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모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마음의음식
작품등록일 :
2018.06.14 16:53
최근연재일 :
2023.01.07 14:13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6,302
추천수 :
32
글자수 :
171,049

작성
20.03.06 14:14
조회
105
추천
0
글자
10쪽

재영이의 일기 2화.

DUMMY

2019. 10월의 어느 날.


비가 보슬보슬. 오늘은 막걸리 먹기가 딱,이다.


어디? 번개가 없을까?


쓸 때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때는 비오는 수요일. 퇴근을 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가을비. 빈둥거리는 노총각에게 가을비는 이처럼 처량할 수가 없었다. 해서 손에 잡히는 전화번호를 눌러 이곳저곳의 지인들을 호출했다.


그러나.


1번 시도.


“어! 난데!”

-응. 재영아, 미안.

“야?!”

-뚝.

“이런! 씨불. 아직 말도 안했는데.”


2번 시도.


“영철아!”

-뚜. 뚜. 뚜.

“이런!”


3번 시도.


“희진씨!”

-저, 남친하고 있어요. 재영씨, 불편해요.

“아....!”


슬펐다. 아무 말도 안했는데. 냉대 받았다. 나란 사람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였나?


같이 놀 때는 좋다고 해놓고는....


“후우~”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해서 마지막 개구진 놈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랬더니.


“술 한 잔하자.”

-어, 재영아. 미안.

“왜? 어디 좋은데 라도 갔냐?”

-응. 산이야.

“왜? 중이라도 되려고?”

-응. 나, 머리 깎고 산에 왔어. 한동안 안내려 갈 거야.

“뭐래?”


아..... 이거 뭐래.

뭔 날이 이래.


참혹한 날이었다. 하늘에서 보슬보슬한 가을비는 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일을 찾아 떠나버렸다.

나는 버려진 짐짝 마냥 사무실 한 구석에서 눈물을 글썽하다가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떴다! 번개가 떴다!

막걸리 벙이다.

사진 모임에서 막걸리 벙을 한단다.

하지만 워낙에 먼 거리라 특별히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해서 모인 사람 4명.

나를 포함한 벙주인 두 살 많은 누나. 그리고 그 누나를 좋아하는 꼰대형. 그리고 별로 눈길도 안 가던 그 여자에, 이렇게 4명이서 막걸리 집에 모이기로 하였다.


나는 부푼 가슴을 안고 회기역 먹자골목을 찾았다.

그곳은 주로 학생들이 출입하던 학사주점. 예전 대학시절을 추억하기에 딱인 그런 곳이다.


나는 그곳에 제일 먼저 찾아가 사람들을 기다렸다.


딸랑.


문이 열렸다.

나 혼자 한참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한 사람이 찾아들었다.

흰 원피스에 단아한 헤어스타일. 짧은 단발머리가 어울리는 여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난, 그 애를 보고 처음으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어, 어서와. 은희. 일찍 왔네.”

그러자 그녀가 웃는다.

“네. ‘재영, 왕멋져’ 오빠.”

“아, 그래.”


쪽팔렸다.

이때만큼 내 아이디가 저주스러울 때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그녀는 계속해서 ‘왕멋져’를 난발했다.

조금 전 메뉴판을 들고 온 알바가 베시시 웃는 얼굴엔 분명 비웃음이 있었다.


“은희야~ 제발. 그만.”

“네? 왜요? ‘왕멋져’ 오빠. 제가 불편하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불편해서 그래.”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게 아니라. 개구진 녀석을 원망하던 중이다.”

“왕멋져 오빠. 개구진 오빠도 오라고 해요. 그분도 보고 싶다.”

“됐다그래. 그놈은 산에서 나오지 말아야 해.”

“네?”


우리 이야기는 산을 올랐다. 하지만 그 덕분인지 처음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곤 더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내 앞에 두 살 많은 누나. 그 옆에 그 누나를 좋아하는 꼰대형.

그리고 이, 천진난만한 은희.


우린 부슬부슬 떨어지는 가을비를 안주삼아 살아온 삶을 이야기했다.


가게 안에 손님은 우리뿐이고.

조용히 흐르는 음악은 광석이형.

그 형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면 막걸리는 내 입가에, 마음에 가득 찼다.


그렇게 불거진 얼굴.


내 옆에 그녀가 작은 새처럼 재잘거린다. 그것과 반대로 마주앉은 누나를 향해, 꼰대형이 지분거린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도와줄 순 없었다.

모임이라는 것이. 또, 번개라는 것이, 복불복이기에 그날. 누가 와서 내 옆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술자리의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술자리를 즐겼다.

특별히 이곳이 모인 여자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야 조금 이야기를 나누는데, 좋아할 일은 만무했다.

그만큼 나는 무미건조한 사람.

아니, 연애에 대해선 좋아하는 선이 있기에 무조건 여자라고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뭐, 나도 남자다보니 여자에 대한 욕망은 있지만, 나이가 있다보니.....


쳇! 운동으로 풀자.

나이먹고 아무나 사귀지 말자.

인생 피곤해진다.


아무튼, 막걸리와 동동주, 3병이나 드나들고,

주인장이 보내준 서비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조용한 술집에 매출을 올려주니 고마운 것이다.


거기다가 주인장 아주머니의 립써비스까지.


“어머! 교수님이 학생들과 왔나보네.”


주인장 아줌마. 나를 학생으로 오인했다. 거기다가 내 옆에 은희도 어려보이는 얼굴이라 딱, 그리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나는 복학생.

내 앞에 꼰대형은 교수.

마주 앉은 누나는 조교정도.


“하하하. 교수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웃었다.

내 앞에 꼰대형의 얼굴이 썩는다. 그 형도 나랑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그는 교수. 나는 학생으로 평가 받았다.

거기다 한발 더 나아가 아주머니의 립써비스는 계속되었다.


아주머니는 나랑 은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마디를 더 하셨다.


“어머, 너는 이쁘게 생겼다. 여자는 말이야. 남자를 잘 만나야해.”

그리 말하며 나를 지목하셨다.

“저런 남자는 잡아야 해. 안 그럼 금방 팔린단다.”


그 말에 웃었다. 우릴 학생으로 봐준 것에 기뻤고. 왠지 선택 받은 느낌이라 싫지 않았다.


해프닝.

그저 술집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것이 좋았고, 가을비가 안주가 되어 취했다.


술에 푹, 젖었다.


나도, 은희도, 꼰대형도, 누나도.


그리고 집에 가는 길.


그녀가 비틀거린다. 막걸리와 동동주의 위력이 나왔다. 나또한 얼큰하게 취해 졸렸다.

해서 이대론 안 되겠다싶어, 그녀를 택시에 태우고 바래다 주었다.


“은희야, 집이 어디야??”

“아... 저... 그게.”

“그래, 어디냐고?”

“저희 집은.... 반포....”

“아, 그래. 기사님. 반포요.”


택시는 달렸다. 회기에서 반포까지 꽤 긴 거리를 달렸다. 우리집과는 먼 거리지만, 오늘은 그래야 했다.

털컹.

택시가, 방지턱에서 털컹거렸다. 가운데 앉은 그녀가 앞으로 쏠렸다. 나는 졸다가 깨어나 앞으로 튀어나가는 그녀를 붙잡았다. 그리곤 몇 번이나 계속된 방지턱에서 손을 뻗어 그녀를 보호했다.


그런데!


물컹.

뭔가 닿는다.

뻗은 팔뚝으로 그녀의 신체가 닿는다.

난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도 남자라는 사실을.

거기다가 풍겨오는 그녀의 향기가 나를 유혹했다.


아.....!

뻗은 손등을 뒤집으면 손아귀에 뭐가 걸릴까??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취해서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나는 그녀를 붙잡으며 자석에서 떨어지지 않게 도왔다.


참, 힘들었다. 물론 좋기도 했다.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그녀가 여자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술집에서 사장님의 한마디가 나와 그녀를 연인처럼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다왔습니다. 반포 현대아파트입니다.”


기사님의 말에 짧은 환상은 깨어지고 다시금 현실.


“은희야, 괜찮아? 내리자. 다왔다.”

“네. 왕 멋져 오빠.”

“아.....”


쪽팔렸다. 기사님이 쳐다봤다.


난, 은희를 부축해서 걸었다. 걷다보니 술을 깨는지 잘 걷는다. 그리고 그녀의 집앞.


“재영 오빠. 고마워요. 너무 멀리왔죠. 여기 택시비.”


그녀가 주섬주섬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 5만원 짜리가 잡혔다.


그걸 받으면... 가오가.. 짧은 갈등이 지나쳤다.

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되었다. 택시비는 충분히 있어.”

“그래도. 미안한데.”

“아니야. 되었다. 이제 술다 깼지.”

“네. 이제 집에 들어가도 괜찮아요. 애들도 다 들어왔겠다.”

“애들?”

“네. 중학생 짜리 하나랑, 초등학생 하나 있어요.”

“아.... 은희, 너...”

"네?"

"아니다."

"왕 멋져 오빠. 오늘 고마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 그, 그래...”


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 뛰어갔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쳤다.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뭐,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사진을 배우려고 왔지, 연애 하려고 온 것이 아니잖아.


'오해를 한 내가 병신이지.'


그리 생각이 들자, 걸어가는 그녀의 뒤통수를 보며 소리쳤다.


“조심히 들어가! 오늘 즐거웠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들었다. 난,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큰길가로 다시금 걸어 나왔다.


그리곤.


‘아! 신랑도 있겠다. 아파트 단지가 울리도록 크게 소리쳤는데. 쫓겨나는거 아냐?’


괜히 미안해졌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택시를 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택시비를 받을 걸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자, 내가 병신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재영, 왕멋져는 무슨?

그저 중간만 가도 좋겠다...


2019년 10월의 어느날.


그날은 비가 보슬보슬하게 내렸다.


아! 아직 운영진 된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술 먹는 얘기만 했네.


그건 다음에...


뭐, 일기니깐. 읽는 사람도 없겠다.


그건 조금 슬픈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단편모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2 애로배우3 23.01.07 31 0 12쪽
41 애로배우2 23.01.07 32 0 5쪽
40 애로 배우. 23.01.07 31 0 8쪽
39 날개 꺾인 천사. 22.05.07 46 0 7쪽
38 풍장 22.04.30 34 0 6쪽
37 영찬이야기2 21.08.19 59 0 11쪽
36 영찬이 이야기 21.08.19 66 0 13쪽
35 재영일기 그후 21.08.19 58 0 5쪽
34 요정 +1 21.05.16 76 1 4쪽
33 스승님과 풍뎅이 21.05.16 74 0 5쪽
32 골목길 사랑. (극작) 21.04.17 103 0 61쪽
31 뽕알친구. 21.02.19 106 0 7쪽
30 만약에~ 신을 만났다. 20.04.07 182 1 4쪽
29 재영이의 일기 마지막. 20.03.06 227 0 12쪽
28 재영이의 일기 4화 20.03.06 126 1 12쪽
27 재영이의 일기3화 20.03.06 105 0 12쪽
» 재영이의 일기 2화. 20.03.06 106 0 10쪽
25 1화. 재영이의 일기. (로맨스) 20.03.06 176 0 6쪽
24 슬픈 시가 만들어준 이야기 19.12.03 137 0 8쪽
23 짐승을 유혹한 댓가. 19.11.28 171 0 15쪽
22 기묘한 이야기. 19.11.01 197 0 4쪽
21 문지방. +1 19.11.01 305 1 2쪽
20 늑대인간 19.11.01 376 0 15쪽
19 여행 19.11.01 364 0 29쪽
18 양심이라는 아이. 19.11.01 236 0 2쪽
17 나는 애로 배우. 19.11.01 202 0 7쪽
16 수박과 정류장 19.08.27 134 0 3쪽
15 구미호, 늑대 인간. 그리고 3편. 19.07.20 69 0 10쪽
14 요마의 여자. 미실2 19.07.20 118 0 6쪽
13 내 이름은 요마1 19.07.20 142 0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