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부기스
작품등록일 :
2018.06.28 21:32
최근연재일 :
2019.01.07 01:2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5,295
추천수 :
496
글자수 :
344,101

작성
18.08.06 09:05
조회
419
추천
9
글자
21쪽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DUMMY

***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


두꺼운 쇠창살로 가로막힌 어느 밀실.

차원 난민 박찰선은 그 축축한 밀실 안에서 정신을 차렸다.

찰선의 눈에 들어온 밀실은 몸을 제대로 눕힐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이었다.

언뜻 보기에 이 공간은 범죄자를 수용하는 독방 같기도 했다.

입구의 쇠창살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꺼운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변을 처리할 수 있는 작은 변기가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찰선은 눈 앞에 나타난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하며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렸다.

쇠창살 너머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독한 어둠만이 자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찰선은 눈살을 찌푸리며 쇠창살의 너머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여긴···? 으윽···!”


그 순간, 찰선은 온몸을 찌르는 강렬한 통증에 숨을 삼켜야만 했다.

근육 세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얼굴을 한껏 찌푸렸다.


“끄으으윽···!”


찰선은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 아팠다.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찰선은 눈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이것은 꿈이고 자신은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창선은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어깨가 비틀렸고 관절이 모두 꺾여버린 팔과 다리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끄으으응······."


정신을 잃기 전, 구타를 당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통증들이 정신을 차린 이후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찰선을 고통이 가시길 기도하며 몸을 한껏 웅크렸다.

신체가 마비되는 듯 하면서도 고통이 느껴지는 이 감각.

찰선은 몸을 짓누르는 이 감각이 너무 싫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때.

그리고 군 생활 동안 선임과 동기들에게 갈굼을 당하고 후임들에게 무시당할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찰선은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이 감각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시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찰선의 마음 속에서 아픔에 대한 분노와 나약함에 대한 책망이 휘몰아 치기 시작했다.

찰선은 어째서 자신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려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에론! 에론! 에론!’


배신자 에론을 떠올린 찰선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할 수만 있다면 주먹을 들고 벽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자신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터질 것 같은 분노를 풀지 못한 체 찰선은 속만 부글부글 끓여댔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친우라고 생각했던 에론이었다.

그의 손에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잃을 뻔했다.

으득!

치아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며 찰선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젠장···! 그만해!"


자신과 함께 있었던 짐꾼들의 비명이 생생하게 들린다.

도살장에 끌려간 가축처럼.

에론의 다롬한 말에 속아 넘어간 짐꾼들이 신체의 모든 부위를 하나도 남김없이 잘리며 고통에 울부짖는 모습이 악몽처럼 다가왔다.


‘하아···. 하아···. 하아···. 이 개 같은 새끼···!’


빌어먹을 에론에게 당하는 모든 순간이 똑똑히 떠오른다.

자신을 향해 한발씩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하며, 소름 돋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에론의 얼굴까지.

찰선은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은 에론을 짓씹으며 고통을 감내해 냈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꼭 복수할 것이다.

녀석이 그 ‘악마’에게서 살아남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찰선은 복수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려냈다.

죽여버릴 것이다.


‘그런데······. 그 악마는 도대체 뭐였지···?’


찰선은 자신이 들어온 던전과 그곳에서 만난 악마에 대해 떠올렸다.

어두움을 뚫고 나타난 칠흑의 악마.

그의 머리 위에 돋아나 있는 두 개의 뿔은 그가 이 던전의 주인이란 것을 알려주었으며 오른쪽으로 쭉 뻗어 나간 흑색의 날개는 흡사 천사의 날개와도 같았다.

그 검은색의 날개를 지닌 악마를 떠올린 순간, 찰선은 원인 모를 오한을 느낄 수 있었다.


“으으으으······.”


그 악마를 떠올리는 것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돋아난다.

그가 나타난 이후부터는 기억이 사라진 듯 뚝뚝 끊겨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눈동자와 잔인하게 휘어지는 입꼬리만큼은 눈에 선할 정도로 정확히 남아있었다.

찰선은 자신을 짓뭉갠 에론 일당이 단 한마디의 말로 어린애 다루듯 했던 악마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악마를 상상하자 피부 위의 솜털들이 바짝 곤두서버린다.

찰선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한층 더 웅크러뜨렸다.

그래야만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찰선은 뇌리에 새겨진 악마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며 한참 끙끙 앓아누웠다.

차원 난민이 된 이후로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아마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정해진 것 같다···.


‘하아······.’


자신의 인생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없이 살아온 어린 시절부터 차원 난민이 된 지금까지 찰선에겐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인이 된 이후 각성됐을 때, 인생을 다시 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각성자로서의 재능 또한 전무하다시피 했다.

‘자유의 천사’에게 선택받은 이후 원거리 딜러로서 각종 원거리 무기들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 봤지만, 적합한 무기를 찾지 못했고.

이로 인해 재능 없는 각성자를 받아주지 않는 길드나 클랜에 가입하지도 못했다.

제대로 된 적성과 서폿을 찾지 못한 찰선의 성장은 더뎠고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신체 능력치는 성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각성 이후 10년이 지나 30대가 되어서도 각성 등급은 처음과 같았다.

차원 난민이 되어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찰선은 말 그대로 만년 F급 각성자인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하아.’


고작 F급인 자신이 어딘지도 모르는 하급 악마의 던전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인간을 먹이와 노예로 사용하는 악마의 던전에 말이다.

이곳에 갇힌 이상 자신은 그들의 먹이가 되거나 아니면 노예로서 평생 부려질 것이다.

자신 같은 만년 F급이 하급던전에서 벗어나 생환할 수 있을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불가능해······. 그 악마는······. 나 같은 엑스트라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나는······. 나는 여기까지··· 구나. 흐윽······. 어머니··· 죄송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던전에 몸을 던졌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목숨도 여기까지인듯 하다.

들어온 곳이 하필 눈도 마주칠 수 없었던 그 악마의 던전이다.

찰선은 이 던전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에론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선 탈출을 해야 하지만, 찰선에겐 이 쇠창살을 끊어낼 힘조차 없었다.

자신이 이 던전에서 살아날 방법은 전무했다.

던전의 주인에게 일말의 자비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 악마를 떠올린 순간,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한다.

또각, 또각.


“라- -늘-. -사- 니다-.”

“그-. -럼 오-. -간이- -시-.”


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찰선의 귀를 간질이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었다.

찰선이 던전의 주인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목소리를 흘리며 다가오는 두 개의 발자국 소리가 동굴 안에 메아리친다.

찰선은 그 발소리에 움찔 몸을 떨었다.


‘오··· 온다···!’


이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찰선은 바짝 긴장하고야 말았다.

던전에 갇힌 이상 던전의 주인을 한 번쯤은 마주하리라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 기회(?)가 찾아올 줄은 찰선도 알지 못했다.

찰선은 그가 자신을 못 본 척 지나가 주길 신께 간절히 기도했다.

이미 한번을 살려주셨는데 두 번이라고 못 살려주실까.


“-에- -나가- -입니다-.”

“그러- -시간이- -겠는데-? 음···?”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공포영화에 등장할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흘리며 그들이 다가온다.

찰선의 긴장감이 배가 되기 시작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귀신의 속삭임처럼 들려왔고.

사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다가왔다.


'도··· 도망쳐야 해!'


하지만 도망칠 장소는 찰선에게 없었다.

찰선은 어쩔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슬금슬금 움직여 비좁은 독방의 구석으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찰선은 독방의 구석으로 몸을 말아넣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은 부질없었다.

일자로 이어진 감옥을 뚫고 악마는 정확히 찰선의 독방 앞에 도달해 멈춰선 것이다.

그들이 자신을 그냥 지나치길 바랐지만, 지나가기는커녕 쇠창살을 두고 아예 찰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

“······.”

“······.”


두 명의 말소리가 사라지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찰선은 호흡조차 내뱉지 않기 위해 숨을 꾹 참았다.

혹시 자신의 호흡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아닐까.

찰선은 두려운 나머지 머리를 숙여 무릎 속으로 감추었다.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해.

찰선은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신은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악마의 속삭임이 찰선의 귓가에 닿았다.


“안녕?”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악마의 목소리.

찰선은 그 순간 축축하게 젖어오는 바지춤을 느낄 수 있었다.

오줌을 지린 것 같다.







***


차원 게이트가 발생한 지 25일째가 되던 날.

라온은 오늘도 카이얀과 에론의 정신을 어루만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희 두 명은 이제 다 끝났고! 흐흐! 그리고 어······. 더 필요한가?”


라온은 눈빛을 잃은 체 자신의 앞에 기립해 있는 두 명의 하수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사의 하수인을 세뇌시키는 일은 오차 없이 아주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자의식과 감정이 조금(?) 사라진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명령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반응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라온은 감지덕지했다.


“괜찮네.”


라온은 지금 껏 고생한 카리얀과 에론의 어캐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천사의 하수인 중 가장 강한 카리얀은 물론 도시 공략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에론의 세뇌 작업이 이렇게 끝이 났다.

천사의 하수인 중 대장의 역할을 수행하던 말콤이라는 녀석이 세뇌 대상에 들어가 있긴 했지만, 그가 지닌 정보가 카리얀과 에론에 비해서 많이 부족했고 무력도 그렇게 강하지 않았기에.

세뇌를 굳이 시키지 않았다.

이로써 이번에 새로 들어온 200인의 노예의 처분이 끝났다.


‘뭐, 처분이라고 해도 던전 청소와 광물 채취에 투입시킨 것뿐이지만.’


마력 제어 수갑을 착용한 그들은 그저 신체 능력이 좋은 일반인일 뿐이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천사의 하수인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고 높은 체력과 뛰어난 근력으로 광물 채취 작업에 있어 일반인과 비교도 되지 않는 효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탁월한 일꾼들이었다.

라온의 던전을 배부르게 만들어 주는 위험하지 않은 천연자원인 셈이었다.

그렇게 라온이 효율 좋은 인간 노예를 더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라온을 보좌하던 엘린이 말을 걸어왔다.


“라온님, 혹시 모르니 하수인 몇 명을 더 세뇌시키는 게 낮지 않겠습니까? 도시에 대한 정보를 거의 다 얻었다곤 해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며칠 뒤면 열리게 될 차원 게이트를 통해 라온은 천사의 하수인을 앞세워 도시를 직접 구경하러 갈 것이다.

도시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파악한 상태였고.

도시의 권력자인 켈트라 자작이나 카리얀이 속한 블랙마켓에 대해 라온은 충분한 정보를 얻어냈다.

제 6행성 에리아스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천사의 하수인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도시 실리아에는 라온을 위협할 인물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라온이다.

라온은 걱정하는 엘린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엘. 전쟁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많은 인원이 필요하진 않아. 인원이 많으면 행동에 방해만 될걸? 너무 걱정할 필욘 없어, 흐흐. 그리고 지금도 도시 전력이 줄어들고 있는 중이니까.”


몇 일 전 천사의 하수인들이 던전에 또 한 번 쳐들어왔고 경비대장 아이론을 위시한 타천사들이 전보다 쉽게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도시 실리아의 영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천사의 하수인들을 쉬지 않고 던전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안 그래도 부족한 도시의 전력이 대폭 감소하고 말았다.

가난한 도시인 실리아에 그나마 존재했던 용병들이 죽어나니.

도시를 공략해 달라고 시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라온이 고개를 흔들어 버릴 정도로 도시 실리아의 영주는 무능했다,


‘도시의 전력은 줄여주고 던전의 전력을 상승시켜주고 있으니···. 이거 참, 하하···.’


적들의 침입으로 인해 타천사들이 많이 죽긴 했지만, 그에 비해 살아남아 실전을 경험하게 된 이들이 더 많았다.


'천사의 하수인을 죽이면서 성장하는 것은 던전 코어만이 아니지.'


던전의 주민들 역시 전투를 경험하면 할수록 조금씩 성장해간다.

던전에 침입한 적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타천사들의 전력은 더욱더 상승하는 것이다.

괜히 마계의 악마들이 차원 침략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계속 방어를 성공한다면 라온의 군대는 마계의 중앙 대륙 하급 악마의 군대에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라온은 그렇게 생각을 마친 후 엘린과 함께 도시 공략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감옥을 빠져나왔다.

그때, 라온의 기감이 걸리는 하나의 생명체가 있었다.


“음···?”


감옥 내부에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한 명의 하수인이 라온의 감각에 잡혔다.

던전 감옥에 있던 노예들은 모두 노동을 하러 투입되었기 때문에 감옥에 남아 있는 이는 카리얀과 에론 말고는 없을 텐데.

그러면 누가 있는 거지···?


‘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라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감옥 안에는 시체 한 구가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깨어났나보다!’


시체가 정신을 차린 것이 분명했다.

라온은 가던 길을 돌려 그가 있는 감옥 앞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어둠에 휩싸인 한 명의 남성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포식자를 앞에 둔 햄스터처럼 비좁은 감옥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라온은 조심스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비좁은 감옥 안에 홀로 갇힌 채로 있자니 무서웠나보다.

과거의 자신을 닮은 이 남자가 너무 겁에 질린 것 같아 라온은 그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히이이익!”


그런데 남자의 반응이 이상하다.

라온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남자는 에론과 그의 부하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사를 넘나들고 있던 남자에게 자신이 나타나 에론 일당을 물리쳐 줬으니 라온은 분명 저 남자에게 은인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남자의 반응은 감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라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겁하듯이 몸을 떨어대는 모습.

라온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엘린에게 물었다.


“어··· 왜 저러지? 엘린···? 얘, 왜 이래?”

“······.”


하지만 엘린이라고 해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이 왜 저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배가 고픈 걸까.

아니면 똥오줌이라도 지린 것일까.

조금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한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박춘식이라도 불러야 하나···?’


인간의 행동어 관한 것은 인간이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라온은 인간 중에서 말이 통하는 박춘식을 부를까 잠시 고민해봤다.

그게 가장 최선의 답인 것 같다.

라온은 고개를 돌려 발딱거리고 있는 남자를 주시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저러는 거야?'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단 녀석이 많이 아파 보이니 치료라도 해주도록 하자.

라온은 잔뜩 겁을 먹은 햄스터를 향해 쇠창살을 열어젖히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따뜻한 미소도 잊지 않았다.

그를 향해 라온이 입을 열었다.


“착하다···?”







***


-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안드로스님···.

“으하··· 으하하하하핫!”


새파란 빛을 발하는 투명한 유리구슬.

‘마력 송수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안드로스라고 불리운 회색의 곱슬머리 남성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박장대소를 힘차게 풀어냈다.


"하하하하하핫! 그게 정말이냐!? 으하하하하하!"

- 안드로스님···?


송수신기를 통해서 켈트라 자작이 의문의 음성을 흘렸지만, 안드로스에겐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안드로스는 자신의 경쟁자인 카리얀이 죽었(?)다는 사실에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카리얀이 죽었다니! 그 카리얀! 으하하하! 머저리 같은 녀석! 하하하하!’


블랙마켓에서 이종족과 인간 노예의 거래를 담당하는 안드로스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블랙마켓에는 총 일곱 명의 간부가 존재한다.

이 일곱의 간부는 제국 케딜락의 유력 귀족 가문에서 발탁된 인재들로 제국의 지원을 받아 왕국 실론스에 형성된 블랙마켓을 지금껏 관리해 왔다.

그 일곱 명의 간부는 각자 맡은 담당이 있었는데 그중 케리얀은 마약유통과 인신매매를, 안드로스는 노예 거래를 담당했다.

그렇게 블랙마켓은 이 일곱의 간부가 권력을 나눠 가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데.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수년의 시간이 지나며 불랙마켓을 운영하는 일곱 간부가 모두 욕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연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금이 유동하는 곳이 블랙마켓이었고 그 자금을 칠등분 한다는 게 일곱의 간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일곱으로 나눠야 하지?

내가 다 가질 순 없을까?

그 욕심이 싹트기 시작한 이후로 일곱의 간부들은 제국과는 상관없이 자신들끼리 경쟁을 시작했다.

상대의 세력을 줄이고 자신의 권력을 키우기 위해 일곱의 간부는 암살과 세작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 서로를 견제했고 그 상태가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주 팽팽하게 말이다.

그런데······.


‘카리얀이 죽었다. 이제 판도가 달라졌어!’


블랙마켓의 한 축을 담당하던 카리얀이 행방불명 되었다.

아니, 죽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행방불명 됐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알려진 이상 그것은 죽은 것과 다름 없었다.

안드로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카리얀의 죽음을 안 것은 내가 처음이다!’


이것은 중요한 사안이었다.

카리얀의 죽음을 최초로 알았다는 것은 그가 지닌 모든 권력과 세력을 자신이 가장 많이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안드로스가 카리얀의 세력을 끌어안는 순간, 일곱 간부가 가지는 균형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안드로스가 키리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면 간부들이 형성해 놓은 균형의 추는 자신에게 넘어올 것이고 그 순간 일곱 간부는 모두 안드로스의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간부들이 카리얀의 죽음을 파악한 순간은 내가 카리얀의 세력을 모두 흡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된다면 녀석들이 합심해 나를 견재할 지도 몰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니까! 카리얀의 세력을 흡수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다른 녀석을 공격해야 한다. 아니면 내 편으로라도 끌어들여야만 해!’


지금 이렇게 자리에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카리얀이 가진 인력과 자금을 모두 빼앗아야 한다.

그래야만 고여 있던 물을 다시 흐르게 만들 수 있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이 멍청한 켈트라 자작이라도 이용해야 한다.


- 안드로스님···? 저······. 카리얀님을 찾기 위해선··· 지원이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드로스는 켈트라 자작에게 급히 대답했다.


“지금 당장 부하들을 보내겠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할 수 있도록! 넌 아무것도 하지 마! 알겠나?”

- 예··· 옙! 감사합니다, 안드로스님! 흐흣! 감사합니다!


이 녀석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저 반응을 보아선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카리얀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녀석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할지 안 봐도 뻔하다.

안드로스는 켈트라 자작의 아부를 더는 듣지 않고 통신을 끊어버렸다.


‘병신 같은 새끼, 일을 마무리한 후에 바로 잘라버려야겠어.’


안드로스는 켈트라 자작에 대한 처분을 결정한 뒤 꺼진 마력 송수신기를 바닥에 던져버리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오늘따라 의자가 더욱더 안락한 것만 같다.


“으흣···. 으흐흣···!”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블랙마켓은.


“내 것이다! 으하하하하!”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타락한 천사가 던전에서 하는 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4) +2 19.01.07 184 3 26쪽
47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3) +1 18.12.23 186 3 25쪽
46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2) +1 18.11.29 240 4 25쪽
45 블랙마켓과 7인의 망나니(1) 18.11.22 222 5 24쪽
44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2) +1 18.11.19 253 4 24쪽
43 약속의 반지, 델피니엔(1) +2 18.11.11 248 5 16쪽
42 식민지(3) +1 18.11.06 269 5 19쪽
41 식민지(2) +2 18.10.29 267 8 12쪽
40 식민지(1) +1 18.10.22 267 6 14쪽
39 꿩 먹고 알 먹고(3) +1 18.10.21 266 7 18쪽
38 꿩 먹고 알 먹고(2) +1 18.08.21 378 6 19쪽
37 꿩 먹고 알 먹고(1) +1 18.08.14 402 10 21쪽
36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5) 18.08.11 412 10 18쪽
35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4) +4 18.08.08 443 9 24쪽
»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3) +2 18.08.06 420 9 21쪽
33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2) 18.08.03 436 8 16쪽
32 악마가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하는 방법(1) +5 18.07.29 481 11 17쪽
31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2) 18.07.26 474 11 14쪽
30 라온의 차원 침략 데뷔전(1) +4 18.07.24 467 10 21쪽
29 차원 게이트(2) +2 18.07.22 483 11 13쪽
28 차원 게이트(1) 18.07.21 502 13 17쪽
27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3) +2 18.07.20 462 13 15쪽
26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2) +3 18.07.19 470 12 11쪽
25 ‘충동’의 악마와 첫 번째 날개(1) 18.07.17 448 12 19쪽
24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2) +2 18.07.16 476 12 15쪽
23 중급 악마 vs 하급 악마(1) +2 18.07.15 478 10 13쪽
22 다린과 선물 보따리(2) +1 18.07.14 478 11 13쪽
21 다린과 선물 보따리(1) 18.07.13 458 11 14쪽
20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3) +2 18.07.12 478 15 16쪽
19 라온과 라오스의 하급 악마들(2) +3 18.07.12 526 1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