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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丁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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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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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칼리안, 거래를 하러 왔다.

DUMMY

028. 칼리안, 거래를 하러 왔다.



“형. 가더 왕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야. 남들이 말하는 소문 이상으로...”

“나도 알고 있다. 소문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일부 소문은 귀족들이 만들어서 뿌린 거니까.”

“소문을 귀족들이 만들어서 뿌린 거라고?”

“가더 왕은 이미 왕자일 때부터 오러 마스터였다. 지금은 그랜드 오러 마스터일 거라고 추측하지. 그 때문에 귀족들은 그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평판을 떨어트려서 어떻게 하려고? 이미 귀족들은 가더 왕을 적대 하잖아?”

“그가 아무리 강해도 개인일 때는 상관없다. 하지만 백성들과 기사들을 등에 업는다면 귀족들도 상대하기 어렵지. 그래서 그가 민심을 등지게 하려는 거다.”

“음...”

다른 영주들이 다스리는 지방에서야 그 소문이 통하고 있지만, 이미 수도는 가더 왕이 확실하게 민심을 잡고 있었다.

과연 귀족들의 작업이 실효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작업 덕에 아직 수도에서만 가더 왕의 영향력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형. 내가 말하는 건 가더 왕의 무력적인 측면만 말하는 게 아니야. 가장 무서운건 그가 그런 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거야.”

“계획적이라고?”

“형, 아직 수도에 안 들어가 봤지?”

“아직은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거래가 끝날 때까지 이곳의 경계가 내 임무니까.”

“내일이라도 꼭 시간을 내서 수도의 변한 모습과 백성들의 분위기를 형이 직접 확인해봐. 가더 왕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알겠다.”

칼리안은 여기서 가더 왕을 만났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퍼먹여 주는 것보다 형이 가서 직접 확인하는 게 형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거기다 가더 왕이 정체를 숨기고 만나러 온 것도 있고, 나도 형 몰래 진주를 팔았으니...’

형에게 미리 알려준다면 티가 날 테고 눈치가 빠른 인물이니 금세 알아차릴 거다.

가더 왕이 따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간에 만났다는 사실을 숨기자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인물이 삐진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 * *


수도에 온 지 이틀째 날.

캠프의 굳게 닫혀 있는 문은 변한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수도로 떠난 아루스 형의 마차가 캠프를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활짝 열렸다.

아침부터 동시에 귀족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첫날에는 거래를 튼 귀족들보다 돌려보낸 귀족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말해준 조건이 널리 퍼지면서 귀족들은 대부분 거래 준비를 마치고 왔다.

비굴하게 나온 이들도 있었고 당당하게 나온 이들도 있었지만, 태도는 상관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거래 자체를 상업이라며 천대하거나 적대감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고비율로 교환을 해줬고 최대한 협조하거나 성의(라는 이름의 돈주머니)를 보여주면 낮은 비율로 밀을 교환해주었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찾아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낮은 작위를 가진 귀족들이었다.

백작급 이상의 고위 귀족들은 거의 거래가 끝날 무렵에나 움직일 것이다.

작위가 높을수록 세금으로 내야 할 밀의 양이 많으니 그들은 최대한 하는 데까지 해보고 부족한 부분만 구하려고 할 것이다.

돈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해도, 액수가 액수이니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귀족들이 아니라면 현금화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테고.

그래서 칼리안은 오늘도 백작급의 귀족을 만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후에 일과를 마치기 전 마지막 손님을 받았는데, 그 손님이 백작이었다.

칼리안은 들어오는 귀족의 얼굴을 보자마자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입을 열었다.

“강을 끼고 있어서 영지의 수확이 빨랐다 하시지 않으셨던가요? 가임가너 백작님?”

“역사 이래로 최악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밀을 가지고 수도로 올라오다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모두 빼앗겼지 뭡니까?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가임가너 백작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답답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뭐 이런 뻔뻔한 놈이...’

칼리안은 한동안 가임가너 백작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봤다.

여기에 찾아온 것도 놀라운데 이런 연기까지 하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놀랍네요.”

“맞습니다. 어떻게 산적 따위가 감히 백작의 세금 수송 행렬을 공격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놈들은 가더 왕이 무섭지도 않은 건지...”

‘영지전이 나게 된 건 나게 된 거고... 당장에는 국왕이 무서우니 하루빨리 완납해서 국왕과 거래를 하겠다 이건가?’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처지는 이해가 갔다.

“그런데 듣기로는 오스왈드 후작가에서도 같은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피해는 괜찮으신지요.”

“걱정해주신 덕에...”

“우리 백작가 뿐만 아니라 오스왈드 후작가도 공격을 당했다니, 필시 고위급 귀족이 개입된 것이 확실합니다. 이번 사건의 범인을 찾는데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그가 오스왈드 후작가를 노린 것에 대한 소문이 돌지는 않았지만, 이미 가더 왕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아루스 형이 영지전을 신청하는 순간 그 사유가 귀족 모두에게 알려지는데, 이렇게 나오다니 그 뻔뻔함과 연기력에는 감탄밖에는 안 나왔다.

“하... 어쨌든, 결국 거래 때문에 오게 되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이번 거래에는 기준이 있어서 한 번 거래를 거절했던 분과 다시 거래를 틀 때는 고비율 거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희 영지가 가지고 있던 밀을 모두 강탈당하는 바람에 일이 많이 꼬였습니다. 듣자하니 돈으로도 교환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밀 없이 돈으로만 교환해달라는 소린가요?”

“염치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그럼 교환비율이 많이 올라갈 텐데요? 1대 6이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칼리안의 말에 가임가너 백작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불쌍한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놀라운 가격이지만, 기준 때문에 그렇다시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가더 왕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니 매년 세금은 제대로 내야 하고... 후우...”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거래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도정 안 된 밀을 구입하시고 돈을 더해 교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도정이 안 된 밀도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구하는 것은 며칠만 있으면 됩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기사들이 죽고 병사들도 많이 죽는 바람에 영지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이번 사건을 벌인 범인이 누군지도 조사해야 하고...”

가임가너 백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말은 청산유수네...’

그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

앞으로 영지전이 벌어질 테니, 사용해야 하는 군량은 아끼고 그동안 모아둔 재화로 시간을 벌겠다는 수작이다.

이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그에게는 이득이 될 거다.

어떻게든 거래를 거절해야 했다.

“저런, 이곳으로 직접 오시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발걸음이었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거래하시는 것으로 하죠.”

하지만 칼리안은 그에게 거래를 약속해주었다.

매우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휴우...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거래 대금은 넉넉하게 준비해둔 상태입니다. 이웃 주둔지에 저희 일꾼들이 대기하고 있으니 거래가 완료되는 대로 밀을 바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칼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꺼내 바로 작성을 시작했다.

“계약서를 확인하시고 마음에 드시면 인장을 찍어주십시오. 바로 대금을 지급해주시면 계약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건네받은 가임가너 백작은 오랫동안 꼼꼼하게 서류를 들여다봤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네는 계약서와 똑같았기에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단 한 줄을 제외하고는.

“저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여기에 쓰여 있는 밀의 지급일이, 오늘 날짜가 아니라 이틀 뒤로 되어있습니다만...”

“아, 그것 말씀이십니까? 통상적인 거래 절차입니다. 그 많은 물량이 바로바로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서요.”

“제가 오늘이라도 당장 영지로 돌아가야 해서...”

가임가너 백작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칼리안을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영지에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하셨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백작님은 계약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서류를 하나 적어주시면 저희가 책임지고 대신 세금을 완납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너무 수고를 끼치는데...”

“괜찮습니다. 설마 수도가 코앞에 있는데 수도로 들어가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가더 왕의 텃밭에서 어떤 미친놈이 산적들을 끌어모아 용병을 고용해 습격이라도 하겠습니까? 그러다 물벼락 맞습니다.”

“...”

가임가너 백작의 한쪽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제가 같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끼리 뒤통수라도 치겠습니까? 어려운 사람끼리 도와야죠. 하하하.”

가임가너 백작은 윗니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같이 어려운 사람끼리 도와야지요...”

“여기에 인장을 찍으시고 대금을 지급해주시면 됩니다. 아, 세금 납부를 오스왈드 후작가에 위임한다는 위임장도 하나 써주십시오. 제대로 된 처리와 신뢰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서류로 만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칼리안은 웃으면서 빈 양피지와 펜을 내밀었다.

양피지를 받아든 가임가너 백작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왠지 눈빛은 착잡한 듯 보였다.


* * *


일과를 마친 칼리안은 수도로 들어가 진주 거래를 마무리하고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지배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시 방문한 네이더 로얄 펄에서 칼리안은 맞이한 것은 부지배인이었다.

그는 지배인이 자신에게 전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칼리안도 그에게 지배인에게 전달하라고 메시지를 주고 왔다.

‘적이 되지 않을 다른 방법을 찾았다니... 그 인간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돌아오는 내내 칼리안은 가더 왕이 전달한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를 골똘히 생각하며 지휘소로 들어갔다.

“칼리안, 괜찮아?”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형이었다.

“형 갔다 왔어? 어때? 내가 왜 가더 왕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지? 참고로 이곳은 별일 없었어.”

“별일이 없긴. 내가 수도를 가느라 잠시 이곳을 비우는 사이 가임가너 백작이 찾아왔다면서? 누가 그를 받아들인 거냐?”

“가신들은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걸 확실하게 모르잖아. 그러니까 다른 귀족들 상대하듯 문을 열어준 거지.”

“하지만 그가 의심받는 상황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잖아?”

“괜찮아. 이렇게 무사하잖아? 조사에 참여한 기사들이 충분히 그 사람을 경계했다고. 거기다, 그 사람도 여기에 싸움을 걸러 온 것은 아니었어. 그도 도정 밀을 사려고 온 거였으니까.”

“너, 설마 거래를 받아들인 거냐?”

“응. 돈도 다 받았어.”

칼리안은 씨익 웃으면서 지휘실에 놔둔 장부를 찾아와 형 앞에 가임가너 백작의 이름과 거래 액수를 보여줬다.

“허...”

거래 내역을 본 형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칼리안을 바라봤다.

“이해가 잘 안 간다 동생아.”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그의 거래를 받아들인 것 때문에?”

“그것도 그렇지만, 그에게 밀을 받지 않고 돈으로만 거래를 한 것이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아낀 밀은 모두 군량으로 쓰일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냐?”

“응. 그래서 지급일을 이틀 뒤로 한 거야. 일부러.”

“이틀 뒤?”

“형. 아까 수도에 가서 손을 써놨으니까 내일 가서 가더 왕을 만나서 영지전을 신청하고 가임가너 백작에게 선전포고를 해. 그럼 이틀 뒤의 거래는 바로 파기될 거야.”


작가의말

돈은 내가 슬쩍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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