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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ist
작품등록일 :
2018.06.23 20:45
최근연재일 :
2020.12.1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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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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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기연은 한끝차이(1)

DUMMY

몸이 으슬으슬하다. 요즘엔 쉬는 시간 없이 바삐 움직였으니 감기에 걸린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도시까지 가는 길이 유독 멀게만 느껴진다. 평소라면 진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어째 걸음이 느려서 시간이 지체된다. 자꾸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 도저히 더는 못 걸을 것 같아서 근처 돌무더기 위에 주저앉았다.


역시 잠이 부족했는지 자꾸 눈이 감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들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꺾이고, 정신이 흐릿해져 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회색의 공간. 나는 내가 또다시 잠들었음을 직감하고 한탄했다.


얼마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이 꼴이라니.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데 이런 시답잖은 이유로 쓰러진단 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약의 힘을 빌려야 하나? 마침 페델이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에게 제대로 된 수면제나 각성제를 받아오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지도.


머지않아 환영이 나타나고, 바닥에 앉아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이번엔 금방 깨어났으면 좋겠는데.


“응?”


눈앞에 나타난 광경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그동안 봐왔던 악몽하곤 다른데. 이번에 나온 환영은 어렸다. 열다섯 살쯤 되었을까, 아직 얼굴에 앳된 티가 남아있는 그의 입술이 계속해서 달싹였다.


나는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는데도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 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어서일까, 문득 궁금증이 들어서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려고 했다.


그리고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오래된 기억이 내게로 스며들어왔다. 내가 아직 희망을 꿈꾸고 있을 때의 기억이.


***


그날은 쾌적했던 것 같다.


태양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해서 청량감마저 느껴지던 겨울의 오후에 소년은 그가 사는 집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소년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옥상에 있을 때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발치 아래에 있었다. 그곳에선 모두가 작아 보였고,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이 뭐라도 된 듯한, 그런 느낌을 즐기는 건 그의 주된 일과 중 하나였다.


위를 바라보면 머리 위에 한가득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포근해 보이는 구름이 그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했다.


“뛴다. 이번엔 반드시 뛴다......”


계속해서 중얼거리던 소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고, 앞으로 뛰어갔다. 옥상의 끄트머리에 도달한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건물 아래쪽에는, 글쎄, 아마 쿠션이라도 있었겠지.


그의 얼굴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소년은 정신을 바짝 차릴 생각으로 자신의 뺨을 두어 번 때렸다. 그리고 너무 세게 친 건지, 아려오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웅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소년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곧장 도약하려던 소년이었으나, 발을 떼자마자 옆에서 날아온 무언가에게 몸이 세게 부딪혔다. 바닥에 넘어져 신음을 내뱉는 그의 몸을 누군가 묵직하게 깔아뭉갰다. 눈을 뜨고 위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한 명의 소녀. 그녀의 머리칼은 마치, 마치,


그 녀석, 어떻게 생겼더라.

아무튼 소녀는 소년을 바라보며 외쳤다.


“자살은 안 돼! 있지. 네가 지금 뭐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세상은”


‘얘 생각보다 무겁네.’ 같은 생각을 잠깐 하다가, 언제나처럼 활기찬 그녀의 말을 중간에 끊어냈다.


“그런 거 아냐. 멍청아.”

“어? 그치만, 방금 죽으려고 하지 않았어?”


맹한 눈으로 반문하는 소녀를 옆으로 밀쳐내고, 몸을 추스른 소년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럴 리가 있겠냐...... 이건 그냥 연습이라고.”

“무슨 연습이길래?”

“하늘을 나는 연습.”

“뭔 소리야 그게?”


소년에게 그 물음은 마치 ‘너 따위가 하늘을 난다니, 꿈도 커라.’라고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녀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겠지만, 문득 자존심이 상했더랬다.


“누가 불가능하대? 웃기지 말라 그래. 마침 잘됐네, 똑똑히 봐둬.”


그 말과 함께, 소녀를 등지고 일어난 그가 하늘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그 순간 소녀는 보았을 것이다.


한 쌍의 순백색 날개가 그의 등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그가 힘차게 날개를 파닥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하늘이 연출을 도와준 건지,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암성이 드러나는 것을.


저 멀리 하늘에 나타난 천공성은 그 자태를 뽐내듯 푸르게 빛나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고, 그걸 보고 기운을 얻은 소년은 허공을 딛고 도약하려 했다.


그 뒤에 소년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도, 당연하게도 땅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게 된 것도 보았을 것이다.


소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 역시 아직은 무린가? 아니,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래. 누가 쳐다보니까 집중이 깨지잖아.”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건물 위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소녀는, 아마도 웃었던 것 같다.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멍청하다며 비웃었던 걸까? 분명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부드럽게 타이르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소년은 기분이 상했더랬다.


“난 새라서 날 수 있거든? 니들하곤 달라.”

“아, 예예.”


그 말을 끝으로 정적이 흐르고, 그걸 견디지 못한 꼬마는 머지않아 삐져있는 걸 멈췄다. 고개를 든 소년은 소녀를, 그 위에 있는 구름을, 그 뒤에 있는 섬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내 고향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했다. 언젠가 날 수 있게 되면 다시 저곳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말했더랬다. 창공을 떠다니는 거대한 섬을 바라보며 소년은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언젠간 저기에 손이 닿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 그러던 와중에 손이 점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는 걸. 왜 이런 예전의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이젠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일 텐데.


어쩌면 후회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을? 적어도 그때는 후회할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내가 살아온 인생 전체가 후회 덩어리라고 한다면 또 모를까.


잠에서 깨어났다. 잠깐 정신을 잃었으니 조금은 편해져야 정상이겠지만, 피곤한 느낌은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세상을 노려보았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폐허에, 이제 와서 놀랄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곳의 풍경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항상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오직 이것 뿐이기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


시내에 도착한 것까진 좋았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도시까지 걸어오는 동안 아침으로 뭘 먹을지 전부 생각해둔 것도 좋았지. 자주 애용하는 반찬 가게에 도착했으니 나물을 사가기만 하면 됐는데.


“사람 살려!”

“으하하하하하! 다 죽어 이것들아!”


단골 가게가 웬 미친놈에게 불타고 있었다. 무너져내리는 가게를 본 가게 주인이 허공에서 성검을 빼들고 도약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저 멀리 도망쳤다.


다른 가게를 찾아보려 했지만, 오늘따라 어째선지 아는 상점이 전부 의미불명의 테러를 당한 상태였던 게 30분 전의 일.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 결과에 따르면, 어떤 과격한 채식주의자들이 모인 단체가 거리에 나타나 날뛰기 시작했다는 듯하다. 나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도 이곳은 순조롭게 지랄 맞았다.


그래도 그들의 테러는 이 근방에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조금만 걸으니 멀지 않은 곳에 안전해 보이는 구역이 나왔다. 이걸로 당장 피해를 입을 일은 없으니 안심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도 금색, 저기도 금색,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광이 눈이 멀 것 같다.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노란 사제복이 엿보였다.


아, 이걸 예상을 못 했네. 하필이면 와도 황룡교 본거지로 왔냐. 어쩐지 이상하더라, 눈 돌아간 미친놈들이 장소 골라가면서 테러한다는 게.


안 봐도 뻔하다. 테러범 중에 독실한 종교인이 끼어있기라도 했나 보지. 그래서 이 부근은 건드리지 말고 넘어가자고 했을 거다. 아니면 사제들을 건드리는 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지껄였거나.


황룡교는 착하니까 건드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일반인 사이에서도 넓게 퍼져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쓰레기 같은 범죄자라도 종교인을 공격하는 건 꺼리더라. 사제면 일단 먹어주고 간다.


근데 그런 놈들이 꼭 우리 흑룡교도는 보자마자 탄압하려고 든단 말이지. 흑룡교는 종교도 아냐? 왜 차별하는 건데? 아, 우린 종교가 아닌 것 같기도 하네. 아무튼, 어디 가서 흑룡을 믿는다고 하면 일단 경찰에 신고되는 게 기본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 들어가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 황룡교 쪽 건물이라고 하면 막연한 거부감이 생긴다. 임무 중에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고 다니는 주제에 막상 필요할 땐 저쪽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양심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때려 부수러 갈 때랑은 기분이 다르단 말이지.


평소 같았으면 다른 곳으로 돌아가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벌써 아침때가 다 지나고 있는데, 머뭇거리다간 미리암이 먼저 깨어나 버릴지도 모른다. 정신이 온전할 때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이럴 때 혼자 밖으로 나가면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 그러면 진짜 베르디를 볼 낯짝이 없잖아. 어쩔 수 없네.


나는 옆 건물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투덜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아무거나 빨리 사서 집으로 돌아가자. 구멍가게 같은 곳은 없나? 청과물이라던가. 없네. 하지만 그 비슷한 곳은 찾았다. 낡은 슈퍼마켓이 하나 보이기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점원이 이쪽을 보지도 않은 채로 반겨주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이는데, 아르바이트생인 걸까? 그러면 저런 무심한 태도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가게도 아닌데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늘색 머리카락을 묶은 머리 모양. 그 위로 나 있는 강아지 귀가 그녀가 모방종임을 알려주고 있다. 왠지 어디선가 본 거 같은 외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의 시선을 느꼈는지, 점원이 얼굴을 들고 의문스러워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적당히 구석진 곳까지 들어가서, 냉장고를 보며 뭘 살지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저쪽엔 보이지 않는 각도로 품 안에서 사진을 꺼내 방금 본 얼굴과 대조해보았다.


대충 보기에도 비슷해 보이는 얼굴.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운수가 더럽게 나쁜 건지 모르겠다.


황룡교 사제인 니르비아에겐 두 명의 딸이 있다. 황룡교에 헌신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뒤를 따라, 그 딸들도 교단에 귀의했다. 그 사실만 알아냈을 뿐 그들의 거주지를 알아내지 못해서 골치 아팠었는데, 방금 그 걱정이 사라졌다.


지금 계산대 앞에 앉아있는 저 여자가 니르비아의 작은 딸이었으니까.


작가의말

이번화는 흐름이 좀 어색할 거 같네요.

원래는 저게 저기에 넣을 비축분이 아니었는데. 원래 계획상으론 한 10화 이후에나...


어제 비가 주구장창 내리는 바람에 피시방을 못 가서 원하던 곳까지 진도를 나가질 못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전에 써뒀던 분량을 끼워넣었습니다.

그나마 좀 어울리게 넣는다고 흐름 조정하고 다듬긴 했는데, 영...


펑크를 막기 위해서 꼼수를 부린 거니, 정 아니다 싶으면 '아 이거 외전 과거편이구나'하고 넘어가는 아량을 독자님들께서 보여주시기를 기대해봅니다.


너무 노양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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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추기경 엘리드(3) 20.11.30 56 1 10쪽
130 추기경 엘리드(2) +2 20.11.29 29 1 13쪽
129 추기경 엘리드(1) +2 20.11.28 33 1 14쪽
128 외전 - 어느 어두운 밤날의 일 +1 20.11.27 35 2 13쪽
127 흑룡교 사제 드웬(7) +2 20.11.26 33 1 11쪽
126 흑룡교 사제 드웬(6) +2 20.11.24 35 1 15쪽
125 흑룡교 사제 드웬(5) +2 20.11.23 40 1 15쪽
124 흑룡교 사제 드웬(4) +2 20.11.22 51 1 12쪽
123 흑룡교 사제 드웬(3) +1 20.11.20 40 0 16쪽
122 흑룡교 사제 드웬(2) +1 20.11.19 35 0 15쪽
121 흑룡교 사제 드웬(1) +1 20.11.18 50 0 12쪽
120 황룡교 성녀 아리아(7) 20.11.17 35 1 14쪽
119 황룡교 성녀 아리아(6) +5 20.11.11 51 1 11쪽
118 황룡교 성녀 아리아(5) 20.11.11 38 2 11쪽
117 황룡교 성녀 아리아(4) +1 20.11.08 3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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