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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丁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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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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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칼리안의 순발력

DUMMY

039. 칼리안의 순발력



없는 신을 믿겠다고 하다니, 하니에르 대신관의 개종 선언은 칼리안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칼리안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신께서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대신 의미심장한 말로 하니에르 대신관을 멈춰 새웠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해답은 하니에르 대신관께서 직접 구하셔야 합니다.”

“아. 아직은 이라는 말은 혹시 개종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아... 아니, 설마 마의 무리 때문에...”

칼리안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하니에르 대신관을 내버려두고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신전을 빠져나왔다.

이 동네는 종교 이전의 자유가 있는 대신 개종을 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충족시키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등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덕분에 하니에르 대신관은 칼리안의 의미심장한 말이 마치 시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신전을 무사히 빠져나온 칼리안은 한숨을 쉬며 마차에 올라탔다.

‘아무리 그래도 한 신전을 지키는 대신관이 갑자기 개종을 하겠다니...’

아무리 종교 전환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하니에르 대신관의 반응은 넌센스였다.

어쩌면 신성 제국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몰랐다.

그곳에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신관들이 신성 제국이라는 이름 하나로 한 나라에 모두 모여 있었다.

제국의 황제 격인 교황 배출의 기준은 종교가 아닌 신성력의 강함이다.

최근 8백 년간 신성 제국의 교황이 태양의 신인 셀라교 출신만 배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종교 간의 눈에 보이는 우위는 있는 것 같지만...

‘교황 중에는 개종한 신관도 있었어. 나만 해도 믿는 신이 없는데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잖아? 그 말은...’

신성력은 어쩌면 신과는 상관없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가설일 뿐, 칼리안은 종교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이전에도 진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떡볶이를 먹기 위해 동네 친구를 따라갔던 교회.

군대에서 여자보고 먹을 거 받아먹으러 가던 군종 3신교의 찬송가나 염불 몇 개.

전역 후 막일하면서 사찰 지으러 산에 들어갔다가 스님에게 들은 선문답.

이상이 칼리안이 아는 종교에 대한 전부였다.

‘경전이라도 만들어놔야 하나...’

이러다 하니에르 대신관 말고도 조만간 개종하겠다고 찾아오는 신관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칼리안이었다.


* * *


갑작스럽게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에 같이 갔던 페이론 대공과 반트레인은 강한 의문을 표했다.

두 사람을 따로 부른 칼리안은 페이론 대공에게는 아슬라의 엄마에게 받은 물건이 있다고 말했고, 반트레인에게는 아슬라가 한거라고 둘러댔다.

드래곤은 신성력을 물건에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현세에 있는 각 교단의 신검이나 신기는 모두 드래곤이 만들어 마족과의 싸움 때 인간에게 전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종족은 인간이 모르는 신을 모시는데, 그 신의 이름이나 전파 방법에 대해서는 인간들은 잘 모른다.

덕분에 충분한 설명이 됐는지 두 사람은 더 이상 궁금증을 물어오지 않았다.

후안은 애초에 자신의 딸이 치료된 것 말고는 관심이 없어서 입단속을 부탁하는 것으로 신전에서 있던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신전에 다녀온지도 이틀이 지났다.

소문에 빠르다는 귀족들을 많이 만났지만, 신전에서 입단속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소문은 다시 칼리안의 귀에 들려오는 일이 없었다.

대신, 귀족들은 새로운 소문인 오스왈드 후작가의 승전보와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두 오러마스터, 그리고 가더 왕과의 관계를 집요하리만치 물어왔다.

덕분에 전시실은 귀족들로 미어터졌다.

어떤 귀족들은 거래 때문에 왔고, 어떤 귀족들은 이미 거래를 마쳤는데도 방문했다.

거기다, 거래 말미에나 올 거라고 예측했던 백작과 후작들이 방문 러쉬를 해오는 통에 도정 물량이 딸려서 예약을 걸어야만 했다.

귀족들의 러쉬 덕분에 칼리안의 접대 스킬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말 돌리는 스킬이 나날이 상승했다.

다행히도, 가문의 힘이 강해진 덕분에 귀족들의 집요한 질문은 예의를 벗어나는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이다.

애초에 거래 당사자가 아닌 공작들.

그중 하나가 약속도 없이 집무실로 쳐들어오는 바람에 칼리안은 현재 진땀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가문에 두 명의 오러 마스터가 있다니,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군. 실로 대단한 가문 아닌가? 후작 본인이 오러 마스터임은 물론이고 한 아들은 오러 마스터, 한 아들은 정령사라니...”

“저희 가문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른 공작님.”

네른 공작.

그는 초대 네이더 국왕의 형제였던 네른의 혈통으로 전통적으로 친국왕파인 사람이지만, 왕자의 난 이후로 지금은 반국왕파의 선두에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서로 개척하고 발전하여 연공법이 달라졌다지만, 초대 네이더 국왕이 익히던 오러 연공서를 그대로 물려받은 네른 공작가는 대대로 상급 오러 마스터가 자주 나오는 명문 가문이었다.

분명 그런 네른 공작가가 반국왕파의 선두에 있다는 것은 귀족들에게는 고무적인 일일 것이었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조카에게 자네 형의 결혼에 대해서는 들었네.”

“네? 형의 결혼에 대해서요?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조카분이 누구시길래 그런 소리를...”

칼리안은 조금 당황했다.

어차피 공개할 일이지만, 형이 공주와 결혼한다는 사실은 현재로써는 가족들과 국왕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칼리안은 그 사실을 대체 당신이 어디서 들었냐는 표정으로 네른 공작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내 조카가 가더 녀석이네.”

“가더... 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 가문과 왕실은 복잡한 인척 관계를 따지지 않고 몇 대째냐에 따라 항렬을 정하지. 가더 그 녀석은 나에게는 조카뻘이네.”

“아, 그... 렇군요...”

가더 왕을 친근하게 조카라고 부르는 네른 공작.

“영지전 때문에 독대를 청해왔을 때 잠시 실력을 시험해봤는데 오러 마스터로 각성했다고 아주 전도유망한 청년이라 칭찬이 자자하더군. 보자마자 사위로 삼고 싶은 것은 자기 생에 두 번째라고 아주 칭찬이 자자했어.”

“하하, 그러시군요. 하하...”

“그런데 첫 번째로 사위 삼고 싶은 녀석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자네 이름을 말하면서 가서 물어보라는 거야. 혹시 자네는 가더가 말한 첫 번째 녀석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건 저도 잘...”

“흐음... 분명 가더가 자네가 잘 알고 있을 거라던데, 모른다고 말하다니... 분명 모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네른 공작은 칼리안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더니 슬쩍 고개를 돌려 그와 함께 온 셋째 딸을 돌아봤다.

같이 시선이 따라갔는데, 솔직히 예쁘긴 예쁘다.

네른 공작은 다시 칼리안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흐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가더 왕과 친척이라 그런가, 눈매가 너무 비슷하다.

뭘 듣고 온 건진 몰라도, 저 눈빛은 가더 왕이 자신에게 딸과 결혼하라고 강요하던 때와 같은 눈이다.

애초에 딸을 직접 데리고 쳐들어온 것을 생각하면...

‘하... 이 아저씨도 가더 왕처럼 능구렁이과야. 귀족들 모두 속고 있어...’

지금까지 귀족들은 왕자의 난 이후로 네른 공작가와 왕실의 인연이 완전히 끊겨서, 그가 귀족들과 합류해 가더 왕을 견제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네른 공작과 가더 왕의 끈은 절대 끊긴 것이 아니다.

칼리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네른 공작에게 마주 미소를 날려주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긴장이 됐다.

“그나저나, 자네도 딸이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

“예. 딸이 있고. 결혼도 했습니다.”

칼리안은 빠르게 대꾸하며 네른 공작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결혼을 했다면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상대는 네른 공작.

“소문으로 듣기에는 딸이 도중에 합류했다면서? 부인이 죽었다고 들었네. 그게 사실인가?”

칼리안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그때는 제가 정말 책임감 없이 살았을 때입니다. 저의 잘못 때문에 그녀가 죽었지요. 뒤늦게 깨닫고 그녀를 찾으려고 했으나, 아이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저는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남자가 책임감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이지. 책임질 수 있는 남자라면, 아이의 행복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네른 공작은 말이 길어지기 전에 칼리안의 말을 싹둑 자르며 들어왔다.

“그래서 말인데, 남의 배에서 자란 아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아주 착한 심성을 지닌 여자와 새장가를 가는 건 어떤가?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은 그 자체로 선물이지. 자네도 많이 방황해봐서 알지 않는가?”

네른 공작은 칼리안의 가정사를 들먹이며 결혼을 종용해왔다.

칼리안이 방황한 이유가 엄마가 일찍 죽고 아버지는 큰 형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육아를 놓아버렸기 때문이란 건, 귀족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실제로는 너무 편하게 자라난 칼리안이 자신이 오러를 익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처음으로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며 자격지심이 폭발해 그랬던 거지만...

“죄송하지만, 재혼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시듯...”

오스왈드 후작 또한 부인이 죽고 최근까지도 재혼 문의가 끊임없이 들어왔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에게 사랑은 없다며, 그 어떤 재혼 문의도 거절했다.

“어허. 자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하게. 오스왈드 후작가와 별개로, 자네는 오스왈드 백작가로 다시 시작하지 않는가? 딸 혼자서 살기는 벅찬 세상이야. 새로운 부인도 들이고, 아들도 낳고 해야 후계도 탄탄하고 딸도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그러지.”

“언젠가 제가 먼저 가겠지만, 제 딸은 강합니다. 그리고 제가 없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도록 계속 강하게 키울 겁니다.”

“허어, 그러지 말고 여기 내 딸 히브린나를 보게. 이 아이가 외모도 외모지만, 신전에서 남아를 순산할 수 있는 체질이라고 말했지. 거기다 가문의 아이 중에 드물게 서민들에게도 관심 있고 아주 착한 아이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자네와 이 아이가 결혼하면, 나는 자네에게 우리 가문의 오러 연공서를 줄 생각이야. 새로 자라날 아이가 자네 가문의 연공서와 우리 가문의 연공서를 익히면 단승 귀족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영지를 가진 종신 귀족이 되는 거지! 그리고 서로의 가문에 예물로 연공서를 보내 연구하고 발전하면...”

네른 공작은 슬슬 본심을 드러내며 부담스러운 오러의 기운을 줄기차게 뿜어대며 칼리안을 압박해 왔다.

몸에 직접적으로 쏘아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상급의 오러 마스터가 눈앞에서 기운을 뿜어대는 것을 보는 것 만으로도 정신은 피곤했다.

막 그가 들어왔을 때, 아슬라에게 질문했던 게 떠올랐다.

‘아슬라. 저 아저씨 이길 수 있어?’

아슬라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었다.

칼리안은 지금이라도 아슬라를 불러서 저 아저씨, 네른 공작을 패버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건의 파급력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겠고...

“내 딸도 자네가 마음에 든다는 군. 보게, 자네 얼굴만 봐도 이렇게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가? 마음씨도 착해, 남자 애도 잘 낳는다지,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 정도면 일등 신부감이지.”

칼리안이 아슬라를 불러 줘 패냐 마냐를 고민하는 사이, 네른 공작은 계속해서 자기 딸과 결혼하라고 강요를 해왔다.

마치 자신의 딸을 물건처럼 취급하면서 강매하는 느낌인지라, 듣자하니 기분은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분명, 가더 왕께서 생각하는 1순위의 신랑감은 어딘가 따로 있을 겁니다.”

“나는 그게 자네라고 생각하네. 아니면 그 친구가 그렇게 말을 했겠는가?”

“어떻게 감히 제가 그렇겠습니까? 따님께서 좋은 신부감이시라니, 좋은 신랑감을 만나 좋은 인연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 인연이 자네라고 생각하네.”

이렇게 자잘한 실갱이를 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점점 흘렀다.

‘가뜩이나 비는 공금 열심히 채워 넣으려고 했더니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한 시간이나 때우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인내심이 바닥난 칼리안은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때였다.

똑똑똑.

칼리안이 천막의 벽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심코 그 시선을 따라갔던 네른 공작은 다시금 칼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에게는 칼리안이 보고 있는 문이 보이지도 않고, 그곳에서 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은 탓이다.

“죄송하지만, 네른 공작님 제게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런데 나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기다릴 테니 여기서 용무를 보시게. 어차피 나중에 다 식구가 될 건데 말이야.”

칼리안의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네른 공작은 뻔뻔하게 웃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그러자 칼리안이 정색하며 네른 공작을 쳐다봤다.

“네른 공작님 때문에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를 못 했습니다. 급해서 그러는데, 따님하고 같이 나가주시죠. 마음 편히 똥 좀 싸게.”

“...”

막힘없이 꼬리를 물고 흘러나오던 네른 공작의 뻔뻔한 말재간이 비로소 멈추고 말았다.

칼리안보다 더 뻔뻔할 수는 없었기에.


작가의말

우리 칼리안은 더럽게 뻔뻔하다구. 후훗.


*


주말에 두통인 줄 알고, 예전에 쓴 공지에 (현황:두통지연중)이라고 쓰고 약 먹고 급히 잠에 들었는데... 감기라서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콜록 거리다가 땀을 쭉 빼고, 따듯한 물을 많이 마시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결국 회복되어 살아돌아왔습니다.

환절기다 보니 창문을 열고 자면서 온도의 급격한 변화에 몸의 면역력이 갑자기 떨어졌나 봅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저는 몸이 나았으니 인자 연재 쭉쭉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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