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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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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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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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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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영지로 (2)

DUMMY

그녀의 팔에 박힌 화살의 상처가 덧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메이븐이 용병들을 돌아보았다. 천천히 레이피어의 날이 율리시스의 경동맥 가까이 파고들어가자 피가 흘러나와 그의 흉갑을 타고 흘러내렸다.


헤이거가 메이븐의 기습에 사망한 뒤 지휘권을 인계한 듯한 여용병이 피가 흐르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크게 떨리는 손으로 도로 크로스보우를 집어들어 메이븐을 조준했다.


"무기를 버리지 마라! 어쩔 수 없지.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은 목숨이다. 율리시스 우드님은 포기한다. 우리도 다친 상태인 엘프를 인질로 잡자, 그 다음 저 소년을 합공한다. 저 두 년 놈들을 족쳐야 우리가 계속 용병짓을 할 수 있다."


"안 돼. 한나 양, 나를 살려주면 30만 골드를 주겠네."


퉁, 쐐액!


크로스보우의 시위가 울리자 메이븐이 식겁하여 방패인 율리시스를 기울여 화살을 막았다. 머리에 현기증이 일어 조준이 어려웠는지 화살은 메이븐이 아니라 율리시스에게 곧장 날아가 흉갑 밑부분을 우그러뜨리며 발밑으로 튀었다.


"꾸엑!"


율리시스는 갑옷이 우그러지며 배의 살집을 때렸는지 괴롭게 비명을 질렀고, 메이븐은 쓰러지려는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일어나서 달려라, 인간방패야. 배신자들을 혼내주자."


"달리겠냐!"


율리시스가 악에 받쳐서 소리지르자 메이븐은 훌륭한 대화도구인 레이피어를 뒷목에 찔러주었다.


"달리겠습니다!"


저돌적인 돌진이 이어졌다. 한나가 크로스보우를 포기한 듯 내던지더니, 여전히 아려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용병들에게 소리질렀다.


"우리는 마차로 달린다. 엘프와 노예들을 인질로 잡아."


"아니 시발. 드루오지마."


베카가 마차를 엄폐물로 사용하다가 마차로 달려들어 인질을 잡는다는 말에 꽥 비명을 질렀다. 그 때 서서히 눈에 초점이 돌아온 흰 수염의 매부리코 마법사가 앙상한 다리로 마차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왠 할아버지의 난입으로 싸움터에 정적이 흘렀다. 비척이면서 일어나더니 마법사가 두 다리를 후들거리며 검지손가락을 하늘로 향했다.


"못된 자들."


"마법사에게 활을 쏴, 뭘 봐주고 있는 거야. 노인이라도 위험하다고."


화살 하나가 정확히 마법사의 가슴에 날아들자 베카가 투핸디드소드를 휘둘러 쳐냈다.


"[못된 자들의 엉덩이에 불꽃을]!"


"아악!"


그러자 메이븐의 손에 들려있던 율리시스와 용병 십여명이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나 흙에 문질러도, 수통으로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새빨간 마법의 불꽃이 그들의 엉덩이에 붙어 있었다.


"휴우, 인체 내 대사과정에서 만들어진 메탄가스를 이용해 일으킨 불꽃이다. 쉽게 꺼지지 않아."


'그냥 방귀를 점화했다는 거잖아.'


메이븐이 있어보이게 꾸며서 말하는 마법사를 황당한 듯 쳐다보며, 엉덩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율리시스를 발로 걷어차 축구공처럼 드리블해서 마차로 갔다. 살집이 통통한 덕에 쇠로 만든 흉갑도 둥그스름해서 은근 굴리는 맛이 좋았다.


"꺄아아악!"


"베카?"


마차에 도착해보니 이제 상황파악을 하고 정신을 차린 듯한 다섯 명의 노예와 마법을 영창한 마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차 앞에서 난리를 피우는 베카가 보였다. 인신매매 피해자들과 메이븐은 멀쩡한데 눈물 콧물 짜내며 홀로 바닥을 구르는 베카였다.


"어? 내 마법이 실패했는가? 왜 엘프님이 고통을..."


당황한 노마법사가 사죄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하자 메이븐이 망토를 벗어 베카를 덮어주었다.


"악! 아직 안 죽었어 시발놈아."


"멍충아! 연소과정에서 산소를 차단하면 불길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엉덩이를 꽁꽁 싸매라. 옷에 구멍났으면 그걸로 가리고."


"으헝헝, 못된 할아범아. 빨리 못 꺼! 나 시집도 못 갔단 말야. 변태 할아범아."


"어? 어 그게..."


마법불꽃이라 고통이 상당했는지 베카카 악을 지르는 사이, 메이븐은 조금만 더 마법을 유지하라고 부탁한 뒤 에스토크를 집어들고 바쁘게 뛰어다니며 용병들에게 한 방 씩 먹여주었다. 무장을 버리고 항복한 용병들은 팔다리를 묶었다.


그 사이 베카의 불꽃만 사라지게 하는 데 성공한 듯 늙은 마법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베카가 울먹이며 마차 앞에 앉아있었다.


"시집 다갔네, 시발. 메이븐 니가 책임져."


"나를 물고 늘어지지마."


그래도 훌쩍이는 베카가 불쌍했는지 메이븐이 다가가 그녀의 상처를 보고 가방에서 이반 군터에게 받아온 포션병을 꺼냈다.


"야, 아까 화살 맞은 팔 좀 보여봐. 마법사 할아버지 와서 힐 좀 써봐요. 흉 안지게 치료해줘야지."



*



율리시스와 창잡이 용병 둘, 그리고 활잡이 용병 하나가 생포되었다. 그들은 포박되고 무장이 해제되어 방금 전 노예들이 실려있던 마차 내부에 들어갔다.


"일단 조금 쉬면서 천천히 이야기 해봅시다."


메이븐이 행렬을 멈춰세우고 말했다.

개울가였다. 방금 전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멀지 않은 숲의 개울에서 일단 씼고 정비를 하기로 했다. 생포한 인원들과 구출한 노예들의 처분도 고민해야 하고, 전투를 치르느라 배도 고팠다. 날이 저물어오자 일찍 야영준비를 시작했다.


베카는 전리품으로 금속으로 테두리가 되고 흑단목로 몸통이 만들어진 카이트쉴드와 여자용병이 입고 있던 여성용 금속제 흉갑을 챙기고 그 위에 메이븐의 회색 망토까지 걸친 뒤 다시 희희 웃기 시작했다.


'단순해서 좋겠다.'


아니면 아무래도 아까전에 화살을 맞았던 게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노예들의 대표로 보이는 마법사가 다른 네명의 남녀노예들과 함께 초최해진 얼굴로, 야영을 위해 메이븐이 피운 모닥불가에 앉아 인사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제국법상 불법인 인신매매를 저지르는 자들을 단죄했을 뿐인걸요.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마법사 어르신."


마법사는 소드오러 사용자보다 더 귀한자원이다. 어지간한 왕국이나 귀족영지에서 대접받으며 살 수 있는 데 어쩌다 노예로 전락했는지 필시 기구한 사연이 있을 거라 메이븐은 짐작했다. 모닥불에 물고기를 굽던 베카가, 소금이 뿌려진 채 노릇노릇 익어가는 물고기 꼬치를 들고 쪼르르 달려와 메이븐에게 귓속말했다.


'메이븐, 메이븐, 야 그럼 사채는 제국법상 허용되냐?'


'아 진짜! 넌 이럴 때 그럴래? 빈민가 파괴는 합법이냐?'


메이븐이 순간 화가 치밀어 베카에게 마주 물어보았다. 이번에는 베카가 눈을 굴려 메이븐을 외면했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둘을 앞에 두고 마법사는 다시 주의를 끌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흠! 엘프 용사님, 화살에 맞은 팔을 보여주시면 [힐]을 사용해 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메이븐보다 훨씬 낫네요."


베카가 왼팔 팔뚝을 보여주자 화살이 박혔던 자리에 작은 연한 붉은빛 흔적만 남아있었다. 딱지도 내려안지 않았고 깨끗하게 아문 듯 했다. 그래도 목숨걸고 구해 준 생명의 은인에게 행여 문제가 생길까 마법사는 정성스럽게 치료마법을 걸었다.


수도기사단의 포션을 함께 썼다지만, 흉터 하나 없이 치료한 거 보면 꽤 솜씨 있는 마법사다. 메이븐이 은은한 푸른 광채를 발하는 주름진 마법사의 손바닥을 보며 물었다.


"실력 있는 마법사 같으신데 어떻게 노예로 붙잡히셨습니까?"


노마법사가 그 질문에 쓸쓸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이름은 알론소 가브리엘이라네. 사실 마법왕국 헬키아에 자리잡은 다마소 학파에서 수학했고, 5서클의 의료마법 전공자이지. 학파를 나온 뒤, 에스페란사 사막의 대부족 프랑코 일족에 고용되어 일했네."


"5서클이면 왕궁이나 귀족 영지에서 초빙마법사로 맘편히 연구할 수 있지 않아요?"


베카가 굳이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까지 떠났다는 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5서클이면 일반적인 학파에서는 고위직이다.


"그렇지만 사막의 부족들도 생각보다 위세가 대단하지. 다른 부족을 잡아다가 노예로 파는 대부족의 경우는 작은 왕국과 유사하다네.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헬키아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네."


"아, 저런."


무슨 사고인지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장작이 타는 소리와 개울의 물소리를 배경으로 알론소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법사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프랑코 일족의 대족장 프란시스코는 의술로 이름을 떨친 나의 소문을 듣고 납치했어. 가슴이 커지게 하는 약은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알아먹지 않았어. 풍유환이라는 덜떨어진 명칭을 가진 약의 전설을 듣고 제조법을 찾아오라고 성화였지. 그게 다 발육이 부진하던 그의 딸 카르멘 프랑코를 위해서야. 그래서 나는..."


베카가 풍유환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마법사의 말을 끊고 물었다.


"저런, 풍유환을 만들지 못해 노예가 된 거군요?"


"아니, 보형물 삽입을 권했네. 째고 넣고 힐을 써서 흉터없이 봉합했을 뿐이나 물방울모양이 신의 솜씨라더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대족장의 딸은 만족해했어. 이웃부족의 유명한 미남에게 시집갔지. 나는 부족장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으며 안락하게 지냈네. 그러던 와중에 끔짝한 사단이 벌어진거야..."


이번에는 메이븐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평화롭던 나날도 끝, 이웃 대부족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된 거군요?"


"아닐세. 보형물이 터져버린거야."


베카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작게 탄식했다.


"아... 앗. 보형물이 거기서!"


알론소가 침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힘없이 늘어진 두 팔이 고된 노예생활로 지친 노마법사의 육신을 더 청승맞아 보이게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육포와 곡물을 넣고 끓인 스프를 마시며 기운을 차린 다른 네 노예들도 다가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알론소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의 절반이 시커멓게 죽어서 도려내는 수밖에 없었다지. 수술 후 2년차의 사건이야. 내가 대족장의 따님께 그렇게 몸조심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오라고 했거늘. 결국 난 야밤중에 체포당해 노예시장으로 끌려갔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했다네."


조심스럽게 타이밍을 재던 메이븐이 반신반의하는, 영 확신이 없는 눈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게 노예가 되신거군요?"


"아니네. 노예시장에서 이번에는 남자노예들의 중요부위에 악세사리를 달게 되었지."


여성 인신매매 피해자 둘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젊고 주근깨 많은 여성이 중얼거렸다.


"아앗, 귀부인들의 취향이. 하, 참, 그게 또..."


악세사리가 무엇인지 노예시장에서 목격한 듯 싶었다. 한편 오필리아 하이멜과 연관된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메이븐은 옆에서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알론소가 감탄한 얼굴로 지혜로운 메이븐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혈관이 막혀 일부 남자노예들의 중요부위가 괴사되어 버린거야. 특제 악세사리의 효과를 탐낸 노예시장의 운영자의 중요부위도..."


"결국 돌팔이란 거였잖아!"


베카가 물고기를 다 뜯어먹은 빈 나뭇가지를 휙 내던지며 소리쳤다. 뭔가 기구한 사연이 있나 했더니 돌고 돌아서 잦은 의료사고로 신세를 망친 돌팔이 성형외과 마법의사였단 말이다.


"그럼 베카의 팔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까?"


메이븐이 힐로 깔끔하게 치료된 베카의 왼팔을 손으로 들어올려 보이며 물었다.


"아, 그건 그냥 힐이었네. 걱정하지 말게. 보형물 삽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난 순수했던 초심으로 돌아왔네."


메이븐을 비롯해 옹기종기 모여앉은 여섯명의 남녀가 하얀 수염을 길러 누가보면 성자나 성인으로 착각할 법한 노인을 벙찐 얼굴로 보며 일치된 생각을 했다.


'퍽도 순수하겠다!'


"그런데 형제."


알론소가 성큼 메이븐을 향해 다가오며 그의 손을 잡았다. 메이븐이 경기를 일으키며 거리를 두었다.


"난 그런 악세서리 필요 없어요. 떨어져요!"


"자네에게 몹쓸 저주가 걸려있네."


"무슨 저주입니까? 제가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원인과 관련이 있나요?"


저주라는 말에 걸리는 게 많은 메이븐이 솔깃해서 알론에게 되물어 보았다. 그러곤 자리를 피하기 위해 알론소를 이끌고 떠나려던 메이븐은 그를 노려보는 베카의 시선에 포기하고 모닥불가에 도로 앉았다.


"아니, 그건 나도 모르겠어. 자네 원래 소드익스퍼트였나?"


"그렇습니다. 그러면 무슨 저주인가요?"


8년의 시한부 인생과 관련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메이븐이 진지한 눈빛으로 알론소를 보았다.


"이건... 발기부전일세."


"푸헐."


엿듣던 베카가 입을 헹구려고 머금었던 물을 뿜었다. 베카의 맞은편에 있던 죄없는 남자노예들이 그 물을 맞았는데, 한 명은 질색해서 물을 피하는데 다른 하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물고기 비린내가 나는 물을 얼굴에 맞았다. 후자는 조용함과 달리 위험한 사람이라고 모닥불가의 일원들은 생각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충격은 받은 건 외견상 16세의 미소년, 메이븐이었다.


"...네?"


"지독한 저주로군. 내가 풀 수 없어.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데, 자네 최근에 어떤 여자 귀족이나, 마법사, 사제에게 원한 산 일이 있나?"


많다. 너무 많다. 오필리아 하이멜부터 일리오네 핼버디아, 그리고 어둠의 자매들에게 시달렸을 수많은 귀족여인들, 게다가...


"아! 스텔라."


"뭐야, 너 성녀님 안 뵙고 온거야? 완전 구제불능의 쓰레기네. 이거 뭐냐 그 외모차별인가 그거냐?"


"아니 난 그저."


"됐어, 꼴에 변명은. 스텔라 성녀님께 직접 해, 남자들이 다 그 따위지 뭐."


베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메이븐을 쏘아보았다. 하프오크 성녀가 메이븐이 죽었다는 말에 얼마나 상심하고 그가 되살아났다는 말에 얼마나 가슴 졸이며 찾아오길 기대했겠는가.


"혹시 누구 성신의 증표 가지고 있는 사람?"


젊은 여자노예가 손을 들더니 품 속에서 다섯개의 별이 서로 얽혀있는 성신의 증표를 꺼내 들었다. 메이븐이 감사한 얼굴로 증표를 받아들고 일행에게서 떨어져 개울가로 갔다.

개울가에 성신의 증표를 물에 넣고 메이븐이 기도를 시작했다. 곧 물 속에 비친 밤하늘의 샛별이 아롱아롱 빛나더니 떨리기 시작했다.

메이븐이 다행히 호문클루스가 된 뒤에도 작용하는 성신과의 약속에 안도하며 이야기했다.


"당신이지?"


[뭘 말이냐?]


"시치미 떼지마, 좋은 말로 할 때 저주를 해제해. 죽었다 살아나면서 저승에서 명부록을 봤어. 저승사자 말로는 내 나이 45세, 즉 앞으로 8년 뒤에 죽는데. 그 전에 원없이 해보고 죽을 거야. 스텔라 그 아이가 부탁했나봐? 걔하고 나는 이어질 수 없어. 나한테는 딸 같은 아이야. 내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업어주고 길렀다고! 게다가 시한부 인생이란 말야."


[외모 때문이 아니고?]


뜨끔. 메이븐은 바늘로 횡격막을 찌르는 듯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냐, 일리오네 한테도 안 된다고 했어. 8년 시한부 인생 때문이야. 게다가 역적으로 수배당한데다, 마나도 못 쓰게 되어버려서 짐덩이야."


[너의 인간성은 내가 잘 알지. 외모보다 중요한 게 마음씨이고, 마음씨보다 중요하 한 게 속궁합이란다.]


앞부분을 듣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청렴결백에 여자관계도 순수하던 스스로의 인성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메이븐이 뒷부분에 발끈했다.


"잘 나가다 마지막에 뭐야!"


[다시 잘 생각해보렴.]


"그게 무슨, 남성에게 죽음을 선언하고 미안하다면다야? 얼른 저주 풀어. 스텔라한테 미안하다고 편지도 쓸거야.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씩 편지써서 보낼께. 해제해 줘. 스텔라한텐 계속 저주에 걸린 채라고 말해도 좋아. 비밀 지킬께. 그 대신 포교도 열심히 해주고"


[편지는 매주, 최소 이년 간 보내거라.]


"그래야지. 애초에 내가 성신의 신전에 방문했을 때 스텔라에게 들리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는 걸."


[휴, 같은 남자로써 딱하기에 들어주마. 들키기 전에 동정은 떼도록.]


"약속할께!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어."


메이븐이 자신감 넘치게 고함지르자, 엘프라서 귀가 밝은 베카가 저 멀리 모닥불가에서 귀를 쫑긋거리다 도저히 못들어주겠는지 소리쳤다.


"듣자듣자하니까 이 변태들이! 참나, 성신이 저런 존재였어?"


영문을 모르는 알론소와 다른 네 명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메이븐을 돌아보았다. 메이븐이 사과처럼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며 도로 성신의 증표를 물에서 빼냈다.


"일상생활 불가녀 주제에 당당하게 그딴 소리 하지마. 이게 남자에게 얼마나 진지한 문젠데."


[험, 험, 뭐 인간적인 게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편하지 않겠느냐? 누이좋고 매부좋으면 다 좋은거지. 숲의 아이야, 복잡하게 따지고 들면 인생이 피곤하단다.]


알론소가 메이븐의 변명을 들으며 인자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았다면 성인의 미소라 부를만큼 자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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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7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6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4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8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1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7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1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1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0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5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1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3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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