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여유.
출근하는 길이다.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봄을 느낀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에서 완연한 봄인 것을 알았다.
지금도 지나치는 창가사이로 노오란 개나리가 피었다.
“하, 좋구나. 올해도 시작이네.”
작은 혼잣말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가 앉은 버스 뒷자리엔 사람이 없어 개의치 않았다. 그리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무릎에 올렸다.
노트북 화면에선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다시금 덮었다.
맨 날 하는 일이 컴퓨터 화면을 보는 일인데. 또 이러고 있네.
일은 그만. 일 말고 이 시간을 즐기자.
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그들과 속하고 그들과 호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나는 항상 자리의 끝이나 가장자리에 앉아 많은 것들을 지켜본다.
물론 지켜본다고 해서 싸이코패스는 아니다.
그냥 사색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말수도 많은 편이지만,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 내가 오늘도 버스를 타고 출근하며 사람들을 지켜본다.
차를 타고 출근하면 근 20분이면 갈 거리지만, 버스로는 1시간.
그러나 그 버스에 앉아 음악과 생각, 주변 풍경에 마음을 두고 천천히 가는 길을 선호한다.
빨리 빨리라는 우리네 인생과는 정반대로 살고 싶은 게 나의 꿈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버스 안이 혼잡해졌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다.
지나치는 길이 대학교 앞이라 당연히 많아지는 현상이다.
이때쯤 되면 빡빡한 버스 환경에 사람들은 숨쉬기 조차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도 봄내음은 계속이다.
노란 개나리 옷.
분홍색 원피스.
짧은 치마. 찢어진 청바지.
학생들이라 그런지 발랄해서 좋다.
그런 내 시야에 원치 않던 것이 보였다.
아주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다.
검은 패딩을 입은 녀석.
그 녀석이 노오란 개나리를 노린다. 아직 학생이라 그런지 녀석의 손길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안간힘을 쓰며 벗어나려는 어린 여학생의 표정이 가관이다.
도와줘야지.
도와줘야 한다.
저런 파렴치한 놈에게는 법의 지엄함을 보여야 한다!!
나쁜놈!!
나는 나서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무언가가 내 시야에 잡혔다. 혼잡한 버스 안에 불쾌한 풍경이었다.
놈은 어느 중년 여성의 클러치백에서 지갑을 빼내가려 한다.
난, 순간 당황했다.
특히나 소매치기를 하는 녀석은 한 놈이 아니다.
놈들은 팀으로 움직인다.
그것도 3명이다.
특히나 후미에서 망을 보는 녀석의 눈썰미가 매섭다.
품안에 손을 쿡 찔러 넣은 모양새가 작은 주머니칼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정문에 하나.
후미에 하나.
소매치기 선수 하나.
총 3명이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난, 식은 땀을 흘렸다.
방금 놈과 눈이 마주친 듯 싶했다. 난 고개를 푹 숙여 비겁함을 보였다.
놈이 웃는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모양새가 이 순간을 즐기는 듯 싶었다.
아무리 몸쓰는 것에 이골이 난 나라도, 놈이 찌르는 칼침에 바람구멍이 날 것은 분명했다.
특히나 혼잡하고 몸 하나 빼기 힘든 이 시점에 몸을 날리는 행동은 죽자는 것이다.
난 고민했다.
오늘이 무슨 운수좋은 날도 아니고.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도, 저 패딩 녀석은 노란 개나리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유린한다.
“쓰벌!!”
난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패딩 녀석의 아구창에 주먹을 날렸다.
우탕탕!
-우아~!
-싸움났다!
-기사양반!! 경찰서!!
-도대체 뭔 짓이래!! 사람도 많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입방아를 떨었다. 하지만 난 검은 패딩 녀석을 짓누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쓰벌!! 너! 잘 만났다!!”
“뭐야?! 너, 왜 그래!!”
“뭐긴! 내 돈 떼어먹고. 잘 살줄 알았냐! 쓰발아!!”
패딩과 난 버스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잠시 뒤 경찰서.
버스는 통째로 경찰서 정문을 통과해, 모든 사람을 하차시켰다.
오늘 폭력사건의 목격자가 이들 전부였기에 참고인 자격으로 잠시 내린 것이다.
강력반 형사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을 폭력행위에 대한 용의자로 입건합니다.”
난 그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들며 이렇게 말했다.
“수고들이 많으십니다. 저는 시청 지능범죄 수사대 마영찬 경위입니다.”
“네?”
“저기! 패딩녀석은 성범죄자고. 저기! 세 사람은 소매치기입니다. 핸드폰으로 현장을 촬영했으니 검거하시고 나머지 시민들은 돌려보내세요.”
“........”
형사들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신분증을 확인하곤 '충성'이란 경례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나는 그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긴 후, 버스에 올랐다.
이제 다시 출근해야지.
사람들은 나를 새라고 부른다.
그것도 품위 없이 부르는 이름인 짭새라고 부른다.
나는 날지는 못하지만 세상 나쁜 놈들을 잡아먹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벌레를 쪼는 새처럼, 나도 벌레들을 잡아들인다.
내 이름은 마영찬.
서울시경 지능범죄수사대에서 하루 종일 컴터만 지켜보는 게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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