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보니 천지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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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Ca
작품등록일 :
2018.08.0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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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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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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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 길드

DUMMY

무표정한 검은 가운의 사내가 손짓을 해 블루 캡슐을 가지고 오게 시켰다. 캡슐을 건네 받은 술 취한 사내는 의기양양하게 그 캡슐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준 후 막걸리 한 모금과 함께 기세 좋게 삼켰다.


한번 씩 웃고는 단상을 아무일 없이 내려 오던 사내는 점점 낯빛이 시꺼멓게 바뀌더니 들고 있던 막걸리 병을 손에서 놓치고 자신의 목을 감싸 쥐었다.


“꾸어어억!”


목구멍을 하늘 방향으로 향한 사내는 위로 하얀 막걸리를 뿜어 내더니 곧이어 검붉은 피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까아아악”


피를 쏟은 사내가 바닥에 쓰러지자 비명을 지르면서 사람들이 자리를 피했다. 그 광경을 보던 검은 가운 사내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군인들을 향해 손짓했다. 군인들이 쓰러진 사내에게 다가갔지만 이내 숨을 멈추고 죽은 상태였다.


눈을 뜨고 안구를 돌출 한 채로 혀를 길게 빼문 모습을 한 사내가 축 늘어져 군인들에게 질질 바닥에 끌려 나갔다.


“자, 보셨죠. 자신의 등급에 맞는 캡슐을 드셔야 합니다. 등급 아시는 분들은 저쪽 옆에서 신원확인 하시고 받아가시고 아니거나 모르시는 분들은 여기 와서 흰색 캡슐 받아 가세요. 하루에 한번만 드시고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꾸준히 계속 드시면 누적 수치에 따라 상위 나노 칩을 보실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검은 가운의 사내는 앞의 광경을 이미 알았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군인 들이 흰색 캡슐이 가득 든 자루를 들고 오자 군중들이 반으로 갈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앞 사람을 밀치면서 먼저 캡슐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깔려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앙’


아이를 손에 놓친 사람들이 주변을 향해 소리쳤지만 캡슐을 서로 먼저 더 많이 받을 욕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군인들이 들고 있던 자루가 찢어지면서 공중으로 흰색 캡슐이 뿌려졌다.


-촤르르륵


바닥에 떨어진 흰색 캡슐을 먼저 주우려고 사람들이 서로 손을 내밀다 발에 밟히고 결국 주먹 다툼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하루에 한번만 먹으라는 말도 무시한 채 두세 개씩 입에 넣고도 주머니에 마구 집어 넣었다.


“이것 봐라~ 30일치는 되겠지?”

“야, 너 몇 개 주웠어. 나 한 개만 주라”


호태 주변에 학생들이 서로 자신이 주운 캡슐 양을 보면서 자랑하기 시작했다. 아까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도 지팡이를 집고 고개를 바닥에 댄 채로 남은 캡슐들을 황급히 줍고 있었다.


-데구르르


흰색 캡슐 하나가 호태의 발에 굴러왔다. 하지만 호태는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캡슐 안 집으십니까?”


멍하니 서있던 호태가 옆에서 들어온 낮은 중 저음에 고개를 들어 보았다. 아까 블루 캡슐을 받았던 김태성이란 사내였다.


“외지인 이신 거 같은데 내일 저녁에 첫 모임이 있으니 한 번 방문해 주시죠. 식사도 하시면서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태성이 명함 꺼내더니 호태에게 건네 주었다.


[상록 기획]


명함엔 부동산 컨설팅 등의 설명을 적은 문구가 보였다.


“주민 센터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시면 보이는 상록 부동산 건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태성이 호태에게 살짝 인사를 하더니 바로 옆 사람한테 가서 명함을 건네주며 같은 설명을 했다. 호태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흰색 캡슐을 쥐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어이가 없군. 판타지 세상 구현이라니’


어느새 해가 지면서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호태는 캡슐을 먹지 않은 채 굴다리 쪽으로 향했다. 마을 밖으로 나가보려고 했지만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사실 군인들이 없어도 됐다. 마을은 알 수 없는 투명한 막에 의해 막혀 있는 상태였으니까. 몇몇 사람들이 군인의 눈을 피해 나가 보려고 했지만 투명 막은 탄성이 있으면서도 뚫리지 않았다.


호태가 굴다리로 돌아와 보니 앰뷸런스도 보이지 않았다. 시동 키도 없는 차가 사라졌다. 누가 가져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자신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호태는 들고 있던 단말기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살라힘이 시킨 걸까? 살라힘은 중간지대에 갇혀서 힘을 쓸 수 없는 처지였는데...어떻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배가 미친 듯이 고파왔다. 아까는 간만에 본 세상 구경에 긴장을 했는지 느끼지 못했었다.


‘점심 밥 먹으려다 그 미친놈 새끼한테 끌려갔으니’


아까 영상에서 본 닥터 오가 생각나자 호태는 부아가 치밀었다. 호태는 굴다리를 나와 다시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천지개벽의 첫날 밤은 매우 조용했다. 길거리에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며 집집마다 불도 모두 꺼진 상태였다. 호태는 길고 긴 밤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

밤이 지나 푹푹 찌는 여름 아침이 밝았다.

신문지를 덮고 자던 호태를 툭툭 건드리는 빨간 하이힐.


“일어나 봐요. 남에 집 앞에서 자빠져 있으면 어떻게 해요”


호태가 눈을 뜨니 하얀색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호태를 바라 보고 있었다.


“빨리 튜토리얼이 끝나서 밖으로 나가던지 해야지, 어휴 답답해. 아빠 빨리 퀘스트 하러 가요”


단발 머리에 하이힐과 같은 색으로 립스틱을 바른 20대의 여자는 큰 저택 마당을 향해 소리쳤다. 풀 메이컵에 소개팅에 나갈 것 같은 옷차림으로 퀘스트를 하러 가자고 하는 말을 들으니 호태는 아직까지도 비현실 적인 느낌을 받았다.


누워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바람에 스커트가 살짝 날리면서 하얀색이 살짝 보였다. 여자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스커트를 양손으로 잡으면서 짜증을 냈다.


“아빠, 빨리 와봐 변태새끼가 자꾸 쳐다봐”

“뭐, 어떤 놈이 우리 딸을!”


집 안에서 큰소리를 내며 남자가 뛰쳐나왔을 땐 호태는 그 자리에 없었다.


‘배고프다. 미친 듯이 고프다’


여전히 상점에 문을 연 곳은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돈이 없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했으니 이런 꼴로 음식점에 들어갔다간 내 쫓길 것이 분명했다. 다시 주민센터 쪽으로 향하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전광 게시판 앞에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이 모은 나노 물질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지개벽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보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벌써 퀘스트를 연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천하무적 길드에서 했다고 하더라고”

“상록 길드도 점심부터 사람들 모은다고 하는데 갈등이야. 태성 그 사람 예전부터 사기꾼 기질이 다분 하잖아”

“그래도 어디 한군데는 들어야 할거야. 단독으로 튜토리얼 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니까. 미리 들어가서 입지를 다져 놓는 게 좋지”


‘상록 길드?’


상록이란 말을 듣자 어제 김태성이란 사람에게 받은 명함이 생각났다. 점심에 밥도 준다고 했던가? 그래 거기를 가자.


상록 부동산은 마을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호태가 문 앞에 다가가자 [상록]이란초록색 글에 하얀 바탕 띠를 두르고 앞에 서 있던 안내양이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호태가 어제 받았던 명함을 보여주자 위아래로 한번 쭉 훑어보더니 안으로 안내를 했다.

사무실 방안에 들어서자 중앙엔 커다란 프로젝터 스크린과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벽면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뷔페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서 중앙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에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안내양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으로 뛰어 들어간 호태는 음식들부터 살펴보다가 LA갈비 앞으로 다가가 맨 손으로 집어서 입안에 허겁지겁 넣어 뼈 채 씹어 먹었다.


‘살살 녹는구나’


달콤 짭조름하게 양념이 된 기름진 갈비살이 입 안에서 허물어 졌다. 앞에서 정신 없이 양 손에 집어 먹던 호태는 문득 자신을 보던 시선을 의식하고 빈 접시를 가져와 갈비를 높게 쌓아 올려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뒤에 서서 먹으며 주변을 살펴보니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제 불평불만을 쏟아 내던 할아버지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의자에 앉아 있었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음식을 담고 있는 젊은 여자도 보였다. 마치 동생을 데리고 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애 띤 모습이었다.


“아~아, 곧이어 상록 길드 회원 가입을 위한 설명회가 있겠습니다. 김태성 의장님이 단상위로 올라오시면 뜨거운 박수 부탁 드립니다”


하얀색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은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안내 방송을 하자 주변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조명이 단상 위를 밝혔다. 호태가 접시 위에 마지막 갈비를 집어 뜯을 때 피아노 반주의 음악이 실내에 울려 퍼지면서 초록색 망토에 나뭇가지와 잎사귀로 치장한 옷을 입은 김태성이 같은 옷을 입은 서너 명의 사람들과 함께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이 사람들이 지금 학예회를 하려고 하나, 왠 개콘 분위기지’


호태가 이런 생각을 할쯤 김태성 옆에 도열한 사람들이 청중들을 향해 박수를 유도했다.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들 중 몇 사람이 마지못해 작은 박수 소리를 냈다.


“드디어 어제 위대한 천지개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캡슐을 먹고 튜토리얼을 시작하고 계신 분들도 있고 아직 갈등하시고 안 드신 분들도 있는 걸로 압니다. 본인은 이런 무의미한 갈등은 빨리 접으시고 캡슐부터 드시길 권장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먹었던 안 먹었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서 퀘스트를 받아 보신 분 있으세요?”


김태성의 질문에 웅성거리던 청중 가운데서 양복을 입은 사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오다 보니 천하무적 길드란 곳에선 퀘스트 열어 준다면서 광고하던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보면 다 허울만 좋을 뿐입니다. 혹시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길드원 받을 때부터 차별을 받아 보셨을 겁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력이나 신분으로 가려 받지 않던가요?”


웃으며 말하는 태성의 말에 앞줄에 앉은 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와 몇몇 사람들이 동조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과 땅이 바뀌는 천지개벽의 시대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력이나 신분이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 길드는 그 사람의 미래만 바라 볼 뿐입니다. 기존에 개차반 같이 살았던 어떤 삶을 살아왔던 어제 이 캡슐을 먹은 이상 우리 모두는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태성이 캡슐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보여주자 아까완 달리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오늘 본인은 여러분에게 평등한 미래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이상적인 낙원, 그것이 우리가 나아 가야 할 길입니다.”


김태성이 힘주어 외치자 단상 위의 불이 꺼지면서 주변이 완전히 어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화면 가운데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서 꽃 위에 앉는 장면이 영사 되었다. 바람과 물소리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다 나비의 날개 짓이 멈추자 꽃을 꺾어 들어 향기를 맡는 한 여자의 모습이 줌아웃 되며 나타났다.


“드루이드”


호태가 마지막 고기 한 점을 뼈에서 뜯어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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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늦어진 저녁식사 18.09.11 87 0 6쪽
22 도리야 18.09.10 112 0 11쪽
21 고임(Goim)-4 18.09.08 117 1 8쪽
20 고임(Goim)-3 18.09.07 106 0 8쪽
19 고임(Goim)-2 18.09.06 118 0 9쪽
18 고임(Goim)-1 18.09.05 116 2 8쪽
17 나밀른 제단의 침략자 18.09.04 144 1 10쪽
16 히비코 18.09.03 146 2 10쪽
15 숨겨진 퀘스트 18.08.29 137 1 12쪽
14 부서진 나노 물질 18.08.16 136 1 8쪽
13 티끌 모아 태산 18.08.14 138 1 13쪽
12 나노 물질 18.08.13 140 1 13쪽
11 시스템 18.08.11 144 1 9쪽
10 나는 OO이다. 18.08.09 136 1 8쪽
9 드루이드 18.08.08 136 1 9쪽
» 상록 길드 18.08.07 155 1 12쪽
7 천지개벽 18.08.06 177 1 14쪽
6 귀환 18.08.05 201 2 13쪽
5 크라이젠 궁 18.08.04 186 2 12쪽
4 살라힘과의 만남 18.08.03 237 1 10쪽
3 목마 작전 18.08.02 295 1 8쪽
2 인공지능의 반란 18.08.02 380 1 10쪽
1 프롤로그 18.08.02 484 3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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