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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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견월
작품등록일 :
2018.06.0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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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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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9회 - 기념일과 호랑이

DUMMY

토요일은 수호와 선미가 만난지 오백 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선미가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둘은 늦은 저녁 식사를 약속했다.


수호는 기념일을 위해서 선미가 일하는 강남역 부근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토스카’의 창가 자리를 예약해 두었고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꽃집에 들러서 선미가 좋아하는 프레지아 한 다발을 준비했다.


토요일 밤 강남역 거리는 주말을 즐기러 나온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붐볐고 수호는 정장 차림으로 꽃다발을 들고 강남역 거리를 걷자니 모처럼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빨리 취직해서 선미와 함께 할 여유로운 미래를 계획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에 잠겨서 걸으면서 수호는 강남역 뒷길에 위치한 레스토랑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예약은 만족스러웠다. 테이블들은 옆 자리가 방해되지 않도록 충분히 여유있게 배치되어 있었고 자리마다 한껏 멋을 부린 연인들이 앉아서 소곤소곤 이야기 중이었다. 수호가 예약한 창가 자리에서는 바로 창밖으로 예쁜 상점들의 불빛이 보였다.


선미는 시간 맞춰서 올 수 있으려나, 생각하면서 옆 좌석에 놓은 꽃다발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사람들의 함성 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소리지? 뭔가 길거리가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수호가 무슨 일인가 창밖을 좀 더 잘 보려고 일어설 때에 선미가 레스토랑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베이지색 가벼운 자켓 차림의 선미는 수호 앞자리에 앉아서 숨을 헐떡거렸다.


“오빠! 오빠!”

선미가 도깨비라도 본 듯이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수호를 보면서 숨을 골랐다. 기념일의 조우라기에는 분위기가 영 산만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수호가 놀라서 선미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물었다.


“호랑이가 나왔어!”


호랑이? 무슨 호랑이? 수호의 머릿속에는 어쩔 수 없이 며칠 전에 만났던 국정원 직원이라던 사람이 횡설수설한 내용이 떠올랐다. 호랑이를 봤다고 했던가? 하지만 망원동이 아니라 여기 강남역에?


“정말 본 거야? 뭘 봤는데?”

“잠깐, 나 물 좀 마시고.”


선미는 테이블에 놓인 와인잔에 냉수를 따라서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심호흡을 하고 나서 좀 진정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창밖 거리의 함성, 아니 비명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안돼! 아저씨, 여기 문 걸어 잠궈요! 호랑이가 나왔다고요!”

선미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지르자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이 모두 어리둥절해서 선미를 바라봤다. 깔끔한 양복을 빼입은 남자 종업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수호와 선미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미야, 진정해···”

수호는 우선 선미를 진정시키려고 말하면서 레스토랑 문쪽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리고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문 안쪽으로 짐승의 커다란 대가리가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호랑이다! 동물원에서 멀찌감치서만 봤던 호랑이! 사파리차를 타도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서 애만 태우던 호랑이!


문 가까이에 앉은 손님들이 먼저 호랑이의 등장을 알아차리고 화들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면서 문에서 먼 쪽으로 물러섰다. 어떤 사람들은 기민하게 주방으로 뛰어 달아났다.


마침내 호랑이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자 토요일 저녁 강남역 레스토랑 안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절대로 상상하지 못 했던 이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을 눈치챈 손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호랑이가 위협적인 자세로 어슬렁어슬렁 레스토랑 한복판으로 걸어들어오면서 비명은 잦아들었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에 사람들은 목구멍 안에서 맴도는 공포를 억누르면서 감히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 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테이블 곳곳에서 흐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선미는 어느새 수호 옆자리에서 수호를 바짝 끌어 안고 몸을 떨면서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호의 심장이 고동쳤다. 이게 무슨···


호랑이라는 것이 원래 저렇게 큰 생물인지 수호는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으니. 호랑이의 체구는 네 발로 서 있어도 등허리가 웬만한 성인 남자의 어깨까지 올 정도로 컸다. 흰갈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들이 도열한 털가죽이 움직일 때마다 그 안에서 실룩이는 건장한 근육이 비쳤다. 이상한 것은 커다란 대가리에 박힌 날카로운 두 눈 바로 위에서부터 마치 커다란 눈썹처럼 시작한 하얀 갈기가 등까지 길게 두 줄기로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저렇게 생긴 호랑이도 있던가?


지금 이 순간 레스토랑 안에서 완력으로는 다른 어떤 존재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자일 호랑이는 사람들의 소란에는 무관심한 듯 레스토랑 복판에 선 채로 서서히 고개를 돌려가면서 사방을 탐색했다. 문쪽에 앉은 사람들이 살금살금 레스토랑을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호랑이는 거기에 괘념치 않는 듯 했다.


[오빠, 어떡하지···]

선미가 조용히 속삭였다.

문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호랑이가 버티고 서 있는 통로를 지나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수호와 선미였다. 호랑이의 시야에 든 자리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모두 같은 처지였다.


[글쎄··· 일단 틈을 보고 있는게. 경찰이 오지 않을까···]

수호는 자신 없이 속삭이고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때까지 코를 킁킁거리면서 서 있던 호랑이가 다시 바로 앞 테이블로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테이블의 주인이었던 남녀는 이미 테이블 뒤로 후퇴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호랑이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호랑이는 방금까지 테이블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즐기고 있던 스테이크 접시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그 거대한 대가리를 천천히 도리질하더니 다시 바로 옆 테이블로 천천히 다가갔다. 옆 테이블에는 그 때까지도 두 남녀가 꼼짝 못 하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은 역시 스테이크였다. 이 레스토랑의 시그너쳐 메뉴는 호주산 고급 등심을 쓴 스테이크니까. 수호도 선미가 오면 함께 스테이크를 고를 생각이었다. 사이드로 샐러드하고 와인도.


호랑이는 다시 아까 테이블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테이크에 코를 밖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테이블의 남자는 새하얀 낯빛으로 바로 앞에서 움직이는 호랑이 대가리를 쳐다보고 있었고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현실도피 중이었다. 저러다가 저 사람들 기절하겠다.


이번에도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듯 호랑이는 다음 테이블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제서야 방금 테이블의 남녀는 약간 안색이 풀린 듯 했지만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호랑이가 눈길을 준 다음 테이블의 커플은 자기들 차례라는 것을 눈치채고 호랑이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과감하게도 자리에서 물러나 뒤로 피했다. 하지만 호랑이는 개의치 않는 듯 역시 새로운 테이블 위의 스테이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음에 들었는지 호랑이는 커다란 분홍색 혀를 내밀어서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한 입에 삼켰다. 호랑이가 입을 벌릴 때에 살짝 보인 두 개의 거대한 송곳니에 수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굽기인가!’ 수호는 생각했다. 어쩌면 호랑이는 좋아하는 굽기 정도의 스테이크를 찾고 있던 것은 아닐까? 웰던? 미디움? 레어?


[양념인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수호 옆에 서 있었는지, 종업원이 머리를 숙여서 수호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 테이블만 고기에 굵은 후추소금을 잔뜩 발랐거든요. 대부분 다른 손님들은 양념을 따로 주는 걸 선호하죠.]

그렇군··· 양념을 따질 정도면 배가 그리 많이 고픈 것은 아닌가?

[이 시국에 뭔 소리들 하는 거야? 경찰은 언제 와? 내가 핸드폰으로 신고할까?]

선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속삭였다.


하지만 먹다 만 스테이크 두 접시로 저 큰 덩치가 만족할 리가 없다. 더구나 품격이 있다고 자부하는 레스토랑들은 혀를 내두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조막만한 스테이크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가 커다란 혀로 입가를 한 번 훑고는 다음 테이블로 움직이려 할 때였다.


“거기 서! 호랑이!”

문쪽에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경찰인가? 수호와 선미, 아니 레스토랑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줄기 비친 구원의 빛을 찾기 위해서 문쪽을 바라봤을 때, 거기에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국방색 점퍼를 입은 중년의 국정원 직원, 미지부라고 했던가?


차무송이었다.


차무송은 앞으로 쭉 뻗은 두 손으로 권총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 권총을 호랑이에게 겨눈 채로 차무송은 천천히 레스토랑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호랑이는 차무송의 기척을 듣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경계의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봤다. 등줄기의 흰 갈기가 곧추선 것 같았다.


저 조그만 권총으로 호랑이를 제압할 수 있을까? 호랑이는 권총이 뭔지도 모를 텐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정말로 총을 쏘게 된다면 총알이 저 거대한 짐승의 가죽을 뚫을 수 있을까? 문득 수호는 호랑이가 레스토랑 바닥을 디디고 선 앞발을 봤다. 고양이과 짐승들은 평소에 발 안쪽으로 그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들었다. 저 큰 발 안에는 도대체 얼마나 큰 발톱이 숨어 있을까? 아니, 굳이 발톱이 아니라도 저 거대한 발에 한 대 맞으면 끝장날 것 같다.


그 때 수호는 차무송이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수호씨, 침착하세요! 움직이지 말고!”


여기 보지마, 보지 말라고. 호랑이 자극하지 말고! 수호는 목구멍 안에서 욕지기가 치미는 것을 삼켰다. 왠지 뭔가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 것만 같았다.


호랑이는 이제 관심이 차무송이라는 남자에게 쏠렸는지 어슬렁어슬렁 남자를 향해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짐승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높이 솟은 등근육이 실룩이면서 흰 갈기가 움직였다.


“오지 마! 쏜다! 쏜다고!”


아무런 계획 없이 권총만 믿고 들어온 건가? 차무송이 짐승이 접근하자 당황한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남자의 고함을 들은 호랑이가 기분이 상했는지 모가지를 곧추 세우고 표효했다. 깊숙한 동굴을 울리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가 레스토랑 안을 가득 채웠다.


“쾅!”

순간 차무송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선미를 포함한 레스토랑 안의 선남선녀들이 비명을 질렀다. 일났다. 수호는 생각했다.


차무송에게 다가가던 호랑이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뒤에서 봤을 때에 호랑이가 별다른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당황한 차무송이 한 발을 더 쏠까 어쩔까 주저하는 순간 호랑이가 차무송을 덥쳤다.


“쾅! 쾅!”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지만 이미 차무송은 호랑이의 거대한 몸집 아래에 깔려서 보이지 않았다. 죽었나? 수호와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생각했다. 호랑이든 차무송이든. 물론 적어도 호랑이는 죽었기를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호랑이는 바로 자세를 고쳐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돌려서 다시 레스토랑 가운데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일어난 자리에 댓자로 뻗어 있는 차무송이 보였는데 피가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깔린 충격으로 기절한 건가?


[오빠, 오빠]

선미가 숨이 넘어가는 조그마한 소리로 수호를 불렀다. 이런, 호랑이가 이번에는 곧장 수호와 선미가 앉은 테이블로 오고 있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아직 음식도 없는데 왜? 긴장한 종업원의 두 손이 수호의 양 어깨를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종업원은 뭔데 하필 우리 자리에서 왜?


호랑이가 한 걸음 두 걸음을 떼는 짧은 순간에도 수호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군대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상관. 아직 다 못 갚은 학자금 대출. 선미와 처음 만난 날. 선미를 지켜야 한다. 어떻게 지키지? 아사녀의 아름다운 모습. 아사녀? 아사녀는 왜? 아민, 아오랑···


마침내 호랑이는 수호의 테이블 바로 앞에 멈춰섰다. 바로 앞에서 보니 대가리 크기가 테이블만해 보였다. 그리고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검고 깊은 두 짝의 눈.

[엉엉 어떡해 오빠···]

[침착, 침착해···]

[흑흑 손님 어떡하죠? 이 자리에는 스테이크도 없는데]

[...?]


그 때였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레스토랑으로 굴러 들어온 것은.

저것은? 수호는 호랑이 뒤에 우뚝 선 검은 코트의 남자를 바라봤다.


대사 집안의 집사 아오랑이었다.


아오랑은 호랑이 바로 뒤에서 오른손에는 그 검정색 플루트 케이스를 든 채로 겁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사층인데 어떻게 창문으로 뛰어들어왔지?


“그만 가라. 서로 피를 보기 전에.”

아오랑은 마치 호랑이와 말이 통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나지막히, 하지만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은 이 인상적인 등장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여자들은 문 앞에 큰 대자로 누워있는 이상한 중년 아저씨 대신 새로 등장한 잘생긴 남자가 뭔가 해내리라는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왠지 남자들은 저 남자도 권총 아저씨 옆에 볼품없이 나란히 눕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었다. 그게 이 난관을 빠져나가야 할 큰 그림에서는 그리 좋은 일일리 없겠지만.


호랑이는 흠칫하는 듯 했지만 곧 아오랑에게 뛰어들 듯한 태세로 몸을 낮추고 으르렁거렸다. 아오랑은 호랑이와를 똑바로 노려본 채로 오른손의 플루트 케이스를 열려는 듯이 보였다.


“그만 해!”

그 때 누군가가 외쳤다. 누구지? 수호는 잠깐 생각했다. 답은 나왔다. 수호 자신이었다. 내가 왜? 죽으려고 환장했나?

“이제 그만 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호가 다시 외쳤다. 왠지 자신이 있었다. 호랑이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자신. 더 나아가서 호랑이가 내 말을 듣고 물러날 거라는 자신.


수호가 외치는 소리에 호랑이도 아오랑도 놀란 얼굴로 수호를 바라봤다. 여자들의 마음은 곧 펼쳐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훈남과 호랑이의 접전을 보지 못 할 것 같은 불안감과 그래도 훈남이 저 잘생긴 얼굴에 상처를 입지 않고 곱게 살아 남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감 사이에 오락가락했다. 남자들의 마음은 자신도 여자친구에게 저 멍청하게 소리지르는 남자처럼 용감한 모습을 보여야 하나 아니면 조신하게 살 길을 모색해야 하나 오락가락했다.


놀랍게도 호랑이는 마치 수호의 말을 알아듣겠다는 듯 그 커다란 덩치를 실룩실룩 움직여서 문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마주 선 아오랑을 완전히 무시하는 듯 돌아서 지나쳤다. 그리고, 흔들리는 긴 꼬리를 끝으로 마침내 문밖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긴장이 풀린 수호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 앞이 캄캄해졌다.


***


짧은 암전이었다.


수호가 눈을 떴을 때에도 여전히 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 호랑이가 문 밖에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수근대고 있었고 아오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미는? 선미야 괜찮아?”

수호는 퍼뜩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선미는 자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오랑이 선미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 손을 선미의 목에 대고 맥을 짚는 듯한 동작을 했다.

“그냥 기절했네요. 별 일 없을 겁니다. 여자친구분이신가 보죠?”

“아, 네···”


“손님 호랑이에요?”

그 때까지 옆에 서 있던 종업원이 수호에게 물었다.

“네? 그럴리가요?”

“아니, 손님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저 호랑이 안 키워요. 살 돈도 없어요.”


그 때에 선미가 부시시 잠을 깬 듯이 눈을 떴다. 마침 고개를 숙이고 선미의 맥을 짚고 있던 아오랑과 선미의 눈이 마주치자 선미는 낯선 남자의 얼굴을 게슴츠레 바라봤다.

“으음··· 오빠···날 구했어...”

선미가 아오랑의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 잡고 입을 맞추려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야, 나 여기 있어! 그 사람 나 아니라고!”

수호가 당황해서 소리 지르자 선미는 체념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오빤줄 알았지···”

그러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선미의 입꼬리가 싱긋 웃는 듯 했다. 얘가 정신이 나갔나...


작가의말

내일 못 올릴 것 같아서 하루 일찍 올립니다. 미리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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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회 - 선미의 이야기 (2) 18.10.24 151 4 14쪽
33 33회 - 선미의 이야기 (1) 18.10.21 20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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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회 - 낚시터 청수원 (2) 18.10.13 166 5 6쪽
28 28회 - 낚시터 청수원 (1) 18.10.11 199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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