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였던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오피온
작품등록일 :
2018.07.09 16:53
최근연재일 :
2018.08.22 23:5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6,294
추천수 :
94
글자수 :
255,249

작성
18.07.10 17:57
조회
910
추천
3
글자
9쪽

prologue

DUMMY

톡, 톡 톡······.

그 청량한 소리만이 내 귀에 담긴다. 주변의 여러 잡음도 어째서인지 차단된 채 들려오지 않는다. 더불어 주변의 여러 변화도 내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눈앞에 굴러가는 사과에만 집중된다.

손에서 떨어져 나간 사과는 데구루루 하염없이 멈출 줄을 모른 채 굴러 간다.

“어.....?”

내 손에서 벗어난 사과는 돌던 걸 멈춘다. 구르고 굴러서 어떤 한 사람의 발에 도달한다. 그 광경을 보자니 손에 힘이 풀린다. 먼저 간 친구를 따라가고자 손 안에 품어져 있던 사과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흩어진다.

빙글빙글 돌던 걸 멈춘 순간 사과가 도달한 곳은 한 사람의 앞이다. 사과 앞에 서 있는 그녀는 허리를 숙여 내가 떨어뜨린 사과를 줍는다.

그녀는 사과에서 먼지를 툭, 툭 털어 내며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털털하게 옷깃으로 닦은 사과를 거추장스럽게 씹는다.

아그작, 아그작.

경쾌하게 씹는 소리가 들린다. 사과에서 베어 나온 과즙이 붉은 입술을 타고 흐른다. 그때서야 스스로 손을 내뻗고 있음을 난 깨닫는다.

이윽고 뻗은 손을 지례 감춘다. 난 대체 뻗은 손으로 무엇을 하려 했을까. 사과에 대한 주인 행세를 하려 하지도, 떨어진 건 더럽다고 먹지 말라는 충고도 하려던 건 아니다. 단순히 놀람과 당혹스러움에 그 손을 감춘다. 내가 뻗은 손을 감춘 건 그 때문이지 다른 영문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본다.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며 여전히 사과를 먹는다.

사각, 사각.

한 입 베어 씹을 때마다 입안으로 하여금 경쾌한 소리가 퍼진다. 그 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주변 일대의 소음에 묻혀서 금방 묻혀 가기 충분하다. 사라져만 가고 있어 오래 가지 못할 작디작은 소음 일 뿐이다.

그런 소음이지만 그 소리는 내게 크게 다가온다. 또 한 나를 일깨우기 충분 할 만큼 크게 와 닿는다.

“무, 뭐하는 거야, 지금! 이게 다 뭐하는 짓 꺼리야!”

그러는 와중에 나는 힘겹게 입을 뗀다. 그리고 외친다. 목의 무리가 갈 정도로 큰 외침이다. 생전 그녀에게 질러 본 적 없는 큰 목소리를 지른다.

그녀는 놀랐을까, 아니면 겁을 먹었을까.

내 걱정되는 마음과 달리 그녀는 그런 기색이라고는 추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보이는 행동은 전혀 내 예상과 다르다.

그녀가 짓고 있는 표정은 너무나도 담담하다. 그리고 다음에서야 들어난 표정은 나에게 하여금 강한 충격을 선사한다.

씨익.

미소다. 그녀가 짓는 건 미소다. 경쾌하고 밝은 미소다. 내가 그녀와 지내며 봤던 그녀의 그 어떤 미소보다 아름답기만 한 미소다.

“어서와, 오빠.”

아름다운 미소는 흠칫 나를 놀라게 하는 꺼림칙한 미소이기도 하다.

“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묻고 있잖아!”

두 번째다. 내가 지금까지 질러 본 적 없는 분노가 표출 된다. 적의를 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해 본 상대에게 하고 있다. 다름 아닌 내 여동생에게 내뿜고 있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에 몸은 숙여진다. 땅을 마주보며 이 분노를 사그라트리려 한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외면도 해보려는 마음도 있다. 분명 무언가 오해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머리로 반복하며 고통스런 신음을 악 물어 참는다.

그렇다. 그녀는 내 여동생이다.

전혀 다른 타인처럼 느껴지는 눈앞의 그녀는 내 유일한 혈육이다. 이 현장의 원흉인 그녀는 내게 있어 제일 소중한 존재다.

무엇보다 소중할 터인 그녀가 지금 이 순간 타인처럼 느껴진다.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맹렬히 느끼고 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를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들지만, 한 편으로는 그걸 부정하고 싶은 모순도 있다.

지금까지 알던 그녀의 모습과도 너무나도 이질감이 드는 이 현장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짐작은, 그녀가 내뱉는 그 한 마디로 인해 확신이 되어 버린다. 애써 부정하고 싶은 가설이 확정되어 버린 순간이다.

“심심풀이로 몇 명 죽여 봤는데? 왜? 이게 그렇게나 화를 낼 일이야?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에게?”

타, 타타닥ㅡㅡㅡㅡ!

빠르게 지면을 걷어찬다. 발을 구르는 소리는 거칠게 뿜어지고 일순 멈춘다.

“오호~?”

감탄한다. 감탄과 함께 절로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 꼬리는 볼을 타고 더 올라간다.

“역시나 제법 빠른데?”

“왜 그래,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한 거야! 도무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그래. 부탁이야 뭐라도 속 시원하게 대답해봐. 아니, 부탁이야 이건 다 거짓이라고 해줘. 네가 저지른 게 아닌 다른 누군가의 짓이라고 해줘, 제발.”

여동생의 어깨에 매달려 구걸의 목소리를 담는다.

당혹, 그것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나는 하고 있겠지. 혼란이 가득 찬 얼굴을 가까이 다가가다 푹 숙인 내 얼굴은 분명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테다.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묻는다.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기를 담은 채 묻는다. 모든 걸 부정하는 말이 나오기를 원하며 말한다. 하다못해 실수라고 말해주기를 간절히 원해 본다.

“왜 그런 거야, 왜? 뭐 때문에 그런 거야. 대답해, 당장. 어!”

다급하게 말을 쏟아 붓는다.

“이것들은 다 뭐냐고,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네가 저지른 거 아니지, 아닐 거야. 제발 부탁이니까 아니라고 해줘.”

말을 쉴 틈 없이 쏟아 내자 다리는 힘이 풀려 버린다. 내 손 끝만이 그녀를 붙잡은 채 나머지는 지면을 향한다.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무릎은 바닥에 힘없이 추락해서 맞닿는다.

“왜, 왜냐고, 대체······!!”

절명으로 들려오는 울부짖음은 내 목을 타고 사방에 퍼지지만,

“아,하하하하아악!”

그녀의 웃음소리에 맥없이 묻혀 진다.

그리고 나를 나락에 끝으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한 말이 그녀 입을 타고 나온다.

“꼴이 좋구나, 용사여. 한때는 내 목숨을 위협하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인물과 동일하다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겠구나. 크하하하.”

“무, 뭐라는 거야, 지금······?”

알 수 없는 말에 동공은 커지고 식은땀이 흐른다. 내 모습을 즐기는 표정으로 그녀는 친절히 답한다. 내 볼을 어루만지는 그 손길이 더 할 나위 없이 차가워 서가 아닌 그 말에 나는 소름이 돋는다.

“이 제 37대 마왕 큘립스 타타르 발레타인이 이곳에 다시 부활했다는 거다!”

그 다음 소식은 나에게 하여금 가장 큰 충격으로 와 닿는다.

타닥, 타닥 불타던 집들의 비명 소리도 내 귓가에서 그 순간 멈춘다. 형형색색 피로 물든 주변의 풍경도 사라진다. 내게 주변의 모습은 그 순간 정말로 사소해진다. 너무나도 큰 절망감에 제대로 인식 할 수 없다.

“네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육신을 빌려서 말이다!”

“노, 농담이지? 그런 질 나쁜 농담은 하지 마.”

나는 여동생의 손을 마주한다. 피로 물든, 사람의 시큼하고 죽음의 냄새가 비린 그 손을 잡는다. 감촉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다. 다만 피로 물들어 갈 뿐이다.

“무, 무슨 장난인지는 모르지만. 의미를 모르겠지만, 이런 장난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 나, 충분히 놀랐으니 그만해! 그런 짓궂은 장난 따위 그만둬, 당장!”

손을 꽉 움켜쥔 채 울부짖는 음색을 내뱉는다. 그대로 남아 있던 힘마저 사라진다. 애써 버티던 신체는 피로 물든 바닥에 곤부박질 친다. 바닥에 털썩하고 힘 풀린 채 여동생의 손만을 잡고 바닥에 몸을 던진 채 귀만 기울인다.

“가엾은 용사 같으니라고, 하지만 너무 슬퍼 하지마라. 부디 편히 받아 들여라. 그리고 이 마왕의 손에 굴복 당하는 거다.”

지면을 향해 떨어뜨리어진 내 머리를 여동생은 쓰다듬는다. 그 손길은 피가 서려있음에도 나는 따뜻하다고 느낀다. 아니, 그렇다고 느끼고 싶다. 하지만 그건 전혀 따뜻하지도 않은 손길이다.

내 여동생의 손길이 아닌 한 낮 마왕의 손이기에 전혀 다른 감촉임을 모를 수 없다.

훗날 내 유일한 동반자이자 동료이자 공범이자, 내게 유일한 신뢰를 주는 이가 될 이의 손길을. 나는 그 날 처음 느낀다. 그 감촉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용사였던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공지 18.07.10 91 0 -
47 왕도(完) +1 18.08.22 215 3 13쪽
46 왕도 18.08.21 76 1 16쪽
45 왕도 18.08.20 68 1 10쪽
44 란스 랜스 형제 18.08.16 72 1 10쪽
43 란스 랜스 형제 18.08.15 72 1 10쪽
42 란스 랜스 형제 18.08.14 63 1 12쪽
41 란스 랜스 형제 18.08.13 56 1 12쪽
40 란스 랜스 형제 18.08.12 87 2 12쪽
39 란스 랜스 형제 18.08.11 78 2 14쪽
38 란스 랜스 형제 18.08.10 82 2 15쪽
37 란스 랜스 형제 18.08.09 73 2 15쪽
36 새로운 마왕 18.08.08 87 2 20쪽
35 새로운 마왕 18.08.07 77 2 14쪽
34 새로운 마왕 18.08.06 68 2 14쪽
33 새로운 마왕 18.08.05 78 2 15쪽
32 새로운 마왕 18.08.04 90 2 15쪽
31 새로운 마왕 18.08.03 116 2 14쪽
30 새로운 마왕 18.08.02 85 2 17쪽
29 새로운 마왕 18.08.01 91 2 15쪽
28 새로운 마왕 18.07.31 118 2 16쪽
27 이단(異端) 18.07.30 86 2 15쪽
26 이단(異端) 18.07.29 76 2 16쪽
25 이단(異端) 18.07.28 81 2 10쪽
24 이단(異端) +2 18.07.27 85 2 10쪽
23 이단(異端) 18.07.26 85 2 10쪽
22 이단(異端) 18.07.25 99 2 10쪽
21 이단(異端) 18.07.24 137 2 10쪽
20 이단(異端) 18.07.23 103 2 16쪽
19 쉐브닉 18.07.22 104 3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