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자, 귀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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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뇨기
작품등록일 :
2018.06.1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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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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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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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기 때 흔히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고등학생’이라는 시기.

이 시기가 되면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학교 선생님까지 공부해서 좋은 대학가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하신다. 물론 몇 몇 아이들은 이미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꿈도 없는 채 꼭두각시처럼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대로 무의미하게 공부할 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한 번 밖에 없는 청춘을 공부로 낭비하고 싶지 않은 무리, 이 무리에 속한 게 바로 나, 김기정이다.



남들이 야간 자율 학습을 하면서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하고 있을 때, 나는 학교를 벗어나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청춘을 낭비하지 않게끔 여행을 갔을 때의 경비로 쓰기 위함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다른 이유란 바로 귀신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기 위해서이다. 뜬금없이 귀신을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니까 이해가 가지 않을 텐데, 그걸 위해 내 과거에 대해 설명하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렸을 때, 나는 남들과 원만히 지낼 정도로 대인관계가 나쁘지 않은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친구들과 같이 놀기 바쁘고, 필요한 공부를 하고, 소꿉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며 반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 또한 있었다.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지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크흠. 말이 딴 곳으로 샜다고 생각하면 미안하다.

그런 별 볼일 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 나를 변화시킨 계기가 된 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빠와 함께 TV에서 나오는 공포 영화를 보던 날이었다.

아빠의 취미는 공포 영화를 보는 것이다. 쉬는 날이면 하루에 한 편씩 꼬박꼬박 챙기면서 볼 수준이었다. 물론 엄마는 아빠의 취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날은 유독 아빠가 집에 일찍 돌아왔다. 일찍 온 아빠를 맞이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렇게 일찍 퇴근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얘기해주었다. 그 때 당시 나는 아빠랑 같이 많이 있을 수 있다고 좋아했다. 아빠는 곧바로 씻고 저녁을 먹은 뒤, 나에게 이리로 오라면서 같이 TV를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을 알려주는 뉴스를 보는데, 아빠와 나의 표정은 꼭 닮을 정도로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빠도 내 표정을 보고 재미없는 것을 눈치 챘는지 다른 채널로 옮겼다. 그 채널에서 보여준 것은 바로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를 사랑하는 사이였다. 둘이 남부럽지 않게 알콩달콩하게 살고 있었는데, 여자 주인공보다 어여쁜 여자가 다른 곳에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마을 안에 있는 남자란 남자들은 그 여자가 이사 오기 전에는 여자 주인공을 여신처럼 우러러봐서 남자 주인공을 부러워했지만, 다른 여자가 온 뒤에는 입장을 바꾸었다. 여자 주인공을 청순하고 어여쁜 여자라고 한다면 이사 온 여자는 때론 청순, 때론 섹시, 때론 가련, 때론 매력적인 등 팔방미인이라고 칭할 만 했다. 아니, 실제로 마을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불렸다.

이에 따라 남자 주인공도 그 이사 온 여자를 보자마자 반하게 됐다. 평소 같이 여자 주인공한테 행동한 뒤에 몰래 이사 온 여자를 만나 온갖 구실을 대며 이야기를 했다. 그런 나날이 며칠이 지나자 남자 주인공과 이사 온 여자는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였다. 여자 주인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 주인공에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자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고 이내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간이 흘러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따로 불러낸 뒤, 이사 온 여자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이제 그만 만나자.’라고 이야기하였다. 그 얘기를 듣고 여자 주인공은 납득을 할 수 없었지만, 이사 온 여자의 손에 반지가 껴지고 둘이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보고 물러갔다. 자신을 각별히 아끼던 남자 주인공이 배신한 것에 대해 분노와 증오가 가득 올랐지만, 그와 더불어 이사 온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어 자살하였다. 여자 주인공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마을 동네방네로 퍼져 남자 주인공에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은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를 아껴줘야 한다는 생각에 잠깐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창 자고 있던 이사 온 여자한테 누군가가 다가왔다. 잠에서 깨지 못한 그녀는 악몽이라도 꾸는 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깨달아 일어났다. 그 순간, 소복에 검은 긴 생머리를 한 귀신이 코에 닿을 듯 눈앞에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헐레벌떡 뒤로 움직여 벽에 기대었다. 한을 품은 여자 주인공은 죽어서 처녀 귀신이 되어 이사 온 여자를 저주하고 괴롭히려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매일 같이 밤마다 나와서 괴롭혔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이사 온 여자는 자살을 선택하고 남자 주인공은 홀로 남았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어린애가 보기엔 자극적인 내용이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영화의 내용을 뒤로 미룰 정도로 소복과 검은 긴 생머리의 귀신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어여뻐서 내 뇌리 속에서 도저히 떠날 기마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보통 콩깍지라고 해야 하나?

어떤 종류의 귀신인지 궁금한 나머지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아빠. 저 귀신은 무슨 귀신이에요?”

“저 귀신은 말이지, ‘손각시’라고 불리지만, 흔히들 처녀귀신이라고 부른단다. 영화의 내용처럼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되어 자기 또래의 다른 처녀들을 괴롭히는 귀신이란다.”

‘손각시’, ‘처녀귀신’ 이 두 단어의 울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귀신에 대해 푹 빠져들었다. 귀신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챙겨봤고, 도서관에서 귀신에 대한 서적이란 서적은 다 찾아보고,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에 찾아가는 등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이런 유별난 행동 때문인지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마저 기겁한 나머지 나와 멀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조차 나를 꺼려하게 되었다. 어차피 그 여자아이한테는 더 이상 호감은 없었기에 잘 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귀신을 좋아하는 유별난 나한테도 끝까지 남아주는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댔지만, 결론을 말하면 나는 귀신이 좋다. 그것도 처녀귀신이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현재 나는 사람들이 북적북적 많은 식당에서 서빙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좀 전에 말했다시피 야간 자율학습 대신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하고 있는 것인 만큼 대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러 아르바이트 가운데 몸이 편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있었지만, 돈을 쓸 곳이 많은 관계로 좀 힘들더라도 시급이 높은 서빙 아르바이트를 선택하게 됐다. 그래서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사장님에게 많이 혼났지만, 지금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그런지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그 덕에 사장님이 나를 많이 챙겨주시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 시간대가 끝나자 식당에서 북적이던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가 한적한 식당으로 변모했다.

조금 있으면 식당 문을 닫을 시간이니 더 이상 오는 손님도 없었다. 이제는 손님들의 흔적을 치우고 뒷정리만 마무리하면 퇴근을 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서빙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식당 안을 청소하자 금세 끝났다. 동시에 주방 쪽과 사장님 쪽에서도 마무리를 지었다.

“좋아! 다들 오늘 고생 많았고 집에 가서 푹 쉰 다음에 내일 보자고. 그럼 해산!”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마치고 지정복인 앞치마를 벗은 뒤 곱게 접어 서랍 안에 넣고 가게 안을 빠져나가 퇴근했다.

으아~ 오늘도 힘들었다.

기지개를 쭉 펴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말을 걸었다.

“이제 끝난 거야? 오늘도 고생이 많네.”

“고생은 뭘. 몇 달 정도 하니까 이제는 괜찮아. 그나저나 야자 끝나고 집 가는 길이야?”

“뭐··· 진작 끝났지만, 너랑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그래? 그럴 거면 미리 연락하지. 괜히 너 혼자 있기 심심했을 텐데······.”

“괜찮아. 백화점 안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 정 미안하면 다음에 맛있는 거라도 사주든가.”

“알았어, 알았어. 그럼 더 늦기 전에 집에나 가자.”

“그래.”

퇴근 시간에 맞춰 나를 기다려준 이 여자아이는 소꿉친구인 ‘임지수’이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서 살고 있던 친구로서 같은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쭉 같이 나왔다. 초등학교 때 내가 귀신을 좋아하게 되었어도 곁에 남아준 소중한 친구이다. 남을 잘 배려해주고 돌봐주는 시원시원한 성격 덕에 주위에서 인기가 끊이질 않는 인기인이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인기가 많은 건 외모도 한 몫 하는 모양이었다.

비단결 같이 찰랑거리고 부드러워 무심코 손 댈 수 없는 긴 흑발,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 올곧은 눈망울, 신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비율의 석상 같은 날카로운 콧대, 누구라도 한 번씩 볼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입술, 나올 곳은 나오고 빠질 곳은 빠진 몸매까지 완벽 그 이상의 여자였다.

아직도 이런 애가 왜 내 소꿉친구로 남아있는지 전대미문이지만, 생각해봤자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 진작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내고 있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하루 동안 있었던 사소한 일에 대해서 주절주절 떠들며 가는 것이 나와 지수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별 거 아닌 거라도 이야기하다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법이다.

이야기소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집 앞에 도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던 것을 멈추고 ‘내일 보자’라는 인사를 마무리로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루의 노고를 치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샤워를 하고 시원한 콜라를 마신다. 아저씨들이 회사에서 퇴근한 후 피곤에 찌든 상태에서 마시는 맥주와 같다고 보면 된다.

키야~ 역시 콜라만큼 좋은 게 없다니까. 목구멍 안쪽으로 강렬하게 톡 쏘는 이 탄산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달콤함이란 정말 끊을 수가 없단 말이지.

누가 들으면 아저씨 같다고 하겠지만, 딱히 부정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으면 장땡이지.

콜라를 들고 TV 앞으로 이동하여 소파에 앉는다. 아빠는 피곤해서 먼저 주무시고 계시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신다. 그러니 아무도 보지 않은 TV를 틀어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채널로 옮겼다.

TV에서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공부하던 때와 다른 엄청난 집중력이 발휘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훅 흘러버리곤 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거다. 아마 게임할 때 보통 그럴 테니까.

귀신 관련 프로그램이 끝나자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의 초침은 벌써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크··· 벌써 10시잖아. 방에 들어가서 귀신 관련 서적이나 좀 보다가 자야겠다.

리모컨을 통해 TV를 끄고 소파에 내던지고서 방으로 이동했다. 방 안 책상 위에 있던 서적을 집어 들어 침대 벽에 기댄 상태로 읽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이 시간에 들려오는 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까까지 같이 하교하던 지수의 얼굴이 나를 반겨줬다.

“안녕?”

“아까까지 같이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인사 하냐?”

“그래도 다시 보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한데······.”

“그럼 인사하는 게 맞겠지?”

“하아··· 그래, 그래. 안녕.”

“응.”

지수랑 얘기하다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얘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느낌이란 말이지. 뭐, 그래도 별 상관없지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찾는 건 아니잖아.”

“그렇지.”

“그러니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지수는 자기 방 창문을 통해 뛰어넘어 내 방 창문으로 통과하여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항상 쓸모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매번 보는 거지만 정말 조마조마 하다니까. 그나마 지수가 운동 신경이 발군이라 다칠 염려가 없지만 만약의 일이란 게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흐음~ 들어올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남자애 방 치고는 깔끔하단 말이지.”

“방이 깔끔해야 언제든지 귀신이 왔을 때 편안하게 쉬고 갈 수 있게 대비한 거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콧대를 높이니 질린 표정을 짓는 지수는 포기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그런 부분만 빼면 너도 참 괜찮은데.”

“응? 뭐라고?”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지수가 뭐라 속삭이며 혼잣말을 했지만 알 수 없었다. 이런 건 유연하게 넘어가주는 게 예의겠지.

“그나저나 자기 전엔 항상 귀신 관련 서적을 보네. 질리지도 않아?”

지수의 질문에 나는 열의를 불태우며 말했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전혀 질리지 않아. 아니, 오히려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으니 완전 흥분된다고.”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좀 진정해. 거리에서처럼 집에서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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