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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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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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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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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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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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이 끝날 무렵#6

DUMMY

"...역시 모르겠어."


문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은 시오르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면서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괴로운 감정이 솟구쳤다.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아파서 더욱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누나가 악마라는 사실은 믿기 힘들었다. 믿는다고 말했던 자신이 민망할 정도로, 그는 의심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라흐벨이 소리를 지르며 나가는 것이 들렸다. 혹시 감시관과 언쟁이 붙은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던 시오르는 문을 살짝 열어서 바깥을 엿봤다. 당연하게도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 안에는 그만 남아있게 됐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그는 다급하게 문을 열고 집 바깥으로 나왔다.


시오르가 본 것은 마법끼리 충돌하는 장면이었다. 마력끼리 충돌하며 푸른 폭발을 일으키고,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팔을 올린 시오르는 폭발이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는 것을 봤다.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던 시오르를 본 레아는 그의 팔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여긴 위험해! 일단 안으로...."

"레아, 마력은 전부 회복한 거지?"

"아직이에요! 그보다 감시관님, 괜찮으시겠어요?"

"내 부하들이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 그보다 짜증 나네. 물 쓰는 거 보자마자 죄다 폭발이나 불같은 마법만 사용하고."


다시 집 안으로 끌려들어간 시오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레아를 보았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면서 손을 뻗었다. 그녀의 다섯 손가락 끝에는 마력이 나타났고, 그것들은 서로 이어지며 원의 형태를 이루었다. 흔히 마법진이라 불리는 것을 처음 본 시오르는 감탄사라도 잔뜩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레아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걸고 있는 것에 집중했다.


"이게 뭐야?"

"보호막이야. 우선 감시관님이랑 안전하게 이동해야 하니까, 나랑 꼭 붙어있어야 해!"


바깥에서는 다시 한번,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바깥으로 나온 그들은 레베카가 주변의 물을 이용해서 방패를 여럿 만든 것을 보았다. 조심스러운 행동을 취하던 세 사람과 다르게, 라흐벨은 벽에 등을 대고는 느긋하게 이 모습을 구경했다. 이 모습을 본 시오르는 기이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 누나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 난 걱정 안 해도 돼. 다만 아까워서 그렇지."

"아깝다고?"

"내가 아무리 나쁜 년 소리를 듣고 살아도 말이야, 일단 계악주라고. 계약자와의 계약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단 말씀. 그래서 이 상황에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문제지."

"어차피 낙인으로 대부분의 힘을 봉인 당한 상태니까, 루니르노 신도들 상대로도 위험할 거야."

"그건 두고 봐야 알걸?"


비아냥댄 라흐벨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레베카는 물로 만든 방패를 넓게 퍼트려서 세 사람을 감싸는 식으로 전개했다. 라흐벨은 조용히 등을 대고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서 무언가를 끄집어당겼다. 무언가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 사이로 로브가 날아왔다. 시오르가 말했던 침대 밑에 있는 로브였다.


빛바랜 푸른 로브였지만, 겉에 그려진 문양과 장식만큼은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쥔 라흐벨은 한심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오랜 시간을 살았던 그녀가 수백 년간 쌓아온 한심한 결정이 자꾸만 보잘 없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계약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은 생기지 않았다.


혀를 찬 그녀는 로브를 시오르에게 덮어주었다. 당황한 시오르는 로브를 보다가 라흐벨을 보았다.


"1년 만에 외출이다. 두고 가는 짐 없지?"

"어.... 혹시 어제 보던 책 챙겨가도 돼?"

"되겠냐."


그런 와중에도 농담하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위안을 얻은 라흐벨은 가볍게 손에서 불을 일으키며 말했다.


"지르빌까지만 가면 되는 거지?"

"정확히는 감시탑 시야 안까지만 가면 돼요. 넉넉해서 다행이죠."


대기 중의 마력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라흐벨은 불씨를 앞으로 날렸다. 도화선에 닿은 것처럼, 불씨는 점차 불꽃이 되어서 어디론가 향했다. 날아오던 날카로운 마력에 닿은 불꽃은 그것을 격추시키면서 맹렬한 화염을 일으켰다. 화염은 땅바닥에 내려앉으면서 꽃처럼 피어올랐고, 꽃은 벽이 되어서 주변을 갈랐다. 이 모습을 본 레베카와 레아는 식겁했다.


낙인은 계약자와 계약주 사이에 간섭하는 일종의 저주였다. 마력이 담기는 그릇인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족쇄를 채운다고 말하는 만큼 그 위력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시전된 있는 마법은 무언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했다. 경외심마저 들만한 마법을 사용한 그녀는 정작 시원시원한 태도로 말했다.


"뭐해? 길 열어줬으니 달려."

"알겠습니다. 레아, 시오르. 둘 다 내 뒤에 붙어서 따라와라."

""네!""


화염 벽을 엄폐물 삼은 세 사람은 빠르게 숲 바깥 방향을 향해 달렸다. 이를 인지한 마법사들은 진형을 바꾸고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을 따라갔다. 라흐벨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자신의 갈색 로브를 집어 들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그들을 따라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요즘 루니르노 놈들은 이런 구석진 민가 습격을 저 정도 인원으로 할 만큼 할 일이 없나."


짚이는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만약 자신들을 경계한 것이라기엔 너무 빈약한 준비였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나 확인하던 라흐벨은 밤하늘을 등지고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확인했던 인원이 전부였고, 수상한 마력을 뱉어내는 존재도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이유는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어이없게 걸렸다며 한탄했다.


화염 벽을 거둔 그녀는 천천히 비행하며 아래를 내려보았다. 레베카 주변으로 4명의 마법사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들의 경로를 막을 마법사 두 명이 대기 중이었다. 일단 직접적인 위해가 금지된 상태이므로 라흐벨은 세 사람이 달리고 있는 땅을 마력으로 들어 올렸다. 잠시 당황하던 세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하늘을 쳐다본 레베카는 상황을 파악하고 방어에 집중했다.


땅 위에서 농성을 펼치고 있으면, 라흐벨은 그들이 움직여야 하는 것을 대신 해주었다. 게다가 라흐벨은 어째 레아가 익숙하다고 느꼈는지 기억했다. 싸우는 마법에는 좀 미숙한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는 말을 시오르가 자주 했었기에, 레아의 방어 마법은 미숙한 것 치고는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봤자 제대로 배운 마법사들의 공격을 막는 건 무리였는지, 유리 깨지듯이 방어막이 깨지는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뭐, 딱 시오르가 말한 정도이긴 하네."


조심스럽게 내려온 그녀는 현재 상황이 썩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레베카가 제대로 막을 수 있는 것은 5명 정도였다. 그러니까 어중간하게 더 있는 한 명의 공격은 막지 못해서 자꾸 흙이 깎여나가고, 그들의 마법을 저지당하곤 했다. 우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기에 흙을 다시 땅으로 내려보내고 레베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힘겨워 보이는데."

"걱정 마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걱정한 적 없어. 그보다 얘들 목적은 알겠어?"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말이에요."

"그래? 그럼 한 번 들어나 보자. 방어 태세 풀고 한 놈만 끌고 와."

"지금 방어를 포기하라고요? 감시관인 제가 저들을 공격하지 않는 건 단지 여기에 보호할...."

"그러니까, 안심하고 하나만 잡아. 나머지는 내가 할게."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레베카는 방패를 전부 거두었다. 그리고는 창의 형태로 전환해서 주변을 향해 날렸다. 당연하게도 많은 마법이 그에 응수하기 위해 날아왔다. 그리고 라흐벨은 드디어, 공격 중 하나가 시오르에게 날아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게 제대로 된 조건은 아니니 아쉽긴 하네."


레아까지 덮는 거대한 방어막을 친 라흐벨은 마력을 파도처럼 흘려보냈다. 푸른 마력들이 와해되어 사라지자,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동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게다가 레베카는 어렵지 않게 마법사 하나를 잡아다가 라흐벨 앞에 던져두었다.


"왔습니다."

"좋아. 그럼 우리 루니르노 신도님께선 무슨 말씀을 전하시려고 이 난리를 피우시나?"

"너 같은 정령한테 할 말은 없다."


루니르노 마법사는 재빠르게 자신의 몸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붉은 피를 토하고는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흐른 피가 마법진처럼 형태를 갖춘 것은 어떻게 보면 기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진의 형태를 본 라흐벨은 혐오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쓰레기 같은...."

"결국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방금의 유언이 짧은 영창임을 알아차린 레베카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서 세 사람 모두에게 방어막을 씌웠다. 피를 토한 루니르노 신도는 이내, 자신의 몸에서 마력이 폭주하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사용하는 마법임을 알기에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강렬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전신이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마법사가 있던 자리에는 고깃덩어리와 붉은 피가 엉망진창으로 튀었다. 그와 더불어 거대한 마력이 폭발하면서 나무와 땅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느새 자신들이 분지에 서 있음을 알아차린 세 사람과 다르게, 자신에게 묻은 더러운 피를 본 라흐벨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본 적이 있는 마법이었기에 더욱 화가 났다.


갑작스러운 참상을 목격한 레아는 어느새 고개를 돌리고 구토했다. 시오르는 온몸을 떨면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이미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끔찍함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라흐벨은 자신에게 묻은 피를 닦지도 않은 채로 손에 마력을 모았다. 구체처럼 뭉친 푸른 마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탁색으로 변해갔다.


레베카는 라흐벨이 만든 검은 구체를 보았다. 순도 높은 마력은 색채가 일그러지면서 무채색을 띤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중, 검은색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고밀도의 마력이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닿기도 힘든 마법을 사용하는 라흐벨의 모습은 레베카에게 두려움을 불러냈다. 강한 적개심과 함께, 라흐벨이 계약 조건을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여주마. 역겨운 새끼들."


작가의말

이제 다음주부터 개강입니다.

이번 학기에는 병실 실려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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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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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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