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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백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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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18.07.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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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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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0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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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하다.

DUMMY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있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강력함을 뽐내는 압도적 재능을 마주했을 때가 그렇다. 155킬로미터는 치기에 아주 어렵지만, 칠 수 있는 속도라면 한가운데 포심으로 칠 수 있으면 쳐 봐라는 심정으로 넣는 170킬로미터의 공은 타이밍을 짧게 잡든 어쩌던 대부분의 경우는 때릴 수 없다.


그와 비슷하지만, 더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 상대방의 승부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매번 공략 당했을 때다. 이 순간에 이 공은 절대 던질 수 없어라는 공을 던져 상대를 잡아내면, 적어도 그 시즌이 지날 때까지는 정신적 우위를 가지고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 구종을 속인다는 건 그 정도의 파괴력이다.


이기는 건 중요했다.


뜨거운 냄비에 손을 데 본 사람처럼, 기술과 재능이 내게 머물러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혀야 한다. 백창현 이라는 이름 앞에 부담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기세와 박력은 진짜 강함이 있어야 통한다.


긴장 속에 경기를 하고, 고투 끝에 이긴 선수들은 모두 피곤해 했다. 버스로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 역시 재환이 녀석을 꼬여볼까 하는 마음이 대전에 도착하자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베이커리 선수의 게임이 있는 지를 확인하고는 그냥 잠이 들었다.


대전 홈 개막전은 샌슨이 일찍 터지는 바람에 져버렸지만, 뒤를 이은 규정 선배는 6이닝을 4실점 하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4회 초 대거 7득점을 올려 준 타선의 힘으로 첫 승을 따냈다. 이동일 포함 나흘을 쉬어서 원래는 내가 3차전에 오르는 게 맞았지만, 감독님은 팀의 단결력이 좋고, 터지기 시작한 타선의 힘을 믿고 사이드암 재연이에게 기회를 줬다.


재연이는 고전했다. 매회 주자를 내보냈다. 구위가 나쁘지 않았지만 제구가 좋지 않았다. 볼넷을 연거푸 계속 줘서, 도무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2차 스탯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후로, 투수에게 WHIP- 이닝당 출루 허용률 –이 중요해진 이유도, 루에 주자를 쌓아놓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에게 다득점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늘리기 때문이다.


“재연아. 그냥 질러. 맞아서 내 보내나, 볼넷으로 내보내나 마찬가지야.”

“저도 마음은 그렇게 먹는데, 잘 안 돼요.”

“생각해 봐. 볼넷은 그냥 1루를 주는 거야. 네가 던져서 타자가 치면, 우리 팀 수비가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고.”

“야. 김재연. 형 말이 맞아. 그냥 던져. 니 공 빠르지만, 그거 맞는다고 어디 부러지거나 죽거나 할 정도는 아니야. 헤드샷 나올 것 같으면 내가 서 있는 타자 밀쳐내고서라도 막아줄 테니까. 안쪽으로 전력을 다해 던져.”

“진짜요?”

“그래. 괜찮데도. 이렇게 하자. 안쪽 하나 넣고, 가운데 하나 넣고, 가운데 하나 넣고, 다시 안쪽 넣자. 너 인마, 오늘 컨트롤이 나빠서 가운데로 던져도 높거나 떨어지거나 마음대로니까.:

“네.”


재연이는 5회까지 무려 6볼넷에 2피안타를 맞았지만, 2점을 주는 것으로 자기 몫을 단단히 해냈다. 신인 투수를 이끌어서 승리 투수 요건을 만들어 낸 재환이의 성장이 뿌듯했다. 이글스는 점수를 더 뽑아내지 못했지만 시즌 초 힘이 가득한 불펜의 힘으로 다시 3-2의 승리를 쟁취했다.


타이거스와 히어로즈의 만만치 않은 일정을 5연승으로 치고 나간 베어즈가 단독 1위를 차지했고, 이글스와 와이번스가 각각 4승 1패의 성적으로 초반 3강을 형성했다. 다음 주 주중경기로 예정된 베어즈와의 게임 전에 승수를 쌓아두는 일이 초반 기세를 유지하는 데 너무나 중요해졌다.


“유람이 형, 밥 언제 살 거예요?”

“넌, 나만 보면 뭘 그렇게 사 달래냐?”

“세이브 1위 투수가 후배 밥 사는 게 아까우세요? 건물주가?”

“내가 이야기 했었잖아. 내 건물이지만, 내 돈은 아니라고. 너야 말로 내가 인생수업을 제대로 해주고 있으니까. 밥이나.. 아니다. 나 오늘 우리 아들이랑 밥 먹기로 해서 들어가야 하니까. 내일 모레 밥 사. 너 내가 니 경기 마무리 해 준 것도 있으니까.”


여러모로 내일 경기는 이겨야 했다. 베어즈와의 게임 차도 그랬지만, 홈 6연전의 후반 시작이다. 치타에게 7-5로 개싸움을 하고 체력을 완전히 방전돼 내려오는 위즈를 잡지 못해서야 일정이 꼬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성혁이와 간단히 롱토스를 하면서 컨디션 점검을 하고 돌아가려는데, 단장실에서 큰 소리가 났다. 감독님의 목소리셨다. 감독님이 부임하신 이후로 성적이 좋아서, 단장님과 큰 트러블이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화장실에 가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운영팀장님이었다. 퍼뜩 트레이드 건이 생각났다. 설마설마 하면서 전화를 받았더니, 단장님 실로 오라는 말이었다.


단장실에는 곤란한 표정의 단장님과 얼굴이 불콰한 감독님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단장님의 뒤에 운영팀장이, 감독님의 뒤에 투수코치님이 서 계셨다.


“아니, 내일 선발인 애를 데려다, 무슨 말을 하시려고요. 안된다니까요. 안 바꿉니다.”

“한 감독. 그냥 제안이 들어왔다. 이런 카드인데, 의견을 물어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창현아. 그냥 들어가.”

“혹시 치타에서 들어온 트레이드 이야기입니까?”


네 사람이 모두 나를 봤다. 난 며칠 전, 일섭이 형에게서 제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회장님이 직접 치타 이 단장님께 명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듣지 못했는데, 저랑 바꾸자는 선수가 누굽니까? 한태 선뱁니까?”

“알고 있었어?”

“아니요. 그냥 이 단장님이 무조건 통하는 카드라고 하셔서요. 트레이드를 추진하실 거면, 한태 선배니까 뭐 어쩔 수 없긴 한데, 전 이글스가 좋습니다. 바꿀 때 바꾸더라도 내일 제가 던지는 걸 보시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차피 우승의 마지막 키는 1선발 아닙니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팩트를 보여줘야 한다. 내일은 대전 홈. 원기옥을 쓸 수 있다.


호성적은 관중을 모은다. 더구나 나는 좋은 소문의 주인공이다. 승리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선수들이 많았다. 나와 한 팀이 되어, 팀 이글스로 우승에 도전하고 싶다는 규정 선배의 인터뷰가 많은 이글스 팬을 울렸다.


“형, 오늘 꽉 찼대요.”

“뭐가?”

“관중이요. 만원 관중이래요.”

“던질 맛 나겠다. 그리고 어제 재연이에게 했던 말 있잖아. 그렇게 가자. 공격적인 카운트를 잡자.”

“네?”

“초반에 힘이 있을 때는 그냥 안쪽이랑 가운데로 던지자고. 슬라이더랑 체인지업이 있으니까 굳이 코스를 찌르지 말고 기세로 밀어붙이자고.”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하려고 했어요. 저번 게임 분석을 했더니, 너무 꼭지점만 사용했더라고요. 게스 히팅에 당한 것도 두 어개는 넘더라고요.”

“그래.”


2년차가 된 강택호 선수는 지난겨울 착실하게 훈련을 했는지, 재환이처럼 몸이 불어 있었다. 데뷔시즌 서른 개 가까운 홈런을 친 타자다. 쉽게 볼 수 없었다. 장타력이 있는 선수는 확실히 한방이 있어서 공을 던지는 게 부담스럽다. 재환이는 대담하게 가운데 위쪽의 하이패스트 볼을 요구했다. 천천히 자세를 잡고 공을 던졌다.


150KM


눈높이를 가르는 내 첫 구를 강택호는 그냥 두고 봤다. 볼이 되었지만, 150이란 숫자가 주는 위압감이 있었다. 2구도 3구도 모두 150킬로미터 대 포심을 던졌고, 1볼 2스타라이크로 몰린 강택호 선수를 난 백도어로 빠지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냈다.


강택호를 그렇게 잡아 내자, 뒤는 오히려 쉬웠다. 난 빠른 볼을 노리고 들어오는 타자들을 체인지업으로 간단히 땅볼 아웃으로 처리했다. 3자 범퇴를 하고 들어오는 날 선수단이 웃음으로 맞아줬다.


“수고했다.”

“제 할 일 다하고 들어왔으니까. 한 2점만 부탁드립니다.”

“2점이면 되는 거냐?”

“3점도 좋고, 4점이면 더 좋죠.”

“기다려.”


내 게임마다 항상 큰 타구를 날려줬던 성연 선배가 웃으며 톱타자로 나서는 근수 선배의 타석을 지켜봤다. 위즈의 선발은 저스틴 레프트였다. KBO최고 이력의 용병은 이미 선수로서는황혼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150킬로미터 대의 속구와 마구로 불리는 슬라이더로 1,2,3회를 9타자로 잡아 버렸다.


다시 투수전인가? 에일리때도 그러더니, 확실히 상대방 에이스를 상대해야 하는 1선발은 어려운 길을 가야 한다. 위즈나 이글스나 무안타 경기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재환이는 3구에 하나 정도는 위협구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과감한 몸쪽 직구와 커터를 요구했다.


아직 시즌 초다. 플레이 오프 진출을 가리는 시즌 막판이 아닌데, 150킬로의 강속구를 맞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타석에서 한 발을 물러선 타자들은 닿지 않거나 맞히더라도 파울이 되고 마는 바깥쪽 속구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5회 뜬금포로 라인선상을 타고 흐르는 2루타를 내가 먼저 맞았지만, 레프트와 난 7회까지 0-0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다. 내가 1안타 무사사구를 기록하는 동안, 레프트는 2볼넷만 주는 노히트 경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냐?”

“일단 더 던질게요. 아직 괜찮아요. 저 몇 구죠?”

“90구.”

“오늘은 준비 피칭도 거의 하지 않아서, 20구 정도는 문제없어요.”

“그래. 알았다. 조금만 더 버텨라. 레프트 우리도 세 바퀴째다. 구속도 좀 떨어졌고, 칠 수 있어.”

“네.”


8회초 마운드에 오르자, 대전 구장의 만원 관중이 최강안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게임이어서 잊고 있었던 원기옥이 떠올랐다. 만원 관중의 염원이 거대한 우레가 되어 이글스 파크를 울리기 시작했다.


원기옥.


눈 깜짝할 사이에 게이지가 차버렸다. 게이지의 색이 달랐다. 여전하 붉은 색 계열이긴 했지만, 붉은 색이라기보다는 주황색에 가까웠다. 이글스의 컬러다.


8회였다.


구속이 좀 떨어졌다고 해도 난 7회 때 148을 던졌다. 여기에 10을 더해서 158을 던져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7을 쓰기로 마음먹고, 공을 던졌다.


팔이 어깨를 스치고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강렬한 파공성이 공기를 찢었다.


159KM


전광판에 찍힌 숫자를 보고, 만 삼천 명의 이글스 팬이 조용해졌다가 1,2초를 두고서 거대한 함성을 쏟아냈다.


백창현!

백창현!


백창현 콜이 그치지 않았다. 난 그렇게 내 자신을 증명해냈다. 트레이드는 그 한 구로 무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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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선배 정유람. +14 18.07.26 9,661 28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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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등 복권남 백창현 +20 18.07.24 10,375 303 11쪽
14 광명의 미친 개. 이일섭. +10 18.07.23 10,386 29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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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철혈 정혜영 형수님. +19 18.07.22 10,808 308 11쪽
11 타격기계 김한태. +22 18.07.21 11,042 323 13쪽
10 $8.25 +17 18.07.20 11,299 328 14쪽
9 2만 4천원. +18 18.07.19 11,529 3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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