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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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여름
작품등록일 :
2018.07.16 16:00
최근연재일 :
2018.09.0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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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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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할 남자

DUMMY

‘머리 아프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쐰 탓인지, 퇴근 즈음이 되어서부터는 코와 머리가 아파왔다.


더는 못 견디겠다 싶어 회사를 나오자마자 지난 봄, 미세먼지를 대비하려고 사 두었던 마스크를 꼈다.


한여름에 마스크라니, 사람들이 쳐다볼까 걱정되었지만 여기는 강남.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눈에 띄지 않았다.


지하철 에어컨은 이것으로 완벽 대비!


북적북적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지하철을 찾아 걸어간다.



그때,


저녁시간에 선글라스를 낀, 지아처럼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을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네?”


“죄송한데, 제가 지금 휴대폰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와서요. 혹시 이곳 지리를 잘 아시나요?”


한눈에 봐도 늘씬한 몸매, 달라붙는 네이비색 원피스, 고급스러워 보이는 하트모양의 목걸이와 귀걸이, 독특하면서도 은은한 머스크향.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딜 찾으시죠?”


정말 길을 모르는가 싶어 웃으며 도움을 주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아, ‘1986 프라하’라는 음식점인데요, 여기 근처인데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거기 비싼 곳인데. 뭔가 어울리네.


“아, 아는 곳이에요. 여기서 100미터 정도만 가면 되거든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선글라스를 낀 여자의 눈빛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입모양으로 얼마나 감격했는가를 유추할 수 있었다.


고마움을 표시하며 지아를 따라 나선 여자는 또각또각, 은색 힐을 신은채로 꽤 긴 거리를 걸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마스크를 쓴 자신에게 물어봤을까, 싶었지만 길 알려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짧은 거리지만 서로 어색하니 인사치레의 말이라도 해볼까.


“저녁 약속이 있으신가봐요. 거기 되게 고급 레스토랑인데”


“아, 네. 결혼할 남자랑 데이트가 있어요”


“어머, 축하드려요”


결혼하기 전 데이트인가. 한창 꿀이 떨어질 때 인가보다.


지아는 이 낯선 여자의 복장과 목소리의 떨림에서 그녀가 그 남자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흐음..


사실 조금 부러웠다.


지아에게는 아직 너무 먼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괜스레 기대감이 생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하고 주춤하게 된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아, 여기네요”


유럽풍의 엔틱한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움을 한껏 끌어올리는 레스토랑이었다.


낯선 그녀에게 레스토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녀의 입꼬리가, 진심으로 환하게 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네, 정말 감사해요”


몇 번의 인사를 거듭하고는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고, 지아 또한 걸음을 돌렸다.



“어?”


그때, 문득 낯익은 모습이 스쳐지나간 것 같았다.


발걸음을 다시 돌려 창가를 보니 그곳에는 성찬의 옆모습과 매우 닮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방금 바래다 준 그 여자가 다가오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닐거야’


지아는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더 다가가서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앗!”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반듯한 일자눈썹, 단아한 동안의 얼굴, 짧은 머리.


성찬이었다.




***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메신저에 뜬 이름들을 살펴보는 재열.


홍콩에 콜드게임으로 승리 한 후 모처럼 만에 주어진 휴식이지만 특별히 할 것이 없었다.


혹여 라도 감염이나 설사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뭔가를 사먹거나 돌아다닐 수도 없다.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트북 같은 건 챙겨오지도 않았고, 가진 것 이라고는 달랑 휴대폰 하나였다.


다른 선수들은 잠을 자두거나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흠....’


메신저 연락처 목록을 봐도 지금 연락해볼 만한 이가 없었다.


친구들은 다 야구선수라 지금 자신과 함께 있거나 한국에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한국에 있는 친구라면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들지 못한 친구일 테니 논다고 연락하는게 미안하다.


사실...


아까부터 지아에게 연락하고 싶었던 걸 참고 있던 거였는데...


지금 해도 될까?


몇 분 째, 휴대폰 액정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입을 꼭 앙다물고는 결심한 듯 화면 잠금을 푼다.


‘뭐, 어때. 친구사이에’


분명 얼마 전까지는 메신저를 보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데, 어쩐지 그날 밤 이후로는 좀 더 신중하게 되었다.


[누나, 뭐해?]


어렵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휴대폰을 던져두고 침대에 눕는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우니 어느덧 수연생각이 난다.


5년 동안 늘 생각하던 여자였으니까, 어쩌면 습관이 된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연인 사이였다면 친한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이며 잊어보겠다고 애썼을 텐데, 재열은 그럴 수도 없었다.


말하지 못할 사랑을 했던 재열에게는, 지아 밖 에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내는 게 미안한 줄 알면서도, 징징대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전송버튼을 누르고 만 것이다.



그렇게 3분쯤 흘렀을까? 답은 의외로 빨리 왔다.


[그냥 있다. 퇴근했어. 넌 경기 끝났냐]


[응. 콜드게임. 누나 우리나라 사람 맞냐, 경기 좀 챙겨봐]


[뭐 어차피 이길거라고 예상했으니까. 우리나라만 프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겨야지]


틀린 말은 아니지.


유일하게 프로로 구성된 한국이었기에 사실 우승을 못하면 창피한 거니까.



[안 바쁘면 나랑 놀아줘]


[바빠]


[에, 진짜로? 퇴근했다며]


[너한텐 바빠]


[왜 나한테만 까칠해.. 그러지 말고..T-T]


야호.


이 누나는 나랑 놀아줄 생각인가보다.


이렇게 츤츤거리면 꼭 놀아주고 내 부탁 들어주더라.


생글거리며 휴대폰을 꼭 쥐고는 톡톡톡, 메시지를 입력했다.


그때, 같은 숙소를 쓰는 친한 동갑내기 선수가 다른 방에 놀러갔다가 들어오면서 재열을 발견하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야, 너 뭐하냐. 휴대폰 들고 생글거리는거 보니 여잔데?”


“아니야 임마. 니 할 일 해”


“오~ 하재열 여자 생겼냐?”


“꺼져”


방해가 계속되자 휴대폰에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슬금슬금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그렇게 호텔 한 켠에 마련된 소파를 찾은 재열은 그곳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지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게 된 재열에게는 더없이 편안하고, 또 편안해지는 밤이었다.





***





“하재열 선수, 내가 탐내고 있는데 아직 FA자격이 안된 선수라 아쉬워”


“네..”


아까부터 성찬은 재열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수연은 스테이크를 조그맣게 썰고는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환한 미소에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녔었지만, 재열의 이야기만

이십분 넘게 하고 있으니 기분 나쁜 표정을 더 숨기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재열은 최고의 타자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할 것 없는 자리.


야구인들끼리 만나 현재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타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니까.


“넌 어떻게 생각해?”


“네? 아, 저요?”


갑작스런 질문에 안 좋던 표정이 더 나빠졌다.


지난번 일이 떠올라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성찬이 눈치 챌라 얼른 풀고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응. 하재열 선수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냥, 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그게 다야?”


“그럼..요?”


제발이 저렸는지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혹시, 재열과 자신의 관계를 알고 있나 싶어서.


수연의 속을 꿰뚫어보고 싶다는 저 노골적인 눈빛이, 이제는 부담스러웠다.


“너도 야구 아나운서로써 나름대로 분석하니까, 어쩌면 너무 경기에 몰입한 우리보다 해설위원이나 아나운서들이 더 객관적일 때가 있거든. 그래서 그래”


“아..”


그 이야기였구나.


“꾸준히 기복 없이 치는 선수가 많지는 않죠.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는 기록과 인기, 성적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고요”


“그렇지?”


“그런데, FA가 끝나면 메이저를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메이저.


아.


그 말을 내 뱉고 나니, 수연은 그제서야 자신이 잃은 보험이 떠올랐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만일 일이 잘못되었을 때 메이저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재열을 보험으로 생각해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속이 쓰렸다.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는 성찬 모르게 한쪽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조금 뒤, 목이 탔는지 제 앞에 있는 와인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들이켰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성찬은 그 모습에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않고 자신도 앞에 있는 잔을 든다.


‘헤어진 모양이네’


이것으로 재열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



아까부터 연거푸 와인을 들이키더니, 하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신 태가 났다.


아나운서면서 발음은 꼬이고, 네이비색의 짧은 원피스가 민망한 길이가 될 정도로 몸가짐도 많이 흐트러진 수연.


만난지 2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실 정도로 이별의 고통이 컸던가.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수연의 핸드백에 있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람을 불러야지. 아마 최근 통화목록에 있을테니까.


직접 휴대폰을 꺼내기엔 숙녀의 사생활을 보호해야하니, 전화가 오면 본인이 스스로 열겠지.


뚜르르르르르....


그런데 통화음만 가고 핸드백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뭐야, 설마 두고 온 거야?’


안그래도 이를 꽉 물고 있던 성찬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그 와중에 제 몸도 못 가누게 된 수연은 옆에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던 성찬에게 덥썩 안겼다.


“정수연. 정신 차려”


술 냄새가 확, 하고 풍겨왔다. 보통의 남자라면 심쿵했을 포인트였겠지만 성찬에게는 성가시고 짜증나는 상황일 뿐이었다.


“하아”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고는 입술을 악물고 자신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기사님께 전화를 건다.


그 와중에도 제지할 사람이 없는지라, 자신의 품에 꼭 안긴 수연을 떼어낼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지. 빨리 처리하는 수밖에.


“네, 네 기사님. 부탁 좀 드릴게요. 늦은 밤인데 정말 죄송해요. 한출일보 회장님 본가로 부탁드릴게요. 아시죠? 아, 네. 아닙니다, 저는 제가 알아서 갈 수 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전화가 끝나고서야 겨우 수연을 떼어내고는 자리에 앉힌다.


‘술도 못 마시면서 뭘 믿고 이렇게 잔뜩 마시는거야’


성찬은 앞 뒤 없이 술 마시고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자신과는 너무 안 맞는 여자다.


예쁘고 몸매 좋고 돈 많으니 좋다고들 하지만 성찬에게 어필 될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기사님이 오시고 힘들게 차에 수연을 구겨넣고는 태워 보내고 나니 정확히 9시.


이런 찝찝하고 기분 나쁜 상태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뚜벅뚜벅, 화려한 강남의 밤거리를 걷는다.


5분 가까이 걸어 도착한 곳은 TW 빌딩 앞 외서커피.


짤랑-


영업시간이 한 시간 남은 커피집에 새로운 손님이 온다.


늦은 시간이라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은 셋.


김 사장은 언제나 그렇듯 지겹다는 얼굴을 하고는 츤츤거리며 먹을거리를 내어 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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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목화 꽃을 보다가 18.09.03 81 0 13쪽
31 성찬의 이야기 1 18.09.01 26 0 11쪽
30 능소화 18.08.30 42 0 11쪽
29 독버섯 18.08.29 24 0 12쪽
» 결혼할 남자 18.08.29 38 0 12쪽
27 새로운 시작 18.08.28 25 0 11쪽
26 깨진 유리잔 18.08.25 60 0 12쪽
25 달콤한 형벌 18.08.23 30 0 11쪽
24 혼내줄거야 18.08.21 57 0 11쪽
23 평판 싸움 18.08.19 32 0 11쪽
22 흔들리지 않기를 18.08.19 39 0 11쪽
21 사소한 일 18.08.16 32 0 12쪽
20 말이라는 것 18.08.13 44 0 12쪽
19 예쁘다니까 18.08.10 47 0 12쪽
18 동상이몽 18.08.10 42 0 12쪽
17 천하의 유경민 18.08.09 40 0 12쪽
16 주제를 안다는 것 18.08.08 46 0 12쪽
15 불은 낸 사람이 꺼줘야지 18.08.05 50 0 11쪽
14 오늘 우리는 안타? 홈런? 18.08.03 42 0 12쪽
13 연애는 어려워 18.08.02 86 0 11쪽
12 하지 말아야 할 일 18.08.01 68 0 12쪽
11 누나라고 부를게 18.07.31 47 0 12쪽
1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8.07.30 35 0 11쪽
9 돌체라떼 18.07.26 67 0 12쪽
8 비밀인데요. 18.07.25 75 0 11쪽
7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 하재열 18.07.24 75 0 11쪽
6 떡볶이 어때요? 18.07.21 46 0 12쪽
5 매일 안타를 친다는 마음으로 18.07.19 46 0 12쪽
4 안녕, 바다 18.07.17 76 0 11쪽
3 그 주말, 쏟아지던 햇살 아래 18.07.17 1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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