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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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EORANG
작품등록일 :
2018.07.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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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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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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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너를 대하는 건 너무 어려워

DUMMY

#23. 너를 대하는 건 너무 어려워


발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 위에 붉은 톤의 남방을 입은 청아는 거울을 보며 고민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컨디션을 끌어올릴 포인트가 없을까 말이다. 옷장 속 가지런하게 걸린 옷을 손가락으로 훑다가 호피무늬 코트를 집어 들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대충 모자와 코트를 걸치고 청아는 집 밖으로 나섰다.


바깥은 한참 진한 가을 속에 담겨있었다. 걷다가 상가 유리 속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입가에 번져나갔다. 그녀의 발걸음 끝에는 이제 집만큼이나 익숙해진 동아리방이 있었다.


“청아! 왔습니다!”


문을 한껏 열어 재치고 청아가 인사했다. 동아리방에는 민준과 구양이 있었다. 민준은 소파에 누워 손짓으로 청아를 반겼다. 구양은 컴퓨터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청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구양의 뒤로 가서 섰다.


“청아 왔는데 뭐 해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청아가 구양에게 몸을 비볐다.


“알았어. 잠깐 저리 가 봐.”

“아이. 뭘 알아. 우리 구양 너무 차가워.”

“아. 좀. 지금 바빠!”


청아는 딱딱하게 반응하는 구양의 모습이 재밌어 더욱 치대기 시작했다.


“귀여워. 뽀뽀. 쪽. 쪽.”


뽀뽀하는 시늉을 해댔다. 조금 더 건드리면 화난 다람쥐가 될 구양의 모습이 훤했기에 마지막으로 볼 뽀뽀를 남기고 소파로 향했다.


“야. 이청아. 제발.”


구양은 진심으로 질색했다. 손등으로 청아의 입술이 스친 볼가를 닦아냈다.


“오빠. 뭐 해? 수업 끝났어?”


청아는 성질을 내는 구양을 가볍게 무시했다.


“응. 집 가면 할 거 없어서.”

“에. 어차피 여기서도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그건 그래. 술 마실래?”

“아뇨. 이미 어제도 달려서.”

“하여튼 술은 진짜 좋아해.”

“맞다. 오빠 할 얘기 있어요.”


청아가 슬쩍 구양을 쳐다봤다. 그녀의 귀에 헤드폰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뭔데?”


핸드폰에 있던 시선을 민준이 청아에게 옮겼다.


“별거 아닐 수도. 별거 일 수도 있는데.”


말끝을 흐리는 청아의 모습이 민준은 낯설었다.


“심각한 일이니? 마음의 준비할까?”

“아니. 잘 모르겠어요. 일단 미안해요.”


청아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혹여나 민준이 화를내도 할 말 없는 것이었으니까. 본인이 인화와 친해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날 떡볶이를 먹고 나서는 정연의 말마따나 인화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지를 가지고 거리를 두기에는 너무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인화와 연애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친구로서는 그렇다고 청아는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준에게 미안한 감정이 컸다. 왜인지 몰라도 민준을 배신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 빨리 말할걸.’


때늦은 후회였다. 짧은 시간 급격히 친해진 인화와의 관계 탓에 청아는 언제 말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한 번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 입을 떼기가 점점 힘들었다. 오늘은 마주친다면 바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또 하필 그녀 앞에 민준이 바로 나타난 것이다.


“뭐가. 아. 빨리 말해줘.”


민준이 이제 몸을 아예 일으키고 청아에게 칭얼거렸다.


“인화 언니······. 있잖아요.”

“언니...?”


청아의 입에 인화 언니라는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민준은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응. 있잖아요. 내가 이번에 학교에서 하는 멘토링 한다고 했잖아요.”

“아. 화장품. 그거?”

“응.”

“설마.”


민준은 단숨에 청아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눈치챘다.


“설마가 실화에요. 미안해요.”


청아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곱게 감았다. 민준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 이었다.


“괜찮아. 뭐. 이젠 상관없거든.”


민준이 한껏 앞으로 들이민 청아의 두 손을 잡아 내렸다.


“진짜로?”


고이 감고 있던 눈을 뜨면서 청아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청아의 고백 끝에 이런 자연스러운 해피엔딩의 시나리오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소 민준의 토라짐은 각오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밤새 어떻게 민준의 토라질 마음을 달랠지 몇 가지쯤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었다.


“어. 너도 은근히 소심하구나?”


일전에 장을 보며 청아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돌려준 민준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청아의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정말 괜찮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은 고민했을 청아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보였기 때문에 괜찮지 않았더라도 딱히 별말은 안 했을 것이다.


“아니거든요?”

“멘토가 인화 누나야?”

“맞아요. 어쩌다 보니 친해져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민준은 청아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듯했다. 아래로 깔린 그의 시선이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청아는 알 수 없었다.


“인화 누나랑 내 사이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그건 우리 둘 문제니까. 넌 신경 안 써도 괜찮아.”

“고마워요. 계속 걱정했는데.”


청아는 우리 둘이라는 말에 덜컹하는 마음을 정돈시켰다. 여전히 인화와 민준은 둘이었고 청아는 그 바깥에 존재하는 기분이었다.


“아니다. 그 누나가 사람은 좋지. 그래.”


어딘가 씁쓸한 말투였다. 청아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


청아는 이기적인 스스로가 참 별로라고 느꼈다. 그리고 불안했다. 인화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했지만, 민준은 이제 상관없다고 했지만 이 둘의 연결 다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떨쳐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인화와 민준 사이에는 여전한 감정의 얽매임이 있었다.


그것을 두 사람이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젠가는 발현될 잠재적 성질과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청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



구양은 요즘 게임에 빠져있다. 처음 동아리 사람들과 피시방에 갔을 때 깨달은 재능 덕에 게임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피시방 컴퓨터를 켜는 법도 모르던 구양은 게임 내에서 꽤나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다. 점수가 오를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지금도 동아리방에 마련된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구양!”

“어?”


선호였다. 언제 온 지도 알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거친 숨이 섞인 것을 보아 구양을 한 번 부른 건 아닌 것 같았다.


“왜?”


구양은 헤드셋의 한쪽을 귀 뒤쪽으로 치우고 답했다.


“과제! 같이 하자며.”

“아. 맞다. 미안. 이것만 하고.”

“그래.”


전공 과제를 하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선호에게 부탁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구양의 급한 마음과 다르게 한참을 질질 끌다가 겨우 게임이 끝났다.


“많이 기다렸어?”

“앉아.”


선호가 소파 옆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매우 다정해서 구양의 입꼬리에도 자연히 웃음이 걸렸다. 선호의 손바닥이 움직일 때마다 함께 유영하는 먼지들이 햇빛을 받아서인가 반짝였다.


“뭘 모르겠는데?”

“아. 잠시만.”


구양은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전공 책을 펼쳤다. 두꺼운 표지를 가진 책이 얼마나 펼쳤는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너절해져 있었다.


“이거. 풀다가 포기했잖아. 1시간 넘게 보는데 모르겠더라고.”

“잠깐만. 내가 푼 거 보여 주면서 설명해줄게.”

“오키. 고마워요.”


구양이 말꼬리를 늘리며 웃었다. 선호는 살포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공책을 찾는 척 숨겼다.


“맞아. 이거 나도 풀 때 너무 어렵더라고.”

“그치?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응.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걸? 잘 들어.”


구양은 곧은 손가락으로 연필을 쥔 선호가 왜인지 귀여웠다. 그의 글씨는 완연한 어른다움을 뽐내는 형태였고, 단단하고 단정한 목소리는 시를 읊듯 막힘없었다.


구양은 지금 설명을 듣지 않고 있었다.


“알겠어?”

“어?”

“이해된 것 같아?”

“응. 여기 한 번만 다시 알려주라.”


듣기 좋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구양은 다시 한 번 선호의 설명을 재생했다.


“알겠지!”


이번에는 왜인지 확신에 가득 찬 선호가 종이에 집중하던 얼굴을 구양에게 돌렸다.


“응! 고마워. 이제 이해된다.”


구양은 보답하듯 한껏 웃어 보였다.


“좋아. 좋아.”


선호가 연필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요즘 게임 많이 하네?”

“응. 재밌잖아.”

“그건 맞아.”


선호는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이야기하고 난 그날 이후에 그녀가 그릴 그림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면 서둘러 시작하라고 압박하는 꼴이 될까 망설여졌다.


그리고 어쩐지 평소보다 게임에 빠져 사는 구양의 요즘 모습이 의아했다. 이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게임과 그녀의 그림 사이의 연관성을 선호는 찾아내지 못했다.


“과제도 다 했고. 선호 너는 이제 뭐 해?”

“나 아르바이트 가야 돼. 가기 싫다.”

“지금 바로?”

“응. 이것만 알려주고 가려고 했거든.”

“그렇군. 난 너 가면 게임이나 해야겠다.”

‘또?’


라고 반문할 뻔한 선호는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다.


‘게임 할 수도 있지. 나도 고등학교 때 그랬잖아.’

“그러면 나 먼저 갈게. 내일 보자.”


선호는 가볍게 구양의 어깨를 잡음으로서 인사를 대신했다.


“잘 가.”


어딘지 모를 찝찝함이 선호의 머리를 둘둘 감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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