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그의 것을 그에게(2)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5화-그의 것을 그에게(2)
"물. 물을..."
포로가 갈라진 입술을 열었다. "한 모금만 더요. 아저씨."
"에이! 귀찮아."
늙은 어부가 다시 물을 퍼다가 건네주었다. 바닷바람에 찌들은 거친 얼굴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아저씨."
지크가 쉰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돼요."
어부가 쌍욕을 했다. "닥쳐! 이것 저것 묻지 말라니까? 약쟁이 새끼가 귀찮게."
"나 약쟁이 아니에요."
"사고 파는 새끼들이나 하는 새끼들이나 똑같아."
"진짜에요. 날 풀어주면 돈을 줄게요. 원하는 만큼 줄게요..."
"잠이나 자!"
어부가 쾅, 하고 창고 문을 닫아걸었다. 창고 벽에 손이 묶인 지크가 다시 한숨 쉬었다. "하."
전략작전부 사령관에게 체포되어 마차에 갇힌 지 3일. 그는 한기가 느껴지는 부둣가에 내던져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루에 담긴 그를 이 창고에 버리고 갔고, 고기 잡는 노인이 그를 보러 오는 것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
그가 또 한숨 쉬었다. 인간적인 배려라고는 똥오줌을 싸는 통 하나 던져주는 게 전부였다.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곳. 쥐새끼 하나 없는 걸 보니 새 건물인 것 같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전략작전부 사령관이 도대체 어떻게 냄새를 맡았을까?
- 분명 무언가 잘못됐어.
디트리히는 난리를 치며 그를 찾고 있을 것이다. 아발론에서도 난리가 났겠지. 전략작전부 사령관은 그가 어디 있는지 절대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크를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일까?
-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는데. 근데 방법이 없어.
지크가 자기를 구하러 올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렸다. 디트리히의 힘은 강력하지만 지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통찰력은 없다. 오스카르 왕은 현명하지만 너무 멀리 있다.
"하하하."
지크가 힘없이 웃었다. 옐로이즈와 안나에게 신경을 쏟느라 그의 날카로운 지성이 마비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이렇게 어이없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몸이 옆으로 푹 쓰러졌다. 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얼굴이 더러운 바닥을 덮었다. 한여름인데도 돌바닥이 차가웠다. 그는 스옌 산맥에서 있었던 놀라운 일들을 생각했다.
- 안나.
다시 겨울을 만나고 싶다. 안나와 함께.
끼이익-
칼과 총알로 엉망진창이 된 전략작전부의 쇠문이 열렸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말을 타고 조용히 발을 들였다. 맨 앞에 베레모를 쓴 자가 외쳤다.
"전략작전부 사령관은 당장 나오시오!"
머지 않아 사령관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모건 장군."
헌병대장인 모건 장군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의 모건이 사령관을 내려다보았다.
"대원수께서 보내셨나?"
"폐하께서 보내셨소." 모건이 말 위에서 오스카르 왕의 두루마리를 꺼내들었다.
"전략작전부 사령관은 지금 당장 지크 왕자와 카르텔의 잔당들을 아발론으로 압송하라는 명령이오."
"......" 사령관이 고개를 저었다. "지크는 체포 과정에서 죽었소."
모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럼 시체를 보여주시오."
사령관이 인상을 썼다. "가져오라!"
군사들이 드르르륵, 하고 관 하나를 끌고 왔다. 모건이 턱짓을 했다. 헌병대가 관뚜껑을 열었다. 모건이 인상을 썼다. "이게..."
"불에 타 버렸소." 사령관이 어깻짓을 했다. "남은 건 저게 다요."
모건이 관 안에 누운 뼛조각 몇 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대원수님도 도와주지 못하실 겁니다."
"지크는 대원수님을 죽이려 한 놈이오. 전략작전부 소속이라 내가 직접 체포하는 것도 문제가 없고."
"그런 얘기는 아발론에 가서 하시지요. 당장 죄수들을 마차에 태우시오. 같이 아발론으로 갑시다."
"죄수들도 다 죽었소."
"......" 모건이 깊게 한숨 쉬었다. "지금..."
"정말이오. 모두 다 죽었소. 시체를 보여줄 수 있소."
"사실대로 얘기하시지요." 모건이 말에서 내렸다. "디트리히 단장의 팔콘기사단이 예리코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다 알고 왔군!"
"전 멍청이가 아닙니다."
사령관이 웃어젖혔다. "하하하하! 나도 알아. 대원수님이 풀어준 걸 보면 알겠어. 그럼 어쩔 건가?"
"사령관님을 아발론으로 압송하겠습니다."
모건이 그에게 다가갔다. "무기와 인장을 반납하시오. 사령관의 군복은 다 벗으시고."
"흥!" 사령관이 순순히 무기와 인장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령관의 망토와 가슴의 약장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모건이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전략작전부가 소리를 쳤다.
"사령관님은 죄가 없소!" "수갑을 풀어주시오!"
모건이 외쳤다. "그건 폐하께서 결정하실 것이다!"
장교들이 소리를 질러 댔다. "이 역적놈들! 대원수님이 너희들을 가만 안 둘 것이다!" "지크가 살아서 아발론에 갈 것 같으냐!"
"모두 조용하라!" 모건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전략작전부 장교들의 고함은 커져만 갔다. 모건이 수갑을 찬 사령관을 마차에 태웠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장교들이 울부짖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은 법이야." 사령관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티나는 일, 깨끗한 일만 하면서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난 잘못 없어."
"폐하께 얘기하시오. 출발하자!"
"지크는 이미 죽었을 거다." 사령관이 계속 중얼거렸다. "팔콘기사단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못 살아. 우리 정예부대가 이미 출발했다. 팔콘기사단을 개박살낼 거야. 대원수님이 내 노력을 알아 주시겠지. 난 대원수님의 책봉의 일등공신이라구..."
멍청한 새끼. 모건이 쾅, 하고 마차 창문을 닫았다.
"범대인! 범대인!"
범려가 고개를 쭉 빼들었다. 그건가? 그가 바라 마지않던 그 소식인가?
"범대인!"
"여기 있소!"
범려가 목청껏 대답하며 뛰쳐나갔다. 이용 장군이 상기된 얼굴로 문지방을 뛰어 넘었다.
"성공했습니다!"
"정말이오?" 범려가 활짝 웃었다. "설마-"
"지크를 잡았습니다. 전략작전부 사령관이 지크를 넘겨줬습니다!"
범려가 입을 떡 벌렸다. 설마 하니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지크가 요새 정신을 놓고 다니는 모양이다. 국사란 한 번만 실수해도 낭떠러지인 법이지!
"그래. 그랬군."
범려가 이마를 문지르며 웃었다. 예리코 놈들과 손을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 약쟁이 놈들이 결국 지크를 물어 주지 않았는가.
"톨스토아 원수가 미끼를 물었군. 정말 앞뒤없는 자야. 아무리 지크를 쳐내고 싶기로서니..."
"원래 욕심이 눈을 가리면 누구나 똑같습니다."
범려가 마루를 왔다갔다 하며 웃어젖혔다. "하하하! 지크도 욕심이 앞어서 일을 그르친 거야. 사법부를 만들다니 멍청한 짓이지. 지지 세력을 만들려고 정부를 셋으로 쪼개 놔? 그러니 신하들이 미워하지."
"그러믄요." 이용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지크를 끌고 올까요?"
범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필요 없소! 당장 지크를 죽이라 하시오. 데리고 올 필요 없소.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용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움직이죠."
그 시각, 지크는 어두컴컴한 창고에 무력하게 누워 있는 상태였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는 중이었다. 바로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전략작전부 사령관이 우리의 작전을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 아발론에 첩자가 있거나 카르텔의 누군가가 낌새를 챘거나다. 아발론에는 첩자가 있을 수 없다. 람세스도, 세루크도, 디트리히도 그를 배신할 리 없다. 그렇다면 카르텔에서 정보가 샜다는 이야긴데.
- 카르텔이 생각보다 강력하구나.
분명, 예리코 카르텔이나 에이모스 카르텔이 전략작전부 사령관을 도운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를 궁지로 몰 재료까지 구상한 것이다. 약에 절은 하루살이들이 그 정도의 작전을 추진할 수 있을 리 없다. 분명 지크를 노리는 자들이 손을 잡은 것이다.
지크의 눈 앞에 자연스럽게 범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국과 줄이 닿는 놈들은 에이모스가 아니라 예리코다. 예리코 카르텔은 단순히 진국 마약쟁이들과 붙어먹는 수준이 아니다. 진국의 끄나풀이었던 것이다.
"하아."
이런 줄도 모르고 내 발로 전략작전부에 기어 들어오면서 전략체계서 3장이나 쓰려고 했다니. 착각도 분수가 있지.
"하하하하."
지크가 혼자 킬킬거렸다. 천만 다행으로, 지크에게는 천운이 있었다. 진국의 항구 광서성에서 딥스로트까지는 배로 4일, 광서성에서 월우성까지는 일주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운이 좋다면 그가 체포된 후 일주일이면 디트리히가 그를 구하러 올 것이다.
- 운이 좋다면 말이야.
디트리히는 딥스로트를 이잡듯이 뒤질 것이다. 3일이든 일주일이든 멈추지 않고뒤질 것이다. 그 다음에야 디트리히는 외곽으로 시선을 돌리리라. 그러면 이미 늦을 것이다.
"하아."
지크가 다시 한숨 쉬었다. 그의 한숨에 맞춰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환청인지 아닌지 모를 길고 긴 울음이었다.
"이히히히히히힝-"
초크스칼라와 노바는 출발한 지 이틀만에 예리코 지역에 도착했다. 노바는 피곤에 못이겨 몸을 묶고 겨우 잠을 잤다. 초커는 48시간을 밤낮없이 말발굽을 박차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
"어디야..."
노바가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움직였다. "도착했어?"
"이히히히히힝-"
노바가 등을 묶은 줄을 풀고 바닥에 내려섰다. 비틀거리며 눈에 초점을 맞추니 황량한예리코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예리코 항구네."
노바가 터덜터덜 걸어서 식당으로 들어섰다.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초크스칼라도 지쳐서 식당 앞에 배를 깔고 앉았다.
"어우."
노바가 누가 보든 말든 부츠를 벗어던졌다. 고린내가 식당을 가득 채웠다. 웨이트리스가 인상을 썼다. "저기요."
"스카치 한 잔. 그리고 양고기 3인분."
"신발 신으실래요?"
노바가 대령 약장을 내보였다. "공무가 바쁜데 빨리."
"......" 웨이트리스가 인상을 쓰며 사라졌다. 5분도 되지않아 요리가 나왔다. 노바가 술과 고기를 먹어 치웠다. 물 한 잔까지 꿀꺽꿀걱 들이키자 정신이 약간 들었다.
"초커!" 노바가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소리를 쳤다. "딱 네 시간만 잘게. 저 말한테 고기 좀 줘요. 있다 계산할게요."
"네?" 웨이트리스가 다시 인상을 썼다. "저기요. 말을 저기 두면 안 될 텐데요. 군사들이 가져갈 거에요."
"네?"
"지방군 사령부에서 말을 모으고 있어요."
노바가 인상을 썼다. "왜요?"
"곧 교전이 있을 거래요. 팔콘기사단하고 전략작전부가 오고 있어요. 둘 다 예리코 지방군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둘 다 거절했거든요. 그래서 둘 다 예리코 항을 점령하겠다고 통보했다네요. 뭔 난린지 모르겠네요. 대령님은 모르세요?"
"......"
노바가 말없이 돈을 계산했다. 그녀가 웨이트리스에게 은화 하나를 건넸다.
"이거 받고 저 말을 마굿간에 넣어 줘요. 고기도 좀 사 주고. 남은 돈은 자기가 갖구. 그리고 네 시간 후에 날 깨워요. 꼭!"
노바는 정확히 네 시간 만에 기상할 수 있었다. 초크스칼라는 딱 네 시간만에 완벽히 예전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노바는 초크스칼라에 올라 예리코를 빙빙 돌았다.
"예리코 항 말고는 숨겨둘 곳이 없네."
노바가 2층짜리 건물이 줄지어 늘어진 골목들을 돌아보았다.
"왕자님을 이런 데 숨겨 뒀다면 금방 소문이 났을 테니까."
"이히히히힝."
초크스칼라가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렸다. 하지만 아무데도 지크의 냄새는 없다. 지크는 산을 통해 여기로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해안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다.
"크르르릉!"
초크스칼라가 발을 박찼다. 20분을 달리니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예리코 항이었다. 초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곤 급히 숨었다. 노바도 절로 고개를 수그렸다.
"왜 그래?"
"크르르르릉."
초커가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노바가 말에서 내려 한 무리의 사람들을 살폈다. "저 놈들이 예리코 카르텔인가?"
"크르르릉."
노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놈들이 데리고 있겠구나. 이 곳을 모조리 뒤져야겠어."
초커가 눈에 불을 뿜으며 노바를 쳐다봤다. "왜? 타라고?"
"크르르르르..."
초커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노바는 약간 놀랐다. 방금은 진짜 사람 같았어.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알겠어? 냄새가 나?"
초커가 까만 눈을 깜빡였다. 노바가 초커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초커가 조용히 뒷걸음질치더니,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디트리히는 무섭게 말을 재촉해 댔다. 하지만 초크스칼라에 익숙해진 그에게 보통 말은 성에 차질 않았다. 팔콘기사단도 이를 악물고 그를 따랐지만 마음대로 속도가 나질 않았다.
"얼마나 남았나?"
"이제 반나절이면 도착입니다!"
"제기랄!"
- 아직도 반나절이라니.
디트리히가 땀에 절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 정도면 이미 이미 지크가 죽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지크가 여기서 이렇게 덧없이 죽게 놔둘 순 없다. 이렇게 나라가 허망하게 무너지게 놔둘 순 없는 것이다.
"노바는?"
"말을 탔다면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노바가 지크를 찾아 놔야 할 텐데. 전략작전부는 어디쯤 왔나?"
"저희랑 겨우 한 시간 거리입니다. 마을로 들어가 지크를 찾다 보면 교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
- 개판이구나.
디트리히가 손의 땀을 확 털어 냈다. 뒤에서 척후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단장님! 큰일입니다!"
"뭐냐?"
"모건 대장의 헌병대가 전속력으로 쫓아오고 있습니다! 전략작전부 사령관을 아발론으로 보내고 이리로 단장님을 체포하러 오고 있답니다. 당장 항복하라는 대원수의 명령입니다."
"헌병대까지?"
정말 귀찮게 됐구나. 저 놈들을 모조리 쫓아 내고 나면 지크는 죽고 없으리라. 어쩌지. 이걸 어떻게 하지?
"안 되겠다. 예리코에서 싸우면 지크를 찾는 건 더 어려워질 거야. 여기서 전략작전부를 상대해야겠다!"
"어떻게 할까요?"
그가 진국에서 지크가 했던 전술들을 머리속에서 조합했다.
"어, 일단... 일단 조를 짜라. 3열 종대로 머스켓병을 조직하고, 나머지 군대는 방패로 돔을 만들어 머스켓병을 지켜라!"
"어디서 맞으시겠습니까?"
"이 골짜기만 넘고 능선에서 멈추자. 사격을 하려면 높고 좁은 곳이 좋다. 모부시,척후병을 더 돌려라. 반드시 전략작전부를 쳐부순다!"
- 결국 전우들끼리 싸우게 되는구나.
모부시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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