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술사(the Psyc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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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주
작품등록일 :
2018.08.0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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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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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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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단짝

DUMMY

“네?”


이영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난 네가 좋다고.”


백호가 다 시 한 번 말했다.


이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스르르 누웠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뭐야, 왜 아무 말이 없어?”


여전히 대답이 없자 백호는 머리맡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백호의 숨결을 느낀 이영이 눈을 떴다.


퍽!


베개가 백호의 얼굴을 강타했다.


“악!”

“왜 갑자기 얼굴을 들이대고!”

“그거야 네가 대답을 안 하니까... 잠깐, 너 얼굴이.”


이영의 얼굴은 복숭아처럼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 설마... 하하하하하핫!”


백호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갑자기 웃기나 하고!”

“그게, 하하하하하!”


백호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지 배를 잡고 벽까지 마구 두드렸다.


백호의 손에 따라 ‘통, 통!’하고 소리가 울렸다.


이영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초리를 눈치 챘는지 백호가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멈췄다.


“흠흠, 너 내가 고백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거야? 난 네가 그냥 주인으로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였다고. 하하하.”

“그, 그런 거 아, 아니거든요?”

“말까지 더듬는 거 봐. 진짜 그랬나 보네?”

“아, 그냥 소름이 돋아서 그랬어요. 소.름.이!”


이영은 몸을 움츠리며 과장스럽게 양팔을 쓸어내렸다.


사실 이영은 백호의 말을 정말로 오해했다.


다정한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그 문장.


그것도 굳이 방까지 따라 들어와서.


누가 들어도 오해가 쉬운 상황이었다.


다만 그 말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예상 밖의 인물에게서 흘러 나왔을 뿐.


“그래. 그러시겠지. 하지만 다음에 누가 진짜로 고백한다면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편이 좋을 거야?”


백호가 눈썹을 능글스럽게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아, 거참 아니라니까!”


이영이 있는 힘껏 베개를 던졌다.


“어이쿠, 너한테 고백하는 사람은 두 번 했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겠는 걸?”

“이 아저씨가 정말!”


이영이 머리맡에 남아 있는 다른 베개를 마저 던졌다.


“자꾸 아저씨라고 하면 섭섭해?”


던져진 베개는 갑자기 돌아선 백호의 등에 맞고 스르르 떨어졌다.


“너, 인간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갑자기 백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죠.”


이영이 자신의 무릎을 팔로 감쌌다.


“나는 인간령을 선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인간령과 가까이 지냈던 적도 없어. 그래서 지금 네 기분이 어떤지는 잘 몰라.”


이영은 백호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옆으로 돌아누웠다.


침대 위에는 이제 베개가 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팔에 머리를 올렸다.


“하지만 적어도 네가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겠어. 그래서 계속 돌아가고 싶은 거지?”

“인간 세계에는 가족과 친구가 있으니까요.”

“음.......”


백호가 벽에 기대어 섰다.


“인간 세계는 홍염이 말했듯이 황룡제가 끝나면 가볼 수 있을 테니 걱정 마.”

“그랬죠. 한 달이나 기다려야 될 뿐이죠.”


이영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넌 썩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너와 난 앞으로 계속 함께 해야 될 운명이야.”

“운명....... 제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네요.”


이영이 몸을 뒤척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운명이 왜?”

“운명이라고 하면 뭐든지 정해져 있는 느낌이잖아요. 제 손으로는 절대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넌 감히 뭘 할 생각도 하지 마?’ 이런 느낌이잖아요.”

“뭐 확실히 그런 느낌도 적잖이 있긴 하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베타 씨도 엘리스가 제 하인이 된 게 운명이라고 하더군요.”


이영이 방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너의 만족도는 바뀌는 게 아닐까?”

“애초에 제 선택과 상관없이 모든 것이 정해지는 게 싫어요. 요 며칠간 제 의지에 따라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걸요.”


이영은 자신의 손에서 날아가던 기운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폈다.


“그럼 나도 싫겠네? 네 선택과 상관없이 내가 널 선택해 버렸으니.”

“백호 씨가 싫다는 말은 안했어요.”

“흠, 그래?”


이영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근데 뭐 그건 네가 이 세계로 오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뭐라고요?”

“지금까지 살면서 모든 일이 네가 원하는 대로만 돌아가던가?”


그의 말이 맞았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그녀는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무당이 되느냐 마느냐. 고등학교에 갈 것인지.


“어차피 바꿀 수 없는 것, 이미 일어난 것, 네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 버린 것. 그것들에 집착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네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는 게 너한테 좋지 않을까 싶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음... 흠흠.”


백호가 처음으로 말하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음... 네 뜻대로 된 건 아니지만, 나랑 친하게 지내자고. 나한테 좀 의지해도 되고?”


이영이 아무 말 없이 백호를 바라봤다.


“아이, 어차피 우린 계속 붙어 있어야만 하니까. 이왕이면 잘 지내면 좋잖아? 이 세계에 온 순간 나같이 든든한 아군이 또 어디 있다고.”


백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풋.”


이영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웃는데?”

“아뇨, 결국 그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구구절절 말하셨나 싶어서요.”

“그거야 네가 워낙 무서우니까 내가 굽히고 들어가느라.......”

“뭐라고요?”


이영이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휘유, 이거 봐, 또 이렇게 무섭게 변하는데. 내가 어떻게 안 그래? 유리는 정말이지 안 그랬... 합.”


백호가 빠르게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미안. 이건 실수야. 유리 이야기는 안 꺼내려고 스스로도 다짐했었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라, 의외로 화내지 않네? 방금까지만 해도 홍염이 유리 이야기를 꺼내니 싫어하는 것 같더니.”

“그거야 그 사람이 워낙 심술궂게 이야기했으니까 받아친 거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좀 불쌍하기도 하잖아요, 그 사람. 유리 씨 때문에 저한테까지 계속 신경을 쓰다니.......”


이영은 홍염에 대한 연민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홍염에 관해서는 내가 괜한 소리를 해줬군. 너, 이거 하나는 잘 기억해둬.”

“뭘요?”

“괜한 동정심에 휘둘리지 말고. 홍염이건 누구건, 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이영은 멍하니 백호를 바라 봤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백호의 물음에 이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호가 손을 내밀었다.


이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악수하자고.”


백호의 손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가 백호의 넓은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잘 부탁해.”

“저야말로.......”


그러자 백호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귀걸이가 되어 이영의 손에 들어왔다.


귀걸이의 하얀 보석에서 빛이 났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마음 가는 대로 해라.


그 말이 계속 이영의 귓가에 울렸다.


이영은 손 위의 귀걸이에서 어쩐지 온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황룡제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이영은 초제가 열렸던 방에서 황룡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방을 ‘신당’이라고 불렀다.


이영은 그 단어가 왠지 점집을 떠올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는 좋았다.


오늘의 황룡제만 무사히 지나고 나면 인간 세계에 다시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영은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기도 하고, 기초적인 영혼술을 수련하기도 했다.


사실 수리와의 싸움에서 자신이 해냈던 영혼술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빗발치듯이 날아가던 무기들.


실제로는 금속무기를 하나씩 꺼내는 것도 어렵게 연습해야 했다.


그 날에는 상황의 절박함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영 님!”


신당의 입구에서 엘리스가 팔을 들며 다가왔다.


뛰어왔는지 엘리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헉, 제가 너무 늦었죠? 헉, 운동을 하다 보니. 헉, 시간이 가는 걸 모르고. 헉, 늦어버렸네요.”

“괜찮아, 엘리스. 아직 시작한 거 같진 않은데?”


엘리스가 작은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영이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로 엘리스는 정말 운동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큰 변화가 생기진 않았지만, 엘리스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했다.


이영은 엘리스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 봤다.


황룡제에는 초제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초제와 달리 황룡제에는 인간들도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룡 님은 정말로 중립을 좋아하나 보네. 인간들도 올 수 있게 하는 걸 보면.’


옷을 차려입은 술사들의 뒤로 어색한 얼굴로 서있는 인간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런 행사가 결코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숨을 고른 엘리스만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이영의 옆에 서 있었다.


이영은 고개를 들어 멀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수리의 얼굴을 보았다.


수리는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미 청룡의 선택을 받은 그녀는 황룡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비록 몇 주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수리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이영과의 싸움에서 얻은 상처 따위는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술사들이 회복력이 빠르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이야.’


이영은 엘리스의 손목을 힐끗 보았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엘리스의 손목에는 여전히 거뭇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라지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사실 이영은 신당에 들어오기 전에 수리와 한 번 마주쳤었다.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의외로 수리는 이영을 위아래로 한 번 훑더니 그냥 가버렸다.


도서관에서 그들의 싸움이 끝난 뒤, 한동안 수리가 청룡을 소환하고도 인간령에게 졌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건 아마도 싸움 당일에 수리가 많이 다쳤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이영은 거의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원래 수리의 성격이었다면 지난번의 과오를 갚겠다며 으르렁거렸을 터.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재판의 효과가 있긴 있구나.’


백호의 말대로 수리는 재판에 부쳐졌었다.


홍염은 재판에서 수리의 입학유예와 몇 년 간의 영혼술 금지령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관 중에는 청룡가문 출신이 다수 있었고, 그들의 반대로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수리는 도서관 복구를 도와야 했고, 3개월 동안 본관에서 일하는 인간들을 영혼술 없이 도와야 했다.


게다가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영에게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오늘은 황룡제라 어쩔 수 없이 마주쳤지만 말이다.


‘같이 일해야 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야? 저 성질 더러운 애랑.’


이영은 수리와 같이 일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연민과 미안함을 느꼈다.



“자, 이제부터 황룡제를 시작하겠습니다.”


홍염이 제단 앞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다함을 향했다.


사다함은 전과 같이 유리 상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신수령들의 것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운데... 주인이 없다니.’


이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걸이를 바라봤다.


“그럼 청룡과 백호의 주인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홍염이 수리와 이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


이영이 놀라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멀리서 홍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리 역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 또 저 계집애랑 나란히 서야 된다니!’


작가의말

원수는 황룡제에서(?) 만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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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일반연재로 승급되었습니다. 18.08.21 71 0 -
35 의무실 18.09.05 65 0 12쪽
34 달리기 시합 18.09.04 66 0 12쪽
33 영혼의 조각 18.09.03 77 0 12쪽
32 문지기 18.09.02 69 0 11쪽
31 엘리스의 각성 18.09.01 64 0 12쪽
30 절망의 늪 18.08.31 91 0 11쪽
29 운명을 개척하는 자 18.08.30 92 0 12쪽
28 나 혼자의 힘으로 18.08.29 68 0 11쪽
27 커다란 마귀 18.08.28 75 0 12쪽
26 집 밖으로 18.08.27 73 0 12쪽
25 어둠 속에서 18.08.26 62 0 12쪽
24 마귀의 침입 18.08.25 69 0 11쪽
23 하트의 필요성 18.08.24 88 0 12쪽
22 황룡의 선택 18.08.23 108 1 12쪽
21 그녀의 정체 18.08.22 61 1 11쪽
20 황룡제 +1 18.08.21 109 2 12쪽
» 영혼의 단짝 18.08.20 80 1 12쪽
18 신경 쓰이는 사람 18.08.19 88 1 12쪽
17 구원 18.08.17 84 1 12쪽
16 대결 18.08.16 89 1 11쪽
15 도서관에서 18.08.15 90 1 12쪽
14 영혼의 서약 18.08.14 80 1 12쪽
13 영혼식 18.08.13 91 1 12쪽
12 500년의 기다림 18.08.12 124 1 12쪽
11 돌이킬 수 없는 18.08.11 71 1 11쪽
10 백호의 선택 18.08.10 108 1 12쪽
9 선택받은 자 18.08.09 100 1 12쪽
8 신수령제 18.08.08 104 1 13쪽
7 1차 능력 개방 18.08.07 13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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