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술사(the Psy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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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주
작품등록일 :
2018.08.01 13:18
최근연재일 :
2018.09.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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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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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영의 눈

DUMMY

드르륵, 쾅!


작은 점집의 미닫이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리고 닫혔다.


“아, 할머니! 난 무당 같은 거 할 생각 없다니까요!”


이영의 목소리가 작은 점집 안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하려무나. 신령님들 앞에서 무례하게 큰 소리 내는 거 아니다.”


화가 나서 숨까지 씩씩거리는 이영과 달리 할머니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알겠구나.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렴.”


할머니가 손으로 바닥을 살짝 두드렸다.

이영은 마지못해 발을 동동 굴리며 작은 탁자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녀는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치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왜? 내가 할머니처럼 신내림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영아, 넌 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보렴.”


망설이던 이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매번 외면하려고 애썼지만 역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의 어깨 위에 존재하는 가늘고 흰 것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할머니의 말의 의도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그렇게 특별해요? ‘그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요?”


“많은 것이 달라지지. 무속인의 길을 걸어 온 나도 너만큼 볼 수는 없단다.”


“할머니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그저 볼 수 있을 뿐이에요.”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네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이야.”


“아아, 정말!”


최근 이영과 할머니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진행되었다.

도돌이표.

할머니는 이영이 무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영은 할머니의 그런 제안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에 대한 할머니의 답은 이영이 어리기 때문에 아직 잘 모르니 본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이었다.


오늘은 할머니가 이영의 책상에 무속인과 관련된 책을 가득 가져다 두었다.

그것을 뒤늦게 발견한 그녀가 화가 나서 단숨에 할머니가 있는 점집으로 뛰어온 참이었다.


할머니를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이영은 대화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휴.... 할머니 말씀대로 전 아직 어려요. 16살밖에 안 됐고, 이제 곧 17살이에요. 무당이 되는 건 차근차근 생각해 볼 테니, 고등학교에 가는 것만은 허락해 주세요.”


“안 된다. 지금부터 당장 준비를 해야 해.”


“아니, 할머니! 무당들은 뭐 공부도 안 하나요? 주변 친구들은 벌써 대학에 갈 준비까지 시작했는데, 고등학교도 가지 말라고 하시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 안하세요?”


“그게 네 운명이란다.”


단호한 대답, 지긋지긋한 운명.

주변에 용하다고 소문난 점쟁이인 할머니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영은 좀처럼 운명이란 것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 용하다는 할머니가 이영의 운세만은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겠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그 운명, 이제 저한테도 말씀해 주세요.”


“너도 알다시피, 어린아이들의 운명은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단다.”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손님들의 경우에는 보호자와 함께 오면 대략은 알려주기도 하잖아요? 저한테는 할머니가 보호자나 마찬가지인데 뭐 어때요?”



할머니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이 머리를 손으로 짚었다.



“알겠다. 이제 때가 되었지. 네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알려주마. 눈을 감아 보거라.”


이제껏 할머니는 그녀에게만큼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선뜻 알려주겠다는 말에 이영은 놀랐지만, 할머니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눈을 감았다.


“몸을 편하게 하고, 정신을 감은 눈 쪽으로만 집중해보렴.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다시 내쉬어 봐.”


후우웁, 후우우우.


그녀는 천천히 숨을 삼켰다가 내뱉었다.

마치 명상을 준비하는 것처럼.


“눈앞에 무엇이 보이니?”


그녀는 할머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안 보이죠.”


“그래, 그게 내가 본 네 미래란다.”


“아, 할머니! 정말 이러실 거예요?”


눈을 뜬 이영은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네 운명이야.”


그녀는 할머니가 자신을 골려준다고 생각했지만,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내가 무당이 된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사람마다 내가 볼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하지만 네가 방금 한 것처럼 정신을 집중해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어.”


“설마 그게 저인가요?”


“그렇단다. 너와는 네가 어릴 적부터 줄곧 함께 지냈음에도, 놀랍게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


“아니, 그러면서 어떻게 제가 무당이 될 운명이라고 말씀하시죠?”


이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네가 나보다 신통력이 높은 사람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구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령님이....”


똑똑!


할머니의 말을 끊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선녀님, 예약하신 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점집의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미안하네, 잠시만 기다려주시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영아.......”


“아니요, 지금은 그만 돌아갈게요. 일하시는 걸 방해할 수는 없죠.”


할머니의 말을 끊은 이영은 천천히 일어나 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영아, 미안하구나.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운명에서 도망치려고 몸부림칠수록 너의 괴로움만 커질 거란다. 나도 모든 걸 겪어봤기에....”


이영의 등 뒤로 묘하게 떠는 것만 같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저의 마음을 안다고 하시지만, 저는 할머니의 마음을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고서는 문을 닫고 나왔다.


문밖에 나란히 놓인 의자에는 손님들이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곧 새해가 다가와서인지 평소보다도 많은 수였다.

누군가는 양손으로 이마를 짚고, 누군가는 다리를 떨고, 다른 누군가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물론 재미로 점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었다.

손님들 덕분에 생계를 이어 나가는 이영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감사하면서도 그들이 이용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점을 믿지 않기에.......


이영은 아주머니께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오려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살폈다.

문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여러 신령, 장군들의 상과 그림.

옅게 퍼져있는 향-촛불냄새.

미닫이문 너머로 들려오는 희미한 방울소리까지.


‘지긋지긋해. 운명은 무슨 운명? 할머니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면서.’


몸서리친 후 그녀는 대문 밖으로 나왔다.




점집을 나온 이영은 바닥에 떨어진 명함을 발견했다. 익숙한 금빛 명함.



행운을 부르는 신점

이영신당 선녀보살

*예약필수* H.P 010-XXXX-XXXX



맥없이 명함을 바라본 이영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몇 년 전 할머니는 오래된 점집의 이름을 느닷없이 ‘이영신당’으로 바꿨다.

어렸던 이영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장소가 생긴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그때부터 이영을 무당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함을 잡은 이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명함을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이영은 명함을 반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휴지를 길바닥에 버리면 안 되니까 들고 가는 것뿐이야.’



깨똑!


문자가 왔다.


-박보영: 기미용, 어디야? 나 카페 도착했어!

-김이영: 박뽀 미안! 나 조금 늦을 듯.

-박보영: 아 뭐야! 이런 날 늦고... 여기 혼자 앉아있는 사람 나뿐이거든? 빨리 와!

-김이영: 알았어! 빨리 갈게, 뛰어 갈게!


이영은 할머니와 설전을 벌이느라 보영과의 약속에 늦었음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가벼운 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큰 길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녀의 인생과는 거리가 먼 날.

남들은 가족, 연인과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가족이라곤 할머니뿐이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그녀를 무당으로 만들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그래도 외롭지 않다.

그녀에게는 지금 함께할 친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





딸랑.


“어서 오세요, 데빌리너스입니다!”


날이 날인지라 역시 큰 카페 안의 테이블도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보영을 찾기 위해 이영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와중에 멀리서 하얗고 통통한 손이 불쑥 올라왔다.


“기미!”


보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카페 안을 울렸다.


보영의 시선을 따라 몇몇 사람들이 이영 쪽을 쳐다보았다.

이영은 보영을 향해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면서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보영에게 걸어갔다.

보영도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이영에게 다가왔다.


“야, 김이영.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야야, 박뽀. 목소리 좀 낮춰. 네가 ‘기미!’라고 부르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뭐? 적반하장이라고 늦어 놓고 오자마자 툴툴대기냐. 기미?”


보영이 이영의 팔뚝을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


“미안, 미안. 어쨌든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




자리에 앉자마자 보영이 말했다.


“기미, 정말로 선글라스 쓰고 왔네?”


“하루 종일 렌즈를 쓰는 건 아무래도 눈 아프니까. 아참, 우리가 저녁에 만난 적이 없어서 몰랐겠구나?”


“응. 너한테 이야기는 들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완전 연예인이라니까?”


“꾸미려고 쓰는 것도 아닌데 뭘.”


“난 네 맨눈도 좋은데, 굳이 선글라스 쓰냐? 가끔은 보여줘, 응? 뭐 덕분에 너라는 걸 멀리서도 바로 알아차리긴 했지만 말이야. 저녁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치, 네 목소리는 1km 떨어져 있어도 알아듣긴 하겠다만.”


“야, 내 목소리가 크기만 하냐? 완전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고. 들어볼래? 랄랄라!”


보영이 과장스럽게 팔을 둥글게 벌리며 성악가를 흉내 냈다.


“야야, 그만해.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이영이 깔깔 웃으며 보영의 팔을 잡아당겼다.


지이이이이잉.


보영의 가성이 정점에 이른 순간 진동이 울렸다.


“어라, 너 벌써 뭐 주문했어?”


놀란 이영이 물었다.


“응, 사람이 너무 많길래 주문부터 했지.”


“내 것도?”


“당연하지. 초코프라페에 휘핑 잔뜩, 맞지?”


“오오, 역시 센스.”


“내가 누구냐? 아무튼 가지러 갔다 올게.”


보영이 진동 벨을 빙그르르 돌리며 카운터를 향했다.

그 걸음걸이가 꼭 펭귄과 같았다.


이영은 단짝친구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창밖으로 눈을 옮겼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손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금세 돌아온 보영이 웨이터 흉내를 내며 우아하게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네네, 잘 먹을게요.”


대답하며 보영 쪽으로 눈을 돌린 순간, 이영은 보영과 팔짱을 낀 여자를 봤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기, 박뽀. 이 여자분은 누구야?


“응? 여자분이라니, 누구?”


이영의 질문에 보영이 오히려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이영은 본능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한 손으로는 음료가 있는 트레이를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보영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상태에서 빠르게 걸었다.


“야야야, 기미. 왜 이래? 아파.”


“박뽀, 우리 자리 옮기자.”


“왜, 창가자리 좋은데? 오늘은 저런 자리 잡기 힘들어.”


“아무튼 일단 옮기자.”


이영이 보영의 팔을 더 세게 당겼다.


“알았어, 알았어. 대장님, 명령에 따를 테니 놓아주시겠어요? 릴렉스.”


본인이 너무 세게 잡아당겼음을 깨달은 이영이 보영의 팔을 놓았다.




그들은 화장실 앞의 구석진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어휴, 남은 자리가 여기밖에 없네?”


안타까워하는 보영의 말에도 이영은 본인이 떠나온 자리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아직도 창가자리에 서 있었다.


이영의 시선을 느꼈다는 듯 여자는 천천히 뒤로 돌아 이영을 향했다.


여자의 긴 앞머리는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고,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이 크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기괴한 동작으로 목을 이리저리 회전하며 꺾었다.


‘그럴 줄 알았어. 지긋지긋한 것들.’


이영의 삶을 진정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맨날 불쑥불쑥 나타나서 그녀를 성가시게 하는 저것들.



바로 ‘귀신들’이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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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의무실 18.09.05 65 0 12쪽
34 달리기 시합 18.09.04 66 0 12쪽
33 영혼의 조각 18.09.03 77 0 12쪽
32 문지기 18.09.02 69 0 11쪽
31 엘리스의 각성 18.09.01 64 0 12쪽
30 절망의 늪 18.08.31 91 0 11쪽
29 운명을 개척하는 자 18.08.30 92 0 12쪽
28 나 혼자의 힘으로 18.08.29 67 0 11쪽
27 커다란 마귀 18.08.28 75 0 12쪽
26 집 밖으로 18.08.27 73 0 12쪽
25 어둠 속에서 18.08.26 62 0 12쪽
24 마귀의 침입 18.08.25 69 0 11쪽
23 하트의 필요성 18.08.24 88 0 12쪽
22 황룡의 선택 18.08.23 108 1 12쪽
21 그녀의 정체 18.08.22 61 1 11쪽
20 황룡제 +1 18.08.21 109 2 12쪽
19 영혼의 단짝 18.08.20 79 1 12쪽
18 신경 쓰이는 사람 18.08.19 88 1 12쪽
17 구원 18.08.17 84 1 12쪽
16 대결 18.08.16 89 1 11쪽
15 도서관에서 18.08.15 90 1 12쪽
14 영혼의 서약 18.08.14 80 1 12쪽
13 영혼식 18.08.13 91 1 12쪽
12 500년의 기다림 18.08.12 124 1 12쪽
11 돌이킬 수 없는 18.08.11 71 1 11쪽
10 백호의 선택 18.08.10 108 1 12쪽
9 선택받은 자 18.08.09 100 1 12쪽
8 신수령제 18.08.08 104 1 13쪽
7 1차 능력 개방 18.08.07 1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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