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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ist
작품등록일 :
2018.06.23 20:45
최근연재일 :
2020.12.1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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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0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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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DUMMY

“자, 그러면 다들 모였으니 계획을 설명하지.”


마스테마가 분위기를 환기하려 크게 손뼉을 쳤다. 그 소리에 아직 제정신을 못 차렸던 환자가 완전히 깨어났고, 페델이 그를 째려보았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일단 장소를 옮길까?”

“그 말을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사제도 나와 별 차이 없잖아? 누가 누구보고 뭐라 하는 건지 원.”

“닥쳐라.”


의기양양하게 나서서 말한 게니시로에게 짧게 대답한 뒤, 마스테마는 설명을 이어갔다. 애써 무표정하게 있으려는 게 겉으로 보기에도 티가 나서 위엄 따윈 없었지만, 그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엘리드 추기경님께 이번 작전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러니 당분간은 내 지시에 따르도록. 불만 있는 사람 있나?”


여기서 가장 지위가 높을 페델 사제는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나도 별로 주목받고 싶은 건 아니라 가만히 있었고, 레이크는 신참인지라 뭐라 할 처지가 못 됐다.


여전히 멍한 환자가 우리를 지켜보는 가운데 게니시로가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그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서로 만나고 나서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그사이에 이미 그의 대우는 결정된 것처럼 보였다.


“우선은 정보수집부터 시작하지. 페델 사제가 기존에 조사한 건 있지만, 그때 이후로 바뀌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어. 그러니 일단 그가 준 정보들을 하나씩 검증해봐야 한다. 게니시로? 이건 너와 내가 간다.”

“아직 난 당신 명령을 듣겠다고 동의하지 않았는데?”

“네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조용히 따라와라.”

“전부터 느끼는 건데, 내 취급이 너무 심하지 않나?”


기선제압한 후에 말한 것 치고는 크게 특색이 없는 작전이었다. 투덜거리는 사제를 무시한 마스테마는 나를 쳐다보았다.


“뭘 시키려고?”

“본래는 그 사이에 잠입이라도 시켜볼까 했는데, 영 불안해서 말이지. 마침 새로 들어온 사제와 아는 사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네가 그를 교육시켜라.”


그가 레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거기에 불만이 없었지만 레이크는 다른 듯했다.


“내가 못 미더운 건가?”

“물론.”


좋게 설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레이크의 기분을 생각해서 적당히 작은 정찰 임무나 줘도 될 텐데. 그에게 돌아온 건 부정의 여지조차 없는 대답이었다.


“어째서?”

“몸에 찌든 종이냄새가 다 빠지지도 않은 신참을 사지에서 굴릴 정도로 흑룡교는 근본 없는 조직이 아니다. 윗선에서는 마음이 급하니 대충 투입해버린 것 같지만, 현장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이야. 당신은 전투원으로 쓰기엔 아직 모자라.”


레이크가 얼굴을 찌푸렸다.


“간단히 말해서, 내 능력이 쓸모없다는 뜻이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꺼낼 소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명백했다. 마스테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 몫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 글러 먹은 사고방식부터 고치는 게 좋을 거다. 생각보다 가르칠게 많겠어.”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다. 어쨌든 동료끼리 모인 자리인데 시작부터 삐꺽거린다. 나와 페델의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그러지 말고, 우리 잠시 신의 존재론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어보지 않겠나?”


나는 레이크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페델 쪽이 더 빨랐다. 그가 레이크의 앞을 가로막은 걸 보고 몸을 돌려 반대쪽의 사제를 보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 좋아서 이러겠냐고.


“잠깐 얘기 좀 하지. 밖으로 나와 봐.”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였겠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순순히 따라주었다. 확실히 제대로 이성이 있는 놈이라고, 나는 그에 대한 평가를 상향 조정했다.


문이 닫히는 뒤로 “그러면 난 어디로 가면 되나? 응?” 하고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페델이 알아서 하겠지, 뭐.


병원 복도는 사람이 지나다닐 염려가 있다. 나는 문을 열고 층계참으로 나갔다. 비상용 계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사람이 오지 않는 어둑한 곳이었고, 그러니 남들이 들어선 안 되는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내가 계단에 걸터앉자 그가 조금 떨어져서 옆에 앉았다. 마스테마가 투덜거렸다.


“이번 신참은 폐급이로군. 언제는 달랐나 싶지만.”

“너무 뭐라고 하진 마라. 그냥 홧김에 말이 잘못 나온 걸 거야.”

“제대로 주의시켜둬.”

“어, 말 하면 들을 거야.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


아마 레이크는 몰랐겠지만, 그는 무능력자다. 그것도 능력자가 넘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무능력자다. 다른 이들보다 뒤떨어졌기에 더더욱 노력하고, 발버둥 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거다. 당장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그 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할 수밖에 없고. 마스테마의 눈에 레이크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징징거리는 어린 애처럼 보였을 거다.


“이번에는 넘어가주겠지만, 저런 놈은 실전에서 못 써먹어. 금방 바뀔 것 같지도 않고. 페델은 일선에서 빠지겠다고 한 상태고 게니시로는 원체 도움이 안 되는 놈이다. 결국 우리 둘이서 이 임무를 성공시켜야 해.”


나는 그의 말에 의문점이 생겼다. 말하는 것만 보면 나에게 의지하는 꼴인데 그럴 놈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어차피 페델이 레이크를 진정시키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 나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야, 왜 나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회의장에서 날 지목했었잖아. 사제들을 선동해서 이 임무에 날 보내도록 했던 거.”

“그래서?”

“그때는 나한테 앙심을 품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까 영 이상해서. 위험한 임무에 집어넣어서 날 곤경에 빠트리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스테마는 내 말을 듣고만 있었고, 그의 태도는 내 추측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신하게 했다. 나는 추론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이 임무 네가 맡을 생각이었지? 아니면 회의 전부터 엘리드에게 그러라는 명령을 받은 건가?”

“생각했던 것처럼 눈치 없는 놈은 아니었나.”


그가 다 들리게끔 중얼거렸다.


“왜 날 고른 거냐? 우리가 썩 좋은 사이는 아니었을 텐데.”

“실력이 검증된 녀석이 필요했다. 잡혀간 동지들을 구출하는 중요한 임무에 아무나 데려갈 순 없으니.”

“다른 사제도 많잖아.”

“회의장에서 전부 확인했을 텐데? 이놈도 저놈도 전부 쭉정이들이야. 실속이라곤 없고 허영심만 가득한 것들. 신도들을 희생시켜서 제 명줄을 부지하려는 쓰레기만 잔뜩이잖냐.”

“뭐, 확실히 그렇게 보이긴 해.”


마스테마는 내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주었다. 그는 손을 쥐락펴락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 보며 말을 계속해갔다.


“그렇다고 널 인정하는 건 아니야. 네가 믿을만한 놈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보다야 낫겠지.”

“예상보다는 평이 좋아서 당황스러운데.”

“네놈이 하는 걸 직접 봤으니까. 그분께서 널 감싸고도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력은 있는 놈이었으니까. 그뿐이다.”

“흠.”


예전에 읽은 책 중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싸움 끝에 친해지는 두 사람, 사나이의 뜨거운 우정, 진정한 전우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책이었는데, 별로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째선지 마지막엔 남자 둘이서 석양을 바라보곤 했고. 그래도 이제 대충 이해가 가네.


그러면 회의 중에 날 도발했던 것도 일부러 한 거였나. 내가 복수하겠답시고 자기를 끌어들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정도 퍼즐이 맞는 느낌이다.


“그러면 나한테 스파이가 어쩌고 한 것도 그냥 해본 소리고?”

“반절은.”

“왜 절반인데.”

“교단에 스파이, 그러니까 첩자가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마스테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이곳엔 없는 키르시를 떠올렸다. 우리의 정보가 황룡교에 넘어가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이단심판관들의 사냥을 도운 그 여자를. 그럼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적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는 옛 부하를.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내 생존을 방해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면 전부 치우고자 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내게 위해가 된다는 판단이 서면 곧장 배제하려 들었다.


그들의 속사정 따윈 알 필요 없었다. 설령 목숨을 빼앗지는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짓을 스스럼없이 해왔다.


이제 와서 행동에 망설임이 생기는 이유는 단순히 정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마음을 온전히 터놓을 만한 친구는 적었지만, 가벼운 관계를 맺은 이들은 분명 존재했으니까.


개중에는 키르시보다 훨씬 더 가까웠던 이도 있었다. 그런 이도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이유는 알고 있다. 나는 그냥 두려운 거다. 또다시 내가 행한 일이 최악의 결과로 돌아올까 봐 자꾸만 몸을 웅크리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고, 나름의 정의를 관철하고자 했다. 감히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무섭다. 확실하지 않으면 도무지 행동에 나설 수가 없다.


베르디와 미리암, 그리고 나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아이들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들의 모습이 내가 죽였던 사람들과 겹쳐 보이는 건 염병할 꿈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긴 해.”


결국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자연히 흐려지게 되었다. 다행히 마스테마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원래라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진행할 작전이 아니다. 중요한 임무인 만큼 정보부에서 사전 조사를 행하고, 너와 나 같은 말단 사제가 어둠의 자식들의 본거지에 잠입해서라도 정보를 캐낸 후에 전투원을 투입하는 게 정석이야.”

“그거라면 나도 엘리드에게 들은 게 있어. 정보부 그것들이 전부 휴가 내고 튀었다며? 하여간 위험한 냄새는 귀신같이 맡아서는.”

“......일반 사제들에겐 그리 전했었나.”


마스테마가 음울하게 중얼댔다.


“왜, 또 뭔데.”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어. 최후의 최후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저항했지만, 교단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신앙을 지키던 자들이지 않나.”

“황룡교 사제로 위장해서 숨어 있었다는 걸 꼭 그렇게 어렵게 말해야 하나?”

“그들에게는 제대로 예를 표해주어야 한다. 전원이 순교자니.”

“뭐?”

“아직도 이해를 못 했나?”


그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다들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고. 한두 명도 아니고, 흩어져 있던 우리 측 사람들이 단번에 몰살당했다는 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어. 누군가 내부에서 정보를 팔아넘긴 거다.”


나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간신히 대꾸했다.


“그런가.”

“추기경님께 대강의 사정은 들었다. 그분께서는 나에게도 그게 누군지 밝히지 않았지만, 의심이 가는 자가 있다고 하셨지. 너에게 그 배신자를 처단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것도.”

“그러냐.”


자리에서 일어난 마스테마가 뒤돌아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의 끝까지 올라가 문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로, 그는 내게 엘리드의 말을 전했다.


“사사로운 정에 휩쓸려서 일을 그르치지 마라.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분께서도 이제 결단을 내리겠다고, 그렇게 전하라 하시더군.”


작가의말

오늘도 아슬아슬... 전화는 지금 수정 중입니다.

아마 내일이나, 내일 모레에 연재분이 올라가는 것과 함께 수정될 것 같습니다! 다행히 펑크는 안 났어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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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흑룡교 사제 드웬(5) +2 20.11.23 40 1 15쪽
124 흑룡교 사제 드웬(4) +2 20.11.22 51 1 12쪽
123 흑룡교 사제 드웬(3) +1 20.11.20 4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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