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얼 번스타인2
베리는 다시 새로 변해 존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존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굳은 상태. 등에서 물이 흐른다.
“여기서 당할 뻔 했니?”
존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암~ 난 아직 잠이 덜 깼어. 재미있게 해봐요.”
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호흡을 길 게 빼고는 이를 악문다.
“호오, 각오?”
“너무 부끄럽고 좆같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존은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그 이상한 여자가 보인다.
‘결과를 받아들이자. 결과를 받아들이자. 결과를 받아들이자.’
여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티타임 존 선생님. ...아까 그 도주는 뭐죠? 무슨 의미에요?”
그녀는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존은 싸늘한 느낌이 들어 다시 뒤로 돌아보았다. 예의 가면의 사나이가 말없이 서있다. 얼마 동안의 침묵. 존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개씨발, 개씨발, 개씨발, 개씨발....”
존의 얼굴의 진동.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치켜뜨고는 가면의 사나이에게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개씨발, 개씨발....”
“아뇨.”
여자의 목소리에 존은 입술을 깨물고 피를 흘린다.
“사장님이 이제 대련은 필요 없으시데요.”
그녀의 목소리도 약간 떨렸다.
“개씨발?”
여자는 가면의 사나이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말했다.
“두 번째로 보여줄 물건은 ‘수면탄’입니다.”
“어...?”
가면의 사나이는 은색 봉 같은 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곤 존의 발 앞에 던졌다. 그것에서 흰 연기가 올라왔다.
‘제발.....’
존의 눈엔 빨간 괴물 가면을 쓰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그래, 세상은 괴물의 소굴이야. 사람들이 괴물 같이 느껴져. 그들은 대단해. 날 비웃을 만해. 잘 생겼든, 그럴 듯하게 생겼든, 평범하게 생겼든, 재수 없게 생겼든, 착하게 생겼든, 못 생겼든.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죽일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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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이 눈을 떴다. 짙은 갈색 천장이 보였다.
“뭐요? 신기한데. 마술이오? 내가 언제 누운 거지?”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일어나려고 했다. 팔과 다리에 압박이 느껴졌다. 뭔가에 강하게 고정이 되어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목만 뺀 채 이리 저리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는 존에게 새가 조심스럽게 날아왔다.
“일어났네요. 잠도 참 많이 자.”
“잠을 자다니, 방금 전에 암기 구매를 하고 있었는데?”
존은 자신의 팔다리에 묶인 쇠사슬을 보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아....”
“티타임....”
“여긴 어디에요? 여긴 어디냐고! 개새끼들아!”
“그러게 말이야.”
존은 팔과 다리를 격렬하게 움직여 본다. 역부족이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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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의 사나이가 테이블에 앉아있다. 여자가 스프를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스프 두 그릇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남자는 숟가락을 저으며 국물 안에 들어있는 버섯을 건드려본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턱에 대고 가면을 당겼다. 감사관 요하임 캐스트의 얼굴이 드러난다. 여자도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쳐다본다.
“이봐, 철얼. 북쪽의 희망의 별은 아직 자고 있나?”
“...글쎄요. 확인해 보고 올까요?”
“뭐, 됐어. 상관있나. 밥이나 먹자고. 꽁꽁 묶어 놨으니 마법사가 아닌 이상 탈출은 불가능해.”
철얼이라 불린 여자는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든다. 요하임은 수첩을 보며 식사를 했다. 여자는 입맛이 없는지 스프를 깨작거린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이. 그런데 말이야. 저 인간 정체가 뭘까? 판단하기 어려우니, 잡아놔도 조금은 불길하군.”
“사장님. 제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우리 늑대를 일합에 반으로 갈라버렸습니다. 늑대는 즉사했습니다."
“그런 강한 힘을 가지고도 어설픈 건 무엇일까? 총독부에서 봤을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오늘 실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만, 도망간다는 건 예상 밖이었지. 어땠나, 철얼. 분석한 바를 읊어봐.”
여자는 그릇을 들어 입을 대고 스프를 마셨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이야기 한다.
“사장님이 목숨을 걸고 싸우신다면 제 아무리 강한 적도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까처럼 겁에 질려 도망을 간다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거대 늑대를 저런 식으로 도륙하는 건 제국의 소드마스터 수준이 아니고선 힘이 들 터인데. 아, 그리고 다른 이야기긴 한데, 전투를 벌일 때 ‘2번!’이라고 소리를 치는 것을 들었습니다...만,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설마 초식을 읊으며 싸우는 건가...? 고전적인데.”
“네....”
“촌스럽군, 늑대는 상태가 안 좋았나?”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사장님이 싸움을 걸자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처음엔 그게 길을 잃어서 헤매다가 실수로 다시 돌아온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망갈 때 정말로 겁에 질려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돌변해서 이상한 기세를 뿜는 걸 보니 생각이 조금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몇 가지로 경우의 수를 정리해 봤습니다.”
요하임이 한 손으로 스프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건더기를 덜어먹고 있다. 눈을 감으며 맛을 음미한다.
“계속 말해봐.”
“첫째, 저자는 강하긴 한데,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거죠. 완전히 미치진 않았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횡설수설하며 다른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겁니다.”
남자가 넥타이를 푼다.
“다음은?”
“둘째, 이자가 이중인격일 가능성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영웅의 인격과 얼간이의 인격이 몸 안에 병존하는 것입니다.”
“영웅의 인격이 칸트와 우리의 늑대를 때려잡았다?”
“가능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또 다른 경우의 수는?”
“또 다른 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 자가 양이나 너구리의 영혼을 지닌 호랑이인 경우죠. 강한 실력과 양의 순수함이 섞여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웃기는군. 내가 봤을 때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래, 이걸로 끝?”
철얼은 요하임의 뒤로 가서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혹시 압니까..., 이 녀석 알고 보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마법사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도?”
“마법사라..., 그런 게 존재하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아니면 마녀와 결탁이라도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마녀는 너잖아?”
철얼이 요하임의 뒷목을 오른손으로 잡고 강하게 주무른다. 요하임이 눈을 감고 입을 벌리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테이블 끝을 꽉 잡으며 입을 연다.
“아아, 어찌됐든 파악이 안 되는 건 짜증이나. 일단 잡아뒀으니 천천 알아보자고. 총독이 강하게 신임하고 있으니 죽여서는 안 돼. 저렇게 적당히 고립시켜 뒀다가 힘이 빠진 거 같으면 고문을 해. 그렇게 수수께끼를 풀라고. 티타임 존의 정체를 세상에 까발리자고.”
“알겠습니다.”
철얼이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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