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귀엽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HAYEORANG
작품등록일 :
2018.07.02 19:16
최근연재일 :
2019.07.01 12:18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599
추천수 :
22
글자수 :
186,662

작성
19.03.18 16:02
조회
48
추천
0
글자
8쪽

#28. 인연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매번 그렇다

DUMMY

#28. 인연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매번 그렇다


“형. 구양이.”

“그냥 사귀어. 제발요.”


정현은 선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답했다. 그의 표정은 이미 질릴 대로 질려 있었으니 선호 입에서 구양이 언급된 횟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현은 곧장 두 다리로 성큼성큼 선호의 앞에 섰다.


“네 덕에 내가 구양이 몇 번 보지도 않았는데 아주 친밀한 사이 같단다.”


한 마디와 함께 선호의 이마를 검지로 꾹 누르고는 다시 제자리로 갔다.


“아니. 내가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합니까.”

“그래. 뭔데?”


투덜거렸지만 결국 얘기를 들어주는 정현이었다. 설거지를 하던 정현은 물소리에 묻혀 선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잠시 물을 끄기까지 했다.


“구양이 좀 이상하달까. 뭔가 느껴지는데 뭔지 모르겠어.”

“말을 너무 모호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상담하는 사람 왕따시키니?”

“아. 그니까. 게임을 너무 많이 하고.”

“게임? 나도 많이 하는데. 너도 많이 하잖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니?”


까칠까칠한 정현의 말투에 공이 드리블 되듯 선호의 생각이 한곳으로 몰리고 있었다.


“아니야. 그런 느낌이 아니라.”


선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점은 그랬다. 구양은 항상 바쁘게 살았으니 말이다. 학교 공부를 게을리하지도 않아 매번 장학금을 받을 정도였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빌 때면 토익이니 한국사니 해서 자격증들을 따기 바빴다. 이번 동아리 운영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대외활동이나 봉사활동들 역시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하던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도 잦았다. 그 바쁜 시간들 속에 취미를 지켜야 한다며 거의 매일을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평범했던 구양의 일상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뭐 하냐는 연락에 구양의 대답의 대부분이 그저 컴퓨터 게임이었으니 말이다.


“좀 달라졌어. 그 아이의 라이프 스타일이. 평범한데 구양한테는 평범하지 않은 상태라는 거야.”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던데.”


정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뭐?”

“농담이야. 정색하지 마라. 형한테. 아주 이게.”


정현은 말을 멈춘 선호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알만하네.’


수차례 선호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통해 정현은 대충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나 보지.”

“심경의 변화?”

“사람이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면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건 그래.”

“그래서 너는 지금 구양이 싫으니?”

“그게 아니라 걱정 돼서 그렇지.”

“그게 아니라 걱정 돼서 그렇지.”


정현이 선호의 말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했다.


“놀리지 마.”

“어우. 징그러. 네가 더 변했어.”


정현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을 양손으로 비벼댔다.


“내가 뭘?”

“제발. 자아성찰 먼저 하시고요. 일 좀 하세요. 시급 진짜 깎아도 넌 할 말이 없어. 인정하지?”

“아니. 알았어. 일하면 되잖아. 아주 돈독이 올라가지고는.”

“뭐? 이 새끼야?”

“아닙니다. 충성.”


선호는 시원찮은 상담에 만족하지 못했다. 정현은 대부분 그랬다. 선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원인과 해결 방안까지 파악했지만 쉽게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발전이 없다는 다분히 선생님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



진우는 며칠 전, 아니 몇 달 전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만남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요즘 이 동아리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만남을 계속 경험하는 중이다. 인화 덕에 말이다.


“언니. 노래방 좋아해요?”

“당연하지. 다음에 같이 갈까?”

“저야 당연히 좋죠.”


그러니까. 청아가 민준의 이전 여자친구인 인화와 친해진 것도 그렇지만.


‘나는 왜 여기 끼어있냐고.’


학교 정문 앞 신호등의 불이 깜빡이던 찰나였다. 진우는 쉽게 포기하고 걸음을 늦췄다.


‘그때 뛰었어야 했는데.’


상상 이상의 불편함에 진우는 생각했다. 어쨌든 다음 파란불을 기다리던 진우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아주 약간 기분이 들떴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청아 옆자리에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인화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두 사람이 친해졌다는 소식을 청아에게 전해 듣기야 했지만 같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진우였다.


“나는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또 한참을 걷다 인화가 꺼낸 말에 진우의 안면이 그제야 활기를 되찾았다.


“아. 회사?”

“응. 가야지. 진우야.”

“네?”


넉살 좋게도 진우의 이름을 부르는 인화였다. 인화는 진우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굳이 진우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았고, 사실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아는 척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어색하게 통성명을 한 상태였다.


“다음에 청아랑 같이 밥 사줄게. 잘 가. 청아 너도 내일 보자.”

“네. 감사합니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는 인화의 인사말에 진우는 영혼 없이 답했다.


“잘 가요.”


청아는 속 없이도 활짝 웃으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얘는 아무렇지 않은가.’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화를 보고 눈물을 삼켰던 청아가 맞나 싶었다.


“야. 많이 친해졌네?”

“응. 언니 귀여워.”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냐.”

“아무렇지 않지 않은데. 내가 김민준과 얽힌 그 무언가를 김민준 때문에 포기하는 건 억울하잖아. 안 그래도 김민준도 포기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야. 더 이상 그 오빠 때문에 참고, 억누르고 이런 거 안 할래.”


주먹을 꽉 쥐고 청아는 다짐하듯이 말했다. 진우는 청아가 민준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표현할 때마다 어쩐지 두둥실 기분이 떠올랐다. 그런 청아가 장해서일까 하고 진우는 가볍게 생각했다.


“아이고. 다 컸네. 사랑 앞에 좀 의연해지셨어.”

“내가 원래 오빠보다는 컸다. 아이가.”

“뭐?”


진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색한 그녀의 사투리가, 또 어이없는 말이 다, 웃음을 불러들였다.


“사랑 앞에서.”


슬쩍 진우를 올려다보고 눈썹을 찡긋해 보인 청아의 입꼬리 역시 하늘을 향해있었다.


“뭐래. 내가 자식아. 사랑 박사야. 아주.”

“모태솔로.”


청아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세요?”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한껏 약 오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용히 해. 제발.”


진우가 그런 청아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 그녀의 얼굴을 시야각에서 치워버렸다.


“응. 알았어.”

“야. 나 모태 솔로 아니거든?”

“아니. 왜 그렇게 울컥하세요? 누가 진짜래?”

“아니라고!”

“아니긴. 다 소문났거든. 바보야.”


청아가 계속해서 그런 진우를 놀리다 약이 오를 즈음 도망쳤다. 후다닥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이 과장되어 마치 자신을 따라와 달라는 듯했다. 진우는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고는 도망치는 그녀 뒤를 쫓아주었다. 이럴 때면 그녀의 매섭고 날카로운 첫인상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느낌이었지만 초등학생 사촌 동생이랑 놀아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좁고 사람이 없는 골목골목이 두 사람의 웃음소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편해. 역시.’


대충 달리다 청아의 목덜미를 잡아챈 순간 진우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편안함은 인간 관계를 엮어가는 과정에서 진우가 거의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진우는 예전부터 집안에서와 바깥에서의 목소리가 스스로 다르다고 느낄 정도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그러나 유독 청아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장난을 칠 때면 마치 가족들을 대하는 것과 같이 편안했다. 억지로 목소리를 꾸며낼 필요도, 서투른 감정을 포장할 필요도,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이 관계가 가능한 오래갈 수 있도록 진우는 지켜내고 싶었다. 다른 것을 바라기

에는 이미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29화가 업로드가 안 되어 있어서 지금 올립니다.

혹시나 불편했던 분들이 있으시다면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녀는 귀엽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40. 해피엔딩이 아닌 평범한 시작 19.07.01 22 0 12쪽
39 #39. 같은 상황, 다른 생각 19.06.24 30 0 12쪽
38 #38. 티격태격 19.06.17 25 0 10쪽
37 #37. 어색한 첫 만남과 조금 더 어색한 두 번째 만남 19.06.17 29 0 14쪽
36 #36. 앗, 너는? 19.06.03 35 0 11쪽
35 #35. 바보들의 행진. 19.05.27 31 0 17쪽
34 #34. 난 무서워. 너를 잃게 되는 게. 19.05.20 34 0 12쪽
33 #33. 사실 다 오해야. 19.05.13 32 0 14쪽
32 #32. 그러나 그랬다. 19.05.06 38 0 12쪽
31 #31.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19.04.15 46 0 13쪽
30 #30. 그날, 별안간 로맨스 19.04.01 54 0 11쪽
29 #29. 커피 한 잔의 반복 19.03.25 39 0 10쪽
» #28. 인연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매번 그렇다 19.03.18 49 0 8쪽
27 #27. 별것 아닌 복선 19.03.11 66 0 14쪽
26 #26. 후회를 남기고 또 다른 것을 남겼다. 19.02.25 40 0 13쪽
25 #25. 시작이 반이라 나는 시작도 못하나 보다 19.02.11 51 0 10쪽
24 #24. 떡볶이는 맛있고 나는 그걸 몰랐다 19.02.04 48 0 9쪽
23 #23. 너를 대하는 건 너무 어려워 19.01.21 71 0 10쪽
22 #22. 그렇게 알 수 없는 게 인연이다. 19.01.14 77 1 11쪽
21 #21. 흔한 만화 속 주인공 19.01.07 57 1 8쪽
20 #20. 모르는 게 나을 뻔했어 18.12.31 48 1 7쪽
19 #19.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18.12.17 68 1 8쪽
18 #18. 사랑은 매일이 다르다 18.12.04 77 1 12쪽
17 #17. 모태솔로들의 썸 타는 방법. 18.11.19 73 1 12쪽
16 #16. 찌질한 사랑 18.10.29 75 1 10쪽
15 #15.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 18.10.22 50 1 12쪽
14 #14. 그 남자들의 이야기 18.10.08 55 1 12쪽
13 #13. 별일 없는 한심한 청춘 18.10.01 72 1 8쪽
12 #12. 이상해 나. 그리고 너. 18.09.24 56 1 8쪽
11 #11. 이미 끝난 걸 18.09.17 66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