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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레전드급 낙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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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
작품등록일 :
2018.06.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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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DUMMY



라카차에게서 지옥 멧돼지의 대략적인 위치만 들은 후, 나는 바로 출발했다. 물론 혼자서.


= 이진혁님, 퀘스트를 발주해드리긴 했지만 지금 당장 필드 보스를 잡으러 갈 필요가 있을까요? 조금 더 이 주변에서 성장을 도모한 뒤에······.

“필드 보스?”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단어가 나왔기에, 나는 크리스티나의 말을 끊고 물었다.


= 네. 그 오크 토착민이 말한 지옥 멧돼지에 대한 증언은 인류연맹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필드 보스인 헬리펀트(Hellephant)와 일치합니다.

“필드 보스란 게 뭔데?”

= 그건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지역의 지배자. 그 지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

“강한가?”

= 유망주 레벨에서는 혼자 상대하는 게 말이 안 될 정도로요.


그리고 나는 유망주다. 평범한 유망주는 아니지만, 어쨌든 튜토리얼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초짜인 건 사실이다.


“긴장 좀 해야겠군.”


입으로 나오는 혼잣말과는 정반대로,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감각에 부르르 떨었다. 튜토리얼에서 최강의 적수였던 블랙 드래곤을 1분 컷하게 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내가 튜토리얼에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선 더 강해질 방법이 사라졌고, 더 강해져야 할 이유 또한 사라졌다. 그 공허감은 분명 튜토리얼 세계에 혼자 남겨진 고독에 필적했다.


내가 그리워했던 건 강적이었다. 내게 강해질 이유를 부여해주는 존재. 그리고 적어도 크리스티나의 언급에서 지옥 멧돼지는 그 기준을 넘치도록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구경만 하고 바로 도망쳐야지.”


그러나 나는 속내를 감춘 채 웅얼댔다.


= 현명한 선택이세요.


그리고 크리스티나는 나의 그런 웅얼거림에 안도한 듯 했다.


“그럼······, 링링!”

= 부르셨어요, 고객님?


레벨 업 마스터의 화면에 크리스티나 대신 링링의 모습이 나타났다.


“좋은 무장이 필요해. 레어 장비 대여권을 쓰고 싶은데.”


오크들에게서 짐을 되찾은 드워프들은 날 위한 장비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지만, 그러려면 캠프파이어보다 높은 온도를 얻을 수 있는 노를 지어야 했다. 그 전에 일단 내가 쓰던 대검을 수리해주고 싶다고 했기에 나는 99자루의 녹슨 대검을 떠넘겼다.


그 결과, 지금 나는 손에 든 무기가 없다.


생각 없이 한 짓은 아니다. 지옥 멧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이었다면 녹슨 대검 한 자루 정도는 남겨 들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지옥 멧돼지 토벌 퀘스트에 매우 위험 난이도까지 띄워준 이상, 그간 아껴둔 레어 장비 대여권을 안 쓸 이유가 더 적었다.


= 어떤 장비를 원하세요?

“일단 반격가의 레어 무기.”

= 반격가라니······. 고객님, 이상한 직업으로 전직하셨네요. 들어본 적도 없어요.


이상한 직업이라니. 하긴 나도 처음 들었을 땐 이상한 직업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상점 담당인 링링이 들어본 적도 없었을 정도일 줄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링링은 무기고에서 물건을 뒤적거리는 모션을 취하더니, 곧 장비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물론 화면 안에서 내민 것이기에 내가 그 물건을 직접 살펴볼 순 없었다. 내가 보는 건 아이템의 이름과 아이콘, 그리고 옵션이다.


[홈런왕의 나무 배트]


“뭐야, 이건.”


이름부터가 황당했다. 뭐? 홈런왕? 나무? 배트? 길지 않은 이름인데 태클을 걸지 않을 요소가 소유격 조사인 ‘의’ 밖에 없었다.


= 주문하신 반격가 전용 레어 무기예요. 이게 뭔진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심지어 링링조차 내 의문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파는 사람이 그런 말 해도 돼?”

= 모르는 걸 안다면서 사기 칠 순 없잖아요.


그건 그렇다. 나는 링링을 추궁하는 대신 아이템 옵션이나 살펴보기로 했다.


[홈런왕의 나무 배트]

- 분류 : 무기

- 숙련도 : 희귀(Rare)

- 내구도 : 50/50

- 옵션 : 공격력 +3, [쳐 날리기] 계열 스킬의 비거리 +100m/위력 +3레벨

- 설명 : 과거 수많은 투수들의 기록을 엉망으로 만든 적이 있는 배트.


나무로 만든 물건 주제에 녹슨 대검보다 내구도가 다섯 배나 높아? 하긴 아이템에 물리법칙을 거론하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이다. 그런 것보다 옵션이나 보자.


비록 공격력은 대검의 절반 수준도 안 되지만 반격가 전용 무기라 그런지 스킬 강화 옵션이 붙어 있다. 내가 지닌 [쳐 날리기] 계열 스킬이라곤 [받아쳐 날리기] 밖에 없지만, 위력 강화 옵션이 붙은 건 마음에 든다.


그래도 이걸로 당장 결정하기는 좀 뭐하다.


“다른 무기는 없어?”


더 보고 결정해야지.


= 네!


그런 내 생각을 링링이 단숨에 꺾어놓았다.


= 레어 등급 중에 반격가 전용 무기는 그 배트 밖에 없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군.”


마이너한 직업의 비애인가. 검술가나 전사 같은 직업이었다면 훨씬 선택의 폭이 넓었을 테지만, 반격가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내겐 초절강타가 있고, 무기의 위력은 초절강타의 계산식에 포함되지 않는다. 내 공격력을 버틸 내구도가 더 중요한데, 이 나무 배트는 겉보기엔 안 그래 보여도 그 조건만큼은 만족시킨다.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이걸로 하겠어.”

- 레어 장비 대여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나는 왼쪽 눈을 두 번 깜박였다. 물론 YES를 뜻하는 동작이다.


- 인벤토리를 확인해보십시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인벤토리 창을 활성화시키고, 나는 [홈런왕의 나무 배트]를 골라 꺼냈다. 내 주머니에서 묵직한 배트가 빠져나왔다. 목재 주제에 꽤 단단하고 무겁다. 특별한 목재를 쓴 걸까? 그런 건 옵션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붕붕 휘둘러보니 꽤 손맛이 좋다. 어쩌면 대여기간이 끝나면 이 장비를 사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나무 배트지만 말이다.


“15일인가.”


짧다면 짧지만 오늘 하루 쓰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대여기간이다.


이거라면 지옥 멧돼지를 때려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내 직감이 판단할 문제다.


*


지옥 멧돼지는 출발지에서 지도 작성 퀘스트 3회분 거리에 있었다. 생각보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고, 라카차의 진술보다 훨씬 가까운 위치이기도 했다. 어쩌면 오크들을 찾아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를 일이다.


온몸에 일렁이는 열기를 두른 거대한 멧돼지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붉은색을 띤 털이 열기와 함께 불꽃처럼 춤추고 있는 게, 진짜 불이라도 뿜을 것 같이 생겼다.


주변에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먹어치워 황무지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킨다는 괴수.


= 틀림없네요. 헬리펀트입니다.


크리스티나가 지옥 멧돼지의 모습을 확인하고 말했다.


놈은 지금도 쉴 새 없이 땅을 파헤치며 혹시나 땅 속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식물의 뿌리나 벌레 따윌 흙과 함께 연신 씹어 먹고 있었다. 직접 보니 크기도 커서 5층짜리 아파트 정도 크기는 되어보였다. 저 몸을 유지하려면 흙을 씹어 먹는 걸론 부족할 것이다.


“그러냐.”


나는 히죽 한 번 웃고는, 레벨 업 마스터를 끄고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크리스티나가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직감이 찌릿하게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괜히 날 말린 게 아니다. 저 놈은 내게도 위협적인 적이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정도로군.”


튜토리얼 세계에서는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블랙 드래곤을 떠올리며, 나는 입술을 핥았다.


블랙 드래곤은 약한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레벨이 너무 낮게 책정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블랙 드래곤 1분 컷은 그저 여러 번 도전한 끝에 약점을 찾아내고 공략방법을 숙지한 결과물이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저 지옥 멧돼지의 약점을 모른다. 공략법도 모른다. 그러니 1분 안에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사실 승리조차 장담할 수 없다. 정면으로 맞상대하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후.”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크리스티나에겐 구경만 하고 온다고 말했었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말을 거짓말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런 걸 보고 구경만 하고 갈 순 없잖아.”


나는 나지막하니 혼잣말을 하고는······.


저벅, 저벅.


단 두 걸음. 접근했다.


흠칫.


흙을 씹어 먹던 지옥 멧돼지의 입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반응이 좋군.


우적, 우적.


입을 멈춘 건 아니다. 그러나 조금 전보다는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쪽을 보는 기색은 없으나, 귀는 쫑긋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확실하다.


저 놈은 이미 내 존재를 눈치 챘다.


저벅.


거기서 단 한 걸음만 나아갔을 뿐이었다.


쾅.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누가 야포라도 쏜 줄 알았다. 그것이 지옥 멧돼지가 뒷발로 땅을 찬 소리란 걸 깨닫는 건 한 순간 뒤의 일이었다.


저 거체가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니!


저 멀리 있던 지옥 멧돼지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내 앞에 나타나 있었다. 분명 음속을 돌파했을 텐데도 별다른 소닉붐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 녀석도 스킬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블랙 드래곤도 그랬지.


불과 이틀 전의 일임에도 나는 묘한 그리움을 담아 생각했다.


[간파]

- 위협적인 공격을 간파(1/10)


어느새 지옥 멧돼지의 이마에는 프랑스식 군용 검 같이 보이는 뿔이 한 자루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그 뿔끝으로 날 꿰뚫으려 들었다. 돌진의 기세를 담은 그 일격은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나라도 피해 없이 받아내긴 힘들 것 같았다.


스킬의 힘이 없었다면 말이다.


[막고 던지기]

- 대형종을 상대로 막고 던지기(1/3)


나무 배트로 공격을 막았는데, 이것만으로 배트의 내구도가 3이나 날아갔다. 녹슨 대검이었다면 단번에 부러지고 방어에도 실패했을 위력이었다. 그러나 방어에 성공한 이상, 반격으로 이어주는 것은 반격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휘리릭. 쿵!


지옥 멧돼지의 거체가 그 자리에서 뒤집어지며 지면에 처박혔다. 휘둥그레 뜬 멧돼지의 눈이 알게 모르게 큐트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그 피해는 크지 않았다. 외견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은 매우 단단했다.


“으음······!”


반대로 성공적으로 반격을 넣은 내게 오히려 피해가 돌아왔다. 빈 왼손으로 멧돼지의 뿔을 잡고 던졌는데, 그 손에 화상을 입었다. 내가 화상을 입을 정도면 뿔의 온도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다. 강건 99+는 어지간한 피해나 상태이상은 무효화시켜 버리니까.


“오래 끌면 안 좋겠군.”


멧돼지의 체온이 내게도 피해를 입힐 정도면 근접전을 지속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다. [막고 던지기]로도 무기 내구도가 이런 식으로 까이면 오래 못 버틴다.


“일단 간파 수련치만 채워둘까?”


너무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으니, 나는 약간 타협하기로 했다.


취이이이익······.


몸을 일으킨 지옥 멧돼지의 입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 좋은 예감은 [간파]가 대체했다. B랭크까지 성장한 간파는 지옥 멧돼지가 마법 공격을 감행하려 한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멧돼지가 마법이라니. 그러나 나는 라카차로부터 이미 정보를 들었다.


콰앙!


이번에야말로 야포 쏘는 소리가 맞았다. 그 야포가 멧돼지의 입에서 발사됐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거대한 불꽃의 구(球)가 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왜 반격가 전용 무기가 배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바로 지금이 [받아쳐 날리기]가 활약할 때였다.


따악!


내 배트가 정확히 화염의 공을 가격했다. 손바닥이 저릿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쳐냈다!


비록 계산과는 달리 내가 친 공은 멧돼지가 아닌 저 멀리 황야를 향해 날아가긴 했지만.


“솜씨 99 이상으로도 제어하기가 힘들군······.”


연습 랭크로 이 정도 한 것도 다행이다 싶긴 했다. 어쩌면 [받아쳐 날리기]에 실패하고 불꽃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어쨌든 이것으로 마법공격을 받아쳐 날리는 수련치를 습득했다. 나는 즉시 받아쳐 날리기의 랭크를 올렸다.


F랭크.


“······아직 멀었다.”


멀리서 플레이 볼을 알리는 긴 호각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아마도 환청이겠지만. 뭐 좋지 않은가.


“던져라······!”


나는 타석에 섰다.


*




작가의말

홈런왕 이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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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029 +14 18.07.14 11,101 38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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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26 +8 18.07.12 10,981 3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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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 +14 18.07.10 12,478 388 13쪽
23 023 +9 18.07.09 13,388 40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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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21 +22 18.07.07 15,027 45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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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6 +14 18.07.03 15,767 402 11쪽
15 015 +13 18.07.02 16,198 440 13쪽
» 014 +15 18.07.01 16,583 452 13쪽
13 013 +16 18.06.30 17,464 450 12쪽
12 012 +10 18.06.29 17,994 45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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