 인사는 하고 가야지.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데.”


“아아냐아아!!! 지인짜 괜찮아! 시간도 없는데 무슨. 지구시간은 정령계랑 달라. 훅-간다고? 게다가 생각보다 영웅 선택하는 그거, 시간 오래 걸려! 다른 애들한텐 카르타스랑 내가 전해줄게. 그치, 카르타스?”


“응? 어어. 물론이네.”


“들었지, 톡신?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카르타스는 알아서 오고! 바이바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의 지배자는 사방으로 불똥을 튀기며 사라져 버렸다.


“이프리트 이....... 톡신, 나 역시 가보겠네. 잘 있게나.”


“그래, 다음에 또 놀러와. 그땐 내가 환영해 줄게!”


“시무르그가 나는 대신 걷기 시작하면 그때 오도록 하지.......”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중얼거리며 번개의 왕도 천둥소리와 함께 떠나갔다.


손님들이 있던 자리에서 눈을 돌리며, 톡신이 독액 창을 통해 비치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기대된다는 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웃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내려가 보실까.......”


◉◉◉◉◉◉◉◉◉◉◉◉◉◉◉◉◉◉◉◉◉◉◉◉◉◉◉◉◉◉◉◉◉◉◉◉◉◉◉◉◉◉


“다른 녀석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할 셈이지?”


이프리트의 거처가 있는 화산 속,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댄 카르타스가 이프리트를 보지 않으며 물었다.


“설명? 설명을 뭐 하러 해?”


머리카락이 불로 이루어졌다는 것만 빼면, 아름다운 인간 여성과 흡사한 외모를 지닌 불의 상급정령 샐러맨더의 허리에 팔을 두른 채 반신욕을 즐기던 이프리트가 감은 눈을 살짝 뜨며 물었다.


“톡신에게 한 거짓말을 다른 정령이 알면 그나마 지구에 남아 있던 정도 전부 떨어질 텐데. 이프리트. 자네는 정말 지구를 지키고 싶은 건가?”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카르타스? 당연한 거 아니야? 나도 너만큼이나 지구를 아낀다고. 당장 코앞에 닥친 게 대결이니 그저 이것부터 해결하려고 했을 뿐이야. 대결이 끝나면 남는 시간은 200년, 그 정도면 조율할 시간은 충분해. 한 100년쯤 있다 다른 애들에게 말하면 자기 이름 팔아먹었다는 것 정도로 화내진 않겠지.”


“톡신에게 지구에서 정령을 만들어도 된다고 한 건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200년 동안 다른 셋이 마음이 바뀌어서 인간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로 했는데, 막상 내려가 보니 독의 정령이 우글거리는 걸 보면 어쩔 것 같나?”


“그건 나도 아직 몰라. 말했잖아, 시간은 200년이라고? 천천히 생각하자. 급할 건 없어”


“....좋아. 그럼 지구 위의 인간들은 어쩔 생각인가? 독의 정령이 사는 지역이면 당연히 생물에게도 피해를 줄 텐데?”


“아까 지구 꼴 봤잖아. 어차피 벌써 인간이 밀집된 지역이다 싶으면 독 범벅인거, 톡신이 정령을 좀 만든다 해도 문제될 거 없어. 내가 장담하건데, 다른 정령들 때처럼 인간들이 알아서 제어하는 방법을 찾아낼 거야. 너무 심해진다 싶으면 톡신이 알아서 할 테고. 그 정도 분별은 할 수 있겠지.”


“...틀린 말은 아니군.”


“그치? 게다가 솔직히 아까 인간들이 저지른 걸 보니 나도 좀 괘씸하더라. 우리가 그렇게 공들인 세상을 그 꼴로 만들어 놓다니, 멸종까진 아니어도 좀 죽어봐야 지구가 귀한 줄 알겠지.”


“.......... 이게 절대로 새어나가선 안 된다는 사실은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아프리트.”


“내 걱정 하지 말고, 너네 쪽 입단속이나 잘 시켜. 어차피 영웅만 선택하면 중간에 톡신이 사실을 안다 해도 문제없잖아? 한번 선택한 영웅에게서 힘을 돌려받는 건 대결이 끝날 때까지 불가능하니까, 최악의 경우 녀석이 대결을 포기한다 해도 선택한 영웅이 자기 사는 데에서 뱀이 판치게 놔둘 리도 없고. 지금쯤 인간계로 내려갔을 테니 오늘만 버티면 큰 걱정은 더는 거야.”


“내 휘하 중에서 오늘 있던 일도, 내가 갔던 곳도 아는 정령은 단 하나도 없네.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여야 해.”


“에휴........”


한숨을 쉬며 이프리트가 자기 어깨를 주무르던 샐러맨더의 턱을 가볍게 당긴 후 속삭였다.


“너 절대 말 안 할거지?”


“카르타스 님과 무슨 얘기를 하셨나요? 전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역시~넌 센스가 있다니까.”


“피어서 오브 헤븐(Piercer of Heaven:하늘을 뚫는 자)"


작지만 막을 수 없는 번개의 창이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샐러맨더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너무나도 빨리 일어난 일이라, 방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그녀의 배에 뚫린 구멍을 보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통스럽다기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는 표정으로 그녀는 재와 불똥을 공중에 흩뿌리며 그대로 터져 버렸다.


“다음엔 남의 신하를 죽이기 전에 말부터 하는 게 어때?”


“어차피 그대는 내가 처음부터 이럴 줄 알고 있지 않았나.”


“망할 녀석.......”


“이제는 확실히 자네와 나, 둘만 아는 사실이네.”


손을 탁탁 털며 뒤로 돌아서던 카르타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후 말했다.


“그리고 이프리트, 신경 쓰이는 게 있었는데 방금 기억났네. 자네가 톡신이 내려가기 전 설명을 해줄 때, 마음에 걸리던 게 있었어.”


“뭔 소리야? 너무 시간을 오래 끌어서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대로 내려 보냈다가 다시 정령계로 올라와서 다른 녀석이라도 만나면 우리 둘 다 물먹는 거라고. 너도 나만큼이나 물 싫어하잖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네. 자네가 그 동안 맡은 영웅은 전부 정령의 언어를 알고, 이미 어느 정도 정령의 힘을 쓸 수 있던 자가 아니었나?”


“응, 그래서?”


“다오가 그러지 않았나. 지금 인간들은 전부 정령의 언어를 잊었고, 우리가 존재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자네가 설명한 영웅과 기준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이프리트를 보며 카르타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되겠지!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뿐이야!”


“차라리 우리 중 하나가 갔어야 했어. 이번 대결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이미 꺼진 불이야. 그만 투덜대고 톡신을 믿어 보자고. 어차피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만 가보지. 잘 있게.”


“배웅은 안 할 거다.”


카르타스가 돌아간 후, 이프리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목까지 용암에 담궜다.


“그러고 보니 진짜 그 생각을 못 했네......”


용암을 살짝 손으로 떠올려 힘을 불어넣으며 불의 지배자가 조용히 속삭였다.


“크리에이션(Creation:생명창조)”


용암이 부글대며 알 모양으로 딱딱히 굳더니, 조금씩 금이 가다 깨지며 그 속에서 손가락만한 여자아이가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새로운 샐러맨더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이프리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몰랐겠지만, 그 순간 카르타스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독은 과연 누굴 선택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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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5 암유어파더
    작성일
    19.11.03 23:28
    No. 1

    아니 너무 쓰레기 아닌가요? 독을 강제적으로 억압한 주제에 이제 와서 필요하니까 부르고는 속이고 굉장히 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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